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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창밖에서 난분분하는 눈 내리는 소리의 영향이었을까? 꼭 가수면에 취한 듯이 새벽 3시 50분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목이 말랐다. 가수면과 목마름 무슨 연관이지? 생각을 키우다 수전으로 달려 가 컵에 물을 받아 목을 축였다. 식수용 수전으로 달려가면 긴 징방형 창문으로 다가오는 전경이 참 좋왔었는데... 외부 풍경을 보고 싶다, 보고 싶지 않다를 놓고 선택이 필요없이 저절로 동공이 크게 열리게 된다. 이 자리에 항상 서면 저 멀리 강 건너 불암, 수락이 그리고 저 멀리 천마산, 백봉, 갑산, 운길산, 예봉산까지 조망이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좌측으로 북한산 삼각 편성을 이루고 있는 백운대를 중심으로 만경대와 인수봉이 멋지게 그려지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개로 조망권이 조각이나 궁금중을 키운다.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단층 4-5층 아파트들이 30층이상으로 커져서 빼앗긴 상실 때문이다. 요즈음은 북한산을 사랑하였던 아니 아니지 오르며 보았던 수천 가지 아름다움을 퍼줄처럼 끼워 맞춰가며 정확하게 아름다운 조망을 그리며 조망하게 된다. 산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 것이다.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산 파노라마가 사라지고 대신 마음 깊이 각인되어 있는 그리움의 저장고를 이용, 반추기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잘 된 일인지 모른다.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은 원래 아름다웠는데 문명과 자연의 경계라 할 수 있는 그린벨트를 야금야금 파먹어 이격거리가 연출하던 멋진 산마을 풍경이 사라졌다. 그 영향으로 설경, 노을, 단풍도,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그리고 다시 검푸른 숲으로 진화해 나가는 자연의 멋진 모습들이 서해바다 저 멀리 외딴섬 경치처럼 고립되어 다가오는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아무튼 이런 사유의 그림자를 잡아챈 것은 바로 창밖 설경이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열고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자 짠하고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리고 펼쳐지는 삼각산 편대의 아름다운 모습(배경 사진으로 깔아 놓은 사진이 바로 삼각산 멋진 운해에 휩싸인 모습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기예보를 검색하고 풍속, 풍향, 기온, 적설량 등을 체크한 후 조용히 아주 조용히 방 한 구석에 항상 놓여 있는 어덱배낭( Atec backpack) 48리터를 들어 올렸다. 스틱, 아이젠, 방한모자, 장갑, 스패츠, 목도리, 고오골, 의자와 보온방석, 두 개의 보온용 도시락통, 반찬통 2개, 행동식 몇 종류, 보온용 우모재킷, 방풍 방수 운행 재킷, 카메라와 전지 3개, 시간은 어느덧 6시 조심성에서 벗어난 시간이다. 주방으로 달려 가 밥을 담고 시금치나물을 만들고 김치 몇 조각을 통에 담아 둔 후 간장으로 재운 돈 불고기 펙을 꺼내 볶아 담았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해 온 산악 관련 악우들 카톡방을 열었다.
