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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철규 회장님 전
그간 적조했습니다.
그러나 참나에 대한 사랑은 여전합니다.
개인 사정으로 신변이 불편하여
금년은 각 문학단체 참석을 자제하고
건강을 돌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창작 판소리를 송부합니다
부족하지만...
많이 칭찬해 주세요!
동기 9211. 8.7 병술
서기 2011. 9. 22
우주 지구 한국 인천시 서구 검단3동에서
진월 서봉산 현지 올림
-환단고기
창작 판소리 사설집-
이‘환 단 고 기’는 1만년에 가까운 우리역사의 기록이다.
세계방방곡곡에 알리려, 판소리 완창을 편집한 것이다.
⌜판소리 가객(歌客)⌟들이 전 세계를 돌며 부르기를 바람
‣ 증산도 안 경전 종도 사님
환단고기 譯註 本
•創作 판소리 사설편집
배달사상 선양 회 會長
詩人, 隨筆家
판소리 명창
眞月 서 봉산 賢志
2p
東紀 9211년 7월 21일 辛未 / 西紀 2012년 9월 7일 金 始作
⁌ 환단고기 ⁍
편찬자, 운초(雲樵) 계 연수(桂延壽) - 1864~1920년
1. 환단고기를 정명(正名)하였다.
2. 환단고기; 삼성기전 상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 다섯 권
3. 삼성기전 상은 운초 집안 소장본이고, 삼성기 하와 단군세기는 북녘 땅 제1의 장서가 백관묵 에게 전수 받았다.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 소장본이고, 태백일사는 해악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 오던 것이다.
4. 스승이자, 단군세기를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후손 해학 이기의 지도 아래 환단고기를 발간하였다.
5. 환단고기의 중추신경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민족과 인류의 창세 원형 문화인 신교의 우주론과 인간관, 신관과 태고의 수행문화를 근원으로 하여 단절된 한국사의 국통 맥을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로 잡아주었다.
‣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 역주; 30년의 노고(勞苦)로 알기 쉽게 번역하고 방대한 주해와 해제를 달았다.
‣ 배달겨레 선양회 회장 서봉산 현지; 환단고기 전체 각 편의 본문 주해를 판소리 완창본으로 편집.
1편 삼성기전(三省記全)에서 ~ 고려국 본기(高麗國本記)까지 각 본론 부분을 퓨전판소리로 함.
※ 퓨전 판소리; 소리꾼이 북장단을 중간 중간 쳐가며 창을 같이하는 새로운 판소리; 진월이 창안 시도함 - 이미 논문을 발표했고, 7~8년 연구하면서 각 행사에 공연을 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니 고수(鼓手) 없이 가야금병창과 같이 혼자 공연을 함. (단, 가객과 고수 같이 하는 공연도 됨)
※ 환단고기 완창 전체가 동편제(東便制) 이지만, 약간은 서편제(西便制)가 있다.
3p
一 篇; 삼성기전(三省記全)
⁌ 삼성기전 上 ⁍
‣삼성기전 상 - 찬(撰)
안함로(安含老) - 579~ 640년
그는 유, 불, 선과 상고시대 신교(神敎)문화를 회통(會通)함.
1. 신라 진평왕 때의 도승으로 신라 10聖 중 한 사람이다.
2. 한족 신교문화의 상수철학과 삼신. 칠성문화의 원형을 상세히 밝혔다.
3. 삼성기전 상은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고구려로 이어가는 한민족사의 국통맥을 밝히고, 고주몽이 북부여의 정통을 계승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지적하였다.
첫 째 - 환인천재의 환국 개창
<진양조 = 우조; 장엄하게>
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 천지에 일신(一神)이 있어 시베리아의 하늘에 계시며 홀로 천지의 조화를 짓는 신이 되셨다. 그 광명은 우주를 비추고, 대권능의 조화로써 만물을 낳으셨으며, 오래도록 사시며 항상 즐거움을 누리셨다. 지극한 조화기운을 타고 노니시고 오묘하게 자연과 부합하시며, 형상 없이 나타나시고 함이 없이 만물을 지으시며 말없이 행하셨다.
•인류 태고 문명의 시조, 안파견 환인
<중모리 = 우조; 장엄하게>>
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 보내시니, 이때 환인께서 만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어 천계(천산 동방의 환국)에 거주하시면서 돌을 부딪쳐서 불을 피워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니 이 나라를 환국(桓國; 밝은 나라)이라했다. 이 환국을 다스리는 분을 ‘천제 환인씨’라 부르고, 또는 ‘안파견’이라
고 불렀다. 환국은 7세를 전했으나, 그 연대는 자세히 살필 수 없다…
둘 째 - 환웅천황의 배달 시대
<중모리= 우조; 장엄하게>
그 후 환웅씨가 환국을 계승하여 일어나 하늘에 계신 상제님 명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의 지역에 내려오셨다. 그리하여 천평(天坪)에 우물[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파고 청구(靑邱)에 농사짓는 땅을 구획하셨다. 환웅께서 천부와 인을 지니고 오사(五事)를 주관하시어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 다스려 깨우쳐 주시고[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시며[弘益人間],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 이름을 배
4p
달(配達)이라 하셨다.
