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래
신종 돼지 독감이 집달리처럼 세계 구석구석을 방문하고 있을 때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흰 마스크를 쓴 채 서로 멀찍이 피해 다녔다.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 누가 재채기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눈만 빠끔히 내고서 그를 벌레 보듯 봤다. 변두리의 작은 병원들은 이때다 싶어 머리를 굴렸다. 서울특별시 중랑구의 김 모 씨는 입맛이 없고 재채기도 나는 게 혹시나 하여(정말 혹시나 하여) 독감 검사를 받고 싶었다. 뉴스에서 말하기를, 동네 병원에서도 검진을 받을 수 있다 했다. 김 씨가 들어간 병원에서는 쉰내가 났고 간호사의 가슴 언저리에는 자장면 국물이 튀어 있었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서 돈을 지급했다. 안경을 콧방울까지 내려쓴 의사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마치 주문 같았다. 큰, 병원을, 가보셔야, 겠군요. 후루룩, 간호사는 먹던 자장면을 청소기처럼 해치웠다. 그달에 의사는 거실에 홈시어터를 장만했다.
정작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 않았다. 다만 도시의 언저리, 모든 사람들의 뒤통수 어딘가에 이름 모를 바이러스가 깊이 뿌리를 박고 있음은 사실이었다.
그 무렵, 한강 시민 공원 근처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글쎄, 왜 그런 풍문이 나돌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경비실의 고등어 아저씨에 의하면 ‘또 다시 창궐한 무시무시한 전염병과 작년 시민 공원의 간이매점이 없어지면서 생겨난 많은 실업자가 자아내는 어떤 우중충한 분위기 때문’일지 몰랐다. 소문은 이러했다. 어느 새벽에 한강변이 웅웅 울리고는, 잠깐, 아주 찰나의 시간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수면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많은 주민에게 이 소문은 흉흉한 때에 잠깐 웃어보자는 유머 내지 미치광이들이 퍼뜨린 헛소문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개중에는 한강의 그 흑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때론 지독하게, 때론 순진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소문의 진상을 밝히려 들었고, 나름의 조사를 거듭해 소문의 형체를 만들어나갔다.
“야 너 그거 들었냐?”
당신은 친구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친구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항간의 소문에 대하여 떠든다. 소문은 항상 이런 식으로 퍼진다. 답답할 정도의 온기가 떠돌고, 시간이 아지랑이처럼 아득해진다. 소문은 그렇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든다.
아니, 있지. 너, 그 고등어 아저씨라고 알지? 우리 옆 동 경비. 그 아저씨가 존나 웃기는 아저씨거든. 혀를 배배 꼬면서 말하는 거야. 고뤠, 고뤠가 나타났다! 한강에 고뤠가 나타나써!
당신은 실소를 머금는다. 허황된 이야기, 허황된 표정, 당신은 친구의 얘기에 흥미가 없지만 그래도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춘다. 당신은 좋은 친구 관계란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소통, 소통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비록 그 끈이 백 프로 허구일지라도.
근데, 더 웃긴 건 뭔 줄 아냐? 그 한강 고래라는 미친 고래가 보름달 뜰 때만 행차하신다는 거지. 아우 진짜 존나 웃기는 고래 아니냐.
그러네. 당신은 자신이 입으로만 웃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알고 있다. 어느 친구에게 어느 만큼의 관심을 표할 것이며 어느 만큼의 빵을 제공할 것인가. 빵은 따뜻한 위로 한마디거나 응원, 때론 진짜 빵이 되기도 한다. 당신 옆에 서 있는 친구는 눈치가 빠르지도, 많은 빵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혼자 도취하길 좋아하고, 약간의 대꾸와 빵 한 조각이면 최고의 아군이 되어준다. 당신에게 그는 그런 존재다.
한참을 고등어와 참치의 연관관계(참치가 사실은 고등어에서 진화했다는, 그런데 고등어보다 참치가 '존나게' 비싸다는 모순)에 대해 떠들어대던 당신의 친구는 이제는 얼마 전 발견됐다는 아기 외계인의 시체에 대해 말한다. 당신은 못 들어줄 지경이다.
잠깐만, 여보세요.