내가 개인적 종교행사 영향으로 붙박이였던 월 정기산행이 셋째 주 토에서 밀려 넷째 주 토로 이동하여 이용하다가 지방에서 올라와 참석하는 동기의 부탁으로 첫째 주 토요일로 바꾸었다. 물론 전체악우들의 찬성으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새해 들어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6시 넘어 참석을 약속했던 악우들이 불참석 사유와 함께 죄송이란 단어를 묶어 카톡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동절기 산행 적합한 모든 행장을 차리고 집을 나선 시간은 07시 50분 경이다. 현관문을 나서기까지 이동동선 결정에 혼란을 겪었다. 지하철을 이용할까? 그렇다면 우이동 옛 만화상회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단 하나 흠결은 꼬박 서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이 경기도 한 곳까지 연장되는 바람에 늘 편안하게 다니던 지하철 이용이 이젠 글러버렸다. 짐도 무겁고... 그리고 근력도 나름 노력하며 유지시키고 있지만 분명 제한적이다. 육신이 편안한 이동 방법은 시간은 배로 걸리지만 버스가 있다. 지하철로 3 정거장 이용 한 후 바로 올라서면 우이동 도선사 입구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그런데 강북동북부 안쪽 곳곳을 경유하여 돌아가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후자를 선택한 후 버스에 올랐다. 길고 긴 버스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간 소요라면 강원도 오지 산도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지리산에 오르는 심정으로 지루하게 밖 풍경을 보며 인내심으로 견디며 도착하였다. 반갑게 조우, 그리고 여장을 해체하여 보온용 우모 등은 전부 어택에 몰아넣고 방풍, 방수 중심의 운행복장으로 변신하였다. 걷기 시작하면 발생하는 열기로 생기는 결로 현상을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였다. 속옷이 젖으면 춥다. 그러나 외부와 적당하게 소통하도록 길을 열어 주는 복장을 하면 저체온증을 유발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 선택하는 방법이다. 그러다 잠시 쉬어갈 때는 다시 보온용 우모 쟈켓을 입고 있다가 다시 출발하면 벗어 어택에 넣어두면 된다. 속건성 속옷을 입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내부 열기로 발생하는 땀, 외부 눈과 비의 영향으로 옷이 젖게 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야외 생활 특히 극한의 날씨인 동계는 자신의 체온 유지와 싸움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큰길을 포기하고 소귀천 따라 걸어가는 길을 선택하여 호젓하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일단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고 스틱만을 이용하여 눈 길을 열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소귀천을 한문으로 적으면 牛耳川이 된다. 소위 귀를 닮은 모습이 바로 마을 이름을 만들었다. 우이동은 사실 큰 절 아래에 있는 마을인 사하촌(寺下村)이었다. 도선사 아랫마을인 것이다. 소귀를 닮은 형상 우이암이 도봉산 서쪽 자락에 있고 삼각산과 도봉산 경계를 이루며 북쪽으로 넘어가는 재의 이름도 우이령이라 부른다. 큰 산 하면 먼저 떠 오르는 것이 풍광 좋은 계곡과 그곳을 흐르는 물이다. 도선산 뒤 용암계곡과 선운각을 중심으로 좌측 계곡에서 흐르는 소귀천 물이 합수되어 우이천을 이루고 우이령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그린파크 앞에서 합수되어 길고 긴 우이 천을 만들어 쌍문동 번동을 지나 중랑천에 합수되어 한강으로 흘러 서해바다로 나간다. 여러 물줄기가 흐르다 보니 우이천 계곡 풍광은 뛰어나 계곡마다 무슨무슨 장(莊)이나 무슨 각(閣)이란 이름으로 잔치를 베푸는 집을 만들어 도시인들을 끌어 성업 중인 곳이 많았던 곳이 바로 우이동 계곡이었다. 백운대 동쪽 산장 앞 만경대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은 인수봉 북사면 육모정으로 흘러 북쪽 장흥방향으로 흐르는 수계를 만들어 놓았다. 계곡이 아름답고 물이 풍부하다 보니 용과 관련된 지명도 소귀천 안에 많이 있다. 용개울이 그렇고 용담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은 신작로가 크게 열려 도선사 광장까지 차들이 오르내리지만 옛적에는 전부 오솔길이었다. 우이동에 유명한 솔밭을 조금 지나면 큰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우이령을 바라보고 서서 느티나무 서쪽으로 들어서면 천도교 봉황각까지 이어지는 샛길이 나온다. 바로 이 길이 옛적 백운대로 가는 오솔길이었다. 지금도 이 길은 북한산 둘레길 일부구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봉황각 안쪽 오솔길을 걸어 나가면 현재 선운각 있는 산기슭 옆으로 오솔길이 도선사까지 이어져 나갔다. 현재 도선사 광장에서 바로 좌측으로 치고 오르면 그 유명한 깔딱 고개로 오를 수 있고 숨을 헐떡이며 마루에 서면 백운대와 인수봉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계곡을 따라 한 참을 올라가야 백운대 산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이 폐쇄되고 하루재를 열어 인수봉 아래로 접근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현재 백운대로, 또는 인수봉을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된 것이다. 또 동쪽 방향에서 백운대로 가는 길은 도선사 뒷길 용암문으로 가는 길에서 우측 계곡을 따라 오르다 급경사지를 넘어서면 바로 백운 산장으로 접근할 수 있는 아주 오래된 길이 있었다. 깔딱 고개 보다 더 오래된 산 길이 바로 이 길이었다. 이러한 옛길을 떠 올리며 걸어서 북한국립공원 표시를 알리는 표지석 까지 왔다. 입석에 후배가 불러 나를 세웠다. 요즈음 이런 것만 나오면 나를 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형님 언제 다시 오시겠어요. 추억을 남기셔야지요" 하곤 찍어 주는 것이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말이 거슬리지만 언젠가는 그런날이 온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요즈음은 새삼 모든 것이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평상심을 놓치는 것은 아니다.