•웅씨족 여인을 황후로 삼다.
<중모리; 평조>
삼칠[21일]을 택하여 상제님께 제사 지내고, 바깥일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읽고 서원을 세워 공덕을 이루시고, 선약을 드시어 신선이 되셨다. 괘(卦)를 그어 미래의 일을 아시고, 천지변화의 움직임[象]을 파악하여 신명을 부리셨다. 여러 신령한 인물과 명철한 인재를 두루 모아 신하로 삼고, 웅씨족 여인을 맞아들여 황후로 삼으셨다. 혼인 예법을 정하여 짐승가죽으로 폐백을 삼게 하시고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게 하시고, 시장을 열어 교역을 하시게 하시니, 구환족이 사는 모든 지역은 공물과 세을 바치고, 뭇 새와 짐승들까지 따라서 춤을 추웠다. 후세 사람들이 이분을 지상의 최고신으로 세세토록 제사 지내기를 그치지 않았다. 배달국 신시 시대 말기에 치우천황이 계시어 청구(靑邱)를 널리 개척하셨다. 환웅천황의 배달 시대는 18세를 전하였으며 1,565년을 누렸다.
셋 째 - 단군왕검의 조선 개국
<진양조 = 우조; 장엄하게>
이후에 신인(神人) 왕검이 불함산(不咸山)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에 내려 오셨다. 왕검께서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인의 자애로움을 겸하시고, 선대 환인. 환웅 성조의 법을 이어 받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륜의 푯대를 세우니, 천하에 그 공덕이 우뚝 솟아 찬란하게 빛났다. 이에 구환(九桓)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하여 천제의 화신으로 추대하여 임금으로 옹립하니, 이분이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왕검께서는 신시배달의 옛 법도를 되살리시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여시니 그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셨다.
•비서갑 하백의 따님을 황후로 삼다.
<중모리 = 평조>
단군왕검께서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단정히 앉아 함이 없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
아 다스렸다. 현묘한 도를 깨치시어 뭇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실 때…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토지를 개척하게 하시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고, 고시(高矢)에게 농사일을 맡게 하시고, 신지(臣指)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시고, 기성(奇省)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고, 희(羲)에게 괘서(挂筮)를 주관하게 하시고, 우(尤)에게 병마(兵馬)를 담당하게 하셨다.
<진양조 = 우조; 화평하게>
단군왕검께서 비서갑(非西岬)에 사는 하백의 따님을 맞이하여 황후로 삼고 누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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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맡게 하시니,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치어 천하가 태평해졌다.
•마흔일곱 분의 단군, 2096년간의 대조선사
<중모리 = 평조>
병진(단기 1909, BCE 425)년 주(周)나라 고왕(考王)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고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으며, ‘8조 금법(禁法)’으로 법도를 세우셨다. 책읽기와 활 쓰기에 힘쓰게 하고, 하늘[삼신 상제님]에 제사지내는 것을 근본 가르침으로 삼았으며,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고 산과 못을 일반 백성에게 개방하셨다. 죄를 지어도 처자식에게 미치지 않게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다스렸다. 남자에게는 일정한 직업이 있고 여자에게는 좋은 배필이 있었다. 집집마다 재물이 풍부하고,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으며,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온 나라에 넘쳐흘렀다. 시조 단군왕검께서 무진[BCE 2333]년에 나라를 다스리신 이래 47세를 전하니, 역년은 2,096년이다.
넷 째 - 해모수의 북부여 건국과 동명왕
<중모리 = 우조; 장엄하게>
임술(壬戌; 단기 2095, BCE 239)년 진왕(秦王) 정(政) 때 신인 대해모수(大解慕漱)가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났다. 정미(丁未; 단기 2140, BCE 194)년 한나라 혜제(惠帝) 때 연나라 유민의 우두머리 위만이 서쪽 변방 한 모퉁이를 도덕 질하여 차지하였다. 이에 번한의 준(準)이 맞서 싸웠으나 당해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 속해 있던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한강] 이남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후 한때 여러 영웅이 요해(遼海)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힘을 겨루더니, 계유(癸酉; 단기 2226, BCE 108)년 한무제 때 한나라가 쳐들어와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를 멸하였다. 이때 서압록 사람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또한 단군이라 칭하였다. 을미(乙未; 단기 2248, BCE 86)년 한나라 소제(昭帝)때 고두막한이 부여의 옛 도읍을 점령하고 나라를 동명(東明)이라 칭하시니, 이곳은 곳 신라의 옛 땅이다.
•천제의 아들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
<진양조 = 우조; 장엄하게>
계해(癸亥; 단기 2276, BCE 58)년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고주몽]가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받들어 제사지내며 연호를 정하여 다물(多勿)이라 하시니, 이분이 곧 고구려(高句麗)의 시조(始祖)이시다.
6p
⁌ 삼성기전 下 ⁍
‣원동중(元董仲); 찬(撰). 生沒 ? 년 ~ ? 년
환국의 실체와 배달의 역년을 밝히고, 배달의 성웅 치우천황의 진면목을 드러냄.