잠깐이라도 쉬고 싶었던 당신은 걸리지도 않은 전화를 받는다. 상대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데리러 가는 길이다, 길 건너 기다려라.
뭐라 셔?
친구는 그렇게 묻고서는 대답도 듣지 않고 계속 얘기를 이어나간다. 늑대인간과 한강의 고래, 보름달에 대한 얘기다. 난 건너서 아버지를 기다려야 해. 당신은 또박또박 말한다. 친구는 잘 못 들은 것 같다. 길 건너 기다려야 한다고.
아, 그래?
당신은 지긋한 상황에서 이제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친구들은 당신과 쓸데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기 마련이다.
그럼 오실 때까지 같이 기다리지 뭐. 항상 말하지만, 난 남는 게 시간이고 시간이 금이고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하고……
당신은 그의 주둥이를 잘라내 하수구에 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당신은 화를 억누르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좀 걸리신다니까. 먼저 가.
기다려줄 수 있……
아니, 먼저 가.
그는 잠깐 움찔하지만, 잠깐이다. 당신의 친구는 끝없이 해맑게 웃으며 뒷걸음질친다.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에 당신도 짐짓 옅은 미소를 품어 보이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씨발.
당신은 침을 퉤 뱉지만, 한편 안도한다. 끈을 놓지 않았다는, 이제 혼자라는 사실.
다음 카페 '고래를 찾는 사람들'은 만들어 진지 사흘 만에 회원수가 500명에 달했다. '한강의 고래'는 그 아파트 단지에만 떠도는 이야기였다. 세대 중 2할은 가입했다. 물론 대부분 반 호기심 반 한가함으로 가입한 이들이었다. 카페의 개설자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고등어 아저씨였다. 올해 예순 줄에 들어선 그는 분당 50타를 자랑하는 초저속의 타자로 이틀을 꼬박 새워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 메인에는 한강의 야경과 거대한 흰긴수염고래의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고래 사진', '고래를 찾아서', '고찾사 얼굴들'과 같은 게시판을 만들었다. 그는 경비실에 딸린 구형 컴퓨터에 종일 매달려 카페를 꾸몄다. 사람 몸통만 한 본체에서는 열이 풀풀 났고, 시어머니 등쌀에 픽픽 내뱉는 한숨 같은 소리가 때때로 흘러나왔다. 그는 향유고래며 흰긴수염고래, 귀신고래 등 온갖 고래들의 사진을 퍼다 날랐다. 개중에는 실수로 올린 고래상어의 사진도 있었다. 고래상어는 고래에 기생해 사는, 엄밀히 말하자면 상어였다. 한평생 막노동이며 아파트 경비를 해온 그가 고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할 리 없었다. 다만 그는 삭막하던 때에 어느샌가 떠돌기 시작한 소문에 대한 열정과 아직 늙지 않았다는 과시로 고래 탐사대의 대장을 자처했다.
여름의 막바지 어느 날, 카페의 '고래를 찾아서' 게시판에는 '고찾사 첫 모임 겸 탐사 8월 xx일'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내용인즉슨 보름달이 뜨는 8월 모일 20시, 한강시민공원 잠실 지구에 집합하라는, 그리고 준비물은 일행당 1개의 돗자리와 랜턴, 부채와 간식거리(통닭이나 족발 등 기름진 음식은 탐사대의 사기를 저하할 염려가 있으므로 자제해야 하고), 회비 5,000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글의 끄트머리에 추신을 달고, 회비 5,000원의 용도는 다른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고래의 존재를 알리는 전단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는 3시간에 걸쳐 몇 번이고 지웠다 다시 쓰며 글을 완성했다. 달이 휘영청 인지 오래였다. 그는 가뜩이나 처진 눈에 피곤을 몇 두릅씩 주렁주렁 달고서,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검은 고양이를 훠이 쫓았다.
