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이 날 때에는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일벌에 둘러싸여 비행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도, 사령관이 병사들을 다루듯이, 다른 모든 미덕들을 이끌고서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옵니다. |
그러나 사랑이 그 미덕들을 언제 어디서나 동등하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제때에 열매를 내는, 시냇가에 심겨져 있는 나무 (시편 1,3 참조)와 같다고 했습니다. 영혼에 물을 주어 새롭게 해 주면, 사랑은 제때에 맞춰 튼실한 열매인 덕이 생겨나게 합니다. |
성경에서 "때에 맞지 않은 말은 초상집에 풍악과 같다." (집회 22,6) 하고 말했듯이, 어떤 사람이 덕을 깊이 연구하여 실천하면서 이를 남에게 똑같이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고대 철학자들 중 염세주의자는 항상 울었고, 낙관주의자들은 언제나 웃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과 같은 덕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을 비방하거나 멸시하기도 합니다. |
바오로 사도는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로마 12,15)라고 강조했고, 사랑은 인내하고 애정이 깊으며, 도량이 넓고 신중하며 남을 생각한다. (1코린 13,1-13 참조)고 가르쳤습니다. |
덕 중에는 특별한 경우를 위한 덕 외에도 앞에서 언급한 모든 부분에 영향을 비치는 보편적인 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용맹, 관대, 경외의 덕은 실천할 기회가 비교적 드물지만 온순, 절제, 정직, 겸손과 같은 덕은 우리의 모든 행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덕입니다. 비록 이 덕들보다 더 고귀한 덕들이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일상에서 매일매일 실천해야 하는 덕입니다. 설탕이 소금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지지만 소금이 더 자주 쓰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이 덕들을 갖추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
그리고 우리가 선호하는 덕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덕을 선택해야 합니다. 바울라 성녀는 영적 위한을 풍성히 받고자 혹독한 고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에게 복종할 의무도 있었기에 예로니모 성인은 그녀가 주교의 지시를 어기고 과도하게 금육과 금식을 한 것을 꾸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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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사도는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가 복음을 전하고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념하는 것이었으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급하는 일이 훌륭한 애덕 실천임을 알면서도 그 일에 전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사도 6,1-7) 사람들은 각자 자기 처지에 맞는 독특한 자질을 길러야 합니다. |
주교로서의 자실, 군인으로서의 자질, 주부로서의 자질, 과부가 된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은 각각 다릅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덕을 길러야 하지만, 그 덕이 모두에게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모름지기 자신에게 합당한 자질과 덕을 길러야 합니다. |
우리의 소명과 관계없는 덕 중에서 먼저 택할 것은 훌륭한 덕이지 남의 이목을 끄는 덕이 아닙니다. 혜성은 보통 별보다 크게 보여 쉽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혜성이 크게 보이는 이유는 지구와의 걱리가 가깝기 때문이지 실제로 다른 별보다 크고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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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감각적이며 물질적인 성향을 지닌 덕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적 도움을 정신적 도움보다 높이 평가합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수행자들 중에는 고복苦服착용, 금식, 맨발 수행, 매질과 같은 고행을 온유, 친절, 겸손과 같은 훨씬 고결한 내적 고행보다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필로테아 님, 쉽게 사람들의 눈에 띄고 존경을 받는 덕이 아닌 최선의 덕을,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덕을 택하십시오. 특히 일정한 덕을 택하여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 그대의 신심에 유익합니다. 이는 다른 덕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목표를 갖고 일관되게 수행하려는 것입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요한 성인의 전기를 보면, 올리브 관을 쓰고 태양보다 빛나는 공주복을 입은 소녀가 어느날 주교에게 나타나 "나는 임금님의 맏딸이에요. 그대가 나의 친구가 되어 준다면 임금님 대전에 인도해 드리지요."라고 했답니다. 성인은 이 말을 듣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뒤로 이 덕을 실천하여 마침내 '자선가 성요한'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에울로지오는 하느님께 특별히 봉사하려고 생각했으나, 은둔 생활을 할 용기도 없었고 장상에게 순종해야 하는 수도원 생활을 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집에 나환자를 데려와서 주인을 모시는 하인처럼 그를 공경하고 돌보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에 에울로지오도 나환자도 서로 싦증을 느껴 헤어지고 싶은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안토니오 성인에게 조언을 청하자 성인은 "아들들아, 너희는 서로 떠나지 마라. 너희 두 사람은 머지 않아 하느님 대전에 나가게 된다. 그때 천사가 너희 두 사람이 갈라진 것을 알게 되면 너희는 영화로운 화관을 잃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
루도비코 성인 임금은 병원을 방문하여 자신이 직접 병자들을 간호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청빈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애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설교에 열중하여 자신이 세운 수도회가 '설교 수도회'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아브라함을 본받아 기쁜 마음으로 순례자들을 대접하여 순례자 차림을 하신 주님을 모셨습니다. 토빗은 죽은 사람들을 매장하는 애덕을 실천했고 (토빗 1,17-20 참조), 헝가리의 엘리사벳 성녀는 왕비의 신분임에도 모욕을 참아 냈습니다. 제노바의 가타리나 성녀는 남편을 잃은 뒤부터 병원에서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교부 카시아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 신심 깊은 소녀가 아타나시오 성인에게 인내의 덕을 쌓는 방법을 묻자, 성인은 변덕이 심하고 늘 불평을 일삼는 한 노파의 시중을 들게 함으로써 그 소녀가 온유와 인내의 덕을 닦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
하느님의 종들 중에는 병자를 간호하거나 빈민을 돕는 사람들도 있고, 어린이들에게 신앙 교육을 시키거나 죄인들을 교회의 품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교회를 세우거나 제대를 꾸미는 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사람들 사이에 분쟁을 조정하며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양한 바탕에다 금실, 은실 등 갖가지 고운 비단실을 수놓아 아름다운 꽃무늬를 만드는 사람처럼, 특별한 신심 수행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적 바탕에 여러 가지 덕들로 수늘 놓아 자기 영혼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입니다. |
어떤 죄를 범할 위험에 처해 있을 때에는 이를 막을 수 있는 덕을 쌓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악을 이길 수 있고 동시에 모든 덕을 키울 수 있습니다. 교만이나 분노 같은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을 때에는 겸손과 온유의 덕을 키워야 하며, 동시에 기도와 성사들과 같은 종교적 수행을 하고 신중, 사려, 절제, 온유와 같은 적을 쌓아야 합니다. 멧돼지는 어금니를 다른 이빨들에 갈아 댐으로써 날카롭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특별히 필요한 덕을 닦으려는 사람은 다른 덕들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함께 갈고 닦아야 합니다. 특히 욥은 인내의 덕을 쌓음으로써 많은 유혹과 다른 덕들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나지안조의 그리고리오 성인은 나그네를 따뜻하게 대접하는 덕을 실천함으로써 크나큰 영광을 입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한 가지 덕에 충실하면 동시에 많은 덕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마음으로 실천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