1. 세조실록에 삼성기의 저자로 기록. 그러나 한암당 이유립은 원동중을 고려 때 인물로 추정하였다.
2. 안함로의 삼성기 상편과 원동중의 삼성기 하편은 두 권의 책이 마치 일란성 쌍생아와 같이 절묘하게 상호보안이 되어 있다.
3. 특히 원 동중의 삼성기 하편은 상편에서 빠져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무엇보다도 환국의 일곱 분 환인의 역년과 12환국의 이름을 드러내어 환국의 실체를 밝히고, 배달국의 열여덟 분 환웅의 역년을 신사역대기로 밝혀주었다. 특히 한민족사의 성웅 치우천황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첫 째 - 인류의 시조와 동서 문명의 시원 국가
<진양조 = 우조; 장엄하게>
인류의 시조를 나반(那般)이라 한다. 나반이 아만(阿曼)과 처음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비였다. 두 분이 꿈에 천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혼례를 올리시니 환족의 모든 족속(九桓族)이 그 후손이다.
세월이 지나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백성들은 풍요롭고 인구도 많았다. 처음에 환인께서 천산에 머무시며 도를 깨쳐 장생하시니 몸에는 병이 없으셨다. 하늘(삼신 상제님)을 대행하여 널리 교화를 베풀어 사람들로 하여금 싸움이 없게 하셨다. 모두 힘을 합해 열심히 일하니 굶주림과 추위가 저절로 사라지게 되었다.
둘 째 - 환국의 통치자와 12연방
<중모리 = 평조; 명쾌하게>
초대 안파견 환인에서 2세 혁서 환인, 3세 고시리 환인, 4세 주우향 환인, 5세 석
제임 환인, 6세 구을리 환인을 이어 7세 지위리 환인에 이르렀는데, 환인(桓仁)을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고기에⌟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중모리 = 평조; 명쾌하게>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 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으로 5만 리요. 동서로 2만여 리이니 통틀어 환국이라 했다. 이 환국은 다시 여러 나라로 구성되었는데, 그 이름은 비리국, 양운국,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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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한국, 구다한국, 일군국, 우루국(일명 피라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일명 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국(일명 시위국 또는 통고사국), 수밀이국으로 합하여 12국이다. 환국은 7세를 전하니, 그 역년은 3,301년인데 혹자는 63,182년 이라고도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셋 째 - 환국의 말(末), 환웅의 동방 개척
•3천명 환족 무리의 백두산 문명개척
<중모리 = 우조; 장엄하게>
환국 말기에 안파견 게서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을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물으셨다. “두 곳 모두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弘益人間) 수 있는 곳이다. 과연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은가?” 오가의 우두머리들이 모두 대답하였다. “서자(庶子)에 환웅이란 인물이 있는데 용기와 어짊과 지혜를 겸비하고, 일찍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세상을 개혁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를 동방의 태백산(백두산)으로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 이에 환인께서 환웅에게 천부(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주시며 명하셨다. “이제 인간과 만물이 이미 제자리를 잡아 다 만들어졌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3천명’을 이끌고 가서,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세우고 개천입교(開天立敎) 신교의 진리로 세상을 깨우쳐서 재세이화(在世理化) 이를 만세 자손의 큰 규범으로 삼을 지어다.”
•신시를 열어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신 환웅천황
<중모리 = 평조>
환웅이 동방을 개척할 당시 기이한 술법을 좋아하는 반고라는 인물이 있었다. 반고가 개척의 길을 따로 나누어 가기로 청하므로 환인께서 이를 하락하셨다. 드디어 반고는 많은 재화와 보물을 싣고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의 신장을 거느리고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와 함께 삼위산 납림 동굴에 이르러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이들을 제견(諸畎)이라 하고, 반고를 반고가한이라 불렀다. 이때 환웅께서는 무리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오시어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시니, 이분이 바로 환웅천황이시다. 환웅께서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농사와 왕명과 형벌과 질병과 산악을 비롯하여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시고,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써 다스려 깨우쳐서(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弘益人間).
넷 째 - 배달의 건국
•신교의 수행 계율, 100일 기도와 21일 수행
<중모리 = 평조>
8p
이때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이 이웃하여 함께 살고 있었다. 일찍이 이 족속들은 삼신 상제님께 천제 올리고, 기도드리는 신단수로 가서 “삼신의 계율을 따르는 백성이 되기를 바라옵니다.”라며 빌었다. 환웅께서 이 소식을 듣고 “가히 가르칠 만하
도다.” 하시고, 신령한 주문의 도술로써 환골(換骨)케 하고 정신을 개조시키실 때, 먼저 삼신께서 전해 주신 고요히 수행하여 해탈하는 법으로써 몸과 마음을 신령스럽게 만들어 주셨다. 이때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줄기를 주시며 경계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것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말고 100일 동안 기도하라. 그리하면 인간의 참모습을 얻게 되리라.”