결국 당신은 혼자 집에 왔다. 하지만 금세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 당신을 덮친다. 불 꺼진 거실을 당신은 성큼성큼 밟는다. 거기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하지만 사람만한 상록수는 기다란 이파리를 축 늘어뜨리고 그 그림자는 대담하게 거실의 반절을 차지한다. 당신은 못내 나무에라도 말을 붙이고 싶다. 당신은 교복도 벗지 않은 채로 컴퓨터를 부팅시킨다. 매끈한 모양의 본체는 일말의 소음도 없이 1분도 안 돼 부팅을 완료한다. 본체만 97만 원이었고 거기에 최고사양의 그래픽카드, 24인치 LCD모니터가 50만 원이 조금 넘었다. 그건 당신 부모님이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보육이고 관심의 표시였다. 두 사람은 모두 11시가 넘어야 귀가하고, 당신은 불 꺼진 방에 틀어박혀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다. 그런 일상이 2년이 넘어간다. 이제 아무도 아무렇지 않다. 대다수 가족은 한 번 익숙해진 것을 바꾸려들지 않는다. 실제로 그럴 능력도 없다. 당신은 한숨을 픽 쉰다. 하지만 익숙해진 것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때때로 충동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잠깐이다. 당신은 고독에 몸부림치면서도 결코 그림자를 벗어던지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게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겉옷이라고 자신한다. 사실은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지만, 알몸이 되는 것이 창피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그런 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려면 마리아나 해구처럼 깊고 아득한 결단이 필요할 테니까.
당신은 인터넷에 접속하지만, 잠깐 어리벙벙하다. 사실 특별히 할 게 있어 컴퓨터를 부팅한 것도 아니었다. 당신은 아무런 내용도 느낌도 없는 연예 기사 몇 개를 클릭해본다. 톱스타의 연애와 결혼, 시시콜콜한 루머, 속내가 빤히 보이는 의도적인 스캔들 기사.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당신은 가끔 머리가 아프다. 물론 송 혜교와 현 빈이 사귀는 것을 알면 아이들의 시시콜콜한 대화에 끼어들기가 쉽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가끔 의심한다. 누군가 조종하는 것은 아닐지, 당신이 봐야 할 모든 것들을, 누군가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 당신은 기침을 내뱉는다. 결국 단순한 감기 몸살로 판명됐지만, 당신은 아직도 꺼림칙하다. 왜 모든 게 확실하지 않고 의심스럽기만 한지, 당신은 얼결에, 정말 얼결에, 천천히 자판을 눌러 ‘고래’를 검색한다. 왜였는지 모른다. 몇 개의 사진이 뜨고, 화면은 온통 검푸른 초거대 포유류의 향연이다. 그때 당신은 낮에 친구 녀석이 건넨 멍청한 소문을 기억해내고, 스스로 ‘존나’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검색창의 고래 옆에 ‘한강’을 덧붙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이 당신의 빈방처럼 허전하다. 검색 결과는 1개, 카페 ‘고래를 찾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그렇게나 남아도는 것일까? 당신은 궁금하다. 대체 어떤 500명이 떼를 지어 이 허무맹랑한 카페에 가입했으며, 물론 당신도 방금 가입하긴 했지만, 대체 어떤 주인장이 근 백 개에 달하는 고래의 사진을 같은 날짜에 모두 올려놓은 건지. 당신은 자신이 어떤 마법에 걸린 건 아닌지 궁금하다. 당신은 고래의 사진을 하나하나 클릭해보다가, 잠깐 머뭇한다. 이건 상어인데?
