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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이 진실이다!
'뒷모습은 스스로를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마주한 이를 속이지도 않는다. 진실은 이 사이, 밝히지 않는 것과 속이지 않는 것 사이에 있다. 뒷모습이 요령부득으로 느껴진다면 이는 진실이 요령부득이기 때문이다."
⁃미셸 투르니에, [뒷모습] 중에서
앞모습이 의식 혹은 페르소나라면, 뒷모습은 무의식이다. 그런고로 뒷모습은 억압된 것의 귀환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얼굴과 손짓은 마음을 숨길 수 있지만,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도 않으며,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표피가아니라 내면인 것이다.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말처럼,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두 종류일 뿐인 것일까? 나를 떠나는 사람과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 그렇지만 나를 떠나는 사람도 결국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뒷모습은 철저히 다른 세계 즉 환상과 신비의 대상이다. 라캉식으로 말한다면, 오브제아(objet a), 환상 대상일 것이다. 나와 가장 가까우면서 먼 그대, 그 뒷모습의 세계로 떠나보자
1 돌아누운 헤르마프로디토스
서양미술사에서 돌아누운 인물 중 탁월하게 아름다운 이 조각상의 이름은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Sleeping Hermaphroditus)]다. 잠자는 모습을 등신대 크기의 대리석으로 조각한 이 작품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1620년 바로크 조각가인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가 침대를 조각해 그 위에 올려놓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름에서 암시하듯,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에 따르면,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다. 호수의 요정 살마키스는 수려한 미모의 헤르마프로디토스를 흠모해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그러나 번번이 거절당한 살마키스는 혼자 연못에서 목욕하던 그에게 뛰어들어 강제로 입 맞추려했다. 소년이 몸부림치자 살마키스는 그와 떨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신들께 빌었다. 살마키스의 기도에 마음이 움직인 신들은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이들을 한 몸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우리말로 남녀추니, 어지자지 즉 양성구유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 시대에 남성 성기를 가진 여성의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관객들은 반쯤 돌아누워 있는 실루엣이 아름다운 이 조각상을 그저 여인의 몸인 줄 알고 감상하다가 흠칫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사실, 그냥 여성인 줄만 알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관객들은 얼굴과 등, 엉덩이 다리 들어 올린 발까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시선으로 어루만지다가, 살짝 틀어버린 엉덩이 안쪽 음부를 보게 된다.
그곳에는 남성 성기가 수줍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조각은 필시 앞모습을 숨기기 위한 것, 일종의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모습은 어떻게 하여 유독 뒤태를 강조하는 조각이 되었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돌아누운 헤르마프로디토스를 통해서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플라톤은 [향연] 에서 "인간은 본래 양성을 지녔었는데, 신이 반쪽으로 분리한 후부터 잃어버린 반쪽을 찾으려고 헤맸다"고 썼다. 곧 사랑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망이며, 인생이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플라톤의 에로스론의 핵심을 보여준다.
2. 뒷모습 자화상
화가가 자기 자신의 뒷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아틀리에에서 작업 중인 화가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이 그려졌다. 그중 드물게도 뒷모습을 그린 화가가 있었으니, 요하네스 페이르메르(JohannesVermeer, 1632~1675) .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진 실내에서 화가가 모델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월계관을 쓰고 노란색 표지의 두꺼운 책과 트롬본을 든 채 살포시 눈을 내리깐 여인은 누구인가?
필시 일상의 모습이 아닌 연출된 행동을 하고 있는 이 여인은 예술가에게 영감을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역사의 뮤즈인 클리오다. 그리고 클리오 앞 화가의 자세는 많은 고민 끝에 고안된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완벽히 등을 돌린 자화상은 있지만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화가의 뒷모습은 페이르메르 자신인 것일까? 옷차림과 베레모는 페이르메르를 연상시킨다. 미술사학자들은 페이르메르가 거울을 이용해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페이르메르를 연상시킨다. 미술사학자들은 페이
르메르가 거울을 이용해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혹은 페이르메르가 모델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원하는 포즈를 취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서양미술사 최초로 독특한 자화상이 될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을 페이르메르의 자화상으로 보기도 한다.
페이르메르는 왜 이런 자화상을 그렸을까? 그는 당대에 체사레 리파(Cesare Ripa)가 정리했던 '이코놀로지아(lconologia)' (1618)에 실린
내용에 근거해서, 자신을 '역사를 그리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페이르메르는 자신이 선택한 화가라는 직업, 그리고 '역사-스토리'를 가장 높은 경지로 삼고 있던 회화 예술을 칭송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페이르메르가 죽은 후 미망인의.손에 남아 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주문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의지로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 미술시장에 내놓지 않고 자신의 집 안에 소장 했다는 것,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써넣었다는 사실은 페이르메르가 이 작품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페이르메르는 이 작품을 통해 회화에 대한
숭고한 열망과 예술을 통해 얻고자 했던 영광, 정신적인 것으로서의 예술 활동에 대한 자긍심을 표현했다
3 피그말리온의 여인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은 노총각 조각가였다.