<중모리 = 평조>
이에 웅족과 호족 두 족속이 함께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삼칠(21)일을 지내더니, 웅족은 능히 굶주림과 추위를 참아내고 계율을 지켜 인간의 모습을 얻었으나, 호족
은 방종하고 게을러 계율을 지키지 못하여 좋은 결과(善業)를 얻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두 족속의 성정이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에) 웅족 여인(熊女)들이 시집갈 곳이 없어 매일 신단수 아래에 와서 주문을 외우며 아기 갖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께서 이들을 임시로 환족으로 받아들여 환족 남자들과 혼인하게 하셨는데, 임신하여 아이를 낳으면 환(桓)의 핏줄을 이은 자손으로 입적시켰다.
•배달의 발전과 치우천황의 계승
<중모리 = 평조; 화평하게>
한웅천황께서 처음으로 동방 배달민족의 새 역사 시대를 열고(開天) 백성에게 교화를 베푸실 때, ⌜천부경(天符經)⌟을 풀어 설명하시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여 뭇 백성에게 큰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후에 치우천황(14세 환웅, 자오지환웅)께서 영토를 개척하고, 구리와 철을 캐어 무기를 재조하는 한편 병사를 훈련시키고 산업을 일으켜다. 이때 구환 족이 모두 삼신의 뿌리가 같은 시조로 삼게 되었다. 천황께서 소도와 관경(管境)과 책화(責禍)를 주관하고, 백성의 의견을 모아 하나로 통일하는 화백제도를 두셨다. 또한 백성으로 하여금 지혜와 생명력을 함께 닦아(智生雙修) 전(佺)의 도에 머물게 하셨다. 그 후 구환 족이 관경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리시던 것을 천자(天子)에 의해 모두 통일되니, 이분이 단군왕검이다.
•웅족과 호족의 대립과 환족의 교화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중모리 = 평조>
환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强族)이 있어 근심하던 차에 환웅께서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베풀고(以三神說敎), 전계(佺戒)로써 삶의 본업(本業)을 삼으며, 백성을 모아 맹서하게 하여 권선징악의 법을 두셨다. 이때부터 은밀히 그 강족
9p
을 제거하려는 뜻을 두셨다. 이때 각 부족의 이름(族號)이 한결같지 않고 풍속은 점
점 갈라졌다. 본래 살고 있던 사람은 호족이고,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웅족이었다. 호족은 탐욕이 많고 잔인하여 오로지 약탈을 일삼고, 웅족은 어리석고 괴팍하여 고집스러워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비록 같은 곳에 살았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소원해졌다. 그리하여 서로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주지도 않고 혼인도 하지 않으며, 매사에 서로 불복하여 함께 같은 길을 가지 않았다. 이 지경에 이르자 웅족의 여왕이, 환웅께서 신령한 덕(神德)이 있으시다는 소문을 듣고 무리를 거느리고 찾아와 환웅을 뵙고 아뢰기를, “원하옵건대 저희들에게 살 곳을 내려주십시오. 저희들도 하나같이 삼신의 계율을 따르는 환족의 백성이 되고자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환웅께서 이 말을 듣고 허락하시어 웅족에게 살 곳을 정해 주시고 자식을 낳고 살아 가게 하셨다. 그러나 호족은 끝내 성격을 고치지 못하므로 사해(四海) 밖으로 추방하시니, 환족의 흥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다섯 째 - 배달의 전성기
•청동기 문화를 꽃피운 14세 치우천황
<중모리 = 평조>
그 후 10세 갈고환웅 때는 염제신농의 나라와 국경을 접하였다. 다시 몇 세를 내려와 14세 자오지환웅이 계셨는데, 이분은 신이한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며, 구치(九治)를 제작하여 광석을 캐내고 철을 주조하여 무기를 만드시니 천하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이분을 치우천황이라 불렀는데, 속언에 치우는 ‘뇌우가 크게 일어 산하가 뒤 바뀐다’는 뜻이다.
•치우천황의 신하였던 한족의 시조 헌원
<중모리 = 평조>
치우천황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날로 쇠약해지는 것을 지켜보시고 드디어 웅도(雄圖)를 품고 서쪽에서 여러 번 군사를 일으키셨다. 삭도(索度)에서 군사를 진격시켜 회수와 태산 사이의 땅을 점령하시고 헌후(軒侯; 헌원)가 왕위에 오르자 바로 탁
록의 광야로 진격하여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으셨다. 이후 오장 군을 파견하여 서쪽으로 고신(高辛) 땅을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 하셨다. 이때 천하의 형세는 세 세력이 세발솥의 솥발과 같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탁록의 북쪽에 대요(大撓), 동쪽에 창힐, 서쪽에 헌원이 자리 잡고 무력으로 승패를 겨루었으나 이기지 못했다. 처음에는 헌원이 치우천황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으므로 싸울 때 마다 불리하였다. 이에 대요에게 의지하고자 하였으나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다시 창힐에게 의지하려 하였으나 도움을 얻지 못했으니, 이들 두 나라는 모두 치우천황을 추종하는 세력이었다.
대요는 일찍이 배달로부터 육십갑자의 ‘간지(干支)의 술법’을 배웠고, 창힐은 ‘부
10p
(符)같고 그림 같은 모습을 한 글자[符圖之文]’을 전수받았다. 이때 모든 제후는 치우천황의 신하가 되어 섬기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이 또한 배달로부터 문물을 배워갔기 때문이다.