당신은 홀로 발광하는 모니터 앞에 홀로 앉아있다. 심해에 와있는 듯하다. 이 집에서 살아있는 건 냉장고와 선풍기, 컴퓨터와 당신뿐이다. 깊은 어둠 속 퍼렇게 발광하는 모니터는 심해어의 몸체 같다. 고래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는지 새삼스럽다. 당신은 숨을 내쉬는데, 거기 공기방울 몇 개가 떠오르는 것 같다. 목 어딘가에 아가미가 달렸을지 모르고, 의자를 박차고 둥둥 떠다닐지 모르는 일이다. 부아, 고래울음이 들리는 듯하다. 거대한 산이 내지르는 터질 듯한 울음, 그건 태초부터 인간이 익히 두려워하던 그 무엇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포효. 사실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주파수지만, 글쎄 당신은 왠지 지금이라면 들릴 만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다 그 허황된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어쩌다 머릿속이 온통 고래로 가득 찼는지. 당신은 어처구니없음에 손가락을 퉁기며 웃어버린다. 당신은 혼자서는 잘 웃지 않았다. 당신은 오늘 밤 풀어야 할 모의고사 1회분을 풀지 않았고, 단어 20개를 외우지 않았다. 당신은 금세 표정이 굳는다. 왜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으니까. 다시 누군가가 누가 그런 것을 정해놓았느냐고 물으면, 당신은 다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냥, 누군지는 모르겠어. 내가 그렇게 정해놓았는지 모르지.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어둠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시곗바늘이 12를 가리키고, 그의 부모가 귀가하고, 또 시침이 두 바퀴쯤 더 돌 때까지 당신은 우두망찰하다. 그리고 그날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끝내 하지 못했다. 내일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틴 것은 아니다. 어떤 제어할 수 없는 것이 그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오늘 하루 당신은 완벽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당신은 지금, 꼭 할 필요는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세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제약회사들의 주가는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그 덕에 제약회사 임원들은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아 떼부자가 됐다. 사람들은 ‘고객의 공포를 먹고 기름칠한다’라며 손가락질 했지만, 회사 측은 ‘개인적 권리 행사일 뿐.‘이라고 맞받아쳤다. 계열사들도 같은 방법으로 몸뚱이를 불렸다. 사람들 말대로 그들이 고객의 공포를 먹고 배에 기름칠을 하는 것일지 몰랐지만, 회사는 그 공포는 자신이 조장한 것도 아닌 다만 고객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고등어 아저씨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일부도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끊임없이 사진을 올렸고, 전문가들이 음향장비로 추출해낸 고래 울음도 올리기에 이르렀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의 고래에 대한 관심이 이상할 만큼 집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고, 그를 빼고 진행한 주민 회의에서 결정한바, 한강에서의 첫 번째 모임 이후에도 그 ‘고래홀릭’이 사그라지지 않으면 수위직을 박탈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주민 회의의 결과를 알 리 없는 그는 xx일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전에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카페에 가입하고 모임에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은 점점 그의 수위직 박탈에 힘을 싣고 있었다. 부녀회에서 은밀하게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오래전 아내와 사별하고 십수 년을 홀아비로 지내온 고등어 아저씨가 최근 젊은 아낙네와 연애를 하는데 오래도록 방치된 성 기능이 폐쇄 직전이라 고래의 우람한 기운을 받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야수성이 폭발하는 보름(부녀회원들은 생각해보니 자신들도 그때 애가 들어선 것 같다며 입을 모았다)에 나타나는, 도심 한복판의 고래의 기운이라! 아낙네들은 그 뒤로 수위를 볼 때마다 그가 나날이 젊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개중 몇몇은 모르는 척 ‘어디, 고래~ 일은 잘 되 요?’라거나, ‘요새 좋은 거 많이 드시나 봐!’하고 그를 떠봤다. 그럴 때마다 고등어 아저씨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허허 중국에는 이런 고래가 있지요. 니하오마씽씽 고래!
당신은 처음으로 점심시간을 ‘헛되이’ 보낸다. 모두 공을 차러 나가 텅 빈 교실에서, 당신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책상에 걸터앉는다. 3층 높이로 자란 이름 모를 사철나무에는 역시 이름 모를 새가 앉아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당신은, 나무와 새의 이름을 몰라도 남들이 부러워할 삶을 살 수 있겠지만 후에 자신의 아들딸이 그 나무와 새의 이름을 물었을 때 아무것도 대답 못한다면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자문한다. 그리고 당신은, 하지만 지금 나무의 생김을 가슴에 담고 새의 노래를 느끼는 대신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이나 하는 자신이, 되돌아가기에 너무 먼 길을 와있는 건 아니냐고, 실크로드의 반을 건너온 상인이 목마르다고 낙타가 다리를 전다고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당신은 당신의 짧지만 치열했던 살아감을 회상한다.