선운각을 지나 본격적으로 소귀천으로 접어들었다. 아름다운 설경이 이어진다. 소귀천에서 대동문을 오르는 길은 그나마 원시의 형태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물이 맑고 짧지만 협곡을 오를 수 있어 힘은 들지만 산 맛이 나는 코스다.
오를수록 적설은 깊어지고 눈꽃과 상고대가 설경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걸음도 설경에 도취되어 흥이 달라붙었는지 신바람이 들었다. 최선에 서서 거침없이 올랐다. 뒤 사람과 간격을 조절하려 하여도 금세 다시 앞서 가게 된다. 후배가 멀리 달아나는 모습을 뒤에서 찍어 나중에 보낸 준 사진이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모자 위로 떨어져 부서져 내리는 눈가루가 참 정겹게 느껴졌다. 우리보다 먼저 오른 사람들이 럿셀을 해 준 덕분에 산 길 컨디션은 최적이었다. 멀지 감치 떨어져 혼자 걸으니 심신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뒤에 모습들이 그리워지면 돌아서서 관찰하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늘 커디션이 안 좋은지 많이 뒤처져 이런 소통의 공백과 함께 정적을 얻게 된 것이다.
너무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여러 명이 적당하게 쉬기 좋은 터가 있어 눈을 밟아주며 기다렸지만 그래도 오지 않아 요즈음 리더역할을 하는 후배 얼굴을 상상하며 눈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바람은 없었다. 고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적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지치게 된다. 지칠 무렵 저 아래에서 일행의 그림자가 얼핏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눈 덮인 산길은 외길이 되어버린다. 다져진 길로만 걸음을 옮기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가뜩이나 소귀천 길은 오를수록 폭이 좁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외길을 걷다 보면 올라오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불문율이다. 이런 행위는 산에서 갖는 기본적 소양이다. 하산길에 접어든 사람은 힘이 적게 들지만 오르는 사람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기다리면서 툭 던지는 수고 많으십니다. 좋은 산행을 하고 계십니다 하는 덕담은 오르는 자에게 많은 위로가 되면서 가급적 미안한 마음에 걸음 보폭을 넓게 빠르게 응답하게 되어 길 소통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행의 순간을 맞으며 오르고 내렸다. 그런데 툭툭치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참 생소하게 느껴졌고 거부감이 들기도 하였다. 너무 심하게 구는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한 팀이 있어 걸음을 멈추고 이 팀 리더가 누구냐고 물어 찾았다. 왜 그러느냐 하고 다가와 심하게 부딪쳐가며 상대에게 피해를 주며 등산을 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아무리 산이지만 산에서 할 행동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고 설명하며 무례한 걸음에 대하여 질책하였더니 수긍하며 죄송하다면서 인사를 하길래 화를 누그러트리고 - 겨울철 등반이라 옷을 많이 껴입고 보온장치로 온몸을 감싸 둔해서 그럴 수도 있으나 그래도 빙판 길에서 잘못하면 상대가 넘어져 사고가 날 확률이 있으니 하산 시까지 배려하시며 등산을 즐기시라 권하고 좋은 산행으로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돌아서서 가던 길로 다시 나섰다. 급경사를 치고 오르자 완만한 경사 길이 나왔다. 중간 목적지인 대동문에 들어선 것이다.