• ‘사기’에서 왜곡된 치우천황
<사마천의 ⌜사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중모리 = 평조>
천하의 제후가 모두 황제 헌원에게 와서 복종하였으나, 치우가 가장 강포하여 천하에서 능히 그를 정벌하지 못하였다. 헌원이 섭정할 때 치우는 형제가 81명으로, 짐승의 몸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였다. 머리가 구리같이 단단하고 이마는 철같이 강하였으며 모래를 먹었다. 오구장(五丘杖)과, 칼과, 가지가 있는 창과 한꺼번에 많은 화살을 쏘는 태노(太弩)를 만들어 천하에 그 위세를 떨쳤다. 치우는 옛 천자의 호칭이다.
여섯 째 - ‘신시 역대기’ 대목으로 끝 마침.
<중중모리 = 평조; 시원하게>
배달(倍達)은 환웅께서 천하를 안정시키고 정하신 나라의 이름이다. 수도는 신시(神市)요. 후에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겼다. 18세를 전하니, 역년은 1,565년이다.
‣1세는 환웅천황(桓雄天皇)이시니 <일명 거발환(居發桓)이라> 재위 94년이요 천수 120세이다. [신시개천 원년, BCE 3897~ 신시개천 94, BCE 3804]
‣2세는 거불리(居彿理) `` 재위 86년 `` 천수 102세 ``. [ `` 94, BCE 3804~ `` 180, BCE 3718]
‣3세는 우야고(右耶古) `` 재위 99년 `` 천수 135세이시다. [ `` 180, BCE 3718~ `` 279, BCE 3619]
‣4세는 모사라(慕士羅) `` 재위 107년 `` 천수 129세 ``. [ `` 279, BCE 3619~ `` 386, BCE 3512]
‣5세는 태우의(太(虞儀) `` 재위 93년 `` 천수 115세 ``. [ `` 386, BCE 3512~ ``
479, BCE 3419]
‣6세는 다의발(多儀發) `` 재위 98년 `` 천수 110세 ``. [ `` 479, BCE 3419~ `` 577, BCE 3
‣7세는 거련(居連) `` 재위 81년 `` 천수 140세 ``. [ `` 577, BCE 3321~ `` 658, BCE 3240]
‣8세는 안부련(安夫連) `` 재위 73년 `` 천수 94세 ``. [ `` 658, BCE 3240~ `` 731, BCE 3167]
‣9세는 양운(養雲) `` 재위 96년 `` 천수 139세 ``. [ `` 731, BCE 3167~ `` 827, BCE 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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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는 갈고(葛古) `` 일명 갈태천황(葛台天皇) 또는 독로한(瀆盧韓)이라. 재위
100년 `` 천수 125세 ``. [ `` 827, BCE 3071~ `` 927, BCE 2971]
‣11세는 거야발(居耶發) `` 재위 92년 `` 천수 149세 `` [ `` 927, BCE 2971~ `` 1019, BCE 2879]
‣12세는 주무(州武愼) `` 재위 105 `` 천수 123 `` [ `` 1019, BCE 2879~ `` 1124, BCE 2774]
‣13세는 사와라(斯瓦羅) `` 재위 67 `` 천수 100 `` [ `` 1124, BCE 2774~ `` 1191, BCE 2707]
‣14세는 자오지(慈烏支) `` <세칭 치우천황(蚩尤天皇)이요. 도읍을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기셨다> 재위 109 `` 천수 151 `` [ `` 1191, BCE 2707~ `` 1300, BCE
2598]
‣15세는 치액특(蚩額特) `` . 재위 89 `` 천수 118 `` [ `` 1300, BCE 2598~ ``
1389, BCE 2509]
‣16세는 축다리(祝多利) `` . 재위 56 `` 천수 99 `` [ `` 1389, BCE 2509~ `` 1445, BCE 2453]
‣17세는 혁다세(赫多世) `` . 재위 72 `` 천수 97 `` [ `` 1445, BCE 2453~ `` 1517, BCE 2381]
‣18세는 거불단(居彿檀) `` <혹은 단웅(檀雄)이라> 재위 48 `` 천수 82 `` [ ``
1517, BCE 2381~ `` 1565, BCE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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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篇
上; 단군세기 序文
下; 國祖 단군왕검의 제위 93년
‣행촌(杏村) 이암(李嵒) 編 (1297 ~ 1364)
<이는 신교의 삼신문화와 역사관에 정통>
1. 고려 충렬왕 23년 태어남
2. 10세 때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단군왕검의 역사의식을 가슴에 새기고 고려를 동방의 맑고 깨끗한 나라로 일신하리라는 맹서를 하였다.
3. 17세에 문과에 급제.
4. 환국과 배달 역사의 근본을 통하고 환단사상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가진 대학자 조부 이존비의 정신을 그대로 전수 받았다.
5. ‘단군세기’의 서문(序文)은 신교(神敎) 문화의 우주관, 신관(神觀), 인성론, 수행문화의 근원적 핵심원리를 체계화시킨 만고(萬古)의 대문장이다.