인물이 잘났고 말수가 없어 초등학생 때부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당신은 그러나 이성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는 세상이 거대한 정글이라는 것과 결국 일찍 깨인 사람이 모두를 리드한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래서 당신이 보는 사회는 지름 12,756.274km의 육상 경기장이었고, 당신은 항상 그 선두에 서고자 했다. 그리고 12살이었던 당신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당신은 신문을 읽고 책장을 넘겼으며 문제집에 코를 박았다. 당신은 신문이 고발하는 기업의 횡포나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 무너져가는 윤리 등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대신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더럽다.’ 당신은 클럽 문화를 증오하고 순결을 지키지 않는 여자들을 ‘더러운 걸레'로 봤다. 그는 자신의 그런 시각에 태클을 거는 급우들도 모두 ’더러운 사고관‘을 가진 속물들로 봤다. 그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뒷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들은 따라온다. 달릴지 걸을지 쉴지를 결정하는 건 자신이고 속도나 목표를 결정하는 것도 자신이다. 당신은 고집이 셌다. 당신 스스로는 그것을 자신감 내지 진실로 여겼다. 돌이켜보면 학기 초에는 얼굴도 잘생겼고 성적도 최상위권인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그들은 늘 당신을 뒤쫓았고 당신이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시간, 심지어 사춘기의 비밀스런 성생활도 따라 하려 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사춘기의 끓어오르는 성욕도 이성에 대한 흥미도 없었다. 당신은 오로지 당신의 경주, 수십 년을 롱런해야하는 그 지독한 사투에만 매달릴 뿐이었다. 그에게는 컴퓨터 게임이니, 연예인이니, 최신가요니, 예쁜 여자니 하는 건 무식한 자들의 하급문화일 뿐이었다. 당신은 늘 깨어 있고 당당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학년 말이 되어서야 당신이 자신들을 업신여기고 성공의 발판이나 도구로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때는 한 학년의 끝이었고, 그들은 이미 당신에게 간이며 쓸개며 다 내주었다. 아이들은 하나 둘 당신의 곁을 떠났다. 당신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당신은 해야만 하는 일을 정해놓고 그것을 하나씩 성취하면서 속도를 높여갔다. 당신에게 17, 18년의 인생은 결투의 1라운드, 축구의 전반전이었다. 당신은, MVP의 유력한 후보였다.
불편한 화창함이다. 교실 창으로 볕 한 줌이 기어든다. 햇빛은 삼각형으로 불쑥 솟다가 자웅동체처럼 두 개로 분열하고 이내 합쳐진다. 당신은 석고상처럼 꿋꿋이 앉아있다.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다. 당신이 느끼는 건 안개 너머 등대 불빛같이 멀고 뿌연 어떤 분위기다. 검고 어두운 분위기, 무언가 잘못됐다는. 하지만 벽 너머의 일인 것처럼 도저히 잡을 수도 볼 수도 없다. 단지 그곳에 있다는 것만 느낀다.
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검푸른 강물은 괴이하게 넘실거렸지만, 연인, 친구, 가족들은 저마다 활짝 웃고 있었다. 한강의 밤이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거주하는 28세의 박 모 씨는 잠실대교 어귀에 들어섰다. 그는 배로 불어난 이자 청구 소식을 막 들은 참이다. 제대하고 20대 특유의 열정과 자신감으로, 몇 년간 꿈꿔오던 식당 개업을 위해 대출업체에서 거금을 빌렸다. 하지만 식당 운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창의적이라고 자부하던 아이템도 서울 시내에서는 이미 흔한 것이었고, 테이블엔 심지어 파리도 날리지 않았다. 그는 일가친척이며 친구, 선후배들에게 있는 대로 돈을 끌어모아 몇 번이고 아이템을 바꾸고 식당을 살리려 노력했지만 일은 갈수록 악화됐다. 그 사이 그는 매달 갚던 빚을 몇 달간 연체했고, 결국 이자까지 합친 수 천 만 원의 돈을 월 48.54%의 이자로 분할 납부해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빌린 돈까지 따지면 수억을 갚아야 했다. 그는 식당을 정리하지도, 어떤 결단을 내리지도 못했다. 사람의 욕심이었다. 그는 식당이 어떻게든 살아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판이요 헛된 희망이었다.
