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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Kazimir Malevich (1878 ~1935)】 「농민의 머리」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농민의 머리』는 예언적인 이미지로 볼 수 있다. 또한 예술가의 농민 순환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말레비치는 농민의 머리를 성화 화가가 성화를 그리듯 그렸으며, 실제 삶의 감각이 오래된 전통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캔버스에 묘사된 침울한 농민은 초기 정교회 성화 『성 니콜라스의 생애』, 러시아의 분노한 눈 그리스도 이미지와 전통 러시아 목판화(루복)의 등장인물을 연상시킨다. 농민의 상징 같은 얼굴 배경은 수확 장면으로, 이는 말레비치의 농민 연대의 많은 작품들과 함께 나타난다. 러시아 박물관: 아이콘에서 현대까지. 팰리스 에디션즈, 상트페테르부르크, 2015. P. 343.
새로운 예술적 신념을 확인하며,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러시아 농민들의 영적 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의 작품의 개념과 이미지는 러시아 성화 전통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캔버스의 형식과 구성은 성화전적 아이콘을 연상시킨다. 적십자 위의 엄숙하고 엄숙한 표정은 예술가 자신의 미래 비극을 신비롭게 비전하며, 1920년대 말에 사실상 파괴된 러시아 농민들의 운명을 상징한다. 그림의 배경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성인전적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풍경화는 인상주의에서 큐보 미래주의, 슈프레마티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양식으로 그려졌으며, 이는 화가의 상승 단계나 말레비치의 슈프레마티스트 붉은 십자가를 상징한다.
「생명의 꽃」 러시아의 위대한 추상화가 말레비치의 회화작품을 보면 그 시대의 비참한 농노의 자화상을 보여주듯 농부얼굴의 입을 가려버렸다. 아니 막아버린 건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인간 역시 돈과 혈기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값지고 고귀한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통찰하게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거울 속의 내가, 내가 아니지만 그걸 나로 알고 살아간다. 꿈꿀 때 마치 꿈이 현실로 느껴지지만 꿈 깼을 때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실제를 환상으로 알고 환상을 실제로 알고 산다 생각과 느낌, 물질과 현상 그걸 나로 알고 사는 사람은 선택할 힘이 없다. 금 년 한 해 몇 점으로 살았는지 점수를 매겨보라? 어떤 인간이든지 회한이 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 위로가 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고통에 못이겨 성화를 밟느냐 마느냐 번뇌하고 있는 로드리고 신부의 모습이다. “내가 수없이 생각한 얼굴 위에. 산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나 옥사에서 언제나 생각해내며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그 분의 얼굴 위에 인간이 생존해 있는 한 선과 아름다움 그 자체인 얼굴 위에 그리고 평생 사랑만을 베풀려고 했던 그 분의 얼굴 위에 그 얼굴은 지금 성화판의 나무판자 속에서 닳고 패어버린, 그리고 슬픈듯한 눈을 하고 이쪽을 보고 있다 “밟아도 좋다”라고 슬픈듯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들에게 질책과 심판을 하는 분이 아니다.
베드로를 일으켜 세우셨다. 집나간 탕자의 자리를 찾아 주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회개한 살인자에게 낙원을 약속하셨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인간의 고난과 아픔을 함께하는 예수님을 소개한 책이다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용서에 대하여 무한한 용서를 말씀하시며 아버지가 그런 분이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파스칼은 예수님을 가르켜 ‘우리와 함께 고난받으시는 영원한 사랑의 동반자’ ‘끝없이 작은자들을 감싸 안아 주시는 무한한 사랑의 어머니’가 아니냐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천재다. 그도 굉장한 수련을 했다 글씨도 거꾸로 쓰고 설계도도 거꾸로 그렸다 다빈치가 만든 것을 거꾸로 하면 다 이루어진다. 양손을 쓰고 좌우뇌를 쓰는 법과 간뇌를 활용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감각과 감성, 영성과 몸을 깨우는데 필요한 훈련을 해야 한다 그의 대표작은 모나리자다. 마지막 작품은 세례요한이다. 모나리자가 여자지만 남자의 얼굴이라면 세례요한은 남자지만 여자의 얼굴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절묘하게 연결된 존재로 그렸다. 파스칼은 깊고 깊은 사색 속에 예수님에 대한 그런 이해에 도달한 것이다 인간이 기가 뿜어나와야 진정 기쁜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 회광반조 우주적인 사랑을 공급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드린 것처럼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신 달빛을 받아서 우리가 빛을 낸다 인간은 사랑을 받아서 사랑을 흘려보내는 존재이다 모세가 이야기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은 하느님의 사랑을, 꿀은 진리의 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노예 생활하던 사람들이 노예를 만들면서 멸망을 초래한다. 