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미륵불은 어쩌다가 온몸이 두차례 녹아 내렸나?
법주사에는 통일신라때 진표율사가 조성한 12미터 미륵불이 유명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미륵불은 왜군들의 방화로 전각과 함께 불타 녹아내리는 수난을 겪었다.
신라때 만들어진 청동미륵불은 임진왜란 때 한 번, 대원군 때 한 번, 총 두 번 온 몸이 녹아내리는 비극을 맞이했던 셈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들은 승군들이 거점으로 삼을 만한 전국의 대형 사찰들을 표적으로 삼아 불을 질렀다. 충청도의 중심 사찰이었던 법주사 역시 왜군의 방화로 인해 현재 남아있는 팔상전을 비롯한 모든 전각이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
미륵불의 운명 ㅡ
당시 신라 시대 진표율사가 만든 원래의 미륵불은 청동에 금을 입힌 '금동' 불상이었다. 왜군이 미륵불이 모셔진 거대한 전각에 불을 지르자, 목조 건물이 타오르면서 발생한 엄청난 고열 때문에 청동 불상 자체가 완전히 흘러내려 녹아버렸다.
왜군이 일부러 불상을 깨부수거나 약탈해 간 것이 아니라, 사찰 전체가 불타는 참화 속에서 불상도 형체를 잃고 녹아내린 것이다.
조선 인조 때의 위대한 복원 (1624년)
전쟁이 끝난 후, 법주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스님들과 백성들은 절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인조 2년(1624년),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던 벽암대사가 주도하여 법주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대규모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스님과 인부들은 임진왜란 때 불타 흘러내린 옛 신라 미륵불의 청동 잔해,구리 덩어리들을 샅샅이 수거했다.
녹아내린 구리를 다시 정제하고 모자라는 재료를 보태어, 원래 신라 불상이 있던 그 자리에 똑같은 크기 약 12미터의 '금동미륵장륙상'을 기적적으로 다시 주조해냈다.
선조들의 끈질긴 집념으로 신라의 혼을 담은 미륵불이 조선 중기에 다시 부활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방화로 미륵불은 한 번 녹아내렸으나, 우리 선조들이 그 잔해를 모아 조선 인조 때 눈물겹게 복원해 놓았다.
진짜 비극은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백성들의 손으로 어렵게 다시 살려낸 이 소중한 복원 불상을, 약 250년 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비용으로 당백전을 만들겠다며 다시 부수고 녹여버렸다.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경복궁을 다시 재건하고자 했다. 그러나 막대한 공사비용을 마련하기 당백전을 주조하였다.만드는 과정에서 청동구리 자재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 직면했다.
청동 수급을 고민하던 대원군은 당시 법주사에 있던 거대한 금동미륵장륙상에 주목했다. 그 규모가 워낙 컸기에 이를 헐어서 녹이면 당백전 주조에 필요한 청동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종 9년(1872년) 대원군의 명에 따라 불상은 강제로 수거되어 녹여지게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법주사에는 미륵불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1963년에야 시멘트로 만든 불상이 먼저 준공되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청동 미륵대불은 1990년부터 다시 제작하여 완성된 것이다, 2002년에는 그 위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 불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발행과 경복궁 중건을 위해 희생된 불상과 범종은 법주사 미륵불만이 아니었다.
구리 자재가 턱없이 부족해지자, 조정은 전국의 사찰과 공공기관, 심지어 민가에서까지 청동과 구리로 된 물건을 수거해 녹였다.
기록과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대표적인 유물들은 다음과 같다.
경복궁 중건 공사 기록인 경복궁영건일기에 따르면, 1866년 2월 광화문 서쪽 터에 방치되어 있던 거대한 대종(길이 약 2.7m, 지름 약 1.9m)을 공사 현장으로 실어와 깨부수어 녹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종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대종으로 추정되며, 녹여진 구리는 근정전 사방에 놓인 청동 향로 등을 만드는데 쓰였다.
당시 조정은 한양과 가까운 경기 지역은 물론, 충청도와 강원도 일대의 사찰에 유독 엄격한 '구리 공출'을 요구했다.
법주사가 있는 충청 지역과 인근 강원도 산간 사찰의 수많은 범종이 수거되었다. 스님들이 새벽과 저녁에 치던 수백 년 된 종들이 하루아침에 징발되어 한양의 주전소로 실려갔다.
결과적으로 이때 고려·조선 시대의 범종과 청동 불상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엽전으로 변해버렸다, 불교 미술사와 우리 문화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큰 공백을 남기게 된것이다.
사진 1번 현재의 법주사 미륵불
사진 2번 60년대 불두만 돌로 조성하고 몸체는 세멘트로 만든 미륵불의 모습이다.
/ 석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