결국 그는 한강에 올라섰다. 하루에도 2명, 3명이 목숨을 끊는 곳이다. 박 씨의 눈에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아래로, 죽은 자의 원혼이 그를 손짓하는 것 같다. 이리와, 이리 오면 편할 거야. 그는 눈을 감고 천천히 앞으로 몸을 기대었다. 보잘 것 없지만 후회는 없는 인생이었다, 고 그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그는 가볍게, 뉴턴의 머리 위로 사과가 떨어지듯 극히 가볍게 강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누구도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중력은 스스로 하강하기를 원하는 이에게만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더운 바람이 한주먹 불었다. 잠실대교는 죽은 자의 도시인 듯 알록달록 도깨비불 같은 자동차 조명을 삼켜댔다.
보름날, 고등어 아저씨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집집이 돌며 그날의 모임을 알렸고, 하루가 꼬박 걸리는 일을 마치 초인처럼 반나절 만에 해치웠다. 그는 경비실에 홀로 양반자세를 하고서 눈을 감은 채 주문을 외웠다. 고래를 부르는, 먼바다의 고래를 한강으로 불러들이는 텔레파시, 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의 이마엔 땀이 흘렀고 상기된 얼굴엔 열이 후끈거렸다. 마침내 해가 졌다. 그는 준비를 시작했다.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썼으며(달밤에 왜 그것이 필요했는지는 결국 아무도 몰랐다.) 등에 기다란 작살을 맸다. 손전등과 낡은 디지털 캠코더, 카메라, 거기에 간 새우 5kg이 가방에 들어갔다.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포경꾼이었다. 그는 보름달을 등진 채 비장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한 아저씨는 주위를 황망하게 둘러봤다. 혹시 자신이 잘못 도착한 것 인지 아니면 약속 장소를 잘못 가르쳐준 것인지. 물론 약속 시간이 되려면 아직 10분은 있어야 했다. 그는 실망한 채 기다렸다. 사람들은 그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초저녁부터 거하게 술기운이 오른 사내들은 그에게 짓궂은 농을 쳤지만 그는 꿋꿋했다. 10분, 15분이 흘렀고 멀리서 익숙한 얼굴 몇 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옆 동의 18살 준혁, 부녀회 소속 속칭 ‘입’ 마산댁, 지체장애인 2급 ‘얼빵이’, 그리고 은퇴한 교장 김 선생님까지. 그리하여 8시 반까지 10명 내외의 주민이 시민 공원에 모였다. 대체로 그들은 딱히 할 일이 없어 바람 쐴 겸 온 것이긴 했지만 아저씨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양양했다.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그건 작은 종이 팔찌로, 거기엔 ‘제1대 고찾사 탐사대’라고 삐뚤 빼뚤 적혀 있었다. 준혁은 킬킬 웃었고 아저씨는 그를 호되게 꾸짖었다. 인마, 엄숙한 발대식!
당신의 부모가 입을 연다.
학원에 가지 않았더구나. 문제집도 깨끗하고.
그들이 당신에게 ‘아침밥은’, ‘점심밥은’, ‘저녁밥은’이라고 하는 것 외에 말을 거는 것은 거의 1년 만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무관심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내색하고 싶지는 않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아들에게 부족함 없이 퍼다 주는 부모가 분명하고, 그들은 스스로도 결코 자식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어떤 면에서 교육에 힘썼는지 말하라고 하면 조금 난감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하나뿐인 아들인 당신은 상위 1%에 드는 모범생이고 책임감이 강하다, 라고 알려졌다. 그런 믿음은 당신이 학교에 다니는 약 10년의 시간 동안 깨질 일이 없었다.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바로 지금, 요 보름간 당신의 행동에 의함이다.
어디 아프니? 아니면 고민이라도 있니?
극히 따뜻하지만 호박과 같이 단단하게 갇혀버린 말이다. 당신은 며칠의 일탈이 부모로부터 이만큼의 관심이 나타나는 것에 적잖게 놀라면서도 실망했다. 부모의 신뢰는 당신에게 굴레요 감옥이었다. 물론 당신은 그 17년의 인생이 오롯이 부모의 어떤 기대에 기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자신의 욕심이고 자신의 아집이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만리장성처럼 거대하게 쌓인 그 철벽의 일부를 두 사람의 부모가 지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 어른이 되는지 모른다. 아주, 질 나쁜 어른.
