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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49) 손견의 전사(戰死)
한편, 도읍을 낙양에서 장안으로 옮겨간 동탁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장안을 점점 나라의 도읍 형태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동탁 자신은, 여지없이 천자와 다름없는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어느 날, 기주에서 원소와 공손찬이 크게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모사 이유는 동탁에게,
"기주에서는 지금 원소와 공손찬이 크게 싸우고 있다고 하옵니다. 이런 기회을 이용하여 각하의 위력을 한번 베풀어 보이시는 것이 어떨까하옵니다."
"무슨 방법으로 말인가?"
"원소와 공손찬은 모두가 뛰어난 영웅들 입니다. 그러니 천자의 조칙(詔勅)을 보내어 두 사람을 화해하도록 하십시오. 듣자니 지금 쌍방이 모두 전쟁에 지쳐 있음으로, 이 기회에 화해를 붙이면 모두가 각하의 휘하로 돌아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음! 좋은 생각이야."
동탁은 이유의 말대로 태부 마일제와, 조기 두 사람을 천자의 칙사로 원소와 공손찬에게 각각 보냈다.
원소와 공손찬은 서로가 곤란하던 처지에 있었는데, 천자의 이름으로 화해의 칙사가 왔으므로, 내심 모두들 반갑게 여기며 이에 응하였다.
그리하여 유비 삼형제가 다시 평원으로 돌아가게 되자, 조자룡이 유비를 찾아왔다.
"유 장군님! 나는 공손찬 장군을 영웅으로 알고 찾아왔는데, 이제 알고보니 그는 원소와 다름없는 인물입니다. 이제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은 장군님밖에 없어 보이니, 저를 평원으로 데리고 가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유비는 깊은 생각끝에 대답했다.
"나를 그처럼 크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소. 그러나 때가 오면 우리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테니, 그때까지는 공손 태수를 도와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때 다시 만나기로 하지요."
이리하여 유비와 조자룡은 애석한 작별을 나누었는데, 유비가 평원에 다시 돌아올 때에는 공손찬이 장안의 칙사가 왔을 때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져서,장안의 황제로부터 이번 전공(戰功)이 컷다 하여 처음으로 평원 태수(太守)의 벼슬을 받게 되었다.
한편, 남양 태수인 원소의 동생 원술은 야심을 품고 있는 인물인지라 형 원소가 기주를 손에 넣었다는 소식을 듣자, 사람을 보내어 말 천 필만 보내 달라고 하였다.
원술이 태수로 있는 남양 땅은 비옥한 곳이 아니어서 평소에도 원술은 형인 원소의 경제적인 도움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동생이란 놈이 만날 형인 자기에게 손을 벌려대니, 짜증이 난, 원소는 그 청을 대번에 거절해 버렸다.
원술은 크게 섭섭해하면서 이번에는 형주 자사 유표에게 사람을 보내어 곡식 이만 섬만 꿔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표도 그 청을 거절하였다.
이에 경제적 곤란을 느끼게 된 원술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앙갚음을 하기 위해 강동에 있는 손견에게 다음과 같은 밀서를 보냈다.
<전일 장군이 귀국할 때, 유표를 시켜 옥새를 빼앗게 한 것은 원소였소. 그런데 원소는 기주를 빼앗고 나더니 이제는 유표와 연합하여 강동을 치고 장군의 영토와 옥새를 빼앗으려 하고 있소. 그러니 장군은 은밀히 병사를 일으켜, 유표를 쳐서 형주 땅을 취하시오. 그러면 원소가 유표를 도우려고 나설 것이니, 나는 그때를 기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주를 치도록 하겠소.>
손견은 그러잖아도 전일에 옥새 문제로 유표에게 원한이 남아있던 터인지라, 밀서를 받자 마자 이내 정보, 황개, 한당, 조무 등 네 명의 심복 장수들을 불렀다.
"원술에게 이런 밀서가 도착했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네 사람은 번갈아 원술의 밀서를 돌려보고 정보가 말한다.
"원술은 심중이 음흉한 사람인지라, 밀서의 내용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러자 손견이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나는 이 밀서를 계기로 해서, 내 손으로 지난날의 원한을 갚으려는 것이지, 원술 따위를 믿고서 군사를 일으키려는 것은 아니오. 네 사람은 지난날 우리가 낙양에서 강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표에게 당한 수모를 잊었단 말이오?"
손견이 이같이 일갈하자 네 장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손견은 양자강(揚子江) 연변의 장사(長沙) 태수인지라, 그는 곧 전선(戰船)에 많은 군사는 물론, 병기(兵器)와 양초(糧草)를 싣고, 전쟁을 수핼할 준비를 갖추도록 명령하였다.
손견이 자신을 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형주에 전해지자, 이번에는 유표가 크게 놀랐다. 그는 급히 참모를 불러 모아 물었다.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대장 괴량이 대답한다.
