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8일
본문 : 왕하 11:1-3, 대하 22:10-12
제목 : ③아달랴의 유다 왕족 진멸 사건
중심내용 : 아달랴는 유다 왕 여호람의 아내다. 후에 여호람이 병사(病死)하고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에 올랐으나 북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예후에 의해 살해당했다. 아달랴는 복수심과 정권욕에 사로잡혀 황태후의 자격으로 죽은 아하시야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유다의 왕손들을 일거에 진멸했다. 이 과정에서 여호람의 딸이며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인 요아스를 숨기고 성전에서 6년간을 키웠다.
명제 : 모사(謀事)는 재인이나 성사는 재천/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잠 16:9)
설교목적 : 아달랴는 당시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그의 이방 여인 왕비인 이세벨(시돈 왕 엣바알의 딸) 사이에 정략결혼으로 낳은 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남 유다 왕 여호사밧은 분열 이스라엘의 통합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아합의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을 정략적으로 결혼시켜 사돈 관계를 맺었다. 문제는 이교도인 이세벨과 아달랴에 의해 도입된 우상숭배가 만연돼 국가적 차원에서 우상을 섬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군대장과 예후를 기름 부어 아합과 이세벨에 속한 자들을 진멸할 것을 명하신다. 이 사건으로 북이스라엘의 요람 왕(아합의 아들)과 남 유다의 아하시야(여호람의 아들)가 살해된다. 이에 아달랴는 복수심과 정권욕에 사로잡혀 죽은 아하시야의 통치권을 접수하고 후환을 없애고자 유다의 왕세자들을 일거에 진멸한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여호람의 딸이며 아하시야의 이복(?) 누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서 아달랴의 공포 통치 6년 동안을 몰래 양육했다. 이는 단순한 세속사가 아니다. 다윗의 가문에 ‘등불’(왕권)이 항상 보전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왕상 11:36, 다윗언약/삼하 7:11-16) 성취의 일환이며 본질상 여자의 후손언약(창 3:15) 성취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잠 16:9).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섭리 의존적인 신앙관과 더불어 언약적 구속사관에 입각한 역사관 정립이 필요한 이유다.
Ⅰ. 도입 :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의 세속사를 방편 삼아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잠 16:9)이란 명제에 동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이유다. 아달랴는 북이스라엘 왕 아합(이세벨)의 딸로서 유다 왕 여호람과는 정략적으로 결혼했다. 여호람의 병사 후 왕위에 오른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살해되자 아달랴는 정권을 장악하고 후환이 두려워 유다의 왕손들을 무자비하게 진멸했다. 이 과정에서 여호람의 딸 여호세바가 조카 요아스를 숨겨 성전에서 양육함으로 메시아 계보인 다윗의 왕권을 보전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세속사가 아니다. 중도 파기나 무효가 될 수 없는 신적 언약(왕상 11:36, 삼하 7:11-16, 창 3:15)과 연관된 구속사다. 사단은 아달랴를 사주해 여자의 후손(메시아의 탄생)의 계보를 차단하려 했으나 하나님의 역사는 사단의 역사를 능가하셨다(롬 11:33).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누가 막겠는가.
Ⅱ. 전개 : 다윗 가문의 등불(메시아 왕권)을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1-3절)
1. 북 이스라엘 아합 왕과 남 유다 여호사밧 왕과의 정략적 사돈 관계
당시 남북으로 분열된 이스라엘의 역사적 정황을 통해 본 사건이 갖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아달랴는 당시 남 유다의 왕인 여호람의 아내이며 동시에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 곧 이세벨의 딸이기도 하다(왕하 8:16-18, 25-26절). 이세벨은 당시 가나안 북쪽에 위치한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로서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인 오므리의 아들 아합과 상호 화친을 위해 정략적인 결혼을 했다(왕상 16:19-33). 아합 왕은 이런 식으로 이방 여인과 혼인 관계를 맺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들여와 산당을 짓고 공개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국가적 차원의 우상숭배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어느 왕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키는 데 앞장을 섰다. 당시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이방 나라들뿐만 아니라 동족 간에도 결혼 관계를 통해 정략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를 시도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화친을 맺는 가운데 아합의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을 정략적으로 혼인을 시켜 사돈 관계를 맺었다. 이세벨의 이교도적 우상숭배 신앙은 그녀의 딸 아달랴에게 전수돼 유다 왕 여호람 또한 아합의 집과 방불한 우상숭배의 길을 걸었다. 성경은 여호람의 우상숭배의 동기를 아달랴가 아합의 딸인 사실에서 찾는다(왕하 8:18).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2. 예후를 통해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을 심팜함(왕하 9:1-10)
여호람과 아달랴 사이에 여러 아들과 딸을 두게 된다. 후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을 충동해 여호람의 죄를 물어서 남 유다를 공격하게 하신다. 이 과정에서 여호람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여호아하스)만 피신을 하게 된다(대하 21:16-17). 얼마 후 하나님의 징계로 여호람이 병사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아하시야가 여호람의 뒤를 이어 유다 왕위에 오른다(대하 21:18-20, 22:1). 아하시야 또한 모친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악을 행함으로 아합의 집의 길로 행했다고 역대기 기자는 고발한다(대하 22:2-3).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다가온다. 하나님께서는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을 묵과하지 않으신다. 엘리야를 통해 저들의 비참한 죽음의 종말을 예고해 주신다(왕상 21:17-26). 하나님께서는 이 일의 성취를 위해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내정해 주시는 가운데, 아합과 이세벨에 속한 자들을 철저히 진멸할 것을 명하신다(왕하 9:1-10). 예후를 아합의 집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예후는 아합과 이세벨 및 저들에 속한 혈육들을 철저히 살육한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바알 선지자, 숭배자, 제사장들 또한 철저히 진멸시킨다. 이 과정에서 유다 왕 아하시야와 아합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요람이 예후에 의해 함께 살해된다(왕하 9:21-2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합의 집을 척결한 예후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4대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할 것을 약속해 주신다(왕하 10:30).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전 12:14).
