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부. 선택의 흔적
제1장. 원고 밖으로 나온 질문
작가는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전날 밤 쓰다 만 원고가 펼쳐져 있었다. 마지막 문장에는 마침표가 찍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야기가 끝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원고를 처음부터 천천히 읽었다.
창조자와 나누었던 대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 선택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던 인물들.
모두 자신이 쓴 이야기였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 이르자 낯선 사람의 일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만든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의 고민은 어느새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있었다.
‘나는 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
처음에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었다. 모든 일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운명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삶에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 질문은 조금씩 달라졌다.
인간이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없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과거를 바라보는 태도도 바꿀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이해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같은 일인가.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판단을 언제든 다시 살펴볼 수 있는가.
작가는 펜을 내려놓았다.
원고 속에서는 창조자가 질문에 답해 주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보증해 주지 않았다. 결국,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래전 함께 일했던 동료의 전화였다.
“원배야, 잘 지내냐?”
“그럭저럭 지내지. 자네는?”
“나야 뭐, 비슷하지. 그런데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동료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예전에 내가 너한테 잘못했던 일 있잖아. 그 일 때문에 연락하기가 좀 그랬다.”
작가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오래전 일이었다.
그 동료는 회사에서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고 작가에게 불리한 보고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작가는 상사에게 질책을 받았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해명해야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동료의 태도였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모습에 작가는 깊이 실망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필요한 말만 주고받았다. 퇴직한 뒤에는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그냥 한번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괜찮으면 밥이나 먹자.”
작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동안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불쾌했던 기억부터 생각났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이제 와서 만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용서해야 할까.
아니면 만나지 않는 편이 나을까.
원고 속에서는 인물들에게 선택의 순간을 만들어 주었지만, 막상 자기 일이 되자 간단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에게 다시 마음을 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작가는 문득 창조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옳은 답을 안다는 뜻이 아니었다. 때로는 무엇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한 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의 상처를 지키기 위해 만남을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접 들어 볼 것인가.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래. 한번 만나자. 다만 그때 일은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네.’
문자를 보내고 나자 마음이 가벼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해졌다.
만나서 더 실망할 수도 있었다. 상대방의 사과가 변명으로 끝날 수도 있었고, 오랫동안 쌓인 오해를 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에는 과거의 기억만으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되, 자신의 상처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기로 했다.
작가는 책상으로 돌아왔다.
원고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 문장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누구도 대신 써 줄 수 없었다.’
그는 그 아래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다음 문장을 쓰기 전에,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부터 살펴야 할 때가 있다.’
작가는 잠시 멈추었다.
이 문장은 창조자가 알려 준 답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에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선택을 고민하던 작가가 이제는 현실에서 직접 선택하고 있었다. 원고 속 인물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자신에게 돌아온 셈이었다.
작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은 어느새 책상 위를 지나 벽 쪽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그는 원고를 덮지 않았다.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다음 장면을 써 내려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