아무것도, 아니에요.
등 뒤에 태엽이 두 바퀴 반쯤 돌아가 당신을 말하게 하는 것 같다. 당신은 무표정이다. 부모는 당혹감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는다. 두 사람은 모두 대졸, 어머니는 석사 학위를 땄고 아버지는 서울의 명문대학 출신이다. 그들은 지식인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을 어깨의 숄처럼 걸치고 다닌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두 개의 신문과 유기농 요구르트가 매일 배달되고, 그들의 가정부는 가장 신선한 재료로 영양이 가득한 한식 차림을 내온다. 마룻바닥엔 먼지 하나 없고 어항엔 이끼며 녹조류가 낄 일이 없다. 그래서 당신은 집이 거대한 무균실처럼 느껴진다. 그 어떤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무균식과 두꺼운 비닐 옷을 입은 사람들. 그들은 눈만 빠끔히 내놓고 당신의 병세를 살핀다. 당신은 그 가운데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정작 사실은 벌거벗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힘이 드는구나. 너마저 이렇게 속을 썩이면……
아니에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당신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당신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다. 그게 못 견디게 성이 나고 이젠 그만두고 싶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당신은 살아온 17년이 오롯이 악만 남은 커다란 상처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깊게 파고들어가 빠져나올 수 없는 묏자리. 아무리 발버둥쳐도 더 깊은 골만 만들어내는.
그리하여 제1대 고찾사 탐사대는, 강변 아파트의 수위인 고등어 아저씨의 지휘 아래 두 팀으로 갈라져 반대 방향으로 탐사를 시작했다. 각 팀에게는 2.5kg씩의 간 새우가 지급됐다. 그들은 출렁이는 강물을 각자 랜턴으로 비추면서 길을 따라 걸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새우를 던지고 카메라를 꺼내며 자신에게 연락을 취하라는 탐사대장의 명이었다. 아저씨를 비롯해 마산댁과 김 선생님 등이 1팀이었고 준혁과 얼빵이 등이 2팀이었다. 두 팀은 사뭇 진지하게 물결을 살피며(그렇지 않으면 탐사대장의, 엄숙한 탐사! 라는 불호령이 떨어졌으므로) 서로 천천히 멀어져갔다. 아저씨의 차림과 그들의 행동거지에, 한강변을 휴식하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강변에 걸터앉아 캔 맥주를 들이켜던 사내는 뒤통수로 돌연 노란 불빛이 쏟아져 거의 강바닥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당신의 옆으로 자동차들이 스쳐간다. 그것들은 너무 빨라서, 지금까지 당신의 주변을 맴돌았던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누구 하나 머리에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결국 혼자라는 체념, 왜 걷고 있는지 모른다. 당신은 타박타박, 신발을 질질 끈다, 끄는데, 그 몇 걸음에 몇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듯하다. 속절없이 더운 공기가 야박하다. 멀리 다리 건너에 희미하게 빛나는 물음표가 있다. 물음표인지 물음표처럼 보이는 그 무엇인지 물음표 흉내를 내는 무엇인지 물음표가 아니고자 하는 물음표인지 그 자체가 하나의 물음이다. 당신에게 그 물음표가 언뜻 달려든다. 언제 나왔는지, 어딜 가는 건지, 왜 잠실 대교에 홀로 서 있는지…… 자신은 무엇인지.
결국 시비가 붙었다. 아저씨가 지나던 취객들의 얼굴 정면으로 전등을 비춘 탓이었다. 그는 실수였다고 몇 번을 항변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 순간에 아저씨는 아파트 수위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탐사 대원이었고 그들을 이끄는 대장이었다. 그는 승강이를 벌이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강 쪽을 봤다. 보름 밤, 고래는 꼭 나타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머리를 꼿꼿이 세운 30대의 남자는 아저씨를 밀쳤고, 그 여파로 새우 봉지가 뜯겨 사방으로 새우가 휘날렸다. 얼굴에 새우가 덕지덕지 붙은 남자는 씩씩대며 아저씨의 멱살을 잡았다.
난, 고래를 잡아야 한다!
