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뜻의 쓰임새를 돌아봄
소리에는 뜻이 있었다
옛 겨레말을 살펴볼 때마다 소리에는 본래 뜻이 있었음을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허나 이 짧은 꼭지에서 그 용례를 넉넉히 늘어놓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말소리뜻풀이’를 아직 사전으로 내놓을 수도 없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 컸습니다.
더구나 이 글을 읽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음을 느낄 때면,
‘이를 어쩌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하고많은
우리말을 어소에 따라 정리한다는 것이 지나치다 여기는 분들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정리를 하는 것이 옳다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소사전쯤 되는 전도라면 우리말을 이렇게 정리하겠다 하는 초안을 잡아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런 초안은 중사전 규모 이상에서는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초안은 가나다 순서대로 말을 정리하지 않고 말뜻이 생겨난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저런 용례를 넣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정리의 원칙과 순서에 대해 간략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소리가 담고 있는 으뜸가는 뜻을 그대로 간직한 우리말을 앞세웠습니다. 물론
으뜸가는 뜻은 그 말들의 최대공약수이기도 합니다. 즉 같은 소리를 가진 말들이 가진 시원적인 공통점을
중심으로 으뜸가는 뜻을 설정했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이 말들의 뜻이 일차 확대되거나 바뀐 경우를 정리했습니다. 물론
버금가는 뜻은 으뜸가는 뜻과 개념적으로 매우 가까운 것이며, 이 두 뜻 사이에는 단순한 적용이 될 수
있는 논리적 함수관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들의 뜻이 더욱 확대되거나 바뀐 경우를 정리했습니다. 딸린
뜻은 여러 단계들로 나눌 수 있겠지만, 모두 2차 확대의
영역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으뜸 뜻과 버금 뜻 및 딸림 뜻이 함께 쓰일 경우에는 보다 으뜸 뜻이나 버금 뜻의 테두리에 넣었습니다. 다만 명사니 형용사니 하는 품사 구분은 지면 관계로 일단 뺐으며, 각
어휘의 자세한 뜻도 줄였음을 밝혀둡니다.
‘고’는
높은 신과 관련된 말
이번에는 ‘고’라는 어소를
어두로 하는 말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다른 어소들도 마찬가지로 정리될 수 있지만, 고의 경우 우리말 용례가 많지 않으므로, 지면상 이 어소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소는 고몽고어와 고만주어 및 일본어에서도 드러나듯, ‘높은
신과 관련된 말’입니다. 그래서 고는 1) 높은 신을 가리키고, 2) 높은 신의 성격인 사랑을 가리키며, 3) 높은 신의 지위인 높음을 가리키고, 4) 높은 신을 모시는
사람을 가리키며, 5) 높은 신의 유일성과 근본적 성격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이 말의 으뜸 뜻입니다.
다음으로 이 소리가 일차 확대되거나 바뀔 경우, 1) 높은 신을 모시는
사람이 주로 여성이어서 여성을 가리키며, 2) 높은 신의 상징이 주로 둥근 것이어서 둥근 것을 가리키고, 3) 사람이 풀 수 없는 것을 가리키며, 4) 높은 신의 사랑과
맞서는 신의 징벌을 가리키고, 5) 높은 신을 상징하는 뿌리를 가리키며, 6) 신에 대한 순종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이 말의 버금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소리가 2차 확대되거나 바뀔 경우, 1)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인 아이를 가리키며, 2) 신처럼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가리키고, 그 밖에도 이런저런 뜻을 가집니다.
