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세어라! 金剛! 소금강산 답사기
월성중학교 2학년 6반 김민욱
아침 9시. 위치, 국립경주박물관. 혼자 온 지 얼마 후, 재홍이와 진원이가 온다. 오늘은 원래 비가 오기로 예보가 되어 있어서 등산 대신 국립경주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그러나 날씨는 상당히 맑은 편. 부챗살 모양 구름이 하늘에 펼쳐져 있다. 손승락 선생님과 권종훈 선생님께서 상의하시기 전까지는 박물관 가는 줄 알았으나, 비가 오지 않아서 소금강산으로 경로를 수정했다. 손승락 선생님께서는 순식간에 슬리퍼에서 등산화로 갈아 신으셨다. 그렇게 승용차 한 대에 여섯 명이 눌러 타고 소금강산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 길에 보인 산. 구름이 피어나는 것 같다.)
(국립경주박물관 입구. 결국, 입구만 구경하고 갔다.)
(부챗살 구름. 확실히 비 올 때 구름은 아니다.)
그렇게 차를 타고 한 10여 분 쯤 달려서 도착한 소금강산. 소금강산을 어떤 사람들은 자꾸만 '소금'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금강산은 小金剛山, 즉 작은 금강산이란 뜻이다. 산 자체를 두고 평가하면 크게 금강산이랑 닮은 구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소금강산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경주 전체 지형을 보면 서쪽에는 단석산, 선도산, 오봉산, 벽도산 등이 자리 잡고 있고 남쪽에는 남산, 성부산, 동쪽에는 동해와 토함산, 함백산, 명활산, 무장산 등이 있어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 쉽다. 그러나 동, 서, 남에 비해 북쪽은 허허벌판. 대부분 안강평야라 옛날부터 비만 오면 잠기는 낮은 지대. 그나마 산이라고 서 있는 게 300m도 안 되는 이 산이다. 그래서 옛 신라 사람들은 이름이라도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소금강산'이라 지은 것 이다. 대동여지도에도 소금강산을 '금강령'이라 표시하며 여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금강산과 연관되는 산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산 이름 하나에도 평화를 기원하는 신라인들의 소망이 담겨있다.
(소금강산 입구. 길 좋고 주거지역과 가까워 지난주 옥녀봉처럼 주민들 운동장소로 애용된다.)
소금강산의 초입 길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중턱쯤에 있는 백률사가 돈을 좀 들였는지 그래도 절까지는 웬만한 차들은 다 지나갈 수 있도록 해 놨다.
초입 바로 먼저 보이는 것은 굴불사지 사면석불. 거대한 바위 사면에 모두 불상을 새겼다. 여기 굴불사지는 경덕왕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리기에 땅을 파보니 이 바위가 나왔고 결국 사면불은 새기고 절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앞에 선간판에 설명이 나와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면불과 매치가 안 된다. 수정을 빨리했으면 좋겠다. 여기 사면불에 오면 누구나 한 바퀴 빙 돌며 구경한다. 흐릿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꽤 잘 남아있다. 전각까지 남아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불사지 사면석불. 기도하러 오는 사람이 꽤 많은가 보다.)
(주춧돌. 여기에 전각을 세웠다는 증거다.)
(사면불 서면. 아미타 삼존여래불이 있다. 중앙의 부처님은 원래 불두가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사면불 북면. 보살 같은데 왼쪽은 음각이어서 훼손이 심하다. 그래도 윤곽은 어느 정도 보인다.)
(사면불 동면. 약사불로 가장 선명하다. 화려한 광배가 잘 남아있다.)
(사면불 남면. 비교적 작다. 왼편 보살님의 불두는 어디 갔는지 사라졌다.)
