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산행지는 강원도 평창의 발왕산(1,458m)이다.
겨울은 역시 눈과 바람의 계절이 아닌가.
가버린 겨울동안 눈꽃 구경을 못했더니 남은 겨울만이라도 하얀 꽃놀이를 떠나고 싶었다.
강원도 땅까지 찾아가기 위해선 이곳 남녘에선 초심자의 마음까지 동원해야 할 만큼 거리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신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는 동작에선 몸을 자로 그은 듯이 불필요한 동선도 없다.
부산하지 않으니 평온하기까지 하다.
새벽자락을 밟는 일이란 또 얼마나 고요한 눈뜸이던가.
평소에 가져보지 못하던 마음이 그 순간에 찾아오니 인간의 순수함은 새벽에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벽을 깨우며 주차장으로 가니 거리는 휑뎅그렁하게 찬바람을 감싸고 있을 뿐, 아무도 없다.
시간은 4시 42분. 족히 다섯 시간은 떠나야 산을 만날 것이다.
그 길이 걸어가는 길이라면 지친 마음마저 기분좋게 다스리겠지만 아직 그러기엔 시간도 강원도도 너무 멀다.
사람들은 조금 더딘 속도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발왕산이란 이름 아래 새 출발의 기운이 서린 것일까. 새해 첫 발을 잘 디디려는 듯 꽉찬 식구들이 첫 산행을 나섰다.
발왕산은 남한 땅의 산 중에서 15번째 높은 산이라고 하였다.
평창 하면 언제나 이효석의 메밀꽃 들판부터 생각나던 사람이 어느덧 산을 중심으로 아랫마을을 보게도 되었다.
산은 용평 스키장을 자식처럼 끼고 있었다. 아기가 강보에 싸여 쭉쭉이 기지개를 켜듯 여러갈래로 발을 뻗은 모습이었다.
그 눈밭에선 스키어들이 쭉쭉 뻗은 자신감으로 산을 휘영청 감아돌고 있을 것이다.
선 채로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젓고 다니는 게 가망없는 나로선 언제나 그것은 풍경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풍경이란 또 그렇게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
용평 스키장을 산정에서 내려다보며 그들의 멋진 활강장면을 사진으로 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벌써 10년도 넘은 '겨울연가'와 동계올림픽의 상징 평창.
그 초발심의 산 발왕산엔 또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 우리를 설레게 할까.
이동 거리만도 5시간이 넘게 걸렸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간 만큼 등산로는 우리를 기꺼이 반겨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
가끔은 어울리지 않는 뒤통수를 치며 1월이 열릴 수도 있음을 보여주려는 듯 등산로 입구가 보기좋게 막혀 있다.
발왕산의 겨울은 용평 스키장의 계절이기도 하여 스키어들의 코스와 맞물리는 등산로를 폐쇄한 것이었다.
여러 산행후기를 통해 발왕산의 겨울산행을 이미 접수했기에 등산로 폐쇄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졸리운 아이들을 깨워 산행에 처음 참여했을 가족이 유난히 마음에 쓰였다. 기대에 부풀어 이곳까지 왔을 텐데.
어디로 가야 할지 짐작할 수 없어 잠시 추이를 지켜보니 일단 다시 입구로 내려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다.
산행이 아니라 곤돌라를 타고 정상 언저리에 있는 드래곤피크까지 오른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올해 쉬운 산행을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있었다. 삶이 쉽게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다.
지난 한 해 힘들게 지나다보니 이제는 가벼운 바람처럼 거닐고 싶단 생각에서였다.
나는 내심 이 쉬운 산행이 내 바램대로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올해엔 일이 순조로울려나?
곤돌라 입구까지 가는 리조트 주위로는 흰 자작나무가 많았다.
하얀 겨울 눈밭에 하얀 겨울나무들이 누가 건강하게 빛나나를 내기하듯 그렇게 눈과 어우러져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아주 편할 줄 알았지만 산행을 하겠다고 등산장비까지 갖춘 입장에선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특히 지나가는 시야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멋진 나무들의 자태를 그저 내려다봐야 할 때는 더더욱.
