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달서 책사랑 전국주부수필 공모전 응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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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가정남 책으로 비상한다
신근식
요즘은 혼자 사는 가정남(男)으로 너무 바쁜 일상에서 하루를 거른다. 때로는 깜박 잊기도 하고, 무언가에 쫓기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면 건강과 정신에 무리가 찾아온다. 지치지 않고 오래 살려면 때로는 삶에서 쉼표를 찍어가며 쉬엄쉬엄 가야 한다. 지나온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며, 책으로 갈증을 푸는 것이다.
1977년도 봄, 낯선 대구에 첫발을 디뎠다. 고교 졸업하고 일 년 재수해도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둔재이다. 그때 생활은 자포자기 상태이어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술로 세월을 갉아먹었다. 이른바 허송생활로 시간 죽이기를 한 것이다. 이러한 생활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젊은 녀석이 그렇게 무의미하게 세월만 보내느냐? 네 작은 아버지 한 번 찾아가 봐라. 무슨 방도라도 낼 끼다.” 지나가듯 한 말씀 흘리었다. 작은 아버지는 서울 건설부에 일 보고 있어서 집안에 큰 기둥 노릇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짐을 꾸리고 난생처음 상경하였다. 작은 아버지는 난감한 모양이다. 다음날 갑자기 편지 한 장 써주며 “대구에 내려가서 일 해보아라.”고 장엄하게 거꾸로 나에게 부탁하였다. 다시 열차 타고 내려오면서 봉하지 않은 봉투 열어보았다. “소장님 내 장조카이니 수위든, 경비든 아무 일이나 좀 시켜 주십시오.”라 적어 놓았다. 나는 편지 내용보고 스스로 자존심은 있어서 별로 마뜩찮았다. 그러나 취업하려는 것에 단단한 각오를 어찌하겠는가? 대구주소지로 내려왔다. 서울이나 대구나 도시생활은 창녕 촌사람으로서 난생처음이라 마치 초보 가정주부처럼 서툴다.
다행히 소장이 관리부서에 건설공무원 임시직 “청부(廳夫)”의 직책을 주었다. 주 업무가 건설사무소의 공문서 접수 및 발송 등 관리업무이다. 그러나 순진하게 시골 생활만 하였기에 건설 인부나 장비 관리 등이 너무 생소하고 서툴렀다. 취업을 시켜준 작은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오래 근무하려고 노력했는데 나의 체질에 맞지 않아 다른 일을 찾기로 생각하였다. 그 짧은 도시 생활에서도 이미 학습되어 나름의 생각이 두터워졌다.
또, 직장 다니며 대학 갈 꿈을 잃지 않았다. 마침내 K전문대학 도서관과(야간)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졸업하면 사서자격증을 취득하여 고향 군립도서관에 근무하여야겠다는 야무진 희망 혼자 간직하고 지냈다. 도서관과는 그 시절 신학문으로 학과교수가 “졸업하게 되면 대학도서관, 기업체 자료실, 공공도서관 등 취업전망이 밝다.”고 귀띔하여 주었다. 미래 삶의 날개를 달기위한 생각으로, 가슴 설레며 매일 고됨 속에 스스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또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하여 신문광고를 훑었다. 국민서관에서 관리사원 모집이 보이었다. 전공과 유관하여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그때는 친한 친구도 없고, 조언 해줄 사람은 더욱 아무도 없었다. 2년간 근무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였다. 아뿔사! 기대한 관리직은 고사하고, 어린이도서전집을 팔려 다니는 영업사원 직원이었다. 속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어서 원망하지 못하고 리더사원과 열심히 책 팔려 다녔다. 수입은 거의 없지만 일 년 동안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취업경험을 하였다. 대학졸업하고, 남성의 통과의례를 마치고 학과교수의 추천으로 운 좋게 모교 대학도서관에 취업하였다. 군립도서관이 아니라 대학도서관 “사서(司書)”가 되었다. 인생 일대 행운을 맞이한 것이다. 책을 좋아한 덕으로 내 인생에 첫 날개를 달았다.
대학도서관에서 3개성상 책과 관련된 업무를 하였지만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였다. 겨우 역사소설만 읽었다. 그러나 직장에서 책 많이 읽는 “다독자 리스트”에 올려 주었다. 우리나라 독서율은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인 166위이다. 명색이 경제 10대 대국으로 정말 낮은 수준이다.
