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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40630주일오전예배/김동건 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
성경 | 사도행전 9:1-9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사도행전 9:1-9)
녹취자료 |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모든 성도의 가슴속에 밀물이 밀려들 듯이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참된 동기와 헌신의 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찬송 가사를 보면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겠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이 부분이 약해지면 신앙생활이 종교생활로 돌아가고 맙니다. 교회 다니는 것도 의무감에 다니거나 자기의 유익 때문에 다니겠죠.
복음과 종교는 다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의 목적은 자기중심, 유익이잖아요. 수학능력고사를 치기 전에 능인선원에 수천 명이 몰려가서 시험 잘 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나, 큰 교회에 모여 수백 명의 성도가 우리 아이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나 사실 비슷하죠. 우리 신앙생활의 참 목적이 무엇인지,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때문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종교와 같이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어느 한 분이 절에 다니시다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왔어요. 이분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슨 기도를 하나 궁금해서 자세히 들어봤더니 세 가지를 기도하더랍니다. 건강 달라고 기도하고, 자식 잘되게 해달라고 하고, 부자되게 해달라고... ‘어? 내가 절에서 했던 기도 내용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왜 이스라엘이 노예, 속국, 포로되었나요? 복음을 놓치고 다른 것을 구했거든요. 그들이 왜 우상숭배했나요? 단 한번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적은 없어요. 하나님과 우상을 같이 섬겼거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겼어요. 이런 수준이 현재 교회의 수준인 겁니다. 그 결과로 노예, 포로, 속국으로 팔아버리셨어요.
여러분 인생의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복음 가진 교회에 출석하면서 계속 실패가 찾아옵니다. 예수 믿으면 형통할 줄 알았는데 되는 일이 없어요. 그리고는 하나님을 원망하죠. 심지어는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해요. 오늘 우리는 왜 나의 인생이 실패하고 안 되는지... 하나님은 왜 우리 기도를 안 들으시죠? 틀린 것을 구해서 안 주시는 것이지, 능력이 없으셔서 안 주시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체험해야 합니다. 제가 지난 두 달 동안 가장 많이 묵상한 부분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그 은혜가 마음에 막 밀려오는 거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너무나 감격스러웠어요. 우리에게 이 부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나요? 로마서 5:6,8,10절을 보면 우리가 연약할 때에! 구원받을 능력이 내게 전혀 없어요. 오히려 죄인이요, 원수된 나에게 은혜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어떻게 구원해주셨죠? 아무 조건없이 예수 핍박자를 사랑과 은혜로 건져 구원해주셨어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다고 표현한 것처럼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지는 만큼 내 가슴속에 구원의 감격이 넘쳐나는 겁니다. 요한일서 4:8절을 보면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4: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도 내 안에 거하시지 않아요. 에베소서 2:8 말씀에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죠?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내가 구원받는데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한 것인가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아무 조건이 없어요. 우리가 구원받을만한 조건이 있나요.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나라에 도둑놈이 창궐했어요. 그래서 임금이 엄령을 내렸어요. 누구든지 도둑질하다가 걸리면 두 눈알을 뽑는다고. 그동안 아무도 도둑질을 못 하는거죠. 걸리면 두 눈알이 뽑히니까. 그런데 도둑놈 한 놈이 잡혔어요. 보니까 그 나라의 왕자가 도둑질하다가 걸렸어요. 자, 왕명은 뭐죠? 도둑질 하면 두 눈알을 뽑아야 해요. 그래서 임금이 벌건 불을 피워 인두를 꽂아놓고 아들을 결박시켜 그 앞에 불러내는거죠. 이제 그 아이가 아빠 나는 이 나라의 왕자이지 않냐고. 다음 대를 이을 왕자인데. 아버지가 불에 달군 인두를 가져다가 아이의 눈 하나를 지졌어요. 그 다음에 다시 인두를 들어서 또 가니까 아이가 막 소리를 지르죠. 그때 임금이 뭘 하는 것인가. 그 인두를 가지고 자기 눈 하나를 지져요. 이게 하나님의 공의요 사랑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해죠. 그 임금이 뭘 나타냈죠. 공의도 지키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사랑도 나타낸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우리를 건져 구원해 주신 것이에요.
