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도(銀粧刀)는 은으로 장식한 작은 칼이며 남녀가 몸에 지니는 노리개 혹은 호신용 칼이고 장식용으로 차기도 하고 안엔 젓가락이 들어있어 음독을 방지하기 위한 독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로 조선 시대에 사용한 도구 물품이며 언제부터 패용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라시대 고분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에서 장도 모양을 본뜬 장식칼이 순금 유물답게 그 형태가 현대까지 또렷하게 남았고, 황남대총 북분의 피장자는 여자라고 밝혀졌으므로 조선시대에 부녀자들이 호신용으로 소지했던 것과도 일맥상통이라 합니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순금 작은고리칼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작은 칼을 제조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만큼, 장도처럼 작은 칼을 패용하는 문화는 몽골 이전부터 있었음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 관련 중국 사료에도 연개소문의 성격이 포악하여 항상 칼 5자루를 차고 다니며 위엄을 과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일반적으로 칼 하면 떠올리는 대도 5자루가 아니라 비수 5개를 찬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또한 연개소문 시절 고구려에서는 비수를 던지는 '비도술'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차별과 규제가 법제화가 되어있었는데, 장도의 사용에도 신분상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경국대전에는 도자장 6명과 환도장 12명이 상의원(尙衣院)에 소속되어 궁중의 장도를 제작하였음이 기록되어 있고 이는 칼을 만드는 장인이 중앙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뜻이며 여기서 도자장은 작은 손칼을 만드는 사람, 환도장은 군용 도검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일반 서민들도 장도를 널리 사용하였고 게다가 17세기 현종 때, 유생, 잡직 및 서인남녀의 장도 패용을 금한 내용이 29책, 현종 11년(1670) 12월 29일"을 보면 나라에서 금지해도 사람들은 계속 갖고 다녔던 것 같다 라고 썼으며 영조 50년(1774)에는 전인 20여 명과 도자장 5~6명이 가게를 열었고,도자전은 장도, 은비녀, 패물, 금은가락지, 담배통 등을 팔았다 라고 기록이 전해 집니다 장도가 보급되면서 자연히 장식이 화려해졌는데, 주로 부녀자들이 애용한 매화연화입사, 주로 선비들이 애용한 백동입사, 그 외에도 물소뿔, 대모갑, 침향목, 흑각, 화리, 오동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특히 오동 장식은 오동으로 칼집과 자루를 만들고 자루에 무늬를 새긴 것으로 왜제(倭制)라고 불렀으며, 매우 정교한 기술을 요구하는 장식 입니다《승정원일기》의 '명나라 사절이 요구한 물건중 은장도의 수량을 채우지 못해 근심했다'는 기록이나, 《열하일기》에는 예단물목으로 석장도 37자루, 초도 284자루, 환도 7파, 은장도 7자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윗나라 중국과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인기 있었던 듯합니다. 조선시대의 부녀자들이 애용하던 3대 소지품으로 거울, 빗, 장도가 꼽혔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여인의 정절을 지키는 상징적인 성격이 강화되었습니다. 무슨 임란 당시 자결이 아닌 공격용(?)으로 사용했으면 열녀로 선정 되지 못했느니 하는데 열녀 담양국씨의 사례에서 보듯 전혀 아닙니다. 다만 열녀는 죽음으로 정절을 지켜야 주는것이었으므로 자결이 더 확실히 받을 수 있었던것. 최명길은 환향녀를 두둔하며 하던 말이 기록에 전해 집니다. 정절과의 관계에서 은장도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지, 은장도 자체는 생활 도구로서 남녀 가리지 않고 다용도로 쓰던 작은 칼일 뿐이며. 따라서 자결용 보다는 최후의 방어수단으로서 사용된 예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현대의 맥가이버칼이나 커터칼, 가위(하다못해 눈썹칼이나 시침가위라도) 같은 걸로 생각하면 되고 평소에 그런 공구를 소지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 갖고 다니는 것일 리는 없고, 자살용으로 갖고 다니는 것은 더욱이 아닐 것 입니다. 그러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수중에 그것밖에 없다면 그거라도 들고 자기방어를 시도하는 것이 당연히 자연스럽습니다.(물론 적들이나 괴한들이나 오랑캐가 심각하게 공격을 하면 자결할 때 쓰기도 합니다)전문가들도 자결용이라는 말을 부정하고 하지만 잘못 아는 사람들이 여성이 단도를 소지했다니 멋있다며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마저 은장도를 자살용으로 들고 다녔다는 오해를 퍼뜨리곤 합니다 반면 낙죽장도는 삼국시대부터 호신용으로 사용되었으며,선비들이 애용하여 남성적이며 양반 선비 문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특이하고, 칼집이 대나무이기 때문에 정절을 중시하던 선비들과 규수들이 애용하였습니다 은장도의 재료로는 칼을 만들 때 쓰이는 강철을 이용해서 칼날을 만들고 숫돌로 갈아서 날을 세우고 손잡이와 칼집은 금과 은 대모(거북이 등 껍질)호랑이 이빨 상아 옥 물소뿔과 소뿔 대추나무 오동나무 먹감나무 백동으로 만들고 낙죽장도의 재료는 일곱마디 이상의 대나무, 특수강철, 먹감나무, 소나무, 소다리뼈, 소머리뼈, 송진, 자개, 명주실, 금, 은 등을 사용하며 낙죽이란 대나무 표면에 구름, 산수, 사슴, 매화등을 인두로 글씨나 무늬을 새겨넣는데, 글씨는 한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진 : 광양 은장도 & 낙죽장도 & 칠성패도
낙죽장도
은장도의 종류
첨사도 : 젓가락이 같이 세트로 있는 칼이며 옛날 양반 사대부가 여인들이 음식에 독이 들어있거나 안 들어있거나 확인할 때 쓰는 칼이다
을자도 : 을(乙)자 모양으로 생겼으며 우리가 흔히 잘 아는 은장도 중 하나다 사극 소품에서 잘 나오며 여자들이 주로 사용했다
죽절도 : 손잡이와 칼집을 대나무 마디 모양을 표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맞배기도 : 칼집과 손잡이가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형도 : 원형 모양의 은장도이며 은으로 장식을 하였다
조각도 : 은장도 손잡이와 칼집을 조각한 칼로 주로 선비들이 사용하였으며 자신이 좋아 하는 글씨나 그림을 조각으로 새겨서 사용했다고 한다
팔각도 : 팔각형 모양의 은장도로 또 따른 이름은 팔모도다 주로 남성들이 선호하던 은장도다
사각도 : 사각형 모양의 은장도로 이것도 역시 팔각도와 똑같이 주로 남성들이 사용하고 선호했다
첫댓글 다음시간에는 옛날 안경과 주머니를 소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