정년 후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였기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장애인협회 이사장이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해 보라.”고 하면서 동구에 있는 협회 사무실 내 공간을 할애해 주었다.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책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다. 반월당 소재 “Yes24시”중고서점에서는 새 책 같은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24일에 가면 24%할인 해 준다. 매월 24일은 책 사는 날, 그날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심리, 의료, 노인관련 도서를 그러모았다. 책 모으는 재미는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 깊이에 빠지면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일 년도 안 되어 약2,000권의 도서가 진열되었다. 협회이사장은 “규모가 그 정도면 작은도서관을 만들어도 되겠다.”고 칭찬과 함께 격려하여 주었다. 협회 소속으로 ‘돌보미작은도서관’이라고 이름붙이고, 관장으로 임명받았다. 그 후 도서관 활동을 계속하였다. 책을 통하여 두 번째 날개를 달았다.
세상 일이 모두 그러하듯 무조건 날개만 단다고 모두 비상하는 것은 아니다. 날개가 때로는 모진 풍파를 만나 오히려 날지도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2020년 1월부터 본격적인 코로나19 영향으로 도서관 운영이 잘되지 않았다. 협회이사장이 “장애인협회 달성군지회를 맡아 달라고” 하였다. 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 근처 빌라4층에 사무실을 얻었다. 장애인관련 업무와 책과 같이 하는 문화사업위해서 동구에 있던 책 2/3를 모두 옮겼다. 그 많은 책과 비품을 4층까지 혼자서 지고 날랐으니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그동안 내 몸 돌보지 않고 앞만 달리다가 허리디스크가 찾아왔다. 초기라 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병을 키워서 결국 수술받았다. 이제 하고 있던 모든 일을 접어야 했다. 그동안 일을 성사시켜 보려고 무던히도 몸부림쳐 보았지만, 얻은 것은 없고, 몸과 마음만 잃었다. 그나마 활기 넘치는 정열도 한풀 꺾이어 망연자실하였다.
사람은 평소 하던 일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동안 회복 운동을 꾸준히 한 덕에 수술 후 반년이 지나서 몸이 되돌아왔다. 동구에 있는 협회사무실이 수성구로 이전하게 되어 그 많은 책을 없애거나 옮겨야 하였다. 또 마땅한 장소를 찾느라고 백방 수소문 하였다. “사람에게는 고난이 닥쳐오면 해결책도 있다.”고 했듯 마침내 성주에서 달서구 S아파트로 이사 왔다.
S아파트 대한노인회의 회원가입과 동시에 재무를 맡았다. S아파트 노인회의 규모는 달서구에서 가장 회원 수가 많고 방도 넓었다. 방은 할머니방과 할아버지방으로 나누어있다. 할머니방에는 항상 할머니들이 드나들고 있지만, 할아버지방은 아무도 오지 않아 매일 텅 비어있다. 노인회 활성화를 위해서 노인회장과 의논 끝에 동구협회의 책과 비품 등 모두 기증하기로 하고, 옮겨왔다. 2024년 1월에 할아버지방에다 노인도서관을 만들어 대한노인회 달서구지회도 홍보하고, 현판식도 마쳤다. 내 인생의 황금빛 결말 단계에 와서 또 한 번 날개를 만들었다. 책을 통하여 세 번째 날개를 달아 비상하는 순간이다.
우리 가족은 아이가 셋이다. 공교롭게도 세 명 모두 서울에 산다. 아내마저도 큰딸 외손자 돌본다고 서울에 간지 벌써 2년이 흘렀다. 본의 아니게 혼자 사는 전업 가정남이다. 인생에 상상도 못하던 일들이 닥치고 삶의 올바른 키를 찾느라 제2의 인생에서 오로지 일생동안 책과 씨름하는 상 남자 전업 가정남이다. 속담에 “미꾸라지 천 년에 용 된다.”했듯, 본래 재간은 없더라도 나이 들면 경험으로 제법 능숙한 솜씨를 보이게 됨을 이름이다. 요즈음 일과가 마무리된 저녁 혼자서 전업 가정남이 가정을 지킨다. 요리교육에 늦게 배운 안주 한 상 차려놓고, 책으로 술 삼아 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다.
(2024. 0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