정말 더 감사한 것은 나의 실수나 나의 잘못이 있는데도 날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기다려주시고 용납해 주세요. 탕자같은 나를 하나님은 기다려주시고 응답하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들. 그것으로 끝난 것인 가요.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구원의 축복을 날 위해 다 준비해 놓으셨어요. 성도의 신분과 권세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놀라운 신분으로 아무 조건없이 이 모든 축복을 내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축복을 사실적으로 누리게 될 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서 나의 생명 다하기까지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드린 예배가 진짜 예배예요.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등등하여,
예수 만나기 전에 사울의 모습입니다. 예수 핍박자요 복음 원수 노릇하고 있는 사울의 모습이죠. 독기를 품고서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잡아 가두기 위하여서 다메섹에 올라가는 모습이죠. 바울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 각인 뿌리 체질되어서 자기 확신에 차있는거죠. 내가 믿는 유대교, 율법주의 이것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이것만이 참된 진리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해서 구원받는다고. 우리 민족이 왜 포로 속국되고 망한 것인가. 이걸 안지켜서 망했다고. 진단이 틀린거죠. 틀린 진단입니다.
이 사상과 반대 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을 막는 겁니다. 사울은 당시 바리새인의 최고 학자가 누구인가 가말리엘입니다. 우리나라는 학군이 있죠. 강남 학군이 좋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강남 땅값이 비쌉니다. 학군이 좋아가지고.. 근데 유대 나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는 그 동네가 값이 가장 비싸요. 그래서 사울의 부모도 가장 위대한 스승이 있는 가말리엘한테 이제 사울을 보내가지고 교육 받게 만든 것이란 말이죠. 그를 통해서 율법을 배웠고 율법을 의로써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바울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 행했던 자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차기 바리새인의 대표 주자로 그래서 바리새인 사회에서 자기 열심을 나타내야 될 그런 입장에 있는 것이 사울이였어요. 그래서 예수 믿는 자를 잡아 가두고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마음에 확신을 가진 거예요. 모세의 율법을 파괴하는 행위는 가장 큰 범죄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기꺼이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서서 죽이도록 만들죠. 그리고는 이 유대교를 약화시키는 그 이단 사상들을 완전히 싹을 잘라야 된다고 그래서 다메섹으로 지금 올라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사울의 내면 속에는 갈등이 있어요. 스데반의 순교를 봤거든요. 사도행전 6장 15절을 보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도행전 7장 55절, 56절을 보면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59절에서는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스데반의 죽음 앞에서, 그 경건한 죽음 앞에서 사울은 어마어마한 마음의 충격을 받은 겁니다. 어떻게 저렇게 천사 얼굴 같은 모습으로 그 하나님을 보았다고 소리친 그 앞에서 이게 사울은 마음에 “아니야 저럴 수 없어” 이게 더 마음에 강하게 부닥쳐지는 겁니다. 이거 용납할 수 없어요. 아니야! 저 스데반은 마땅히 죽을 죄인이야.. 그래서 사울은 자기 마음에 이런 갈등 때문에 더더욱 더 살기등등하여서 올라가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그 사울을 꺾는 장면이 나오죠. ’사울아 사울아! 네가 나를 왜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나님은 왜 이렇게 사울을 불러주신 것인가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만들기 위하여서, 제가 인도 선교를 하면서 만났던 한 분이 있습니다. 힌두교의 승려출신입니다. 가장 최고 계급인 브라만출신 이었는데 이분의 어머니가 죽을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는데 힌두에도 병을 낫게 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어머니를 낫게 하기 위하여서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병 차도가 없는 거에요.그런데 어느날 답답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영국에서 온 어느 청년이 자기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에요. 참 하나님의 일이었죠. 이 사람이 복음을 듣는 중에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믿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 믿고서 집에 돌아가서 자기 어머니를 위하여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아버렸어요. 이분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죠. 이렇게 해서 이분이 개종을 하니까 처가쪽에서 자기의 부인, 아이들까지 저 사람이 미쳤다고 다 데려가 버린 것이에요. 그래서 혼자 남아서 신학 공부를 하고, 그분이 방송선교를 하면서, 제가 17년 전에 한국에 한번 모시고 온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변화의 역사를 일으킨 것인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는 자가 예수님 만나게 되어지면 오히려 최고의 일꾼으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믿으면요.