⁌ 上 단군세기 서문 ⁍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법도(根本法道)
<진양조 = 우조; 장엄하게>
나라를 위하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사학(史學)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사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비의 기개가 진작시킬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사학(史學)의 중요성
<중모리 = 우조 위엄 있게>
대개 역사학을 하는 방법이란, 잘못된 것은 비판하고[可貶者貶] 기릴 것을 찬양해서 인물을 저울질하여 평가하고, 시대의 모습을 논하여 진단하는 것이니, 만세의 표준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 민족의 삶은 참으로 유구(悠久)하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 질서와 법도를 세운 내용[創世條序] 또한 분명히 밝혀져 있어서, 나라와 역사와 함께 거론되니, 나라와 역사와 사람과 정치[國, 史, 人, 政] 이 네 가지는 모두 우선시하고 소중히 여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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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이로다.
•자아(自我) 인식의 중요성
<중모리 = 우조; 격정(激情)적으로>
아아!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어찌 존할 수 있겠는가.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겠는가. 도와 그릇을 닦는 자도 나요. 형체와 혼을 함께 키워 나가는 자도 나이다.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나를 아는데 있다[先在知我]. 그런즉 나를 알려고 할진대 무엇보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우주의 삼신(三神)과 인간의 탄생 원리
<중모리 = 우조; 웅장하게>
대저 삼신일체(삼신과 하나 됨)의 도[三神一體之道]는 무한히 크고 원융무애하며 하나 되는 정신[大圓一]에 있으니(이 삼신일체의 조화로부터 인간이 화생되어 나올 때 그 생성원리는 이러하다.) 조화신(造化神)이 내 몸에 내려 나의 본성[性]이 되고, 교화신(敎化神)이 내 몸에 내려 삼신의 영원한 생명인 나의 목숨[命]이 되며, 치화신(治化神)이 내려 나의 정기[精]가 된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이 만물 거운데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이다.
•사람의 본성(本性)과 목숨의 존재(存在) 원리
<중모리 = 평조; 강의(講義) 하는 식으로>
가> 성. 명과 신. 기의 상호 관계
대저 성[性]이란 인간의 신(神; 신명)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 근거와 바탕[神之根]이다. 신이 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이 곧 신인 것은 아니다.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참된 성품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 또한 신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속의신[吾身之神]이 기와 결합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래 성품[吾身之性. 조화신]과 (삼신의 영원한 생명인) 나의 목숨{命. 교화 신]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성(性)과 명(命)
성품[性]은 저마다 타고난(삼신의 영원한 생명) 목숨[命]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도 성품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깃든 성품이 목숨과 결합된 뒤라야, 내 몸에 신화(神化)하기 이전의 본래 성품과 기화(氣化)하기 이전의 본연의 목숨[命]의 조화 경계를 볼 수 있다.
다> 성 명 정(性命精)을 통해 천지와 역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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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간의 이러한 본성[性]에 담긴 신령스러운 지각[靈覺]의 무궁한 조화 능력은 하늘의 신[天神 = 三神]과 그 근원이 같고, (삼신의 영원한 생명 자체인) 인간의 본래 목숨[命]은 자연의 산천과 그 기가 같고, 인간의 정기[精]가 자손에게 이어져 영원히 지속함은 천지의 이상세계를 이루어 가는 과업[業]을 창생과 함께 하는 것이다.
•신교(神敎)의 수행 원리: 우주와 하나 되는 길
<중모리 = 평조; 강의하는 식으로>
이에 하나(一氣) 속에는 셋(三神)이 깃들어 있고[執一含三], 셋(세 손길로 작용하는 삼신)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會三歸一] 가 그것이다(하나[一身] 속에 셋[조화(造化). 성(性). 교화(敎化). 명(命). 치화(治化). 정(精)]이 있고 셋은 그 근본이 하나[一氣] 속의 신[三神]의 조화이다). 그러므로 (무궁한 일신의 조화에 머무는) 마음에 바르게 하여 변하지 않는 것을 ‘진아(眞我; 참을 실현하는 나)’라 하고, 신통력으로 온갖 변화를 짓는 것을 ‘일신(一神; 하나님)’이라 하니, 진아는 우주의 일신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이 참된 근원을 알고 법에 의지해 닦고 행하면 상서로운 기운이 저절로 이르고 신(三神)의 광명이 항상 비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늘과 하나 되고자 할 때[天人相與之際], 삼신의 계율을(참전계)을 굳게 지킬 것을 맹세하고[三神戒盟] 진리 공부를 시작해야만 능히 이 ‘하나 됨의 경지’ 一者[一神]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품과 목숨과 정기[性命精]가 혼연일체의 경계에 계신 분은 ‘삼신과 한 몸이신 상제 신’[三神一體上帝]이시다. 상제님은 천지 만물과 혼연히 한 몸이 되시어, 마음과 기운과 몸[心氣身]으로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으시나 영원히 존재하신다. 그리고 느낌과 호흡과 촉감[感息觸]이 혼연일체의 경지에 계신 분이 인류의 시조인 환인주조(主祖)님이시다. 환인주조님은 세계만방에 한결같이 화 베풀고 함께 즐거움을 누리시며, 하늘. 땅. 인간 삼계와 더불어, 함이 없이 저절로 조화를 이루신다. 이러하므로 가르침[敎]를 세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아를 확립해야 하고, 자신의 형체를 바꾸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무형의 정신을 뜯어고쳐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는 유일한 방도’[知我求獨之一道]인 것이다.
