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 김성철 교수 교리 해설(11)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먼지 한 톨 속에 온 우주가 모두 담겨 있다.”는 뜻이다. ≪화엄경≫의 가르침을 210자로 요약한 의상(義湘: 625~702) 스님의 ≪법성게≫ 가운데 한 구절이다. ≪화엄경≫의 부처님은 비로자나부처님이다. 비로자나는 산스끄리뜨어 와이로짜나(Vaircana)의 음사어다. ‘태양에서 유래한’ 또는 ‘태양에 속한’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일(大日)이나 광명변조(光明遍照)라고 한역한다. 저 하늘의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듯이 비로자나부처님의 광명은 온 우주를 감싼다. 우리의 마음과 생명과 세상 전체를 속속들이 비추신다.
‘화엄 신화(Myth)’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대위광(大威光)이라는 이름의 태자의 서원에 의해 이룩된 곳이라고 한다. 대위광 태자께서 수없는 세월을 윤회하면서 무수히 많은 부처님을 모시고 무량억겁에 걸친 보살행을 통해 공덕을 쌓은 후 비로자나라는 이름의 부처님이 되시면서 그 몸이 그대로 이 세계로 변했다. ‘화장장엄(華藏莊嚴)세계’가 탄생한 것이다. 화장장엄세계란 ‘온갖 꽃으로 장식된 세계’라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 분의 몸속에 살고 있다. 비로자나부처님의 털구멍 속에서 살고 있다. 더 나아가 온 우주가 비로자나부처님의 털구멍과 같은 작은 공간 속에 담겨있다.
화엄학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기세간(器世間)과 중생세간(衆生世間)과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의 세 겹으로 구분한다. 기세간이란 지구나 우주와 같은 물리적 세계를 의미하고 중생세간은 그런 물리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온갖 생명체를 가리키며, 지정각세간은 깨달은 불보살의 눈에 비친 세계다. 이 세 가지 세계가 오버랩(Overlap) 되어 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우리는 기세간과 중생세간만 체험할 뿐이다. 아직 깨닫지 못한 인간의 눈에는 중생세간 중 그나마 인간계와 축생계만 보이고, 기세간 중에는 그나마 수미산인 지구(地球)와 허공과 물리적 우주만 보일 뿐이다. 우리는 전생, 또는 그 이전의 어떤 생에 지었던 업의 과보로 받은 세계에서 인간이라는 중생으로 살아갈 뿐이다. 아직은 무명에 덮여 있기에 불보살의 세계인 지정각세간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으면 온 세상이 생명을 갖는 존재로 살아나 약동하기 시작한다. 해와 달이 노래하고 밤과 낮이 노래하고 산과 강이 노래한다. 일광보살, 월광보살, 주야신(主夜神), 주주신(主晝神), 주산신(主山神) ……. 또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휘황찬란한 보석이었고, 온 우주가 깨달음을 가르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온 세계가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으로서 한 시도 쉬지 않고 연기(緣起)와 공(空)과 중도(中道)의 진리를 가르친다. 지정각세간인 화장장엄세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일미진중함시방’ 역시 그런 화장장엄세계에 대한 묘사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광명변조하신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속에 살고 있다. ≪화엄경≫에서 노래하듯이 “그 분의 몸은 온 세상에 충만하고 그 분의 음성은 시방국토에 널리 퍼진다.” 보이는 모든 것이 그 분의 몸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그 분의 음성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두 가지 방식으로 관찰할 수 있다. 하나는 ‘국소(局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편재(遍在)한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특정한 위치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고 그 사건이 온 세상에 퍼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 방의 책상 위에 컵이 하나 있을 때, “그 컵의 모습이 책상 위에 있다.”고 보는 것은 ‘국소적 관찰’이고 “그 컵의 모습이 내 방에 가득 차 있다.”고 보는 것은 ‘편재적 관찰’이다. 전자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관찰이고 후자가 바로 화엄적인 관찰이다.
오래 된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어느 부잣집 대감이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며느릿감을 구한다는 방을 붙였다. 세 명의 아가씨가 지원했는데, 대감은 이들에게 각각 100냥씩 주면서 무엇이든 사와서 방안을 가득 채워보라고 하였다. 첫 아가씨는 비단을 사와서 넓게 펼쳐보였고, 둘째 아가씨는 실타래를 사와서 풀어 놓았는데, 셋째 아가씨는 한 냥짜리 초만 달랑 사오고 99냥을 대감에게 돌려드렸다. 의아해 하는 대감 앞에서 아가씨는 초 심지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불빛이 방안에 가득 찼다. 셋째 아가씨가 며느리로 발탁되었다.”
그런데 촛불의 광명만 온 방안에 가득 차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모습들은 하나하나 온 우주에 가득 찬다. 예를 들어 책상 위의 컵을 바라볼 때, 내 눈으로 저 컵을 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나의 안구 속 망막에 비친 컵의 영상을 보고 있을 뿐이다. 컵의 모습은 저 책상 위에 있기도 하지만, 온 방안에 가득 차 있기도 하다. 그래서 방 안의 그 어느 곳에서 컵으로 시선을 향해도 컵의 모습이 나의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의 모습들은 눈에 뚫린 동공으로 빨려 들어와서 망막의 스크린에 영상을 맺는다. 밝은 곳에서 조리개가 축소하여 동공의 크기가 깨알처럼 작아져도, 그 구멍으로 내 눈 앞의 풍경이 모두 빨려 들어온다. 나의 눈동자를 이 세상 그 어디에 두어도 이 세상의 모습이 보이는 이유는 그 어느 지점에든 이 세상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일미진중함시방’이기 때문이다.