2.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나님은 구원역사에 사울 같은 사람이 필요했기에 사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지난번 제가 파키스탄 가기 전에 선교헌신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한 사람의 전도자를 세우기 위하여서 그 인생 전체를 두고 준비하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의 순교에 사울을 앞장서게 만드시고, 예수쟁이를 잡아 죽이려하는 그 마음을 품게 만들어서 그 다메섹을 올라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만들고,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에게는 일평생 잊지 못하는 사건이었어요. 사도행전에도 이 사건을 두고 간증할 때마다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갈라디아서를 보면, 거기에 디모데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때에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난 것인지?, 그래서 바울의 가슴속에는 받은 은혜만 생각을 해도 너무 감격스러워요.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자기가 예수를 핍박하는 것인지는 몰랐거든요. 자기는 가장 잘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것이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 바울에게 찾아오게 된 것이죠.
그리고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이 소리는 누구만 들었죠? 사울에게만 들렸어요. 같이 간 사람들은 듣지 못하고 누구만 들었어요? 사울만 들었어요. 오늘 우리가 다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은 다릅니다. 신앙생활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배 시간에 사울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우리 또한 예배시간에 뭐하는 시간이 돼야 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예배시간마다, 말씀 묵상 시간에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후예배시간에 좀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장래 일이나 성취될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바로 하박국 2장 1절에 있는 것처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여러분 이 자세로 우리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설교시간을 여러분이 목사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기를 원하는,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그 자세를 가질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바울을 선택하신 것인가?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쓰기 위하여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시죠. 바울을 어떻게 준비하셨죠? 바리새인으로서 구약성경에 능통한 학자가 되도록 만드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도, 다음주 메시지에 잠시 나옵니다. 아라비아로 내려가서 3년 동안 말씀을 연구하고 돌아오게 돼요. 하나님이 다 준비 시키시는 것이죠. 사울은 바리새인 중에 가장 선두주자이고, 차기 대표가 될 자입니다.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다 알아요. 정말 인정받고, 촉망받는 분이었어요. 거기에다 바울은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것인가 하면, 다소라는 곳인데 다소는 3대 문학도시중에 하나가 다소입니다. 거기서 바울은 무엇을 배운 것인가? 철학과 문학을 다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바울 서신을 쓸 수 있는 배경이 되도록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죠. 그리고 집안이 귀족 집안입니다. 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로마 경내에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그리고 뭐까지 할 수 있는? 로마 황제 앞에 설 수 있는 권리까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은 그를 이렇게 준비하셔서 세계복음화를 준비하신 모습을 볼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모세를 왜 왕궁에 보내서 40년동안 왜 최고의 학문을 공부하게 만든것인가요? 결국엔 사도바울에게 13권의 서신을 기록하게 만든것처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서 기록하게 만든 배경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이 사울로 하여금 정말 하나님 만나는 극적인 체험과 함께, 원색적인 복을 깨닫게 만들어서 하나님 일에 쓰임 받는 모든 준비를 하셨죠. 사울의 회심하는 당시를 보면, 북한의 김정은이 ‘나는 더 이상 수령 안 하겠다’고, 그리고 다 버리고 남한에 내려오는 것과 같은 수준이에요.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바울의 회심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성도 개개인의 삶을 돌이켜 봅시다. 각자마다 지나온 환경들, 학업, 직업, 실패한 경험, 그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오늘날 전도자로 세우기 위한 계획들이 다 들어있어요. 각자마다 다 있는 것이에요.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깊이 나 자신을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이 나같은 자를 전도자로 세우기 위하여서 오래 참으시고, 그동안의 모든 경험들을 발판되도록 만들어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쓰시기 위하여 만들어 주셨구나. 여기에 대한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감사와 감격이 제 마음에 넘쳐났어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전도자 한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서 많은 경험들과, 많은 어려움과, 많은 실패들을 허락하신 것이에요. 그럼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건가요? 바로 날 뭐하기 위해서? 전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찾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찾으셔야 하는 겁니다.