아무래도 편안함을 그저 찾기보단 적당히 저를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혹시 게으름과 여유를 같은 행위라고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 나를 다시한번 돌아봐야 할 시점 같다.
약 20분간의 곤돌라 운항시간 동안 수많은 스키어들을 내려다보았다. 활강하듯 미끄러져가는 곡선의 사람들.
그들은 산을 오르기보다 내려가는 법을 잘 익힌 사람들일 것이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에 든다고 하였으니, 들고 나는 삶의 이치를 깨우쳐봐도 좋겠다.
발왕산의 아름다운 주목이 죽어 천년의 모습을 간직한 눈의 여신처럼 서 있었다.
눈은 색이 아니라 빛깔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벗은 나무의 헐벗은 몸에 색이 아니라 한 줄기 빛으로 만든 은빛 장원.
그 빛속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파묻혀 있을까. 그래서 눈은 깊고 따스하다 하겠다.
이 아름다운 바람개비의 주인은 아마도 당귀일 것이다.
상고대를 만난다는 것은 겨울산행의 축복일 것이다.
손으로 만지면 가루처럼 부서지지만 그 결정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미세한 물방울이 변화를 거듭했을까.
상고대는 대기중의 수증기가 미세한 물방울로 변한 뒤에 나뭇가지에 그대로 얼어붙은 것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밤새 하얗게 내린 서리가 눈꽃처럼 얼어붙어 '나무서리(수빙樹氷)'라고도 불린단다.
눈이 꽃으로 피어난 눈꽃은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같은 은발의 여왕이면서도 상고대는 아스라한 은빛이 더한층 섬세하다.
연필로 그린 세밀화를 닮은 은빛 상고대. 서리꽃이 온 나무마다 걸쳐져 있었다.
눈꽃이야 허물을 감추듯 부드럽게 얹히며 겨울을 축복하지만,
겨울나무 생김 그대로 제 할 일 다하여 핀 상고대는 추위가 찾지 않는다면 절대 생길 수 없는 희생의 꽃이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서리서리 기나긴 밤을 덮는 여린 한숨 같은 상고대.
그 가시 같은 겨울꽃들이 모이고 모여 평원을 하얗게 덮는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지 않은가.
죽어가는 고사목을 간신히 살려보겠다고 나무는 인간의 두뇌를 이용한 갑옷을 입는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도 천년이라지 않던가.
우리는 그들이 자연사하는 모습조차 쉽게 바라볼 수가 없다. 이렇게 덕지덕지 입힐 거면 차라리 누더기 그대로 내비두면 좋겠다.
새해 첫 산행부터 이렇게 쉬운 산행. 이왕 이렇게 나선 발걸음.. 즐겨야지 않겠는가.
아마도 남편은 웃고싶지 않은 게 아니라 순간 은빛에 눈이 감겨버린 것이리라. 그래도 다음부턴 사진에 대한 예의를 차렸음 한다.
여섯 명이 한 그루 나무를 이룬 듯하다. 알록달록 몸피에 화려하게 뻗친 나뭇가지.
놀 줄 아는 언니들이 고요한 산을 요란하게 수놓는다.
눈가루가 뿌려지니 동화의 세상이 잠시 펼쳐진다. 이렇게 누군가는 겨울 꽃놀이를 즐겨야 한다.
발왕산 하얗게 내린 서리꽃 잘 보았다.
오며 가며 이렇게 먼 거리도 오매불망 따라가고픈 것이 바로 강원도의 힘 아니겠는가.
등산로가 폐쇄된 것을 몰랐기에 어찌보면 쉬운 산행을 하게 되었고, 올 한해 힘든 일 없도록 미리 손을 썼다고 보면 되겠지.
짧은 눈밭에서의 시간도 몇 번의 헤매임도 그저 싱겁지만은 않은 것.
때로는 기대가 실망이라는 눈처럼 쉬이 녹아버릴지라도, 인생이란 꼿꼿하게 녹지 않는 하얀 서리꽃 같은 것.
아름다운 겨울밤 겨울 낮동안 눈꽃보다 오래오래 저를 지켜내는 그 서리꽃처럼
거품 없이도 저를 지켜내는 진실한 힘으로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 그런 사람이면 그저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