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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성 사건이 주는 교훈 (수6:1-21)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서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을 잘 알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나는 죽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살면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사랑해라, 이웃을 사랑해라 기도해라 감사해라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해라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그대로 사는 사람이 참 드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훈련을 제대로 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제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서 첫 성 여리고성부터 점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이 이상한 방법으로 그 여리고성을 정복하게 하십니다. 엿새 동안은 매일 아무 말하지 않고 그 성을 한 바퀴 돌고 일곱째 날에는 7번을 돌고 큰 소리를 함성을 지르라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이상한 방법을 쓰셨을까요? 그 방법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그렇다면 그 다음 다른 성에도 그런 방법을 썼겠죠. 여리고성에서만 그러셨어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분명한 체험과 훈련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려고 하심이었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방법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신다는 그 사실을 알게 하시는 거예요. 우리 중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 뭐 변화되는 것도 없고 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아서 지금 낙심하거나 갈등하는 분이 있다면 기억할 것은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훈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을 때 하나님은 홍해나 요단강을 건널 때와는 다른 방법으로 여리고성에서는 7일 동안 그 성을 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점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 수 있지요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과정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과정에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님이 전적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일은 우리가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구원을 받아요.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이 그에게 실제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난 다음에 우리 안에 오신 주님을 따라서 우리가 매 순간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지금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훈련을 시키고 계시는 겁니다. 근데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성을 돌았는데 아 그렇게 성을 돌면 뭔가 좀 변화가 일어나야 하잖아요. 무슨 지진 지진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거나 성벽의 금이 가기 시작하거나 또는 벽돌이 뭐 떨어지는 일이 있거나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무언가 일어나려나봐 그래서 이틀째 돌 때 3일째 돌때 뭔가 새로운 어떤 기분도 느끼고, 뭔가 기대감도 더 올라가지 않겠어요?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6일 동안 그들이 성을 돌았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그 여리고성을 도는 일이 그들에게는 정말 믿음의 싸움 영적 싸움이었어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볼 때 무슨 변화가 즉시 일어나면 얼마나 좋습니까?기도하고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이제는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계십니다 고백하고 나가기 시작하고 사랑만 하며 살려고 모든 일을 감사하고 그때마다 사람이 막 변화되기 시작하고 삶의 형편이 좋아지고 이런 어떤 반응들이 일어나면 ‘ 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니까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구나. 앞으로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겠구나~‘생각할텐데 그럴만한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정말 끝까지 그렇게 가야 합니까?언제까지 기도해야 됩니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막 그런 탄식이 나올만 하잖아요
여러분! 6일 동안 여리고성을 도는 게 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전시중이라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지요. 죽고 죽이는 아주 살벌한 전쟁터에서 한쪽에서 지금 그냥 성을 아무 말 없이 돌기만 하는 거예요 도대채 이게 무슨 전략입니까? 그 여리고성 위에 서 있는 그 여리고 성의 군사들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법을 하게하셨는가? 그러다가 여리고 성문을 열고 그 여리고성 군사들이 무기를 들고 치러 나오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열왕기서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의 일곱 번 목욕을 했었습니다. 그는 아람 군대 군대 장관이었어요. 근데 나병에 걸렸습니다.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참능력이 많다고 알고 고쳐달라고 찾아왔어요. 나만이 생각하기에는 ‘버선발로 뛰쳐나와서 자기에게 안수하고 그리고 소리를 질러서 크게 기도해 줄 알았더니‘나와 보지도 않고 ‘요단강 가서 일곱 번 목욕하고 가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아만이 막 격분했습니다. 요단강 가서 일곱 번 목욕하는게 뭐 대단한 일입니까?그런데도 나아만은 그게 그렇게 힘이 들었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감정도 상하고 ‘나 그냥 가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그 보다 더한 일도 하라고 해도 할 거 아니겠습니까 아 그깟 목욕 7번 못하겠습니까? ‘겨우 달래서 그 요단강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는데아니 한번 목욕할 때마다 몸이 좀 좋아지는 증세라도 나타나면 그 일곱번 목욕하는 건 진짜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요. 여섯 번째 목욕할 때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단 말입니다. 단순히 요단강 가서 7번 목욕하는 것도 순종할 때는 이런 어려움이 있다면 지금 여리고성을 여섯 바퀴를 6일째 아무 말 없이, 아무런 변화가 없는상황에서 돌아야 하는 일이 정말 무서운 믿음의 싸움이 아닐 수 없는 거지요.
여러분 중에도 여리고성을 도는 기분으로 요즘 사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건강의 회복을 위한 여리고성이 있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가정이 회복되기를 가족들이 구원되기를 위해서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믿음의 여리고성을 도는 기분으로 사시는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매일 가난에 눌리고 가난에 찌들려서 사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도 다른 사람들 진짜 돕고 사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재정적인 문제로 지금 여리고성을 도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요즘에 심정이 어떻습니까?변화가 없을 때, 믿음으로 순종을 했는데, 변화가 없을 때, 그때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정말 힘든 순간을 맞이하는 거죠. 여러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반드시 7일째가 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를 한 바퀴씩 그냥 돌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이 끝까지 순종하고 나갔을 때 결국 7일째 여리고성은 무너집니다.
