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창(海窓) 송기식(宋基植,1878~1949)
임소한(林霄漢, 1856~1935)이다. 본관은 예천(醴泉)이고, 자는 여운(汝雲), 호는 계와(溪窩)이다. 부친은 임응성(林應聲)이고 모친은 영양 천씨(穎陽千氏)이다. 선친의 문집을 간행하고 선친이 엮은 《계서예집(溪書禮輯)》을 간행하였으며, 이어 김흥락(金興洛), 김도화(金道和), 이만도(李晩燾) 등을 두루 방문하여 선조를 기리는 글을 받았다. 그의 묘갈명인 〈계와처사임공묘갈명(溪窩處士林公墓碣銘)〉이 송기식(宋基植)의 《해창집(海窓集)》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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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 송기식 학문과 사상 조명…국학진흥원서 29일 학술대회
송고시간2019-10-25 15:48
"상실한 국운 회복하고 유교 부흥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
한국국학진흥원 역사인물선양 학술대회 [국학진흥원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한국국학진흥원이 오는 29일 진흥원 강당에서 해창(海窓) 송기식 학문과 사상을 주제로 역사인물 선양 학술대회를 연다.
안동 특화 인물을 발굴해 지역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통문화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는 자리다.
25일 국학진흥원에 따르면 해창 송기식(1878~1949)은 퇴계 학통을 이은 서산 김흥락과 척암 김도화, 향산 이만도 문화에 차례로 들어갔다.
선배이자 스승 같은 석주 이상룡, 동산 류인식과 함께 혁신 유림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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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제강점기에 외세 압박에 스러져 가는 국운을 회복하고 신학(新學=西學) 조류에 밀려 구학(舊學)으로 내몰리던 유교를 부흥하는 일을 시대 소명으로 여겼다.
그래서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교육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믿고 봉양서숙, 인곡서당 등을 건립해 인재 양성에 전념했다.
그뿐만 아니라 신학문을 섭렵해 유교 근본 취지에 충실하고도 시대에 어긋나는 것은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열린 생각과 유교개혁 사상은 바다를 창으로 삼는다는 해창이란 호와 유교 유신론(1921)에 집약했다고 할 수 있다.
학술대회에서 이승용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이 '해창 송기식 가풍(家風)과 학문 성향', 이규필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해창 송기식 문학관과 시 세계', 김순석 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해창 송기식 현실 인식과 대응 방략 변화', 박경환 국학진흥원 이야기 할머니사업단장 '근대 전환기 공자교 운동 시대 배경과 사상적 의의-해창 송기식을 중심으로', 이은영 성균관대 한문학과 초빙교수가 '해창 송기식 교육 활동과 독립운동'을 주제로 발표한다.
송기식 가학 연원, 학문 성향, 문학 세계는 물론 현실 인식과 사상, 교육 활동과 독립운동을 종합 논의한다.
국학진흥원은 "전통을 수호하고도 새로운 문화를 탄력 있게 수용하려 한 송기식 삶과 사유는 이 시기 유교 지식인 고뇌를 읽는 하나의 창(窓)이자 오늘날 지식인을 비추는 거울이 되리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kimhj@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10/25 15:4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