그건 포고이자 다짐이었다.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아저씨를 쥐고 흔들었다. 그때 멀리서 준혁의 모습이 보였다. 준혁이 소리쳤다.
고래가 나타났어요!
아저씨는 일순간 짐승같이 몸을 숙이며 등의 작살을 빼들었다.
난, 고래를 만나야 한다!
그는 남자에게 작살을 들이대며 훅훅 찌르는 시늉을 했다. 남자는 미친놈! 이라고 외치며 줄행랑을 놨다. 아저씨는 일행을 이끌고 준혁이 온 방향으로 뛰어갔다.
정말 뭐가 나오긴 나온 게냐!
그게, 제가 본 건 아니고, 얼빵이 형이……
일단 가보자!
그들은 마침내 잠실 대교 부근에 이르렀다. 강물은 검은 푸딩처럼 넘실거렸다. 거기 얼빵이가 말 그대로 어벙하게 강 어딘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흥분으로 얼굴이 상기됐다.
뭘 본 게야!
그가 얼빵이의 어깨를 잡았다. 얼빵이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어눌하게 말했다.
고오래.
뭐?
고오래를 봐써여.
어디서!
저어기.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얼빵이의 손가락 끝을 따라, 그러나 끊임없이 울렁거리는 물결뿐이었다. 김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잖나.
당신은 난간에 멈춰 선다. 멀리 한강이 길게 늘어져 있다. 거대한 뱀 같다.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뱀의 몸통은 지평선 너머까지다. 당신의 등 뒤로는 망령 같은 불빛뿐이다. 당신은 초점 잃은 눈으로 강바닥을 뚫을 듯이 쳐다본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그곳에 무엇이 꿈틀거린다. 검은 그림자다. 고래? 그럴 리가 없다. 당신은 혀를 찬다. 막막함에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정신줄을 놓은 듯 당신은 몸을 가누지 못한다. 다리는 고독의 공간이다. 통로일 뿐이고 통과의례 급도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곳에 서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당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난간에 홀로 선다. 그리고 일부는 아무런 미련 없이 혹은 미련 없는 척하며 몸을 던진다. 당신은 생각한다. 앞길이 보이지는 않지만,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다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당신은 생각했다.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곳에 서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당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난간에 홀로 섰다. 그리고 일부는 아무런 미련 없이 혹은 미련 없는 척하며 몸을 던졌다. 당신은 생각했다. 돌아가자고. 그러자고.
겁이 난다. 당신은 무섭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돌아가자고? 그러자고? 그런데…… 어디로! 어디로?
마른 바람이 훅 분다. 당신은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당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난간에 홀로 섰다가…… 떨어진다. 떨어졌다.
보름 다음 날, 어스름 해가 떴다. 동트기 전 깊은 어둠과 빛이 밝아오는 그 순간까지 소년과 준혁은 한강 둔치에 앉아있었다. 둘은 무릎에 팔을 감고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를 보고 있었다. 소년의 신발은 젖은 채였다. 머리도 금방 말랐는지 삐쭉삐쭉했다. 준혁은 힐끔 그를 쳐다봤다.
"왜. 떨어진 거야?"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준혁에게 신발을 벗어 보였다. 하지만 준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발을 벗지 않았어."
준혁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듯했다. 소년의 눈은 여전히 해에 박힌 채였다. 준혁은 짐짓 목소리 톤을 높여 말했다.
"결국 고래는 없던 거였네. 하여간 존나게 웃긴 사람들이야."
아 그러고 보니 나도 그중 하나네, 으허허. 준혁은 덧붙이며 웃었다.
"고등어 아저씨가 그랬는데, 인제 고찾사는 고래 찾지 않을 거래. 자기가 있지도 않은 고래 때문에 왜 그렇게 발광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대신 더 크고 중요한 걸 찾을 거라더라."
소년은 그것이 무엇인지 달리 묻지 않았다. 다만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털었다. 신발을 집어들고 그는 천천히 걸었다. 준혁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소년은 뒤의 준혁에게 물었다.
"자기를 찾지 않았으면 하는 고래도 있지 않을까."
준혁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소년이 든 신발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인마. 너 존나 웃긴 거 아니냐. 세상에 신발 신고 헤엄치는 고래가 어딨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