‘고’의
으뜸 뜻을 가진 말
ᆞ고갱이 – 사물의 핵심, 1차
전환되어 풀이나 나무의 줄기 가운데 알심을 가리킴
ᆞ고고리
– 높은 곳에 계시는 으뜸 신, 1차 전환되어 사물의 꼭지를
가리킴, 음운변화되어 고그리
ᆞ고두저고리
– 여자가 높은 신께 제사 지낼 때 입는 저고리
ᆞ고라니 – 높은 신 특히 태양신(라)을
상징하는 부여계의 신성화된 동물로 사슴을 가리키며, 부루(밝은
이)라고도 함
ᆞ고마 – 지모신 또는 신을 모시는 여성, 1차 전황되어 무당이나 부인을 가리킴, 2차 전환되어 첩이나 어린 아이, 꼬마 등으로 쓰임
ᆞ고마하다 – 신을 모시다, 1차 전환되어 공경하고 높이다
ᆞ고맙다
– 고마(신)와
같다. 1차 전환되어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이 따뜻하고 즐겁다
ᆞ고미 – 신의 몸(미), 1차
전환되어 건축물의 꼭지가가 되는 우물마루 부분. 고물이라고도 함
ᆞ고수레
– 신을 존중(시)하여
먼저 음식을 올리는 옛 시대의 예법. 고시레
ᆞ곧다 – 신과 같이 바르다. 1차 전환되어 정직하다, 똑바르다
ᆞ골
– 신이 있는 곳. 원래는 고리. 1차 전환되어 사람의 머리나 깊은 골짜기. 2차 전환되어 사람의
머리가 성질을 내다
ᆞ곰
– 여성 신. 1차 전환되어 여성 신을 상징하는 부여계의
동물. 고마워 원래 뿌리가 같은 말
ᆞ괴다 – 신을 모시다(따르다) 즉
(자기 안에서) 신을 살리다(이). 1차 전환되어 사랑하다. 높이
받들다. 2차 전환되어 밑을 받쳐 안정하게 하다. 고이다의
준말
ᆞ굄 – 고이다의 명사형
ᆞ꼬꼬마 – 신을 상징하며 신단에 꽂는 꽃. 1차 전환되어 제사장이나 벼슬아치의
머리에 꽂는 꽃이나 수술. 즉 벼슬아치의 벙거지에 꽂는 꽃을 상징하는 붉은 깃털
ᆞ꼬드기다
– 신이 명령하다. 1차 전환되어 남의 마음을 부추기어 움직이게
하다
ᆞ꼭두 – 신이 내리는 곳. 1차 전환되어 뒤통수의 한복판인 가마 부분. 꼭뒤와 같은 말
‘고’의 버금 뜻을 가진 말
ᆞ고금 – 학질(신의 벌로부터)
ᆞ고기
– 동물의 살 또는 동물(신께 바치는 제물로부터)
ᆞ고깔
– 머리에 쓰는 뾰족한 모자(높음, 제사용구로부터(
ᆞ고누
– 땅 등에 말밭을 그려 서로 상대방의 말을 따먹음으로써 승부를 겨루는 놀이(신의 누-영역으로부터)
ᆞ고다리 – 높은 가지(높음으로부터). 2차
전환되어 지게의 높은 가지
ᆞ고달이 – 높이 달아놓는 것
ᆞ고루 – 고르게(신의 사랑으로부터)
ᆞ고리
– 무엇에 끼우기 위해 둥글게 만든 물건(신의 상징인 빛으로부터)
ᆞ고리눈
– 무당의 눈. 2차 전환되어 눈동자의 둘레에 흰 테가 둘린
눈
ᆞ고비 – 중요한 결정의 시기나 기회(신이 결정한 기회)
ᆞ고삿
– 지붕을 이을 때 쓰는 새끼(삿) – 높음으로부터
ᆞ고시랑거리다
– 잔소리를 되씹어하다(무당의 공수로부터)
ᆞ고작
– 상투(높음으로부터)
ᆞ고팽이
– 줄의 한 돌림(둥금으로부터)
ᆞ곱
– 기름(제사에서 불을 키는 것으로부터)
ᆞ곱돌
– 납돌(신을 부르는데 쓰이는 돌. 금단수련법에서 쓰이는 재료)
이런 풀이가 아직은 낯설 수도 있으나, 1세기 전의 교과서나 그 이전의
우리말에서 이런 쓰임새를 넉넉하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그런 용례를 찾아내면서 우리들의 질곡된
삶이 우리들의 미래를 얼마나 가려두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도 있겠습니다.
- 모울도뷔
제7호((2001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