그의 소망이 여자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 했던 만큼 여성을 싫어했다. 피그말리온은 왜 여성을 험오하게 되었던 것일까?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에 따르면 피그말리온이 어린 소녀들이 몹쓸 짓을 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여인들을 침실로 끌어들이지 않았고, 급기야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여자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놀랄만한 솜씨로 하얀 상아로 된 여인을 만들었다. 적당한 크기의 봉곳한 가슴에, 탐스러운 엉덩이 등 가장 선호하는 모양대로 공들여 탄생한 조각은 깜짝 놀랄만큼 현실의 여인과 똑같았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완벽한 조각에 매료,사랑에 빠졌다. 온갖 선물 공세로 아름다움을 찬미했고, 실재와 환상을 넘나들며 묘한 사랑의 감정을 즐겼다. 비록 사랑의 대상이 조각이라는 것이 다소 불만이었으나, 그래도 조각을 향한 그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상현실 속 사랑은 갈증이 났고 온전한
사랑을 열망하기에 이르렀다. 고민 끝에 피그말리
온은 비너스 축제 때 제물을 바치며 그녀를 살아
숨 쉬는 여성으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드디어 조각은 촛농처럼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여자로 변신했다. 그는 그녀에게 '우유빛 처녀'라는
뜻의 '갈라테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인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e, 1824~1904)은 큐피드가 막 화살을 쓰려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고, 등을 돌린 갈라테아는 허리를 굽혀 피그말리온과 키스하는 장면을 그렸다. 마치 키스가 신의 숨결인 것처럼 그녀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 되는 순간으로 보인다.
특별히 화가는 그녀의 뒷모습의 미적 형태에 치중했다. 사랑은 실체가 아닌 뒷모습 같은 허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일까?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미 의지를 가진 여인이 되었다. 남자가 허리와 가슴을 잡자, 그녀의 왼손은 남자의 손을 가로막으며 그녀 맘대로 남자를 제압하려는 듯 남자의 목에 다른 한 손을 두르고 있다.
이들 앞에 펼쳐질 삶이 보인다. 바로 모든 것을 쟁취했다고 느낀 순간, 무언지 석연치 않은 모티프
즉 가면과 방패(메두사)가 눈에 뛴다. 그것은 이들의 예사롭지 않은 미래를 암시하는 것만 같다
환상 속의 갈라테아가 인간이 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늙어갔고, 그만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결국 보통 사람들처럼 희노애락애오욕의 현실이라는 재앙을 만났다는 것이고, 환멸을 통과해야만 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4 낭만, 먼 곳에 대한 취향
시종일관 뒷모습에 천착했던 화가가 있다. 그렇지만 페이르메르처럼 화면을 압도하는 방식으로 뒷모습을 그리지 않았을뿐더러 그 흔한 자화상조차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뒷모습이 결국엔 자화상이었음을 느끼게 하는 화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다.
프리드리히는 일곱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누이, 5년 후에는 스케이트를 타던 형이 익사, 뒤이어 또 누이의 죽음 등 가족의 잇따른 죽음을 맞게 된다. 특히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형의 사고에 대한 죄의식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화가는 병적인 고독에 깊이 침잠했으며, 유한한 인간의 비관적인 운명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이는 화가 자신의 개인적인 성향이었을뿐만 아니라, 당시 독일문화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낭만주의적 감수성이었다.
프리드리히는 특히 [안개 위의 방랑자]에서 세상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은 고독한 인간, 세상 끝에 홀로 선 인간, 대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남자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바로 소용돌이치는 파도에 몸을 맡길 듯 불안한 현존 상태를 암시하는 것만 같다. 이렇듯 화가는 자신의 내성적이고 우울했던 심경을 토로하는 동시에 실존적 인간이 처한 어둠과 불가능에 대한 명상을 담고 있다.
화가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해 뜰 무렵의 여인] 혹은 [해질 무렵의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아내의 뒷모습을 그린다. 자신의 부인을 세계의 신비가 드러나는 순간의 안내자인 것처럼 그려놓았다.
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이 4년쯤 되었을 때 그는 다시 [창가의 여인]이라는 그림을 내놓는다. 이전과는 달라진 시공간 속에서 한 여인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녀가 존재하는 이곳은 어둡고 비좁은 것이 갇혀있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그녀가 바라보는 밖은 빛으로 찬란하다. 창 밖의 풍경은 그녀가 상상하는 신세계 혹은 갈망하는 자유의 세계이다. 이 그림은 부인 카롤린을 모델로 썼지만, 그녀의 얼굴과 표정을 볼 수 없기에 고독한 관조에 최대한 동참할 수 있다.
