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뮴의 발견과 역사
페르뮴은 1952년 11월1일 남태평양의 에니위탁 환초(Eniwetak Atoll)에서 수행된 최초의 수소폭탄(암호명, 아이비 마이크(Ivy Mike)) 폭발 실험의 잔해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 발견에는 미국의 아르곤 국립연구소(Argonne National Laboratory)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그리고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의 방사선 연구소(Radiation Laboratory, 현재의 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 LBL)의 여러 과학자들이 기여하였다. 특히 버클리의 하비(Bernard G. Harvey), 쇼핀(Gregory R, Choppin, 1927~), 톰프슨(Stanley G. Thompson, 1894~1953), 기오르소(Albert Ghiorso, 1915~2010) 등이 큰 기여를 하였는데, 기오르소가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페르뮴의 발견은 같은 폭발 잔해에서 약간 먼저 발견된 99번 원소 아인슈타이늄의 발견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네이버캐스트 [아인슈타이늄] 참조).
기오르소 등이 아인슈타이늄과 페르뮴을 발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 것은 수소폭탄 폭발 실험 잔해에서 새로운 플루토늄(Pu) 동위원소 244Pu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에는 238U가 여러 개의 중성자를 흡수하여 무거운 원자핵이 생성되는 것이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소폭탄을 감싼 238U가 6개의 중성자를 흡수하고 2번의 β- 붕괴를 일으켜 생성된 244Pu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244Pu의 생성 소식을 접한 기오르소는 238U가 더 많은 중성자를 흡수하고 더 여러 번의 β- 붕괴를 일으켜 더 무겁고 더 큰 원자번호를 갖는 새로운 원소(원자번호 99번과 100번 원소)도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고, 폭발 잔해물에서 이들 원소들을 찾고자 하였다. 그들은 먼저 폭발 버섯 구름에 날려 잔해 먼지를 흡착시킨 여과지에서 99번 원소의 동위원소 253Es(반감기 20.5일)를 발견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앞서의 244Pu도 이 방법으로 채취된 폭발 잔해 먼지에서 발견되었었다.
페르뮴은 1952년에 수행된 최초의 수소폭탄(암호명 아이비 마이크, 무게 62톤) 폭발 실험의 잔해로 오염된 산호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사진은 폭발 버섯 구름
100번 원소(페르뮴)는 99번 원소보다 더 많은 수의 중성자를 흡수하여 생성되므로 생성 수율이 월등히 더 적을 것으로 짐작되었고, 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료가 필요하였다. 기오르소 팀은 폭발이 일어난 에니위탁 환초에서 폭발 잔해 먼지로 오염된 수백 파운드의 산호를 제공받아 이를 산 처리하고 양이온-교환 크로마토그래피(cation-exchange chromatography)로 분리하여 마침내 반감기가 약 1일이며 7.1MeV의 α입자를 방출하는 새로운 원소가 포함된 용출 분획을 얻고 이에서 약 200개의 페르뮴 원자를 화학적으로 확인하였다. 이때가 1953년 1월로 수소폭탄 실험이 수행된 지 2개월이 지난 즈음이었다. 이 새로운 원소가 질량수 255인 100번 원소의 동위원소 255Fm인데 지금 알려진 반감기는 20.07시간이다.
버클리 팀이 발견한 255Fm는 수소폭탄 폭발 때 생성되어 발견 당시까지 붕괴되지 않고 남아있던 것은 아니다. 255Fm은 반감기가 불과 20.07시간(α붕괴를 하고 251Cf로 전환된다)이므로, 생성되고 두 달 후에는 단지 처음의 약 1/1022만 남아있게 되어 이를 발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소폭탄 폭발 때 253Es가 두 개의 중성자를 흡수하여 생성된 255Es(반감기 39.8일)가 폭발 잔해에서 β-붕괴를 통해 계속해서 255Fm를 생성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를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253Es의 생성 과정은 네이버캐스트 아인슈타이늄 참조).
아인슈타이늄과 페르뮴의 발견은 냉전시의 핵 기술 개발에 대한 소련과의 경쟁 때문에 비밀에 부쳐지고 발표가 금지되었다. 버클리 팀은 혹시 다른 연구팀이 이온 충돌 방법으로 이들 원소의 동위원소들을 합성·발견하고 그 결과를 자신들 보다 먼저 발표할까를 걱정하였다. 이에 그들은 아르곤국립연구소와 공동으로 처음에는 238U에 사이클로트론으로 가속된 14N이온을 충돌시켜서, 그리고 나중에는 239Pu 또는 252Cf에 강한 중성자선을 쪼여서 이들 두 원소를 합성하였다. 이 결과는 1954년 2월에 발표되었는데, 그들은 아직 국가 기밀 목록에서 해제되는 않은 선행 연구에서 이들 원소들을 처음 발견하였음을 명시하였다. 1954년 5월에는 스웨덴의 노벨물리학연구소(Nobel Institute of Physics) 연구진이 이들과는 독립적으로 238U 표적에 16O 이온을 충돌시켜 100번 원소의 동위원소(뒤에 반감기가 30분인 250Fm으로 밝혀짐)를 합성하였음을 발표하였다. 스웨덴 팀은 이 원소의 원자번호가 100이므로, 원소 이름을 센투륨(centurium, 원소기호 Ct)으로 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원소 발견에 대한 선취권이 버클리 연구진에 있다는 이유로 국제순수·응용화학연맹(IUPAC)에 의해 거절되었다.
수소폭탄 잔해에서 이들 원소들을 발견한 결과는 1955년 8월에야 비밀이 해제되어 발표되었는데, 이의 저자에는 버클리의 기오르소, 톰프슨, 히긴스(G. H. Higgins), 시보그(Glenn T. Seaborg, 1912~1999), 그리고 아르곤과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여러 연구자들이 포함되었다. 이 논문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99번과 100번 원소들에 대해 현재의 원소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논문 발표 즈음에 사망한 두 명의 유명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각각 아인슈타이늄과 페르뮴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들 이름은 1957년에 국제순수·응용화학연맹(IUPAC)에 의해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