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 사람으로 살라(엡 4:17-24)
할렐루야!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려고 나온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1년 첫주일예배입니다.
우리는 첫날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고, 첫주일도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올 한 해를 예배 가운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예배 중심, 그리고, 말씀과 기도 중심의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귀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이 믿음의 길을 달려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모든 면에 있어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했습니다.
올해에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벗어버려야 할 옛사람일까요? 마음이 허망한 사람이 옛사람입니다.
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아멘.
“허망”이란 마음이 텅 비고, 헛되고, 목적이 없는 것, 거짓돠고 망령돤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낼 때, 그의 마음은 공허해지게 됩니다. 텅 비게 됩니다. 자꾸 헛된 것들만 추구하게 됩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목적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 텅빈 마음에 세상의 헛된 것들로 가득 채우려고 합니다. 쾌락, 재물, 권력 등 쓸데없고, 불필요한 것들로, 그의 텅빈 마음을 채우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으로 채우고 채울수록, 그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만족해지는 것이 아니고, 더욱더 공허해질 뿐입니다. 그래서, 그 공허함을 달래고자, 더 악한 일들을 저지르게 됩니다.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쾌락과 방탕과 마약에 빠져 살게 됩니다. 거짓되고 망령된 삶을 살게 됩니다. 미덥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직 예수”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따라감으로,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진리의 밝은 빛 가운데를 걸어가야 합니다. 영원한 삶,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과 생각이 허탄하고 허망해지면,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18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아멘.
총명이 어두워진다고 하는 것은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과 생각이 허탄하고 허망해지면, 이해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됩니다.
포도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지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주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복을 받으려면,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 아닌가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은혜와 복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아무 능력도 베풀지 못한다.”는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무 능력이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한다면, 미련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마음 속에서 몰아냄으로, 우리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어리석고 미련한 삶을 살면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형편을 다 아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런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만드셨고,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를 건져 주신 분이십니다. 구원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새사람이 되어,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새 사람으로 살라”는 제목으로, 우리들이 벗어버려야 할 옛사람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멀리 던져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새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싫어하실까요? 무엇을 기뻐하지 않으실까? 하나님은 죄악을 싫어하십니다.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 죄악 가운데 살면 안됩니다. 죄의 소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가인이 타락하고, 그 이후, 모든 사람들이 타락의 길을 걸어가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죄악으로 가득차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계획들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악함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너무나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들의 악한 모습을 보시고, 한탄하시고, “어떻게 할까?” 근심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모든 죄악을 다 쓸어버리시고,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헌 누더기 위에 새 헝겊을 갖다 붙이면, 그 옷은 새 옷이 될 수가 없습니다.
헌 누더기를 갖다 버리고, 새 실로, 새롭게 새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죄악을 정리해야 합니다. 죄악 가운데 있으면서, 새로운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죄악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죄악을 내 힘으로 정리할 수 없습니다. 죄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죄 용서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해, 체포되었습니다. 재판을 받게 되었고, 그가 범한 죄에 합당한 징역 10년 형량을 받았습니다. 10년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그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죄가 완전히 없어집니까? 그 사람을 죄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줄까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죄를 지어 감옥에 갔다 왔다고 하는 것이, 평생 그를 따라다닙니다. 취업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죄에 합당한 형기를 다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갑니다. 누구나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 갔다가 와도, 그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죄를 뉘우쳐도, 그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근처에라도 가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은 죄를 들킨 사람들이고,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은 아직 죄를 들키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은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지만,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은 넓은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죄인,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인이 있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으려면, 먼저, 죄를 범했다고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알아야 합니다.
죄를 범했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죄를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죄 용서함을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죄를 범했을 때, 그 죄를 그대로 고백해야,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감추면, 용서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를 범했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의 보혈만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나의 모든 죄로부터 깨끗케 하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다시 죄를 범하면 안될 것입니다.
다시는 죄악을 가까이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죄를 멀리 해야만 합니다.
새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죄악을 멀리 해야 합니다. 절대로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욥기 11:14절 말씀을 보면,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시편 기자는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시 119:133)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죄를 범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새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둘째, 원망과 불평을 버려야 합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기마병이 쫓아올 때, 그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으로 데리고 나왔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 들어왔을 때에도 늘 원망과 불평의 삶을 살았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먹을거리가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고기가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는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더 많았습니다. 매사에 불평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다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던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여러분! 성경 속에 등장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큰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 누구일까요? 아마도, 욥일 것입니다. 동방에서 큰 부자였던 욥은 하루아침에 망했습니다. 자녀들도 다 죽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욕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욕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원망할 일이 있거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고, 찬송하십시오.
하나님께 불평하는 대신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새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셋째,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소망, 소원”, “바램, 목표” 등,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욕심은 있어야 합니다.
적당한 욕심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탐욕은 안됩니다. 지나친 탐욕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0:3절을 보면,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순간, 탐욕스러운 마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우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탐욕은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도,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탐욕에 빠지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 탐욕을 채우고자 합니다. 때로는 그 탐욕을 채우려고, 자기가 가진 권력을 불법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레미야 선지자는 멸망해가는 이스라엘 조국과 백성들을 보면서,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렘 6:13)
신약 시대에,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들의 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여러분! 뭔가 바라는 것, 무엇을 가지고 싶은 그런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나친 욕심, 탐욕은 안됩니다.
때로는 탐욕을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온갖 불법과 탈법을 동원하여, 그 탐욕을 채우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탐욕의 끝은 비참합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댐들을 없애자고 하지 않습니까? 댐이나 보에 가두어 놓은 물을 댐문을 활짝 열어, 방류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물이 고여서 썩기 때문입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고기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살아 숨쉬게 하기 위해서는 댐을 허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권력도 그렇고, 재물도 그렇습니다. 자꾸만 댐을 쌓으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과 파멸을 더 앞당길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 5:3)고 말했습니다.
내 욕심이 과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댐을 허물어야 하듯이, 보를 열어야 하듯이, 내게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내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탐욕에 빠져서,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새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넷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이란, 건방지고, 방자한 것을 말합니다.
교만이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고, 우쭐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4)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만은 무서운 것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교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내가 했다.”라고 외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교만한 사람을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교만한 사람을 낮추십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삼하 22:28)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여러분!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하루 아침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 높은 자리가 영원히 갈 것처럼 행동했지만, 하루 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맙니다. 권력이라는 것이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싫어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허리를 굽히지만, 그가 곤두박질 칠 때에는, 환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굽실거리던 사람들도 다 등 돌리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큰 권력을 가질수록, 낮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이 가질수록, 겸손해져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새 사람으로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새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죄악 가운데 있으면 안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며 안됩니다. 탐욕에 빠지거나, 교만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죄악을 멀리하고,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탐욕과 교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고자 결단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복이 풍성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죄악에 빠져 살기보다는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하여 주옵소서.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와 기도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탐욕과 교만 대신 나눔과 겸손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