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은 리조트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하루종일 투어하다가 들어와 잠만 자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니
며칠 안되지만 내 집처럼 착각하면서 지낼 수 있는 곳이니까.
실제 내 집처럼 쪼꼼 정이 생기기도 한다
정들면 떠나야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3일간 머물 '알라야 리조트'에 도착했다
3일간 내 집인 셈이다
반갑다며 내어주는 웰컴음료는 마시지 않기로 한다
발리밸리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얼음이 들어간 음료는 되도록 마시지 않는 걸로.
저 물수건도 안 쓸랍니다
양칫물도 모두 생수를 사서 사용하기로 맘먹고 왔는데
마실 물 외에
화장실에도 생수 두병씩이 제공된다
우리 맘을 어떻게 알았지?
이 리조트 정문은 평범한 크기로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고 넓어진다
처음 들어설 때는 직원안내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들어왔는데
저녁 먹을 겸 외출했다가 밤에 들어오니
우리 방까지 가는 길이 정말 길다
복도를 따라 걷다가 우회전과 좌회전을 하고 작은 계단을 올라 또 좌회전해야만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그리고 3층에 내려 우회전하면 우리 집이다
밤에 혼자서 이 숙소를 걸어 다니려면 좀 신경 쓰일 것 같기도 한데
이곳 직원들이 워낙 친절하고
또 여유 있는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이라서 마주치면 눈인사를 진심으로 하니 무섭진 않을 것 같다
가운을 턱 걸쳐놓고 슬리퍼를 가져다 둔 디스플레이에 제목을 붙여주고 싶다
' 휴식'이라고
침대에 편안히 늘어져있다가 막 슬리퍼를 신고 일어나려는 모습이랄까
아니면 이제 막 슬리퍼를 벗고 침대에 벌러덩 누운 모습이랄까
여기저기 툭툭 던져놓은 플루메리아꽃송이가 기분 좋게 한다
여긴 시도 때도 없이 꽃송이가 툭하고 떨어진다
걸어가고 있는 중에도 내 앞에 툭 할 때도 있으니 흔하디 흔한 꽃이다
리조트 안을 걷다보면 이렇게 바로 눈 앞에서 툭 떨어지는 꽃송이를 종종 만난다
실내 장식을 하기 위해 떨어진 꽃송이를 줍는 전문직원도 있으려나?
취직하고 싶어 지네
그냥 산책하다가 발 아래 떨어지는 꽃송이만 주워 모으는 일이라니 얼마나 여유로운가
연봉은 많이 못 드려요
예약할 때는 욕조가 없는 방이라고 했다는데 이렇게 거대한 욕조가 딱!
두 사람이 들어가도 충분할 만큼 컸던 이 욕조는
수영복 빨기 전 물에 담가놓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조식당은 가든과 로비 바로 옆에 있는데
오픈된 곳이라 더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침 먹는 동안 덥지는 않다
우린 더위를 걱정하는데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정원테이블에 앉아 먹는 외국인들이 많다
저 사람들은 북유럽 쪽에서 온 사람들일까
열대과일 중 처음 알게 된 과일이 있다
호기심천국인 나는 얼른 가져와본다
짠딸이 이게 뭐야 징그럽다
흐흐 이름도 징그러운 스네이크프루츠
실제 뱀껍질 같은 모양과 질감이 느껴져 선뜻 손이 안 가게 생겼다
그렇지만 나는 얼른 가져온다
칼로 자르려 하니 잘 안된다
짠딸이 가져가더니 손으로 껍질을 벗긴다
어머, 뱀허물 벗기 듯하네
껍질을 다 벗겨놓으니 엄청 큰 마늘쪽처럼 보인다
맛은?
새콤한 맛이 먼저 혀를 건드리더니 달콤한 맛이 입안에 은은히 담긴다
그런데 짠딸은 별로라며 한번 베어 물더니 다시는 입도 대지 않는다
껍질 벗겨놓으니 허물 벗은 뱀 같쥬?