3.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더니,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더니. 아나니아가 어떤 분인가 여러분들이 아셔야 합니다. 바울이 아나니아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사도행전 22장 12절을 보면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고 아니니아라 하는 이가”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아나니아를 이르면 가장 경건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신뢰한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에요. 아마 아나니아는 마가다락방 현장에 있지 않았겠나 생각을 갖습니다. 그가 스데반의 일로 흩어졌을 때에 어디로 갔을까요? 다메섹에 가서 거기서 망대를 세운 사람이고, 미션을 세우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다메섹에서 사울을 회심시키기로 작정하신 건가? 바로 사울의 회심에 꼭 필요한 자가 누구였기 때문에? 아나니아였기 때문에. 아나니아는 사울도 인정하는 유대 사회에서 경건하고 칭찬받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본인이 존경하고 인정받는 그 사람이 먼저 예수 믿고 자기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라 말입니다. 여러분 이 복음 전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 내게 복음 전할 때에 그 복음이 파워가 있어요.
제가 인하병원에서 복음 운동을 할 때 거기에 의사 분을 만났는데 서울대 의대를 나와 가지고 외과 의사인데 이분이 수술을 너무 많이 하다가 완전히 이제 정신이 이상해서 술주정뱅이에 알콜 중독이 됐다가 이분이 복음을 만나고 완전히 이제 거듭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이분은 외과 의사가 목적이 아니에요. 환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게 직업이고 외과의사는 부업이야. 이 분이 환자들에게 당신이 예수 믿어야 병난다 그러면... 환자들이 그 말을 다 믿어요. 그래서 그분이 나한테 늘 연락을 해요. 몇 호실에 있는 누구, 가서 복음 전해달라고 자기가 이야기 다 해놨다고. 정말 복음 전하기 쉬워요. 왜? 환자는 누구 말을 잘 들어야 되죠? 의사 말을 100프로 믿으니까. 쉽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왜 여러분 자녀들이 엘리트가 왜 되어야 하는 건가? 자식이 공부 잘하고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분들이 그걸 기도 제목으로 잡으셔야 됩니다. 내 자녀가 엘리트가 되고 정말 사회에서 인물이 됐는데 보니까 예수님 믿는 자야. 이게 파급 능력이 있는 것이에요. 단순히 내 자식 공부 잘해 이 수준이 아니에요. 복음 가진 여러분의 자녀를 바르게 세운다면 그것이 전도의 큰 문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 자녀를 양육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아나니아가 기도하고 있을 때 환상 중에 말씀을 합니다. 아나니아야, 주여 내가 여기나이다. 직가라는 거리에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다소사람 사울을 찾으라. 아나니아가 9장 13절에 대답을 합니다.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고 또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결박하기 위하여 왔나이다.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9장 15절 말씀에서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나님은 사울을 세계복음화 때문에 준비한 자라고 말씀을 합니다. 근데 아나니아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죠? 전혀 예수 믿을 자도 아니고 전도 대상자로 안 보이는 거란 말입니다. 제가 파키스탄 가기 전에 6월 2일날 메시지를 하면서 나의 사마리아를 찾아라. 여러분들이 그렇게 메시지를 했습니다. 바로 복음의 사각지대 재앙지대에 있는 버려진 현장을 찾아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여러분 속에 저 사람 예수 믿을 사람이 절대 아니야. 저 사람 예수 믿을 가능성이 0프로인 자를 찾으라고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아마 여러분 주변에 있을 겁니다. 그죠? 저 사람 예수 믿을 사람이 절대로 아니야. 타 종교인들이나 스님이나 무속인이나 점쟁이나... 타 종교에 완전히 심취해 있는 이와 같은 자들. 