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유럽의 일상 생활
2. 음식과 술
유럽의 음식과 술은 이제 우리에게도 많이 익숙해져 있다. 바게트빵, 파스타, 스테이크를 비롯해 프랑스, 이태리 등의 여러 나라 음식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유럽 음식중 독일 음식은 우리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에서 가장 내세울 것이 없는 것은 아마 음식일 것 같다. 전통 독일 음식은 돼지고기와 감자, 양배추 요리, 다양한 소세지가 유명하다. 특징있는 독일 음식은 학세라고 불리는 독일식 돼지족발과 돈까스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슈니첼 등이 있다. 독일인은 대부분 양이 많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통 독일 식당의 본식 1인분만 갖고도 한국 사람은 부부 두 명이 먹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또 독일 사람은 생각보다 아주 짜게 먹고 단것도 좋아한다. 따라서 스프를 시킬 때는 싱겁게 해 달라고 해도 한국 사람 입맛에는 상당히 짠 경우가 많으므로 소금을 전혀 넣지 말라고 하는 것이 입맛에 맞는다.
우리가 양식이라 부르는 현재의 서양식 요리는 르네상스시대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건너가 체계화된 것이다. 전통 독일 음식이 맛이 별로이기 때문에 독일 곳곳에서 이태리 사람들에 의한 이태리 식당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전통 독일 식당보다 이태리 식당이 더 많아 보였다. 또 독일의 고급 호텔 등에는 프랑스식을 기본으로 하여 이태리식과 독일식이 조금씩 가미된 형태의 식당, 독일인 말로는 유럽식이라고 부르는 식당이 일반화되고 있다.
유럽의 정식은 전식 본식 후식의 3 코스, 전식 두 가지 본식 후식의 4 코스, 전식 두 가지 본식 두 가지 후식의 5 코스가 일반적이고 후식 후에는 커피와 과자를 먹고 가끔은 마지막으로 꼬냑 등 식후주를 마시기도 한다. 필자의 특이한 경험으로는 스위스 바젤에서 전식 본식 후식의 3 코스 식사를 하는데 본식의 양이 생각보다 많이 적었다. 속으로 바젤은 독일어권으로 음식량이 많을텐데 프랑스식으로 적게주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나 생각했다. 본식을 거의 다 먹었을 때 똑같은 본식이 한번 더 나왔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이 식당의 특별한 서비스 방식으로 본식을 한꺼번에 많이 주면 나중에 식어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두 번에 나누어 서빙한단다. 이와 같은 본식을 두 번 서비스 받기는 처음이었다. 5 코스 정식의 본식 두 가지는 생선과 고기 요리, 또는 닭고기와 소고기 요리 등과 같이 통상 서로 다른 것을 서빙한다.
한국도 일식, 중식 이외에 한식도 코스별로 서빙하는 식당이 생기는 등 서양식 음식 문화가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음식 문화와 유럽의 음식 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가 우리는 남기는 음식이 많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좋은 전통주가 없다는 것,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첫째, 한국은 양식을 제외하는 한식, 중식, 일식, 비싼 집, 싼집 차이없이 거의 대부분 남기는 음식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비싼 식당에서 남기는 음식이 더 많은 경우가 많다. 유럽은 식당에서 음식을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비싼 식당일수록 프랑스식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접시는 커지지만 음식 양은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 비싼 집에서 음식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왠만한 식당에서 음식을 남기면 서빙하는 사람이 혹시 음식에 문제가 있는지를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열심히 만들어 잘 서빙했는데 다 안먹으면 기분 나쁘다는 의미도 있다. 유럽의 좋은 식당에서 돈 이상의 좋은 팁은 맛있게 다 먹고 음식이 아주 좋았다고 칭찬하는 것이다. 음식을 남기고 팁을 많이 주고 가는 사람보다 팁을 조금 주고 음식이 좋았다고 칭찬해주고 가는 사람이 더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한국의 식당에서도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간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으나 성과는 별로 없고 최근에는 노력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식당이나 가정이나 버려지는 음식만 모아도 북한 사람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식량 수입에 들어가는 외화절약,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환경파괴 방지 등을 위해 식당에서 남겨 버려지는 음식을 대폭 줄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왜 안될까? 유럽에서도 한국 사람이 주고객인 한국 식당은 한국과 비슷하게 남겨버리는 음식이 많아 반찬 재사용 의혹까지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유럽 사람이 주고객인 한국 식당은 남겨버리는 음식이 거의 없다. 이는 한국 사람은 반찬이 많아야되고 나온 음식을 남김없이 모두 먹으면 무엇인가 좀 이상해 보이는 듯한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과 한국 음식은 여러 명이 나누어 먹는 형태가 많다는 점 등이 결합된 것으로 생각된다. 음식을 남기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꼭 바꾸어야할 우리의 잘못된 음식 문화이다.