북한산 북한산성에는 12개의 성문이 있다. 주문으로는 대북문, 대동문, 대남문, 대서문 있고 동쪽 방향으로 위문, 용암문이 북문과 대동문 사이에 있고 대동문과 대남문 사이에는 보국문과 대성문이 있으며 대남문과 대서문 사이에는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이 있다. 북한산성 성곽을 일주하려면은 총 거리 약 15km이며 소요시간은 약 9시간 정도 걸린다. 특히 성벽을 쌓지 않고 자연 암벽을 그대로 놓아둔 곳이 있는데 북문 부터 만경대구간이다. 다만 만경대와 백운대 접경하는 곳에 위문이라 하여 암문성격의 문만 있을 뿐이다. 당일치기를 하려면 건각과 체력이 요구되며 물과 행동식과 도시락은 꼭 준비해야 하고 암벽장비도 있어야 릿지를 타고 넘을 수 있다. 어느 해인가 원효봉에 막영구를 치고 노을을 본 후 별이 쏟아지고 은하수가 길게 늘어선 하늘경치를 보며 새벽 일출과 함께 원효봉에서 만경대까지 릿지를 넘은 적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2시경 출발하여 일요일 오후 2시경 하산한 것이다.
현재 대동문은 복원 공사중이다. 철구조물 사이로 빠져나와 대남문 방향으로 가기 위하여 길을 잡았다. 능선에 올라서자 찬바람이 느껴졌다. 설화와 상고대가 현재 내가 겨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목부근에 있는 지퍼를 더 끌어올려주고 느슨하게 늘어진 장갑을 잡아당겨 소매 안으로 끌어다 놓았다. 다시 스틱 단 수를 점검하여 능선 길에 알맞게 교정해 주고 성곽 옆으로 달라붙었다. 성곽은 돌담 길이나 마찬가지다. 담이라는 것은 스스로 보호권역을 설정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어서 그런 걸까? 성곽이나 돌담을 끼고 걸으면 무엇인가 모르게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보호장치라는 개념이 만들어 주는 안도감과 잘 정돈된 모습에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평화스러움 때문인 것 같다. 오래도록 아끼던 후배 한 명이 악착같이 따라붙어 주면서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뒤를 밟았다. 나머지는 많이 뒤처졌다. 설경은 아무래도 겨울 산의 백미다. 녹으면 물이 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백색자태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지저분하게 느껴지지만 설경으로 존재할 때 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모든 것을 백색의 순수함과 동색의 빛으로 일체감을 만들어 주어 평등과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꿈의 기회를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천천히 걸으며 산 아래마을과 북한산성 내 암봉의 설경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상고대와 설화를 찍기 위하여 장갑을 벗어 호주머니에 넣고 피사체를 찾기 시작하였다. 우선 후배 사진부터 챙기기로 하고...
