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라면 놓쳐선 안될
[사찰성보문화재 50選]
⑳ 불국사 석가탑 사리장엄구
‘사리장엄구’ 모르면 석가탑 제대로 볼 수 없다
불국사 석가탑 사리장엄구(왼쪽 사진)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오른쪽 사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742년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목판 권자본이다.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 석가탑(3층석탑)
보수공사 중
2층 탑신부에서 금동제 사리함 등의
여러 유물과 함께 발견되어
이들 유물과 함께 국보 제126호로 지정됐다.
경주 불국사! 누구나 여러 차례 다녀올 만큼 한국의 대표적 사찰이다. 한국의 고대가람을 보여주는 귀한 곳이다. 첫 번째로 방문했던 때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역사와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평생 지니고 갈 만큼의 추억을 갖고 왔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했던
불교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일연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로 태어났지만
보시 공덕을 쌓아
귀족인 김문량의 아들로 태어났다.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문화의 황금기에
국가 권력으로 세웠던 불국사는
사찰명에서 나타나듯이
‘불국(佛國)’,
즉 부처님의 나라를
경주에 만들고자 한 바람으로 이루어진 사찰이다.
이러한 구상으로
불국사 경내에 진입하는 구조조차도
청운교, 백운교를 통해
불국토에 닿을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찬란한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재로 가득하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성보가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석가탑 사리장엄구’이다.
➲ 도굴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진면목
1966년 가을, 도굴범들은
국보 제21호 석가탑의 사리함을 훔치고자
도굴을 자행했다.
대범하게 몇 차례 도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탑이 일부가 훼손되는 상처를 남겼다.
당시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은
도굴의 주범들이
석가탑 뿐만 아니라 황룡사, 남산사, 통도사 등
사찰과 고적을 집단적이고
지능적으로 도굴한 사건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국민여론은 허술한 문화재 보존현실에 대한
당국의 책임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또한 문화재 관련기관에서는
문화재 수호에 대한 경각심 고취와
문화재 보존 대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아니러니 하게도
역사적 가치나 그 규모면에서
우리나라 불교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매우 중요한 일이 발생한다.
도굴과정에서 상처가 난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2층 옥개석을 들어 올리자,
2층 탑신석 중앙에서
가로·세로 41cm, 깊이 19cm 크기의
사리공(舍利孔, 사리를 두는 공간)이 발견됐다.
그 안에서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함과
사리를 공양하기 위해 넣은
각종 유물이 나온 것이다.
사리공 중앙에는
금동으로 만든 사리외함(舍利外函),
그 금동사리외함 안에서는
사리기와 여러 공양품이 발견됐다.
이 과정에서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이 발견됐다.
다라니경은
비단에 싸인 상태로
금동의 네모난 사리합 위에 얹혀 있는 상태였다.
금동사리외함 밑에서도
비단에 싸인 떡처럼 된 종이뭉치가 발견됐다.
사리함 주변에는
청동거울(銅鏡), 향(香), 각종 구슬, 비천상,
동경, 채자, 청동화형뒤꽂이 등
다수의 공양품과
나무로 만든 작은 탑 등이 수습됐다.
석가탑 사리장엄구는 시기를 달리하여
대략 세 차례 이상 봉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세트는
금동으로 만든 외함과 금동의 합,
은으로 만든 내합과 외합,
녹색 유리 사리병이다.
사리병에는 46과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은으로 만든 합과 사리병이다.
세 번째는
사리 1과를 담은
향목(香木)으로 만든 사리병과
금동합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세계 最古 목판인쇄물 판명
탑 조성하고 고친 공덕 강조
이 가운데 가중 중요한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다라니경은
너비 약 8cm, 길이 약 620cm 되는 닥종이에
1행 8~9자의 다라니경문을 인쇄한
두루마리 형식이다.
이 경전의 내용은
‘지옥의 고통에서 구제받기 위해서는
오래된 탑에 상륜당을 만들어 중수한 후
그 안에 다라니를 써서 넣고,
다라니를 일곱 번 외우면
마침내 도솔천궁에 왕생하리라’는
석가여래의 가르침이다.