•구국(救國)의 길, 국통(國統)을 바로 세움
<중모리 = 계면; 통탄조로>
아, 슬프구나! 부여에 부여의 도(道)가 없어진 후에 한(漢)나라 사람이 부여에 쳐들어왔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만약 그 전에,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나라 사람은 한나라로 쫓겨 가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골인은 몽골로 쫓겨 갔을 것이다. 아, 통탄스럽도다! 과거에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 같은 간신배가 떠들어 댄 사악한 말이 은밀히 백귀(百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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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더불어 야행하여 고구려의 역신인 남생(男生)과 발기(發岐)의 역심과 상응하여 합세하였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도와 그릇이 함께 없어지고 형체와 혼이
다 사라지는 때에 어찌하여 자신만 편안코자 한단 말인가! 금일에 외인(몽골인)이 정사를 간섭함이 수록 심하여 왕위에서 물러나고 다시 오름을 저희들 멋대로 조종하되, 우리 대신들이 속수무책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에 역사가 없고 형체가 혼을 잃어버렸기 때문[國無史而形失魂之故]이로다. 위대한 신하 한 사람의 능력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온 나라 사람이 나라 구하기를 스스로 기약하고 나라를 구하는데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찾아낸 연후에 비로소 구국(救國)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앞에서 말한 바, ‘나라에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魂)이 있어야 한다[國有史而形有魂]’ 는 것이다. 신시에 나라를 연[神市開天] 이후로 국통(國統)이 있어, 나라는 이 국통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이 글을 써서 기뿐 마음으로 ⌜단군세기⌟의 서문으로 삼는다. 공민왕 12년(환기 8560, 신시개천 5260, 단기 3696, 서기 1363) 계묘 10월 3일에, 홍행촌수(紅杏村叟)가 강화도의 해운당(海運堂)에서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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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下 국조 단군왕검의 재위 93년 ⁍
‣조선(朝鮮)의 시조
가> 단군왕검의 탄강과 계천
•단군왕검의 혈통과 조선의 건국
(古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진양조 = 우조; 장엄하게>
왕검(王儉)의 아버지는 단웅이요,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이다. 신묘(환기 4828, 신시개천 1528, BCE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檀樹]에서 태어나시니, 신인(神人)의 덕이 있어 원근 사람들이 모두 경외(敬畏)하여 따랐다. 14세 되던 갑진(신시개천 1541, BCE 2357)년에, 웅씨왕이 그 신성함을 듣고 비왕(裨王0으로 천거하여 ‘대읍국(大邑國)’의 국사를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무진년 당뇨(唐堯) 때에 단국(檀國)에서 돌아와 아사달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에 이르시니 온 나라 백성이 천제의 아들로 추대하였다. 구환족을 합쳐서 하나로 통일하시고 신성한 덕화가 멀리까지 미치니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성조께서 비왕으로 24년, 제왕으로 93년 동안 재위하셨고 그 수(壽)는 130세였다.
<중모리 = 평조; 담담히 엄숙하게>
단군왕검의 재위 원년은 무진(환기 4865, 신시개천 1565, 단기 원년, BCE 2333)년이다. 신시 시대가 처음 시작될 무렵에는 사방에서 백성들이 모여들어 산골짜기 곳곳에 퍼져 살았는데, 풀로 옷을 지어 입고 맨발로 다녔다. 배달 신시 개천(開天) 1565(단기 원년, BCE 2333)년 10월 3일에, 신인 왕검께서 오가(五加)의 우두머리로서 무리 8백 명을 거느리고 단목 터에 와서 백성과 더불어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셨다. 왕검께서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인의 자애로움을 겸하시고, 능히 선대 환인. 환웅 성조의 가르침을 받들고 하늘의 뜻을 계승[繼天]하시니 그 위용이 대단하였다. 이에 구환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하여 천제의 화신으로 여기고 임금으로 추대하시니, 이분이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왕검께서는 신시배달의 법도를 되살리시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고 그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셨다.
나> 단군왕검의 8대 강령(綱領)
•참된 삶을 위한 여덟 가지 가르침
(단군왕검께서 조칙을 내려 말씀하시니 이러하다)
<중모리 = 우조; 법관의 말과 같이 또박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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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 하늘의 법도는 오직 하나요. 그 문은 둘이 아니니라. 너희들이 오직 순수한 정성으로 다져진 일심을 가져야 하느님(상제님)을 뵐 수 있느니라[朝天]
제2조: 하늘의 법도는 항상 하나이며, 사람 마음은 똑 같으니라.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라. 사람의 마음과 잘 융화하면, 이는 하늘의 법도에 일치하는 것이니 이로써 만방을 다스릴 수 있게 되리라.
제3조: 너를 낳으신 분은 부모요,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으니, 오직 너희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능히 하느님(상제님)을 경배[敬天]할 수 있느니라. 이러한 정신이 오나라 번져 나가면 충효가 되나니, 너희가 이러한 도를 몸으로 잘 익히면 하늘이 무녀저도 먼저 벗어날 수 있으리라.