화엄학에서는 이 세상의 궁극적인 모습을 열 가지 원리로 요약하는데 이를 십현문(十玄門)이라고 부른다. ‘열 가지 심오한 통찰’이라는 뜻이다. 그 가운데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에 대한 설명을 참조할 때 ‘일미진중함시방’의 의미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다라망’은 ‘인드라(Indra) 신의 그물’이라는 뜻이다. 인드라 신은 욕계 도리천의 천주(天主)인 석제환인(釋帝桓因)으로 ‘제석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리천의 천궁은 입체적인 그물로 덮여 있는데, 그물의 매듭마다 반짝이는 구슬이 달려있다. 그런데 화장장엄세계인 이 세상의 구조가 이런 ‘인드라 신의 그물’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구슬이 있을 경우, 그 표면에는 주변의 모든 풍경이 다 비쳐질 것이다. ‘동, 서, 남, 북’의 4방과 ‘남동, 남서, 북동, 북서’의 4유 그리고 ‘상, 하’까지 합하여 온 방향의 모습이 모두 비칠 것이다. 시방의 풍경 전체가 작은 구슬의 표면으로 다 빠져 들어간다. 그런 구슬들이 그물의 매듭마다 촘촘히 달려 있기에 개개의 구슬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비춘 모습들이 다시 다른 구슬에 비쳐진다. 그 가운데 어느 한 구슬에 검은 점을 찍으면 그 검은 점은 다른 모든 구슬에 나타난다. 이 세상이 이런 인다라망과 같이 생겼다는 통찰이 ‘인다라망경계문’이다. ≪화엄오교지관(華嚴五教止觀)≫에 실린 두순(杜順) 스님의 설명이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그 즉시 온 우주에 편재한다. 마치 인다라망에 달린 구슬 하나에 검은 점을 찍으면 즉시 그 점의 모습이 온 구슬에 나타나듯이 ……. 사물의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내 방에서 울리는 괘종시계 소리는 이 방안에 꽉 차 있다. 소리가 클 경우 방 밖까지 퍼진다. 지금 가스레인지에서 끓고 있는 된장찌개 냄새는 우리 집에 꽉 차 있다. 냄새가 짙으면 집 밖까지 퍼진다. 모습이든, 소리든, 냄새든 발생한 순간에 사방으로 퍼진다. 따라서 지금 내 눈 앞 허공의 한 톨 먼지 같은 작은 공간 속에는 나의 모습이 들어 있고, 컴퓨터의 모습이 들어 있고, 내 책상의 모습이 들어 있고, 책상 위 컵의 모습이 들어 있다. 내 주변의 모든 모습이 들어 있다. 부엌에서 끓이는 된장찌개 냄새가 들어 있고, 내 몸의 땀 냄새가 들어 있고, 비가 새는 천정에 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들어 있다. 내 주변의 모든 냄새가 들어 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어 있고, 벽에 걸린 시계의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들어 있고, 방 밖에서 들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어 있고, 따르릉 울리는 내 휴대폰 소리가 들어 있다. 내 주변의 모든 소리가 들어 있다. 더 나아가 내 휴대폰으로 송수신하는 모든 전파가 들어 있고, 우리 국민과 전 인류가 송수신하는 수 억 대의 휴대폰 전파가 들어 있다. 더 넓게는 전 세계 모든 라디오 방송국의 전파가 들어 있고 모든 TV방송국의 전파가 들어 있고, 창문너머 들어오는 햇살이 들어 있고, 하늘에 휘영청 뜬 달빛이 들어 있고, 멀리 북극성의 별빛이 들어 있다.
내 눈 앞 그 어느 ‘한 점 공간’을 잡아도 그 속에는 모든 모습, 모든 소리, 모든 냄새, 모든 전파, 모든 빛살이 들어 있다. 온 우주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들이 먼지 한 톨 크기의 공간 속에 다 들어간다. ‘일미진중함시방’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런 ‘한 점 크기의 공간’들로 가득하다. 따라서 그 어느 지점에도 온 우주가 들어 있다(一切塵中亦如是). 그 어느 ‘한 점’이든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불국정토다. 마치 화가가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한 점 마음(心)의 흐름’으로 자신이 사는 세상을 그리는 낱낱의 생명체(衆生)들이 모두 그 주인공이다. 누구나 부처님(佛)이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 가지는 전혀 다르지 않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먼지 한 톨 크기 공간 속에 온 우주가 들어 있기에 어디나 불국토이고 누구나 부처님이다. 절대평등을 노래하는 ≪화엄경≫의 가르침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김성철 교수
월간 <불광> 2012년 11월호 / 불교, 쉽고 명쾌하고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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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一微塵中含十方 / 김성철 교수 교리 해설(11)|작성자 수처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