14. 혜능 행자의 悟道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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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是菩堤樹요 (마음은 이 보리의 나무요)
身爲明鏡臺라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이라)
明鏡本淸淨커늘 (명경은 본래 맑아 깨끗하거늘)
何處染塵埃리오 (어느 곳이 때와 먼지에 물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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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兩日에 有一童子가 於 坊過하여 唱頌其偈하기에
能一聞에 便知此偈-未見本性하고 雖未蒙敎授나
早識大意하기에 遂問童子曰하되
誦者何偈하니 童子言하되
爾這 야 不知인가 大師言하시되
世人이 生死事大하니
欲得傳付衣法하시고 令門人-作偈來看하라
若悟大意하면 卽付衣法하여 爲第六祖하리라
神秀上座가 於南廊壁上에 書無相偈하니
大師께서 令人皆誦此偈하라 依此偈修하면
免墮惡道라하더라
能曰하되 我亦要誦此하여 結來生緣하여 同生佛地하게
上人이여 我此踏 이 八箇餘月이나 未曾行到堂前이니
望上人은 引至偈前하여 禮拜하니 童子가 引至偈前하여
作禮하니 能曰하되 能不識字하니 請上人爲讀하였느니라
時에 有江州別駕하여 姓張이요 名日用이라
便高聲讀하기에 能聞已하고 因自言하되
亦有一偈하니 望別駕爲書하오
別駕言하되 야 汝亦作偈하니 其事希有로다
能啓別駕言하기를 欲學無上菩提에는
不得輕於初學이니 下下人도 有上上智요
上上人도 有沒意智이니
若輕人하면 卽有無量無邊罪리라
別駕言하되 汝但誦偈하라 吾爲汝書하리라
汝若得法하면 先須度吾하니
勿忘此言하니라 能偈曰하되
菩提本無樹요 明鏡亦非臺라
本來無一物이니 何處惹塵埃리오
書此偈已하니 徒衆總驚하여 無不嗟訝하니라
各相謂言하되 奇哉다 不得以貌取人하니라
何得多時를 使他肉身菩薩하다
祖見-衆人驚怪하시고 恐人損害하시어
遂將鞋擦了偈云하시되
亦未見性하시니 衆人疑息하니라
다시 이틀이 되어
한 동자(사미)가 방앗간 앞을 지나 가면서
그 게송을 부르기에
혜능이
한번 듣고는 문득 게송이
본성을 보지 못했음을 알고,
비록 가르침은 받지 못했으나
(별달리 지도 받지 못했음)
일찌기 대의를 알고 있었기에
그 동자에게 묻기를
'외우는 게 무슨 게송인가?' 하니
동자가 말하기를
'너 이 오랑캐야 알지 못하느냐?’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이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전하고자 한다'
하시고
'문인들아 게송을 지어와 보이라.
만일 대의를 깨달았으면
곧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六조를 삼으리라' 하심에
신수상좌가
남쪽 복도 벽위에
무상게송을 써 붙이었는데
대사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이 게송을 다 외워라.
이 게송을 의지하여 닦으면
악도에 떨어짐을 면한다' 하셨느니라.
혜능이 말하기를
'나도 또한 이것을 잘 외워서
내생의 연을 맺어 함께
부처님 땅에 나게,
선배여 내가 방아를 찧는지가
8개월여가 되었으나
당앞에 일찌기 가 본 적이 없으니
바라건대
선배께서는 게송 앞에 인도하여
예배를 드리게 해달라'하니
동자가 게송 앞에 인도하여
예배를 하도록 하여
혜능이 이르기를
'혜능은 문자를 알지 못하니
청컨대
선배는 읽어주오' 하였다.
그때
강주의 별가
(자사의 보좌관으로 따로 마차를 타고
따라 다닌다는 별칭)가 있어
성은 장이요 이름은 일용이라
문득 소리 높여서 읽어 주기에
혜능이 듣고서 이로 인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또한 한 개의 게송이 있으니
바라건대
별가께서 써 주시오'하니
별가가 말하기를
'오랑캐인 네가 게송을 짓겠다니
희유한 일이로다'하여
혜능이
별가에게 말로 깨우쳐 주기를
'위없는 보리를 배우는 데는
처음 배우는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이니,
낮고 낮은 사람이라도
높고 높은 지혜가 있고
높고 높은 사람도 뜻에
지혜가 없을 수 있으니
만약 사람을 가벼이 여기면
곧 한량없고 가(끝)없는
죄가 있게 되리다'
별가가 말하기를
'너는 다만 게송을 읊으라
내가 너를 위해 써주리라.
네가 만약 법을 얻으면
나를 먼저 제도하여 주기를 바라니
이 말을 잊지 말라'고 했느니라.
혜능이
게송으로 이르기를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아니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곳에 때와 먼지가 끼리오
별가가
게송을 써 놓고 나니
대중이 모두가 놀래서 감탄하고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느니라.
