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와 Geography의 재현의 차이
인간은 자신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현상 또는 현상의 특성을 언어, 그림, 사진, 지도, 음악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표현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보통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한다. 재현의 과정에는 크게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이 전제되는데, 모사적 재현양식(mimetic representation)과 해석적 재현양식(interpretive representation)이 그것이다.27) 모사적 재현은 말 그대로 재현되는 대상을 거울에 비추듯이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는 대전제이다. 그럴 경우 재현된 결과와 대상 사이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일대일 대응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에 반해 재현의 과정에 작동하는 수많은 변수나 재현되는 대상과 결과물 사이의 고정적이지 않은 비결정적 관계 등에 주목하는 해석적 재현은 모사적 재현양식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재현의 문제와 관련해 자연, 인간, 자연환경-인간 간 관계 등에 대한 인식론적 기저에서 차이를 가지는 풍수와 Geography도 재현의 방식이나 결과에서 서로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간과 관련된 지표상의 다양한 자연, 인문현상을 2차원 평면위에 표현한 지도의 경우 풍수와 Geography의 특징적인 재현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1. 풍수적 재현으로서 고지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에 담아지는 가장 일차적인 요소는 지표상의 다양한 자연, 인문현상이다. 지도 제작을 위한 축척이나 기호 등을 통해 실제 세계를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느냐 아니면 어느 정도 추상적으로 개념화한 것이냐에 따라 여러 형태의 지도로 구분되어 나타날 뿐이다. 그런데 군⋅현 단위 지도이든 전국지도이든 한국의 옛 지도들을 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선의 형태로 끊어짐 없이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는 산줄기와 물줄기이다. 이러한 내용은 전국적 수준에서 산줄기와 물줄기의 흐름을 정리한 산경(山經)이나 수경(水經)같은 지리 문헌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산이나 물이라는 것이 지표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또 서로 이어져 있기에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여타의 인문적 요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하게 산과 물의 이어짐을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근대 이전 제작된 고지도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지형도와는 전혀 다른 이러한 종류의 고지도를 제작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지점에서 지도를 제작하거나 사용하는 사람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영향받을 수밖에 없는 문화적 약속체계(cultural signifying system) 즉 특정 시대, 특정 지역, 특정 사회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코드(cultural code)를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 문화적 코드는 의사소통체계에서의 언어나 몸짓, 거리의 교통신호등 등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거리의 신호등에서 확인하는 빨강색, 파랑색, 주황색의 의미를 운전자나 보행자가 공유하기 위해서는 교통신호체계, 교통법규 등 일련의 약속체계를 공유해야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도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체계에서도 지도제작자와 사용자가 지도를 통해 정보를 파악하고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특징적인 문화적 코드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근대 이전 고지도나 근⋅현대 지형도 같은 지도적 재현의 차이는 그것의 제작이나 사용에 작동하는 문화적 코드의 차이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근대 이전 제작된 고지도의 경우 그동안 전통적 공간인식 체계이자 지리로 이해되어 온 풍수의 지도적 재현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풍수가 고지도 제작이나 사용에 있어서 함께 공유되었던 주요한 문화적 코드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풍수가 문화적 코드로 어떻게 공유되고 있었는지는 명당풍수의 이상적인 공간 구성 개념도와 실제 지역을 재현한 고지도를 비교해 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그림은 흔히 명당이라고 불리는 명당풍수상 중심 국면의 개념도와 니산현(해동지도, 18세기 중엽)⋅면천군(지승, 18세기 후반)⋅석성현(1872년 지방지도) 등 전국의 여러 군⋅현 단위를 재현한 고지도들을 제시해 놓은 것이다. 일견 형태상으로도 실제 군⋅현 지역의 읍치를 둘러싸고 있는 풍수 사신사(靑龍⋅白虎⋅朱雀⋅玄武)가 거의 명당풍수의 공간 구성 개념도와 일치될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지도의 위쪽 주산(현무)과 그 맞은편에 자리 잡은 주작으로서 안산과 조산, 그리고 좌우의 내외 청룡과 백호 등이 그것이다. 물론 사례로 제시한 군⋅현 지역의 실제 산수조건은 이들 고지도에 담아지고 있는 것처럼 전형적인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현재의 지도 보기 잣대로 평가하자면 현실을 상당 부분 왜곡한 부정확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실제 지역이 지도상에서 이렇듯 재현되고 있다는 것은 풍수가 고지도 구성의 주요한 문화적 코드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풍수를 코드로 하는 지도 재현의 예는 앞서의 해동지도 · 지승 · 1872년 지방도 외에 팔도여지도(18세기 전반)⋅여지도서의 첨부지도(18세기 중엽)⋅비변사인방안지도(18세기 중엽)⋅해동여지도(18세기 후반)⋅광여도(19세기 전반) 등 여러 종류의 군⋅현 단위 지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한 두 세기 전 조선 후기 제작된 지도들에서 집중적으로 이러한 풍수적 재현을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은 풍수가 고지도 구성의 의미 있는 토대로서 현재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까지 공유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