화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활달하고 재능있던 부인이 일상의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집안의 천사로 유폐되어 지내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 것일까? 더불어 예술가 특유의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덕분(?)일까!
인간들은 대개 집에다 창문을 만들지요.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창문 말입니다. 심지어 이 공기 탁한 서울에서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한 길로라도 사람들
은 창을 내죠. 인간들은 말이지요. 모두가 그리워서 그래요. 그리워서 창문을 만드는 거예요.
⁃ 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중
5 뒤돌아선 남자로 표현된 존재감
똑같이 뒤돌아선 남자라도 독일 낭만파 화가 프리
드리히와 프랑스 인상파 화가 귀스타프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1848~94)의 뒷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프리드리히의 뒷모습이 근원적인 상실과 인간 실존의 망연자실에 관한 드라마라면, 카유보트의 뒷모습은 매우 자의식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이다. 카유보트는 왜 그런 방식으로 뒷모습에 천착했던 것일까?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던 카유보트는 예술에 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인상파작품을 사들였던 컬렉터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다.
화가의 길을 거의 포기했을 때 모네의 격려로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된 그는 인상파의 일원이 되었다. 아마 수집가로서 인상파 그림을 구입해준 은혜에 대한 보상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그림 실력이 부실한 화가였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수집가였던 그의 참여가 멤버들에겐 좀 부담스럽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보라! 자기들의 작품을 구입해야 할 심미안과 부를 동시에 지닌 작자가 자신들의 고유 분야인 그림에까지 도전하겠다니 좀 난감한 일이 아닌가?
르누아르는 말년에 카유보트가 후원자로 너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 않았다면, 화가로서 진지하게
대접받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사실 카유보트는 여느 인상파 화가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특히 창가에 서 있는 인물을 그린 그림을 보면, 그가 얼굴과 표정이 보이지 않는 인물이 불러일으키는 효과에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창가의 남자] 속 남자는 발코니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당당하고 근엄해 보이는 중년 남성은 고급 빌딩의 3층에 살고 있으며, 빨간색 일인용 암체어와 카펫으로 보아 당대 부르주아적 취향을 고스란히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길을 나선 한 여인과 마주치게된다. 남자는 진정 그녀를 사모하는 것일까?
이후 카유보트는 창문 앞에 서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그린 [창가의 여자]를 발표했다. 그림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주인공이 늘 남자였던 전통을 깨고 그 자리에 여성을 배치했다는 사실은 당대의 시각으로는 꽤 파격이었을 터!
밝은 오후, 레이스와 파란색 벨벳 커튼이 드리워
진 안락한 집에서 깔끔하게 머리를 손질한 한 여성이 팔짱을 낀 채 집 안 창문 너머의 거리를 바라본다. 아마 거리는 대낮의 활기로 가득 찬 분주한 근대적 풍경일 것이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암체어에 편안히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거리의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속한 듯 서로에게 무관심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침묵으로 일관할 것 같은 남성의 냉담한 모습은 현실의 삶에 속한 듯이 보이며, 굳어버린 딱딱한 목덜미와 아무런 표정 없어 보이는 여성의 옆얼굴은 아내와 엄마라는 현실이 아닌 자유로운 어떤 세계로 향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카유보트가 당대에는 화가보다는 인상주의의 후원자로 더 알려졌다는 사실이 그가 뒷모습에 관심을 기울였던 처지와 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렸지만, 정작 그들로부터 재능 있는 화가로서 대접받지는 못했다는 소외감은 그에게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지향하며 인정받고자 하는 비상의 날개를 펼치고 싶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런 뒷모습 그림에서 그런 처연한 심경을 맛본다면 지나친 것일까?
6 세상의 모든 뒷모습
그림에 관한 글을 쓰는지라, 작업할 때 모니터 두 개를 쓴다. 하나는 세로로 세워서 그림 보기에 적합하게 설치해놓고 있다. 종종 아름다운 그림을 세로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스크린 이미지로 화한 새로운 이콘 즉 숭배대상일 경우가 많다. 오늘은 컴퓨터 배경화면을 얼마 전 다시 발견한 고대 그리스 조각상 코우로스(kouros, 젊은 남성 누드 상)의 뒷모습 사진으로 바꾸었다.
맨 처음 이 조각상은 내게 여성도 남성도 아니고, 어른도 아이도 아닌 환상이었다. 이 조각상의 뒷모습에 사로잡힌 이유는 바로 그것이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 같았기 때문이다.
즉 진리를 그리스어로 알레테이아(aletheia)라고
부르는데, 원래 뜻은 '탈은폐(비은폐)'이다. 그리스인들은 진리라는 것을 단순히 드러냄 혹은 노출이 아니라, 숨겨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러니까 숨기는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야말로 미지의 세계로서의 진리를 드러내는 가장 명료하고 모호한 메타포가 아닐까.
몸으로 본 서양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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