"크게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황조(黃祖) 장군에게 강하(江下)에서 군사를 매복시켜 손견의 진출을 감시케하고, 주공께서는 형주와 양양을 뒤에서 지키시면, 제아무리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손견이라도 멀리온 관계로 힘을 쓰진 못 할 것입니다."
유표는 그 말을 옳게 여기고 강동에서 형주로 이르는 강 어귀에 모든 군사들을 동원해 목책을 세우고 군사의 배치를 서두르게 명령하였다.
그런데 이번 출전(出戰)에 앞서 손견에게는 가정적으로 다소의 파란이 있었다.
손견에게는 세 사람의 젊은 부인이 있었는데, 본처인 오씨(吳氏)에게는 장자 손책(孫策)을 비롯하여 손권(孫權), 손익(孫翊), 손광(孫匡)등 네 아들이 있었고, 본처의 동생인 둘째 부인의 몸에서는 손랑(孫郞)과 딸 손인(孫仁)이 있고, 셋째 부인 유씨(兪氏)에게서는 아들 손소(孫韶)가 있었으나, 장자인 손책만 열일곱 살이었고, 둘째는 아홉살로 그 밑으로는 줄줄이 연년생이었다.
손견이 유표를 치러 떠나려 하자, 아우 손정(孫靜)이 말한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이 판국에, 형님은 어찌하여 조그만 원한으로 군사를 일으키려 하시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형님의 신변에 불상사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어린 조카 아이들이 어떻게 될 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발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출전을 단념해 주십시오."
하고 만류했지만, 손견은 전국옥새를 손에 넣는 순간부터, 천하를 제패할 기회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전국 상황에 예민한 촉각을 세우고 있던 터인지라,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너는 모르면 잠자코 있거라. 내 장차 천하를 잡으려고 하는데, 원수가 있으면 그놈부터 없애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느냐?"
그러자 맏아들 손책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아버님께서 기어이 가신다면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네가 따라오고 싶으면 그러려무나! 너가 장차 아비의 제국을 물려 받으려면, 이런 전투에 나서서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손견은 아들을 데리고 진군을 시작하였다. 새벽을 기하여 군선(軍船) 오백여 척에 많은 군사를 싣고 양자강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때 유표의 선봉장 황조는 강목을 지키고 있다가, 손견의 배를 알아 보고 일제히 활을 쏘아대었다.
손견은 대항하지 아니하고 모든 군선에 이런 명령을 내렸다.
"모든 병사는 화살을 피하여 배 안에 몸을 숨기고 배를 뒤로 돌렸다가 앞으로 나가기를 반복하라!"
그것은 과연 좋은 전술이었다.
배가 적에게 가까이 갈 때마다 적은 수없이 화살을 쏘아대었다.
그러나 손견의 군사들은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아니하고 적의 화살만을 축내게 하기를 사흘 동안에 수십 차례 전진과 후퇴를 계속하니, 적의 화살은 거의 떨어져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배에 꽂힌 화살이 수십 만 개가 되었던 것이다.
손견은 그제서야 화살을 모두 회수시킨 뒤에, 적에게 총공격을 명령하였다.
황조의 군사들은 이미 화살이 떨어진데다가 거꾸로 적의 화살이 빗발치듯 난무하는 바람에 모두 혼비백산으로 강변에서 물러났다. 이를 기회로 손견은 정보, 황개, 한당, 조무와 더불어 육지로 오르며 군사를 휘몰아쳐 황조의 뒤를 쫓았다.
황조는 손견의 군사에게 크게 패하여 번성(樊城)을 버리고 등성(鄧城)으로 피했다.
이튼날 황조는 장호, 진생 등 두 장수를 대동하고 맹렬한 반격을 개시하였다.
"이 쥐새끼 같은 강동의 손견아! 네 어찌 한실 종친(漢室 宗親)인 유표 장군의 땅을 침범하느냐!"
손견은 그 소리에 크게 노하며 한당과 함께 군사를 마주 휘몰아쳐 나왔다.
한당과 장호가 마주 싸우기를 삼십여 합에, 전생이 장호를 도우려고 말을 몰아 나오자,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 보던 손책이 화살을 쏘아 전생을 대번에 거꾸러뜨렸다.
그러자 장호가 크게 겁을 먹고 말머리를 돌려 도망을 치려 하자, 한당이 그 틈을 노려 번개같이 달려들어, 장호의 목을 떨궜다.
"장호와 진생, 두 장수를 거꾸려뜨렸다! 이제는 황조마저 거꾸러뜨리자!"
손견의 군사들은 한층 사기 충천하여 승승장구로 내닫는다.
전쟁에 따라 나온 손견의 맏아들 손책이 어린 나이임에도 북구하고 황조를 급히 쫓았다.
황조는 결사적으로 도망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 싸움에서 유표의 군사는 대패하여 산과 들에는 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고, 손견은 승리를 거두자 이번에는 한수(漢水)로 진군을 시키며 황개로 하여금 전승지를 지키게 하였다.
