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조씨(豊壤趙氏)
풍양(豊壤)은 경기도 양주(楊州)의 옛 지명으로 원래 백제와 고구려에 속했을 때는 골의노현(骨衣奴縣)이라 불렸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황양(荒壤)으로 고쳐 한양군(漢陽郡)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풍양으로 고쳐 양주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포주(抱州: 抱川)에 이속되었다. 1427년(세종 9)에 다시 양주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에 양주군으로부터 신설된 남양주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이 통합하여 남양주시가 되었다.
풍양조씨(豊壤趙氏)의 시조 조맹(趙孟)은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다.《풍양조씨세보(豊壤趙氏世譜)》에 따르면 그의 원래 이름은 조암(趙巖)이며 한양부(漢陽府) 풍양현(豊壤縣: 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사람으로 천마산(天摩山) 아래 은거해오다가 태조 왕건(王建)을 만나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통합삼한벽상개국공신(統合三韓壁上開國功臣)에 올라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삼고 출생지인 풍양(豊壤)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시조 이후에 세계가 실전되어 천화사전직(天和寺殿直)을 지낸 조지린(趙之藺)을 중조로 하는 전직공파(殿直公派)와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조신혁(趙臣赫)을 중조로 하는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분류되어 세계가 이어졌다.
묘소 입구 안내 표지석 묘소 아래에 있는 신도비(좌)와 묘역 개수 기적비(우)
신도비는 장유(張維)가 찬하고 박미(朴彌)가 전액하였다.
묘소 오르는 길
시조 묘소 전경-뒤로 공빈김씨의 능인 성묘(成墓)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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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癡叔堂 원문보기 글쓴이: cheesookd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