모든 중생들의 수명을 연장하고
업장을 소멸케 할 6장의 다라니와
다라니에 수반된 각종 의례를 행하면
선근복덕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경전에 수록된 6장의 다라니는
대체로 탑을 조성하고 고친 공덕의 중요함과
작은 탑을 안치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한
탑조성 신앙이
통일신라 8세기 중반에서 9세기까지
크게 유행했다.
이는 탑에서 법사리로 봉안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다수의 작은 소탑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751년(경덕왕 10) 불국사 창건설을 근거로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로 판명 났다.
당시까지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은
770년에 새겨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보다 20년 앞선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8세기 초반에만
중국에서 사용했었던
측천무후자(則天武后字)가 사용되고 있어서
동아시아 경전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 해체수리 모습
➲ 고려시대 ‘잦은 지진’으로
석가탑 보수한 사실도 확인
사리외함 밑에서
여러 겹으로 응고된 상태로 발견된
<묵서지편>은
처음 발견 시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사리장엄구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지류의 판독과 역주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고려 현종 15년(1024년)과
정종 4년(1038년)의
불국사 석탑의 중수관련 내용을
담고 있음이 밝혀졌다.
보존처리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1997년에 이르러서야
한 장씩 떼어나는 작업이 가능했다.
2006년부터
제대로 된 보존처리를 할 수 있어,
그 내용을 판독할 수 있었다.
이 문서들은 <보협인다라니경> 일부,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
(佛國寺無垢淨光塔重修記, 1024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 1038년)>,
<불국사탑중수보시명공중승소명기
(시주자 명단)>인 것이 밝혀졌다.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는
1022년부터 1024년까지
2년간 무구정광탑을 중수한 경과와
참여인원을 정리한 문서이다.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는
석가탑의 연혁과 중수과정을 기록한 문서이다.
‘형지기’에는
1036년과 1038년에 잇달아 발생한 지진으로
석가탑이 훼손되어
보수를 진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경주지역에
지진이 자주 발생했음을 알려준다.
이 두 문서에서는
석가탑의 조성연대를 742년으로 적고 있어,
<삼국유사> 기록보다 9년이 빠르게
석가탑이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두 기록에서
석가탑을 ‘무구정광탑’과 ‘서석탑’으로
다르게 부르고 있어,
석가탑 본래의 명칭이 궁금하다.
이 중수문서들은
고려시대에 시행된
두 차례의 석가탑 중수내용을 알려주는
중요한 문서일 뿐 아니라,
고려시대 불국사의 위치 및 운영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현재 남아있는
석가탑 사리장엄구와의 유물 현황을
비교·검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자료이다.
사리장엄구 발견 당시 모습.
➲ 반세기만에 ‘환지본처’
불국사 석가탑 사리장엄구
국보 제126호 불국사 석가탑 사리장엄구는
도굴을 계기로 발견된 이후에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 됐다.
보존상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43년 동안 불국사를 떠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불교중앙박물관의 개관과 함께
2009년 12월 조계종단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이어 2018년에는
불국사 성보박물관이 건립되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실로 반세기만의 귀환이었다.
부처님 사리에 대한 믿음은
불교의 시작 당시부터 있어 왔으며
사리를 봉안하고 장엄하기 위하여 조성된 탑은
그 자체로 사리 신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탑 안에 봉안된 사리를 포함한 사리구 일체는
불교 종단의 교주를 모시는
가장 성스러운 보물이다.
그래서 사리를 모시는 사리장엄구는
제작 당시
모든 공력을 기울여 조성하므로,
무엇보다 뛰어난 예술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석가탑 사리장엄구’를 알지 못하면,
불국사 경내에 있는 석가탑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불국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된
‘석가탑 사리장엄구’를 친견하고,
신라인이 꿈꿔왔던 불국토를 그려보시길 바란다.
[불교신문3672호/2021년6월29일자]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