씨도 하나 들어있다
나는 이 껍질 징그런 스네이크푸르츠를 매일매일 먹었다
너무 달지 않고 새콤한 맛이 독특하니 다른 열대과일보다 좋다
무엇보다 여기가 아니면 다시 만나기 어려운 과일처럼 느껴져서 만끽하기로
우붓에서 스미냑으로 옮겼을 때
새로운 리조트의 웰컴프루츠에 바로 이 스네이크프루츠가 함께 있었다
짠딸은 질색
수영장이 두 개 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한 곳은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좋고 또 하나는 얕은 곳이 없어 성인들이 즐기기에 적당하다
지금이 그리 큰 성수기가 아니라서 리조트가 북적이지 않아 좋다
여유 있고 조용하다
수영장 뷰가 논뷰다
그런데 추수한 지 얼마 안 되어 벼 밑동만 실컷 봤다
언제 다시 모내기하실 건지
한국에선
차를 타고 조금난 나서면 널려있는 게 논이건만 리조트에 눈곱 만한 논에 집착하는 건 뭐람
하긴 논뷰를 자랑하는 국내 카페들도 꽤 있다
플루메이라 꽃송이로 영역표시하기 ㅋㅋ
오전에 돌아다니다가 오후에 수영장에 오면 그늘이 많고 물도 따뜻하게 뎁혀져있다
아침 먹으러 가는 길에 이 수영장길로 가는데 벌써 수영을 하고 몸을 말리는 부지런한 투숙객들도 있다
우리도 이 리조트에서 지낸 시간 중 이 수영장을 제일 많이 이용했을 것이다
그늘이 많아 물속에서 책 읽기도 좋다
스미냑에서 보다 이곳 우붓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
스미냑의 리조트는 책 읽기보다 수영장 앞의 바다를 보며 멍 때리기가 더 좋다
저 책에 드리운 예쁜 나뭇잎 그림자
이곳의 관엽식물들 중엔 한국에도 분명히 있는 것들이 있는데 크기차이가 엄청나다
다 시원스럽고 큼직큼직하다
문 앞 표지판도 아날로그 하고 재밌다
잠깐 조식 먹으러 나갈 때는
'쉿!'
외출하거나 수영장에 오래 있게 될 때는
'청소해 주세요'
이런 거 너무 재밌어하는 나
이렇게 해석이 뚜렷한 상형문자 재밌잖아요
리조트가 넓다 보니 이런 친절도 필요하다
사실 우리 방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이던 숲길을 걸어보지 못한 게 좀 후회가 된다
정글 속으로 난 것 같은 그 길 잠깐 걸어보고 싶었는데 뭔가 바빴다
놀기도 바쁘더라
곳곳에 우산을 꽂아둔 항아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갑자기 비가 와도 걱정 없겠다
이런 친절 너무 좋아요
정문 앞의 이 아저씨
우리가 외출했다가 길 건너 리조트로 들어오려고 하면
오토바이나 차를 수신호로 막아주며 안전하게 건너게 도와준다
늘 땡큐를 연발하면서 건너 다녔다
그래서 외출해서 돌아올 때도 먼 곳에서 길을 건너지 않고
리조트 앞까지 와서 이 카리스마 가득한 아저씨의 도움을 받고 건너게 된다
베트남 콩카페 앞에서 길을 건네주는 일을 하는 앳된 소년들이 생각난다
오토바이 물결을 능숙하게 자르며 우릴 콩카페 앞으로 데려다주던.....
짠딸이 수영장 갈 때 소지품 넣어 다닌 이 천가방은
유럽여행 때 만난 지인이 만들어 판매하는 제품이다
'사름'이라는 리싸이클링 제품 브랜드인데 지금 제주에서 사업 중이다
칵테일이나 주스 혹은 맥주를 주문해 마시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오후를 보낸다
이곳 알라야 리조트는
북적이는 도로변에 정문이 있는데
리조트 안으로 들어서면 숲, 정글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게 조용하다
새소리가 가득한 숲 속에 파묻힌 기분이다
룸 냉장고에 가득 채워진 캔음료나 주스 등이 모두 무료라는 게 특이하다
우린 하나도 건들지 않았지만
(딱히 마시고 싶은 음료가 없었다)
발리 우붓의 '알라야 리조트'
잘 쉬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