3. 유다의 왕세자들을 진멸하는 아달랴의 살해 사건(왕하 11:1)에 담긴 본의
아달랴는 유다의 왕이며 친아들인 아하시야와 친정 아합 왕가의 혈육들이 북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예후에 의해 몰살을 당하게 되자, 황태후의 자격으로 즉각 죽은 아하시야의 통치권을 접수하고 보복적 차원에서 다윗 왕가의 왕세자들을 일거에 진멸한다. 인륜을 저버린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처사이다. 이는 왕인 아들의 죽음으로 자신의 위상이 위협을 받을 것을 예감하고 정권탈취를 통해 일신상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고도의 정치적인 책략의 일환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 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역행위다. 남 유다에게 허락된 다윗의 왕권은 멀리 여자의 후손언약(창 3:15)에 근거한 메시아의 계보이며, 다양한 신적 언약(왕상 11:36, 삼하 7:11-16)에 의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달랴의 정권탈취와 유지를 위한 왕세자들 숙청사건을 단순히 정치적인 권력욕 차원에서만 해석한다면 보다 중요한 핵심내용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사건의 배후에서 사단이 아달랴의 복수심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다윗 왕가를 멸절시킴으로 다윗언약을 파기시키려는 고도의 책략이 숨겨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아달랴를 충동해 다윗의 혈통을 단절시킴으로 다윗언약에 약속된 다윗의 참 아들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삼하 7:12-14)로 오실 여자의 후손의 씨를 말살하려는 사단의 고도의 술책 말이다.
4. 다윗의 등불(왕권/왕위)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왕하 11:2-3)
사단이 비록 아달랴를 충동해 다윗 가문의 왕세자들을 일거에 진멸시키려 시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섭리의 손길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절체절명의 위경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 이 일에 쓰임 받은 자가 다름 아닌 죽은 아하시야의 누이요 아비 여호람의 딸인 여호세바이다(왕하 11:2, 대하 22:10-11). 성경은 그녀가 아달랴의 친딸인 지의 여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사태의 정황상 아달랴의 친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호세바는 요아스를 6년에 걸쳐 성전에서 은밀히 양육했다.
Ⅲ. 결론 :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뜻대로 역사를 주관하신다.
본 사건은 단순히 정권탈취와 유지를 위한 세속사가 아니다. 다윗 가문의 ‘등불’(왕권)을 기뻐하시는 뜻대로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다(왕상 11:36, 삼하 7:11-16). 우리에게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섭리 의존적인 신앙관과 더불어 언약적 구속사관에 입각한 역사관 정립이 필요한 이유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첫댓글 본 사건은 여자의 후손 언약(창 3:15)과 다윗 언약(삼하 7:11-16)에 이어, 다윗 가문에 등불(왕권/왕위)이 꺼지지 않을 것을 재확약해 주신 신적 언약(왕상 11:36)이 아달랴의 유다 왕족 진멸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호람의 딸 여호세바(아하시야의 이복 누이?)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 6년동안 양육하는 것을 통해 성취된다. 하나님은 세속사를 방편 삼아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해 가신다. 이 과정에서 모사는 재인이나 성사는 재천이다(잠 16:9).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이유다. 우리가 믿고 섬기며 경외하는 하나님이 성경에 계시된 바로 이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바로 그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 타락한 종교심의 발로로 이미지화 된 우상과 방불한 하나님이 아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데서 비로소 계시 의존적인 신앙관의 정립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정체성은 어떤가. 방편적인가 목적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