제4조: 짐승도 짝이 있고 헌 신도 짝이 있는 법이니라. 너희 남녀는 잘 조화하여 원망하지 말고 질투하지 말며, 음행하지 말지어다.
제5조: 너희는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라. 그 아픔에 차이가 없으니라.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여 헐뜯지 말며, 서로 도와 해치지 말아야 집안과 나라가 번영하리라.
제6조: 너희는 소와 말을 보아라. 오히려 먹이를 나누어 먹나니, 너희는 서로 양보하여 빼앗지 말며, 함께 일하고 도적질하지 않아야 나라와 집안이 번영하리라.
제7조: 너희는 저 호랑이를 보아라. 강포(强暴)하고 신령하지 못하여 재앙을 입었니라. 너희는 사납고 성급히 행하여 성품을 해하지 말고 남을 해치지 말며, 하늘의 법을 항상 잘 준수하여 능히 만물을 살랑하여라. 너희는 위태로운 삶을 잡아주고 약한 사람을 능멸하지 말 것이며,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비참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지어다. 너희가 이러한 원칙을 어기면 영원히 신의 도움을 얻지 못하여 몸과 집안이 함께 망하리라.
제8조: 너희가 만일 서로 충돌하여 논밭에 불을 내어 곡식이 다 타서 없어지면 신과 사람이 노하게 되리라. 너희가 아무리 두텁게 싸고 덮는다 해도 그 향기는 반드시 새어 나오게 되느니라. 너희는 타고난 본성을 잘 간직하여 사특한 생각을 품지 말고, 악을 숨기지 말며,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지 말지어다.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살랑하여야 너희들의 복록이 무궁하리라. 너희 오가(五加)의 백성들은 나의 말을 잘 받들지어다.
다> 황후(皇后)와 주요(主要) 신하
<중중모리 = 우조; 법령공포와 같은 어조>
이때에 단군왕검께서 어명을 내려 팽우(彭虞)에게 토지를 개간하게 하시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고, 신지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셨다. 기성(奇省)에게 의
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고, 희(羲)에게 괘서(挂筮)를 주관하게 하시고, 우(尤)에게 병마(兵馬)를 담당하게 하셨다. 비서갑(斐西岬)에 사는 하백의 따님을 맞이하여 황후로 삼고 누에치기를 맡게 하시니,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치어 천하가 태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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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대홍수 사건과 마리산 참성단의 유래
<중모리 = 평조; 소설을 읽는 듯>
재위 50년 정사(단기 50, BCE 2284)년에 홍수가 법람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없게 되었다. 왕검께서 풍백(風伯)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을 편안히 거쳐하게 하셨다. 우수주(牛首州)에 이 내용을 기록한 비(碑)가 남아있다. 재위 51년 무오(단기 51, 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곧 그것이다. 재위 67년 가불(단기 76, BCE 2267)년 왕검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보내어 우순(虞舜)이 보낸 사공(司空)과(禹을 말함)과 도산(塗山)에서 만나 태자로 하여금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 行治水之法]’을 전하게 하셨다. 또 국경을 살펴 정하시니 유주(幽州). 영주(營州) 두 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를 두어 다스리셨다. 이때 우순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셨다.
라> 태평성대의 모습과 단군왕검의 어천(御天)
•신교(神敎)의 10월 제천 문화
<중모리 = 평조; 태평스럽게>
재위 93년 경자(단기 93, BCE 2241)년에 왕검께서 버드나무로 지은 머무실 때 흙 계단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풀이 우거졌으나 베지 않으셨고, 박달나무가 무성한 그늘 밑에서 곰과 호랑이와 노니시고 소와 양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정경을 바라보셨다.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며, 농사짓기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시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익히셨다. 백성에게 남아도는 물자가 있으면 나라 살림에 보태어 쓰게 하셨다. 상달 10월에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上月祭天], 온 백성이 진실로 밝은 모습으로 즐거워하였다. 이로부터 단군왕검의 덕화(德化)가 온 누리를 덮어 멀리 탐랑(耽浪)까지 미쳤고, 성덕(聖德)의 가르침은 점차로 위세를 얻어 널리 퍼져나갔다.
•삼한관경과 단기(댕기) 풍속의 유래
<진양조 = 우조; 경건하고 엄숙하게>
이에 앞서 왕검께서 천하의 땅을 일정한 지역으로 경계를 정해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삼한에는 모두 5가(五加) 64족(族)이 있었다. 이 해(환기 4957, 신시
개천 1657, 단기 93, BCE 2241)3월 15일에 단군왕검께서 봉정(蓬亭)에서 붕어하시니 교외 십리 되는 곳에 장사지냈다. 모든 백성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단기(檀旂)를 받들어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경배하며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다. 태자 부루가 즉위하였다.
東記 9211년 8월 7일 丙戌 19p
西紀 2012년 9월 22일
우주 지구 한국 인천시 서구 검단3동에서
‘환단고기’ 창작 판소리 1차 편집 마침.
진월 서 봉 산 賢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