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셀프 시대다.
제주 살이 9개월 만에 나는 다른 사람 하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어 감사하며 즐겁다. 그것은 내가 운전을 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게 된 것이다. 옛말에 서당 개 삼년이면 글을 읊는다고 하더니 내가 지금 그런 형국이다. 제주 살이 9개월이 되니 내가 거처하는 지역 주변의 길을 알게 된 것이다. 숲이 우거진 길을 운전을 하며 달릴 때는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내가 찾아가는 곳은 서귀포 시에서 오일마다 열리는 5일장 장터와 산방 산 근처의 탄산 온 천, 어깨 치료를 위해 매주 찾는 정형외과와 주일날 교회에 가는 일이다. 노상 아파트 단지 내에서 뱅뱅 돌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나는 시장가는 것을 좋아한다. 딱히 구입해야하는 물건이 있어 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권태로운 날이거나 우울한 날이면 시장가는 것이 더욱 좋다. 생기 있는 삶의 현장, 그 곳에는 우리 인간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이 함께 숨 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장터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생선냄새와 야채냄새가 전신을 에워싸며 야릇한 생동감과 생명의 의욕이 솟구친다. 장터 안에는 일상에 필요한 온갖 물건들이 쌓여있고 직접 심어 키운 채소들이 흙냄새를 풍기며 할머니들의 광주리에 담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억양이 다른 제주 사투리의 정다운 가게 주인들은 맛 봅써께, 아주 맛이 쑤다, 골라 골라봅쎄, 쉬멍 쉬멍 구경 합쎄 이런 음성이 사람들을 부르며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한다. 정돈되고 깨끗한 물건들을 마음대로 골라 담아 계산대에서 계산만하는 슈퍼마켓과는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하며 인간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활기차게 열심히 주어진 삶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는 장터에 사람들이 붐비는 것은 다만 물건을 산다는 그 이상의 것, 훈훈한 인정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몇 주 전부터 목에서 어깨까지 주야를 막론하고 심한 통증과 팔 저림으로 고통 가운데 지내다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 상에 나타난 결과는 뼈가 내려앉으며 신경을 눌러 오는 고통이라는 진단이 였다. 의사선생님 말씀이 나이에서 오는 병이니 완치의 회복은 어려우니 약 복용과 물리치료, 도수치료를 겸하며 통증을 줄여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결국 세월이 주는 선물이 아닌가. 주신 선물 감사하면서 치료를 위해 부지런히 병원 길을 왕래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목욕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통증이 심한 부분을 탄산 온천물에 담그고 싶어 매주 온천장으로 달려간다.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은 쌓인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산뜻해져 나오는 감정중후의 생리적인 반응이다. 뭉친 어깨에 근육이 풀리기에 내게 있어 목욕은 피로회복제이고 운동 대용이고 레저이다.
목욕탕에 풍경은 나체족들의 전시장 같다. 전혀 부끄러움을 모른다. 감추어진 부분은 한 군데도 없는데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오그리는 사람이 없다. 정정당당하게 온 나체를 흔들면서 다니는 광경은 그대로 육체의 민주주의다. 목욕은 육체의 청소다 육체뿐 아니고 정신의 청소도 된다. 육체에서 오는 상쾌 감 때문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 때문에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탄산 온천장을 꾸준히 찾는 것 같다.
주일이면 우리를 부르시고 도움으로 인도해 주시는 주님을 뵈려 운전대를 잡고 기쁨으로 교회 로 달려가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곤 한다 나 혼자 힘으로 교회를 찾아가 예배에 참석 할 수 있다는 셀프는 감사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일에 셀프를 요청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제는 노인들에게 까지 셀프 부양( 즉, 자가도생) 을 요구하는 현실이기에 노인들에게는 슬픈 생존의 방법에 처하게 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 수 없는 부모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폐지를 줍거나 청소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뼈아픈 셀프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마치 셀프는 나를 나로 단련시켜주는 힘이 되어 셀프 시대를 활발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