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달력 앞에서
정경희
넓은 도로 옆에는 잎 하나 달지 않은 은행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찬란한 황금빛 잎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나무는 봄을 꿈꾸고 있다. 은행나무 가로수길 달려 몇 차례 송년회 모임에 다녀왔다. 그냥 두어도 가는 세월이건만 기어코 만나서 웃고 떠든다. 무리지어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만남이 아쉬웠는지 휴대폰에는 친구들의 수다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휴대폰 소리 잠잠해진 날 새 달력을 내어다 걸었다. 습관처럼 달력 한 장 넘기니 설날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곧 설맞이 준비를 하여야겠다.
어린 시절 설날은 즐거움 그 자체이었다. 제수용품 장만하는 부담이 없고 음식 만드는 일도 내 몫이 아니다. 제사 지내기 전 음식 손대면 안 된다는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뻔질나게 부엌에 들락거렸다. 달콤하고 따뜻한 고구마 전 맛은 포기할 수 없다. 대목 장서는 날은 엄마와 설빔 사러 시장에 간다. 설날 필요한 물건 사고파는 시골 오일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엄마 따라온 아이들이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종종걸음을 걷고 있다. 어렵게 살아온 세월이지만 대부분 추석과 설날 두 번은 새 옷을 얻어 입었다. 엄마는 자녀들의 설빔 장만하며 한 해의 복과 건강 비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육학년이 되니 여자아이들은 외모에 제법 신경을 썼다. 학교 앞에 두 곳이나 있는 큰 양장점은 마네킹에 화려한 옷 입혀두고 멋쟁이들을 불러들였다.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고 순정만화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친구들은 맞춤옷 자랑하는데 그때도 엄마는 나를 시장으로 이끌었다. 몸을 비비 꼬며 옷 고르는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크기 대어보는 손을 뿌리쳤다. 멋쟁이 친구들은 시장에서 산 내 옷이 촌티 난다고 놀렸다. 그나마 설날이나 추석에 즈음하여 옷 사는 일은 그때까지이었다. 수학여행 갈 때 새 옷 얻어 입기도 하였지만 중학생 되어 교복 입은 후에는 설빔이나 추석빔은 없어졌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엄마는 동네 언니가 운영하는 양품점에서 딱 옷 두 벌과 구두 한 켤레를 사 주었다. 모처럼 엄마가 준비해 준 옷은 설빔이나 추석빔이 아니라 ‘첫 직장빔’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에 첫발 내딛는 여린 맏딸이 직장의 일원으로 잘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도 핸드백 하나 없이 첫 출근한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한 부모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나이 스물이 된 나는 왜 그렇게 멋 부릴 줄 몰랐을까?
선배 언니따라 백화점 가고 유명 헤어샾 드나들며 멋을 부렸다. 꿈에 그리던 양장점에서 옷도 맞추었다. 크게 사치할 형편은 아니라도 현금 지출에 유난히 벌벌 떨던 부모와 달리 철 따라 새로운 옷을 사 입었다. 내 옷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친정 부모에게 설빔 선물한 것이 몇 번이던가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기억이 별로 없다. 가끔 부모 원망하지만 나도 좋은 딸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이 들어 결혼하였다.
집에서 허름한 옷 입고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어지간히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쇼핑 좋아하던 시부모는 며느리 옷을 직접 사 왔다. 홈웨어라 불리며 발등까지 내려오는 분홍색 원피스는 나를 더 단아한 새 신부로 만들어주었다. 휴일 여행하면서 입을 멋진 점퍼도 있다. 새로 산 옷 입고 빙그르르 돌면 어른들은 크기가 꼭 맞는다며 무척 흡족해하였다. 나만큼 키 작은 종업원에게 입혀보고 산 것이라고 하니 맞을 수밖에 없다. 추석이나 설에만 옷 얻어 입던 친정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이다.
이제는 설을 맞이하여 건강과 복을 빌기 위해 준비하는 설빔은 많이 없어졌다. 대형 백화점은 평소에도 그 옛날 대목 장터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옷이며 식품이 넘쳐나고 조금만 발품 팔면 적당한 가격에 좋은 물건도 얼마든지 있다. 유명 메이커 옷 가게 앞에서 침 삼키며 속상해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일까? 옷 보관하는 작은 방 한 칸에는 철 따라 다른 옷이 빼곡히 걸려있다.
사십여 년의 직장생활 마무리한 지 오 년이 더 지났다. 제일 먼저 방 하나 가득 채운 옷을 정리하고 싶었다. 짙은 색상의 우중충한 정장이 가득한 옷방은 형식에 억눌린 그간의 내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자전거와 오토바이 타고 출퇴근하던 때부터 줄곧 바지만 입었으니 참으로 멋없이 살았다. 남보다 앞서고 싶고 높이 오르고 싶은 욕심 가득한 마음처럼 옷들도 쌓아놓기만 하였다. 다 버리고 부잣집 중년 부인네들이 입을 법한, 멋지고 화려한 옷을 사고 싶었다. 설빔도 아니고 직장빔도 아닌 ‘자유로운 노년빔’이라고 할까?
채우는 것이 어렵지만 버리는 것은 더 어렵다. 욕망으로 들끓던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아니, 내려놓았다고 생각하였다. 자연 앞에 겸손하고 주변 인간들에게 좀 더 따스한 사람이 되자. 직장이 아닌 또 다른 생소한 무리 틈에 스며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도 방 하나 가득 채운 옷이 그대로인 걸 보면 아직 멀었다. ‘이 옷은 아직 새것이잖아, 이것은 평소 한 번쯤 입어도 무난하겠다. 버리면 아까워 ….’ ‘ 이 옷 입고 프로필 사진 찍을 때 좋았지?’
설날 앞두고 집안 곳곳 청소하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설빔 준비하느라 시장 옷가게에서 옷 고르던 삼십 대 젊은 엄마를 생각한다. 명절 아니더라도 철마다 며느리 옷 사오던 시어른의 환한 미소까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몇 차례의 떠들썩한 송년회 모임이 끝나고 휴대폰 수다 소리마저 조용한 날 새해 달력을 바라보고 있다. 열두 장의 묵직하고 반지르르한 지면에 마음이 새로워진다.
이 묵직한 달력이 한 장씩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내 어깨 짓누르는 돌덩이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기도한다. 신년 일출에 감탄하며 인사 나누느라 분주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또 새로운 달력 앞에서 감회에 젖는 날이다. 설날이 오기 전 복잡한 옷방 정리부터 하자. 그리고 나를 위해 소박한 설빔 한 벌 준비하여야겠다. 빨리 흐르는 세월에 멀미가 날 것 같아 거리로 나섰다. 가슴에 와 닿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봄을 꿈꾸는 앙상한 은행나무 가지 마냥 새로운 봄을 꿈꾼다.
(20260111)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
ㅉㅉㅉ 경희샘 좋아요. 공감가는 글 잘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