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다.
하늘에 계신은 무슨 뜻일까? 하늘 즉 SKY가 아닙니다. 우주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전 공간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공간적으로 하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과 차원이 다른 초월성과 존엄성을 지닌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지만 죄악된 인간과는 견줄 수 없는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셔서 인간과 구별되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으며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이 땅의 아버지는 부르면 바로 올 수 있을까요? 없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오십니다. 이 말은 위대하고 전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젠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말을 하나로 연결하면
하늘이란 말에서 우리는 거룩하고 위대하고 전능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버지라는 말에서 든든함과 친근함을 느낍니다.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그 사람 자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하게 영광스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름(오노마)은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은 단순한 호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은 존재와 본질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십게명의 제 3계명에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거룩하라 구별되라 성별되라는 말씀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이고 그렇기에 하나님은 거룩한자 깨끗한자 구별된자를 좋아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도 반드시 우리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존귀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자들에게 무엇이든 부어주고 싶어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 구할 바를 모를 뿐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 존재를 높여드린 다음에 오는 기도가 나라이 임하옵시며입니다.
나라(바실레이아)는 공간적 의미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됩니다. 왕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영역이란 의미도 있으나, 더 많은 경우에는 왕의 통치나 왕의 권위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신령한 왕국이 임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순종하되 하나님나라의 통치자인 하나님에 대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태도를 가져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셔서 나를 온전히 다스려 주시고 통치해 주실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내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고 주님의 통치권이 나타나기를 기원해야겠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본문 말씀에는 하늘과 땅이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둘은 장소적인 의미 이상의 뜻을 지닙니다.
즉 하늘은 이미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실현되는 상태를 가리키고, 땅은 하나님의 통치를 아직까지도 거스르는 죄악된 상태를 암시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며 인간 구원을 위한 모든 계획을 수립하시고 이를 이루시는 분은 온전히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사역을 앞에 놓고 기도하실 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어지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를 본받아 우리 역시 오직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우리 가운데 그리고 이 세상에 성취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 나보다도 내게 있어야 할 것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우리 집안과 우리 학교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 생각대로 내 고집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대상을 부르고 그 이름을 높이고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뜻을 구한 다음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일용할 양식은 오늘의 충분한 양식입니다. 사람이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이 채워지면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필요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때 그때 채워주십니다. 때마다 날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 양식에 해당하는 아르토스는 음식으로서의 빵뿐만 아니라 제사 떡 및 성만찬의 떡도 가리킵니다.
음식은 육적인 양식 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 즉 하나님의 말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에 필요한 은혜를 오늘 구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내일은 내일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완전한 기도입니다. 오늘 행복하고 오늘 안녕하면 내일도 안녕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을 구한 다음 오는 기도는 용서에 대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육적 생존을 위한 양식 문제 뿐 아니라 과거의 죄의 용서와 미래에 시험에 들지 않는 영적인 문제도 반드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죄로 번역된 오페일레마의 문자적 의미는 부채(debt)입니다.
부채를 진 사람은 그 부채를 갚기 전에는 부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의 부채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해결책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즉 탕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하지 못한 나 문제가 많은 나를 용납해주고 이끌어 주시듯 용서함을 받은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은 사람들의 특징은 용서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결국 그 대가는 나에게 돌아오다. 내가 아직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담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고 내 영혼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용서에 대한 기도는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왜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했을까
큰 시험을 당하면 버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환란을 벗어나게 하시고 시험이 올 때 피할 길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시험 앞에서 어이없게 무너지다.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시험에 해당하는 명사 페이라스모스는 동사 페이라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뜻은 유혹하다입니다. 성경에는 유혹하는 주체로서 마귀를 지목합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주는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간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도 하여금 시험에 빠뜨리는 악한 자 즉 마귀로부터 구하여 달라는 간구를 늘 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은 죄짓는 일을 대체적으로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행위에 대한 댓가를 치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 나는 약합니다.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피할 길을 주세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이렇게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이 아주 쉽게 익힐 수 있는 주기도문 악보를 싣습니다. 복사하셔서 사용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