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그룹 {형람서원}에서 고경태 목사님이 저에게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은 ‘능동 순종, 수동 순종’이라는 어휘 창안자를 밝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칼빈 선생님 제자 베자 목사님께서 사용하신 용어임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고경태 목사님이 내세운 것이 우리나라 장로교가 믿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는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이라는 용어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이 두 용어는 없습니다. 그러나 “순종과 죽음”이라는 어휘로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을 표현했습니다.
{돌트신경}은 중생을 설명하면서 중생 시 “은혜의 주입”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물론,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의의 주입’이라는 용어는 로마 천주교 전유물이 아닙니다. 칼빈 선생님께서도 {기독교 강요}에서 쓰신 용어입니다.
중세 로마교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 순종으로 얻으신 의’는 인정했지만 ‘그 의의 주입’은 부정했습니다. 즉, 그 의는 율법 아래 인간으로 성육하신 그리스도 자신만을 위한 의로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은 ‘그리스도 능동 순종의 의’는 인정했지만 ‘그 의의 전가’는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 수동 순종의 의, 그 의의 전가’만을 인정한 알미니안 피스카토르 목사와 논쟁하신 베자 목사님께서 사용하셨던 용어입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총회에 참석하셨던 17세기 스코틀랜드 대표 청교도 신학자, 이른바 “장로파” 청교도 신학자 사무엘 루더포드 목사님께서 {생명언약 제1권}과 {생명언약 제2권}에서 쓰신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정치체제 문제로 회중파 청교도 신학자들께서 선언하신 {사보이 선언}, {사보이 선언}에 적힌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은 용어 사용 문제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보다 오히려 칼빈 선생님 제자 베자 목사님 신학, 개혁교회 신학을 회복한 용어입니다.
그런데 ‘수동受動’은 ‘수난受難’의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수受’는 ‘당할 수’입니다. 그러므로 ‘수동 순종’은 ‘수난을 당하신 순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안토니 후크마 목사님만이 아닌, 서철원 목사님 제자 문병호 목사님께서는 ‘수동: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다른 것 작용을 받아 움직이는’이라는 뜻 때문에 ‘능동 순종’을 율법을 “행하신 순종”, ‘수동 순종’을 수난을 “당하신 순종”으로 표현하십니다.
이 점에서 질문드립니다. 아래 링크 글에서 고경태 목사님은 “개혁파 신앙고백서 안에는 ‘그리스도 능동 순종의 의의 전가’는 없습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능동 순종의 의, 그 의의 전가’를 부정하는 알미니안 신학에 저항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능동 순종과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수동 순종이 낳은 의’ ‘그 의의 전가’를 고백한 ‘{스위스 일치신조}(1675년)’는 개혁파 신앙고백서입니까,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