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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클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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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준) 스크랩 B급 사회 자랑하는 <초등 5학년 사회교과서 >
이재운1045 추천 0 조회 136 15.09.01 23: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간 사회는 능력 있는 사람이 그 능력에 맞는 자리에 앉아 있을 때 가장 효율적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남을 밟고 제치고 쓰러뜨려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탐하는 게 기본 속성인가 보다.

특히 글쓰는 사람은 늘 주의해야 한다.


나는 20대에 <저요저요>란 24권짜리 아동물 전집(당시 중앙교육연구원, 지금의 빨간펜)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아주 큰 경험을 했다. 글에 잉어 등 어류 설명이 나오는 부분에서 잉어 사진을 한 점 라이센스(남의 사진을 출판물에 사용할 권리를 사는 행위)해서 올렸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서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이 잉어는 한국 토종 잉어가 아니라 일본 잉어입니다. 고쳐주세요." 하는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그제야 한국 잉어와 일본 잉어 자료를 구해 비교해보니 확실한 차이가 났다. 물론 글에서는 한국 잉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이야기를 했으니 당연히 우리 잉어 사진이 올라갔어야 했다. 같은 잉어니 그냥 두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당시 사장이던 김형윤 씨(뿌리깊은나무 편집장 출신)는 "절대로 안된다, 사실 아닌 건 손해가 나더라도 무조건 고치자."고 지시했다. 어쩔 수없이 출고를 정지하고 다 고쳐야 했다. 책임자인 나는 회사에 큰 손실을 끼쳤지만 김형윤 사장은 내게 문책을 하지 않았다. 배우는 과정이라고 보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냥 두어도 괜찮을 것같지만, 사실이냐 아니냐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 잉어는 내가 서술한 글의 내용과 딱 맞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한국산 토종 잉어 사진을 올렸어야 하는데, 나한테는 당시 그 차이를 구분할 능력이 없었고, 사진판권을 파는 회사에서도 그런 구분을 하지 않은 채 <잉어>라고만 표기해서 필림을 팔았다. 이 사건은, 대학에서 김동리 선생으로부터 토씨 하나 잘못 써도 글 전체가 망가진다는 경고를 받으며 글쓰기를 배운 내가 한 번 더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그뒤 까다로울만큼 사실 관계를 따지는 버릇이 생겨 종종 주변 사람들을 지나치게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사진을 보자.


- 초등학교 2학기 사회 국정교과서 110쪽 삽화

<한겨레신문 / 고려시대에 웬 빨간 김치? ... 오류 투성이 국정교과서>


신문 기사에는 해설 오류, 문법 오류, 문장 오류 등을 지적했는데(오류투성이란 제목은 너무 과하다), 일단 이 사진만 보자.


기자는 이 밥상에 올려진 붉은 반찬을 문제 삼았다. 이걸 붉은 김치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치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독자들이 김치로 오해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려시대에는 고추가 없어 백김치를 담가 먹었다. 그것도 문헌에는 1241년경(이규보 시에 처음 등장하여 그의 사망연도를 기준삼음. 책의 저술 연대 미상)에 처음 나오니 그 이전 밥상에 오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또 고추김치는 1766년(증보산림경제에 처음 등장, 저자인 이규보 사망연도인 1766년을 기준 삼음, 책의 저술 연대 미상)에 처음 보인다.

따라서 이 그림에는 소금물에 배추를 담근 沈菜(훈몽자회 표기 딤채)가 나와야 한다.


또 밥그릇을 포함한 식기가 모두 청자로 묘사되어 있는데, 고려청자는 민간에 이처럼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고난도 제작 기술(가마온도 1400도 이상)이 필요한 백자는 왕실 제기 등으로 쓰이고(용인에서 9세기에 처음 생산됨), 청자(가마온도 1300도 정도)는 세자부터 이용이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절에서 쓰는 불구로 이용되고, 사대부 집안에서 쓰일 뿐 민간에는 보급되지 못했다. 민간에서는 800도 정도로 쉽고 값싸게 구울 수 있는 질그릇이 많이 이용되었다.


이것 말고도 이 삽화에는 분명하지 않은 사실이 두 가지 더 있다. 

여성과 남성의 옷깃을 보자. 왼쪽의 남녀를 보면 다같은 우임(오른쪽 옷을 안으로 접어 넣는)이고, 오른쪽 여성 중 안쪽 사람은 좌임이다. 조선시대에는 좌임이 대세인데, 고려시대는 우임이 대세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정의도 올바르진 않다. 다만 좌임 우임이 뒤섞인 것으로 보아 어떤 원칙을 갖고 그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좌임을 한 고구려고분 벽화 속 주인공. 

활쏘기에 편리해서 좌임을 했다고 한다.


또 여성 3명이 등장하는데, 머리를 올린 사람이 두 명, 땋은 사람이 한 명이다. 땋은 사람을 딸로 보면 나머지 두 여성은 남성의 어머니와 아내여야 한다.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또 밥상에 개다리가 쓰였는데, 개다리는 주로 소반(작은 밥상)에 쓰이는데 이렇게 큰 밥상에도 개다리가 쓰였는지 더 검토해야 봐야겠다.


언제나 사실을 기초로 하자는 차원에서 적었다.

나는 역사소설을 주로 쓰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줄이기 위해 아래의 사전을 편찬했다. 이중 <어원>을 특히 정성스레 만들었다.


 

아래 두 책은 후배인 민병덕 선생(현재 용인 용동중학교 교감)을 등떠밀어 저술케 한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 <옛날에도 변호사가 있었나요>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세세하게 다루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관리들은 언제 쉬었느냐, 이런 주제로 책을 쓰라고 권해서 민 선생이 고군분투하여 만든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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