(굴불사지 사면불 전체조망. 주춧돌을 통해 여기에 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굴불사지 사면불상을 지나면 돌계단과 그냥 길이 나온다. 간다면 좀 더 산의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돌계단으로 갔으면 한다. 때 묻은 돌에서 산의 숨결이 느껴진다. 정확히 말하면 가빠오는 나의 숨소리. 아무튼, 길을 통해서 또다시 대나무 터널과 돌계단이 나온다. 백률사까지만 갈 분은 돌계단으로 올라서 대나무 터널로 나오길 권하고 꼭대기 찍으실 분은 대나무 터널로 들어가는 게 좋다. 오래된 대나무 숲에서 산사로 가는 길의 기품이 느껴진다. 백률사 가는 길. 참 즐기면서 갈 수 있는 짧지만 즐거운 길이다.
(돌계단 길. 상당히 절로 가는 길. 그런 느낌을 준다.)
(백률사 가느 중에 대나무 터널. 백률사의 또 다른 상징.)
백률사는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사찰이다. 법흥왕 때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고자 했으나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다가 이차돈의 순교로 마침내 귀족들도 반대하지 않고 불교를 공인했다는 건 꽤 유명한 일화다. 이 이차돈이 목이 잘릴 때 그의 목에서는 흰 피가 솟구쳤고 천지가 진동하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 이차돈의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이 바로 여기다. 법흥왕은 그의 순교에 감동하여 그의 머리가 떨어진 곳에 자추사(백률사)를 세웠다고 한다. 설마 머리가 진짜로 날아갔을 리는 없고 아마도 그를 장례 지낸 곳이 아닐까 나는 추측한다. 백률사는 남북국 이전에 세워진 절로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희귀한 절 중 하나다. 근데 가보면 의외로 규모는 매우 적다. 그냥 암자 수준급. 그래도 신도 수는 꽤 많아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백률사 대웅전. 비 때문인지 행사가 있어선지 천막이 처져 있다.)
여기 백률사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바로 마애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드물게 바위에 탑을 새긴 경우다. 협소한 공간에 탑을 세울 수 없어서 마애탑을 세운 듯하다. 상당히 가치가 높지만, 중간에 윤 어쩌구 하는 사람이 이름을 새겨놔서 조금 보기 흉하다. 최근에 새긴 것 같지는 않고 조선시대에 콧대 높은 선비나 양반이 새긴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재에 낙서질하는 사람은 있었나 보다.
(백률사 마애탑. 삼층석탑을 이렇게 새긴 경우는 정말 드물다.)
(주변 바위에 새긴 이름들. 사진상 흐릿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꽤 있다.)
(백률사 전체. 범종각 내 범종에는 이차돈 순교비가 새겨져 있다.)
(백률사 내려가는 길. 계단이 멋지다.)
소금강산에는 옛날부터 신라의 불교가 시작된 곳이기도 해서 그런지 오래전부터 신성시 여겨졌던 산인 것 같다. 곳곳에 불교 유적이 있다.
백률사 옆 계단 샛길로 올라가니 온통 돌들이다. 그런데 대부분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게 잡기는 쉽다. 그리고 길도 아주 가파르지 않아서 타기는 쉬웠다. 그렇게 그 길을 따라 걷다가 감시초소 부근에 도착했다. 완전히 트인 건 아니었지만, 경주 시내 일대가 다 보였다. 황성동, 용강동부터 대릉원까지 정말로 경주 시내가 다 보이는 게 기분이 좋았다. 높이는 낮은데 경관은 좋다.
(정상 가는 길. 둥글둥글한 돌과 소나무가 굉장히 멋지다.)
(감시초소 일대. 재홍이는 어딜 그리 보는지?)
(감시초소 일대에서 바라본 경주 시내. 경주도 보면 꽤 평야가 넓다.)
감시초소 일대에는 주민을 위해 운동시설도 만들어 놓았다. 지난번 옥녀봉과 역시 흡사하다. 옆에는 참호도 몇 개 보인다. 우리나라가 전시국가여서 그런가? 등산 하다 보면 이런 참호를 꽤 자주 보는 것 같다.