생명은 하느님의 소유이지 그 누구의 노예가 될 수 없다 사랑과 자유와 선택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 무지에 대한 자각이 있는 신앙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하는 민족이 되기를 모세는 염원했다. 생명과 죽음이 내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나와 타인을 억압하는 살지 말고 삶의 중심 존재의 중심에 생명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의 생명의 꽃을 가꾸고 살라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고 사는 것은 생명을 죽이고 사는 것이다 무한히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은 잘못 사는 것이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사는 것은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자살, 나를 파괴하는 것, 시들어가게 하는 것, 죽여가는 것이다 우리는 서서히 죽여가는 약을 먹고 사는 존재여서는 안 된다. 누가 그런게 아니고 자기자신을 억압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다. 모든 씨앗이 땅에 뿌려져 다 열매 맺는게 아닌 것처럼 생명은 자기 껍질을 깨고 나와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 자연이 겨울을 이기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절하고 싶을 정도로 참 외경스럽다. 생명을 허비하지 말고 내 자신을 자유롭게, 내 재능을 억누르지 말고 잘 표현해 내고 연마하는 것이 창조적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환희심으로 가슴 뛰게 살 책임이 있다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사는 게 바로 바보이다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새날을 맞이해야 한다 80%의 사람들이 원하는 게 없이 기계처럼 산다 17%의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있지만 표현을 못하고 우물쭈물 산다. 오직 3%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산다. 우리는 3% 사람에 들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뭔가? 나도 예전에는 「이건 꿈이야 했지만 다 이루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 예금통장에 수백억이 있으면서도 비밀번호를 몰라서 비참하게 거지로 산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할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기회를 주셨다 여한 없이 살다 기쁘고 감사하게 살다가 홀가분하게 떠나야하지 않겠느냐? 우리 몸이 가슴이 예수님이 영혼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걸 죽이지 말고 믿음으로 해보리라 작심하고 해야 한다. 인간은 생명을 따라갈 때 신성의 문에 도달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얀 밥 먹었는데 왜 피가 빨갛냐느니 뚱딴지같은 것에 고민하지 말고 감사로 받아드려야 한다 모세말씀처럼 하느님 말씀이 네 입 속에 들어있지 아니하냐? 다가오는 새해 세월을 잘 아껴서 재능을 개발하고 리더쉽도 발휘하고 창의적이 생각과 모험심도가지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꽃을 여한 없이 피워봐야 하지 않겠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농민의 머리」즉, 예언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파괴된 러시아 농민의 운명을 바라볼 수 있듯이 우리의 운명 역시 이 그림이 암시하는 뜻을 새기고 이 자리를 꾸려가는 한 인간으로서 배짱과 깡다구를 가지고 언땅을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처럼 평화와 해방의 세상,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하지 않겠느냐?
"사물의 습관적인 의식, 즉 자연의 파편이나 마돈나, 뻔뻔한 누드를 그림 속에서 보려는 인식이 사라질 때 비로소 순수한 회화적 구성을 보게 될 것이다." _Kazimir Malevich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거장이자 기하학적 추상미술인 '절대주의(Suprematism)'의 창시자, 카지미르 말레비치.
그의 예술 철학은 구체적인 대상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첫댓글 "나는 나 자신을 형태의 무(Zero)로 만들었고, 무(Nothingness)에서 창조로, 즉 대상 없는 순수한 창조인 절대주의로 나아갔다."_Kazimir Malevich
"어떤 실제 형태도 하나의 세계이다. 그리고 그려진 색면이나 형태는 살아 있는 것이다."__Kazimir Malevich
"사물의 습관적인 의식, 즉 자연의 파편이나 마돈나, 뻔뻔한 누드를 그림 속에서 보려는 인식이 사라질 때 비로소 순수한 회화적 구성을 보게 될 것이다." _Kazimir Malevich
"나는 색채의 한계라는 푸른 경계를 부수고 흰색으로 나왔다. 자유롭고 하얀 바다, 무한함이 그대 앞에 놓여 있다."_Kazimir Malev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