서로 말하기를
"기이하도다!
(겉)모습으로써 알 수 없도다.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가)저 육신보살
(전생에 닦아 얻은 이)을 부렸던가?'
하였느니라.
조사께서
대중이 놀래고
괴이하게 여기는 것을 보시고
누가(사람들) 해칠까 염려하시어
짐짓 신으로 게송을 문질러 버리시고
이르시기를
'역시 (이것도)성품을 보지 못한 것이다'
하시니 대중이 의심을 풀었느니라.
강설:
이때의 혜능은
五조 문하에 출가한 지 8개월 된 행자로
누구나 그를 무시하고 경멸했으나
그가 비범한 법기임을 오직 한분
五조가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중생들이 누구나 이 몸뚱이에 집착해서
몸뚱이를 중심한 색, 수, 상, 행, 식인
자아
(개아)를 참 나인 줄 잘못 알고
그것 만을 위해 살고 있으나
육신을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보면
곧 육체(오온)의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 노릇을 하게 되고
업신이 6도를 돌고 도는 것이다.
부부 간의 생활도
자기 만을 생각하는 생활은
애정 생활을 원만히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니
상대를 나와 둘 아님을 깨달아
상대를 나와 같이 위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데서
참다운 우리와
둘 아닌 행복과 보람된 삶을
길이 살게되는 것이며,
고부 간 부자 간도 또한 이와 같으며
사회를 살아 감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인식 능력이 있는 참 나는
오직 본성인 마음 바탕의 반야가
발현될 때가 자성의 참다운 지혜이며,
우주의 근본 당체로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시간과 공간이 벌어지기 전,
주관과 개관과 정신과 물질이
벌어지기 이전에
본래 비어있는 진공묘유의 법성
즉 불성인 것이며,
참 나의 실상인 본래면목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사가 없고
피차가 없고
이름이 없어
한 물건도 없는
그것이 여러분 그리고 나,
부처님의 자성인 것이다.
볼품없는 모습(능행자)에
분별심을 내는 중생의 경계인
그들의 안목이
어찌 이 행자 혜능이
그 우주의 근원이요
자기 본래면목인 불성을
밝게 증오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따라서 놀래고 의심하게 되는 것을 보신
五조께서
무리의 시기로 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짐짓 지워 버리고
"이것도 아니다"하여
대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배려하신 것이다.
(실은 본래 無一物이라 해도
여래선으로
조사선의 경계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게 되겠지만....,
어느책에는 明鏡亦非臺를
非를 無로 써 있으나
뜻은 같으므로 무방하며,
6조단경
돈황본에는
6조대사의
이 '오도송'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참고로 들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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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能偈曰 하기를
菩提本無樹요 (보리에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無臺이니 (명경 또한 대가 없으니)
佛性常淸淨커늘 (불성은 항상 맑아 깨끗하거늘)
何處有塵埃리오 (어느 곳에 때와 티끌이 있으리오)
又偈曰하기를
心是菩堤樹요 (마음은 이 보리의 나무요)
身爲明鏡臺라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이라)
明鏡本淸淨커늘 (명경은 본래 맑아 깨끗하거늘)
何處染塵埃리오 (어느 곳이 때와 먼지에 물들이오)
라 되어있다.
본인이 살펴 보건대
이 게송들이나 덕이본의 게송이
뜻에 있어서는 오차가 없다.
그러나 이 돈황본의 게송에는
마음(心)이니 부처의 성품(佛性)이니
한 용어는 선문의 오도송에서는
(흔히)쓰지 않으니 이런 명사는
교문에서 쓰는 용어이며,
오도송의 용어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는 것은
흔적(相)을 억지로 세운 것으로
글자 그대로 오도송은 깨달은 바의
경계를 드러 보이는 것이므로
거듭 같은 도리를 이르지 않은 것이니
말은 헛말이니,
어쩔 수 없이 4구로써 견처를
오도송으로 밝힐 지라도
거듭 허물을 더할 이치가 없으므로
덕이본의 게송이 수승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덕이본'과 '돈황본'이
어느 것이 먼저 편찬된 것 인가를
따질 것 없이 내용에 있어
덕이본이
여러 부분의 문맥상 近似하다 하겠다.
또한 두 본을 대조해 본 바
돈황본에는 誤字가 너무도 많음도
그러한 까닭이다.
역대 선지식들께서
5종 異本 가운데 가장 완벽한 것으로
공인한 단경으로 읽혀 왔음의
본의가 지당하다 하겠다.
6조단경이 5종이나 되고
相異점이 많은 폐단은
6조께서 문자에 밝지 못함으로써
직접 글로 남기지 않고
口訣이기 때문에 서로 이런 添削과
자기 소견을 더하여 짐이
연유된 것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살펴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