감시초소에서 1분도 채 안 되어 정상에 도착했다. 왠지 감시초소 일대가 더 정상 같다. 소금강산의 높이는 입구 간판에는 약 260m 정도로 되어 있으나 사전에 명시된 대로 143m라 일단 표기한다. 정확히 몇 m인지 정말 모르겠다. 걸어 올라간 높이로 봐서는 그래도 옥녀봉보다는 낮지 않을까 싶다. 정상에서 뭐 별로 볼 건 없었으므로 그냥 쓱 보고 지나간다.
(소금강산 감시초소 일대 운동시설. 나무에 후프도 매달려 있다.)
(참호. 좁아서 제대로 전투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정상. 정상치고는 조금 허전했다.)
정상에서 내려와 또 다른 불상 쪽으로 간다. 가던 길에 여러 가지 종류의 버섯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버섯에 대해는 까막눈이라 뭐가 먹는 것인지 뭐가 독인지 모르겠다. 등산 중 버섯을 발견하면 확실하지 않은 한 되도록 따지 않는 게 좋다. 굳이 죽음을 건 모험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내려가다 보니 검은색 바위에 삼존불이 그려진 불상에 도착했다. 대부분 사람은 여기에 불상이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아까 봤던 굴불사지에 비해서는 확연히 차이가 나게 희미하다. 주변의 홈을 통해서 여기에 전각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유달리 바위색이 검은색인 건 잘 모르겠다.
(동천동 마애삼존불. 검은색 바위인데, 상당히 흐릿해 얼굴만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갔던 길과 다른 방향으로 내려갔다.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소금강산 소나무, 그중에서도 백률사 근방 소나무는 '백률송순'이라 하여 경주 삼기팔괴 중 하나였다. 백률송순은 가지를 친 후 솔순이 났는데 이는 불교가 살아난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진짜 소금강산 일대는 정말 소나무가 많았다. 솔금강산(?)이라 해도 될 듯.
(내려가는 길. 많이 흔들린 건 아닌데 뭔가 어지럽다.)
내려가는 길에 재홍이가 실수로 굴렀다. 들고가던 봉지를 단 몇 분 전에 내가 대신 들었는데 계속 들고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재홍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려가던 길에도 여러 가지 버섯을 발견했는데 진짜 많았다. 가을이 돼서 그런지 전에 답사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좀 더 공부해서 진짜 식용, 독 제대로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귀광대버섯. 독우산광대버섯, 흰알광대버서과 더불어 3대 독버섯이다.)
(가던 길에 만난 버섯. '노란달걀버섯'이라는 고급 식용버섯이라는데 확실치는 않다.)
마지막에 내려온 곳이 좀 의외였다. 우리가 올라가던 길 바로 옆 샛길이었다. 그냥 올라가면서 '저긴 어디로 가는 길이지?' 하면서 스쳐 갔는데 바로 그곳으로 내려올 줄이야.
(다 내려온 길. 올라간 곳과는 다른 길로 내려왔다.)
(최후의 하산 길. 여기로 내려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점심은 또다시 차에 타서 국밥집으로 갔다. 등산 후 먹는 밥 중 맛없는 게 어디 있으랴. 배불리 먹고 다시 선생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이번 답사는 원래 계획과는 많이 다른 경로였지만 정말 재미있는 답사였다.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그런데도 볼 것도 많고.
소금강산. 이름만 강한 게 아니라 신라 불교의 시작이자 경주 북방 방어에 반드시 필요했던 요충지로 정말로 금강(金剛)이란 말이 가장 어울리는 산이 아닐까?
-여정- (2012. 9. 8. 土)
국립경주박물관(입구)→ 소금강산 입구→ 굴불사지 사면불상→ 백률사→ 소금강산 산불 감시초소→ 소금강산 정상→ 동천동 삼존마애불→→ 소금강산 입구→ 할매국밥집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갈수록 민욱이의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식견이 높아지는 것 같구나.
답사기 쓰느라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