한편, 황조가 손견에게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을 유표는 대경실색하였다.
그리하여 괴량, 채모 등의 대장들을 불러 급히 의논했다.
"사태가 급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원소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길밖에 없겠습니다."
괴량이 말하였다.
그러자 채모가 고개를 가로 흔들며,
"그것은 좋은 계책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적이 이미 성하(城下)에 다달았는데, 어찌 우리의 생사를 남에게 의탁한단 말이오? 원소를 불러들인 기주의 한복의 최후를 못 보셨소? 소장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오!"
유표도 그 말이 옳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채모는 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형주성을 떠나 현산(峴山)에 진을 치고 손견군과 대적하였다. 그러나 적의 기세가 워낙 우세하여 채모는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비참한 몰골로 형주성으로 쫓겨왔다.
괴량은 그 모양을 보고 크게 나무랐다.
"그것 보오! 채 장군은 내 말을 안 듣다가 그 꼴이 되었구려! 이런 사람은 군법에 의하여 마당히 참형(斬刑)에 처해야 할 줄 아오!"
유표는 매우 딱한 표정을 보이다가,
"싸움에 패한 것도 책임이 무겁지만 이같은 시기에 장수를 함부로 베기는 애석하므로, 재기의 기회를 주기로 합시다."
하고 채모를 벌 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채모로 말하자면 유표가 지극히 사랑하는 애첩(愛妾)의 오빠였기 때문이었다.
이무렵 손견은 이미 형주성을 에워싸고 최후의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리하여 격전에 격전을 거듭하기 닷새째 되는 날, 난데없이 일진 광풍(一陳狂風)이 일어나더니 손견의 깃발이 <뚝> 부러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보고 한당은 크게 걱정하였다.
"주공! 아무래도 이것은 흉조(凶兆)가 분명하오니, 일단 군사를 거두어 가지고 강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가 싸움에 다 이겨서, 조만간 형주 땅을 모조리 손에 넣게 되었는데, 이대로 돌아가지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손견은 군사를 거두기는 커녕, 도리어 전력을 다해 총공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무렵, 형주성에서는 대장 괴량이 유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소장이 어젯밤에 천문(天文)을 살핀즉, 장성(將星)하나가 떨어지길래 그 방향을 보니, 그 별이 손견군 진지 위로 떨어지더이다. 그러니 원소에게 빨리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뉘라서, 이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원소에게 갈 만한 사람이 있소?"
그러자 건장 여공(健將 呂公)이 앞으로 나서며,
"소장이 가겠습니다."
하고 자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괴량이 여공에게 포위망을 뚫고 원소에게 가는 계략을 이렇게 일러준다.
"그러면 여 장군이 갔다 오되, 내가 군마 오백 필을 줄 것이니 활 잘 쏘는 병사로 하여금 포위망을 뚫게 하시오.
그리고 포위망을 뚫고 나가거든 현산(峴山)으로 내달아 가도록 하시오.
그러면 적은 반드시 뒤를 쫓아올 것인즉, 현산에 도달하는 즉시, 군사를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산에 올라가 돌과 바위를 준비하고, 나머지 한 패는 화살을 듬뿍 준비해 가지고 바위 틈에 매복해 있다가 뒤쫓던 적들이 가까이 오거든 돌과 화살을 우박 쏟듯 퍼부으시오.
그러면 우리가 성문을 열고 뒤에서 협공하도록 할 테니, 그 틈을 타서 원소에게 갈 수가 있을 것이오."
여공은 작전 계획을 알아 듣고 황혼 무렵에 군마 오백 기를 거느리고 동문을 나왔다.
이때 손견은 진중에서 혼자 내일의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때마침 형주성 동문쪽에서 난데없는 함성이 들려 오므로 수하 병사 삼십여 기를 거느리고 부리나케 함성이 울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냐?"
"일단의 적들이 지금 포위망을 뚫고 현산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무엇? 그 무리를 그냥 두다니!"
손견은 그 한마디를 부르짖기가 무섭게 소수의 병력만을 대동하고 급히 적을 추격하였다.
그리하여 얼마 안 되어 적과 부딪쳤다.
여공은 손견과 이삼 합을 싸워 보다가 번개같이 현산으로 도망을 가니, 손견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뒤를 쫓아갔다.
그리하여 손견이 현산에 험난한 바위 밑까지 추격했을 때, 미리 매복되어 있던 여공의 군사들이 천지가 진동하는 함성을 지르며 돌과 화살을 폭우가 쏟아지듯 퍼부었다.
손견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매복해 있던 적들의 돌과 화살을 맞아 머리가 터지고, 전신에 피를 흘리며 무참히 죽어 버렸다.
그리하여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며 일세를 풍미하던 손견이 졸지에 현산 전투에서 전사를 해버렸으니,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서른 일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