칼바위 즈음 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리더를 보는 후배였다. 형님 죄송합니다. 너무 늦어서~~ 한 시간 가량 늦는 것 같습니다. - 아냐 괜찮아요. 눈구경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고 답을해 주고 시간을 보니 2시가 훌쩍 넘었다. 형님 배고픈데 칼바위 쪽으로 빠져 계곡을 타고 청수장 방향으로 하산을 잡지요. 칼바위 안부에서 점심을 챙기시고 내려가는 것으로... 그래 알았다. 성곽에서 칼바위 능선으로 빠져 성곽 아래 안부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게- 하였더니 부지런히 따라붙겠습니다. 한다. 험지로 유명한 칼바위로 내려섰다. 상당히 미끄럽고 적설이 많고 잔설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여 신설 아래는 빙판이었다. 후배도 위에 서서 내가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형님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하고 경계의 날을 세웠다.순간적으로 판단을 하고 100여 미터 내려간 지점에서 다시 성곽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통화 - 칼바위 오늘 상태로는 위험하다. 아이젠 착용한다 하여도 정상적으로 성문을 이용하여 내려간 후 안부에 앉아 늦은 점심을 챙긴 후 하산하는 것으로 변경하자- 리더를 맞고 있는 후배가 그렇게 하십시오 한다, 성문으로 올라와 쉼터 위치를 정한 곳으로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길은 빙판으로 이어져 나갔다. 할 수 없이 안전을 위하여 아이젠을 찾아 양발에 착용 후 스틱단을 다시 교정하고 성 문을 밖으로 빠져나왔다. 서둘러 쉼터를 찾아 눈을 치우고 자리를 잡은 후 기다리자 다 합류하게 되었다. 오후 3시경이었다. 정지된 동작으로 오랜 시간 머물면 체온을 많이 빼앗긴다. 한 시간 동안 점심식사를 끝낸 후 길고 긴 계곡 길을 따라 하산하였다. 거의 다 왔을 무렵 장의자들이 많이 놓여 있어 쉬어 가기로 하고 아이젠을 벗어 물기를 닦은 후 주머니에 넣어 배낭에 추려 두었다. 그리고 행장을 다시 정리하여 보온성이 강한 우모 재킷으로 갈아입었다. 한참 후에 다들 내려왔다.
하산주를 챙기기 위하여 리더가 감춰 놓았던 유명 맛집으로 안내되어 우선 굴 무침과 코다리 찜을 시켜 하산주를 시작하였다. 막걸리 한 잔을 들으킨 후 속이 이상하게 엉켜왔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추위 속에서 먹은 점심이 급체를 일으킨 것이다. 술잔을 물리고 옆 테이블로 가 혼자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끝까지 부관처럼 동행 한 후배가 다가와 묻는다. 형님 왜? 아무래도 급체한 것 같아 말이 떨어지자마자 리더는 총알같이 달려 가 약을 사서 들고 와 물과 함께 먹으라 권한다. 그리고 부관 같은 후배는 전문과 답게 지압으로 체를 내려 주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치료해 주었다. 나로 인하여 서둘러 자리를 파한 후 각자 집으로 귀가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무지 미안함으로 투덜거리게 되었다. -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하산주 나누며 지내다 와라. 먼저 간다 - 하였더니 아니란다. 다들 눈 길이 피곤하였다고 하며 해산하는 것으로 하였다. 서둘러 전철을 이용하여 귀가 후 등산장비를 정비하고 샤워 후 야생차를 끓여 여러 차례 마신 후 자리에 누웠다.
가만히 오늘 일정을 다시 짚으며 사려의 늪으로 빠져들자 후배들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하산주 자리에서 오늘 같은 형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라 당혹스럽습니다. 하며 걱정 하는 말들이 난무했었다. 하긴 그 수많은 세월을 경험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 하산주를 마시면 많이 먹었을 덴데... 음주가 멈춰진 것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안부를 챙기는 후배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이를 알게 된 동기들은 에스키모 같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 여러모로 후배들에게 사랑을 받는 네가 부럽다 하며 안부 글을 올려 왔다. 이래서 선, 후의 악우들의 우정은 산과 같아 믿음이 간다. 오늘 식사를 이상 없이 챙길 수 있었던 것은 다 후배들 덕분이었다.
우리끼리 험지에서 수 많은 일을 겪지 않었던가! 다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악우들의 공통적인 선함 때문이었다. 외줄 자일에 서로 몸을 묶고 정상을 향해 걸었던 자일 파트너는 너에 존재로서 나를 확보해 주는 일이었다. 확보는 되어 있는가? 하며 혼자 묻고 네라고 답하며 주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참에 에델바이스 노래를 선곡하여 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