20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여리고성은 무너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들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나요. 27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보세요. 여호수아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의 명성이 온 땅에 두루 퍼졌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와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이십니다
그러나 6일이라고 딱 정해져 있으면 순종하기 얼마나 좋습니까? ‘6일만 돌아라 7일째는 7번 돌고 소리를 한번 쳐봐라’ 이런 말씀이라면 아마 순종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언제 끝날지 모를 말씀 앞에서는 참 믿음의 싸움이 극심하지요. 여러분 중에는 6개월째 여리고성을 도는 심정인 분도 있을 거예요 6년인 분도 있었고 60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60년 걸려서 응답하신다고 하셨다면 할 만하지요 근데 언제인지 모를 때는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계속 갈 수 있을까요?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령을 받을 것이라” 약속하셨어요. 그 약속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언제 성령주실 거라는 말씀 안 하셨어요. ‘그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일시에 보이신 500여 성도들(참조. 고전 15:6)입니다. 500명이상에게 말씀하신 것이지요.그들이 마가다락방에서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지났어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이틀이 지났어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이게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죠. 열흘 때 열흘이 지났습니다. 아마 그중에는 중간에 떠난 이들도 많았을 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때를 정하셨어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게 하나님은 정하셔서 그날 때가 이르매 성령이 임하신 거예요. 그러나 기도하던 제자들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행1:15에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중요한 것은 끝까지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사는 훈련이 되어져야
성령을 받고 그리고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사는 거예요.
우리만 그런게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런 기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았던 다 증인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고 매주일도 듣습니다. 근데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은 참으로 적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분명한 체험과 훈련이 안 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매일 맞이하하는 삶은 우리가 계속 부딪히는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훈련이라고 믿으셔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여리고성을 돌라고 하면서 ‘아무말도하지 마라’ 그런 특별한 지시를 합니다.10절에 보면“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 말을 하지 못하게 했을까요?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하다가 그들의 부모 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불평과 원망에 찌들려 있었던 사람들이었어요.13번 여리고성을 돕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고 성위에 있는 그 군사들은 조롱하는 상황, 그럴 때 한번 상상해 보세요.얼마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이 잘 나오겠습니까? 만약에 이들이 불평과 원망이 나왔다면 그들은 끝까지 여리고성을 못 돌았을 거예요 그래서 여호수아가 아무 말을 하지 말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지 말라고 그래서 말을 안 하는 것이 이게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도 주어진 하루 하루가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에 훈련이라고 정말 생각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이 주님만 바라보고 살자. 항상 주님이 내 안에, 내 마음에 계신 것을 믿고 무슨 말이든지 무슨 행동이든지 하자‘ 그렇게 살아야 돼요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한 문제예요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말 한마디도 없이 6일 동안 순종하고 7일째 7번 성을 돌수 있었을까? 그들이 하나님만 주목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냥 성을 달라고 하지 않으시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중심으로 성을 돌라고 하셨어요. 맨 앞에는 제사장들이 서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고 그 뒤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서 성을 돌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냥 성을 바라본 것이 아니고 항상 여호와의 언약궤를 보면서 성을 돈 거예요. 그 말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주목한 겁니다. 2절에 하나님께서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벽을 쳐다보거나 무슨 벽돌을 하나로 떨어지거나 그런 것을 확인하고 돈게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궤만 보고 따라 돈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말 한마디 안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끝까지 순종할 수 있었던 거예요. 아무 변화가 없는 그런 상황에도 그들은 꿋꿋이 여리고성을 돌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응답을 바라보고 그렇게 순종하려고 그러면 중간에 다 맥이 빠지고 낙심하고 원망 불평하다가 중간에 다 중단하고 그만두고 맙니다. 다른 것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봐야 돼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 그 주님만 주목해야 돼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를 바라보라”
우리가 너무 답답할 때 그냥 억지로 참는 것은 한계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결심만 가지고 의지만 가지고 못하는 거예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여야 비로소 끝까지 순종할 수 있어요. 목회하다 보면 목회자가 제일 실망 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성도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맥이 풀립니다. 그런데 주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아무런 변화가 없는 우리를 보시면서도 여전히 우리를 믿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동행해 주고 계세요.마28:20에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게 약속하셨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도 여전히 우리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우리를 믿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끝까지 6일에 삶을 아무 변화가 없는 6일의 삶을 걸을 수 있는 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오는 겁니다.
여러분 중에는 지금 3일째 걸으시는 분들도 있을 거구요. 어떤 분은 지금 6일째 아침을 맞이한 분도 있을 거예요. 이제 곧 7일째가 오지만 우리가 그걸 알 수가 없어요. 오늘 여러분 중에 ‘목사님! 저는 계속 이들째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셔야 돼요. 반드시 7일째가 옵니다. 여리고성은 무너져요. 우리가 그동안에 워낙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훈련이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색해 보이고 처음에는 미숙하고 실패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 바라보고 사는 삶을 진짜 살아보세요. 결국은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간증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