두 번째 차이는 유럽 식사에서는 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음식이 좋아도 그에 상응한 술이 곁들여지지 못하면 훌륭한 식사가 되지 못한다. 술은 음식 주문전에 마시는 식전주, 음식과 함께 하는 술, 음식을 다 먹은 후 마시는 식후주가 있다. 가장 중요한 술은 전식부터 후식까지 음식과 같이 마시는 술이다. 음식과 같이 마시는 술은 통상 포도주가 대표적이다. 포도주는 괜찮게 하는 식사시에는 두 가지 정도, 아주 좋은 식사의 경우에는 3~4가지 정도의 다른 종류를 마신다. 그러나 음식에 곁들여 가볍게 마시기 때문에 마시는 양은 우리보다 훨씬 적다. 이렇게 음식에 술을 적당히 하게 되면 식사비용의 40% 내외가 술값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유럽에서 먹을 수 있는 포도주 종류는 하도 많고 계속 새로운 것이 나오기 때문에 얼마나 되는지 알기 어렵다. 아마 수만 종(?)은 너끈히 넘을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좋다는 식당은 좋은 포도주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괜찮은 식당은 거의 모두 음식 메뉴판과 포도주 메뉴판(wine list)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고, 좋은 식당은 와인 리스트가 두꺼운 책과 같아, 보유 포도주 종류가 수백 가지를 넘는 경우도 꽤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보통 소주, 맥주, 막걸리 또는 섞어 마시는 폭탄주 등 몇 종류 안되는 술을 만취할 때까지 마셔 음식 맛도 술 맛도 모르게 된다. 이러한 음주 문화는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고 나아가서는 한국 농업의 낙후성에도 조금은 영향을 주고 있다.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가공산업이 술 산업인데 한국은 우리 농산물로 만든 고급 술이 없는 것도 농산물의 고부가가치화를 막는 요인의 하나이다.
포도주는 포도농장(불어로 chateau)에 따라 가격 차이가 100배 이상 나는 경우도 허다하고 같은 농장 포도주도 종류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매우 크다. 필자가 방문했던 한 포도농장에서 같은 해에 나온 포도주가 병 모양은 거의 비슷한데 한 병에 10 유로정도 짜리와 한 병에 100 유로정도 짜리가 있었다. 차이를 물어봤다. 한 병에 100 유로 짜리는 각 포도송이에서 가장 잘 영글은 한 알 씩만 따서 포도주를 담은 거란다. 이런 고급 포도주는 양이 한정되어 있기에 더 잘 팔린단다. 한국도 농업의 고부가가치화가 되기 위해서는 산지에서 한 병에 10만원이 넘는 고급 전통주가 있어야 한다. 유럽은 포도주, 위스키, 꼬냑, 중국은 백주, 일본은 사케 등 왠만한 나라는 전통 고급술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
유럽은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독일, 포르투갈, 헝가리, 그리스 등 여러 나라에서 좋은 포도주가 나오고 각각의 특징이 있다. 이중 프랑스가 마케팅 능력과 등급 표준화 전략 등에 힘입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음식과 포도주를 프랑스가 주도하다 보니, 프랑스 이외의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독일 등의 좋은 식당에서 메뉴판과 와인 리스트가 불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꽤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 불어를 조금 알아야 식당에 갔을 때 편하다. 이런 정도의 불어를 유럽에서는 레스토랑 수준의 불어라 하며 레스토랑 수준의 불어를 할 수 있는 것은 유럽 교양인의 요건의 하나라고도 한다. 그런데 레스토랑 수준의 불어가 비유럽인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불어를 조금 알긴 하는데 메뉴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괜찮은 식당 메뉴판의 요리 설명을 한국식으로 해 보면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에 서산 육쪽 마늘을 넣고 순창 찹쌀 고추장으로 볶아서 광천 토굴 새우젓 소스를 얻힌 요리”식으로 되어 있다. 한국어를 꽤 한다는 외국인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저 돼지고기와 고추장으로 만든 요리에 이것 저것 들어간 정도로 이해하면 다행이다. 한 나라의 음식과 술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경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한국 음식은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데 몇 가지가 부족해 국제화가 거의 안되어 있고, 우리 전통주는 너무 빈약하다.
첫댓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