특별히 예수 믿는 자를 미워하고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는 자가 있다면 오히려 그들 가운데 오늘 사울 같은 자가 있다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현장 속에 숨겨져 있어요. 오늘 우리가 찾아야 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힘들게 하는 분이 있나요? 저 사람은 죽어도 예수 안 믿을 자야. 그게 여러분 생각입니다. 누가 그렇게 생각했죠? 아나니아가.. 하나님은 준비해 놓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찾으셔야 돼요. 아프리카 노예를 잡아다가 아메리카에 팔아 먹었던 노예 상인, 존 뉴톤. 나중에 목사가 돼요. 주지 스승, 대주승의 아들로 태어나서 주지 노릇 하고 있던 그 김진규 목사. 옛날 그 기도수첩에 나왔던 글을 쓰셨던 분이에요. 이분도 예수 영접하고 이분도 예수 믿었어요. 하나님은 예비하신 이 시대의 사울을 찾으라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왜 찾아야 될까요? 그분이 정말 에수 믿게 되면은 누구처럼 될까요? 사울처럼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자로 바꿔지는 겁니다. 예수를 극열히 반대한 만큼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더 바뀌어지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 시대의 남은 자로 부르신 건가요? 남은 자라는 것은 두가지로 우리가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복음을 체험하고 누리는 자가 남은 자의 첫 단추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뭐가 바뀌어질까요? 복음 안에 정말 모든 답이 다 들어있구나.. 그래서 오늘 중직자 메시지 하면서 잠시 이야기 나눴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에게 첫 번째 해야 될 것이 바로 무엇인가? 여러분 인생 가운데 문제를 하나님이 왜 주셨을까요? 이것 체험하라고..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맞다.. 그 안에 모든 답이 다 들어있다.. 이 체험을 하면 여러분들의 눈이 열려져요. 세상에 이 한 가지가 없어서 망하는 것이로구나.. 정말 이 복음을 전해야 되겠구나 하는 이 마음이 내게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남은 자의 삶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이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정말 내가 복음을 누리고 증인 되기를 원하는 이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예배 시간에 임하면서 오늘 여러분들이 결단하셔야 됩니다. 내가 여기에 인생이 쓰임 받아야 되겠다.. 6월 첫주에 여러분들에게 나의 사마리아를 찾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은 누구를 찾아야 될까요? 저 사람은 절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야.. 어떤 의미에서는 저 사람은 예수 안 믿었으면 좋겠다는 그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여러분들이 그 사람을 찾으셔서 그 한사람 때문에.. 아나니아가 한 것은 사울을 개종시킨 그 하나 했어요. 아나니아가 한 가장 큰 일이 바로 무엇인가? 사울을 개종시킨 것이에요.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그 변화의 역사 때문에 세계 역사가 바뀌어지게 되는, 그 인물을 우리에게 붙이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이에요. 정말 기도하시면서 여러분들이 한주간동안 그 사람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 깨닫고 어찌하여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인지에 대한 이 감사와 감격 속에서 이제는 매 예배 시간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이제는 현장에서 정말 저 사람은 예수 믿을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0%의 사람을 내가 찾아서 바로 그 사람이 복음 받을 때에 사울같은 사람이 될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먼저 나 자신이 복음을 누리고 현장 바라보며 이 마음으로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도록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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