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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다음 등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군요.
[진황도에 대한 간단한 소개]
진황도(Qinhuangdao)는 중국 하북성 동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요녕성과 발해만(渤海灣)에 접한 도시이다. 진황도라는 이름은 진시황제가 늙어 죽지 않는 불로장생약(不老長生)을 얻기 위해 선남선녀를 파견했던 항구도시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중국 제2의 항구로 경제기술 개발구는 진황도 부두로부터 겨우 1.5㎞ 거리에 있다. 원래 진황도라는 말은 진나라 시황제가 이곳을 순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동항으로서 한국-중국 간의 화물 운송과 중국 북부의 연항항로서 중요한 지정학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수도인 북경으로부터 281㎞, 천진시로부터 245㎞ 떨어져 있어, 관문도시와 경제기술 개발구의 특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매년 600만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으로 피서휴양지인 북대하(北戴河)와 만리장성의 최 동단의 산해관(山海關)이 진황도시 관할지역에 있다. 최근에는 북경까지 2시간만에 주파하는 고속열차의 개통으로 더욱 관문으로써의 역할이 보강되고 있다. 이 두시간이면, 천진에서 가는 소요시간이랑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배를 타고 북경을 가깝고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관문도시로 유명한 이 곳은, 현재 한중합작으로 만들어진 진인항운(진인페리)이 인천-진황도 구간을 운항 중이며 북대하(北戴河), 맹강녀 마을, 산해관(山海關) 등이 볼만하다.
2000년 강동구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태양청 시장 중심에 서울 강동구 강동로란 명칭의 한국명칭 거리가 있다.
진황도의 기후
중국에서 이름난 피서지의 하나인 진황도는 온대 계절풍 기후에 속해 있으며 기후가 온난하고 여름철에 시원하다. 또한 겨울에도 혹한은 없으며 가을에는 공기가 상쾌하며, 연평균기온은 10℃ 전후로 5월~10월이 관광하기 가장 적합하다.
참고 : http://www.qhd.gov.cn/newdefault.asp
다음은 다음블로그에서 검색한 내용이네요.
진황도 한식당
대부분 조선족들이 운영하며, 한국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곳은 없고 가격도 비싸다. 같은 비용이라면 중국 음심점에서 먹는 것이 훨씬 더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진황도는 바다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레스토랑에서 이러한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으며, 북대하나 산해관만큼 다양하지는 못해도,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즐비하다.
북대하에서는 게요리나 바다가재, 오징어 등이 추천할만하고, 산해관에서는 중심가에 좋은 식당들이 있어 합리적인 비용으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살거리
주요 쇼핑 포인트로, 태양청 시장, 문화로에 위치한 진황도 야시장, 진사조 등이 있고, 외국인들에게는 바가지를 씌울려고 한다. 일달은 무조건 절반은 깍고 본다. 태양청 시장 쪽에는 중저가와 유명의류가 많고, 골동품이나 짝퉁시장도 있다. 주로 젊은이 취향의 상품들이 많아서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진황도에서는 다양한 품질과 다양한 제품의 진주가 많으며 꼼꼼히 체크해보고 사면, 의외로 좋은 진주를 살 수 있다. 가짜 제품도 종종 있으니 조심해서 쇼핑을 해야 한다.
산해관 근처에서는 진주 제품과 더불어 수공예제품들이 많으니 기념품을 골라서 살 수 있다. 북대하에서는 비록 고급제품은 못되더라고 조개껍질을 이용한 공예품이나 수공예품들을 해변가 상점이나 노점에서 살 수 있다.
[다음은 중요한 관광명소들입니다.]
신오해저세계(秦皇岛新澳海底世界)
2000년 4월 30일에 정식으로 개장한 신오 해저세계는 중국, 싱가포르, 이탈리아가 합작하여 건설한 해양생물 위주의 전시관으로, 과학교육, 환경교육, 음식, 쇼핑, 휴양시설 등이 단일화된 3,000평방미터의 현대적인 대형 종합박물관이다.
펭귄관, 바다표범관, 해저터널, 공연휴식관, 과학교실 및 해양 액세서리 및 음식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해양생물 전시 뿐만 아니라 산호어군과 샤크 를 비롯한 귀여운 해마와 재미있는 바다표범 등을 만날 수 있다. 100미터 길이의 해저터널에서는 오색 찬란한 산호군과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각종 물고기들을 접할 수 있다.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공연장으로, 돌고래, 바다사자가 있으며 해저세계의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바다사자의 디스코, 물구나무서기, 장애물 넘기, 뽀뽀하기와 돌고래들의 수중 발레, 축구, 춤추기 등의 쇼는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일반 여행자들에게는 목적지로 권하기 좀 그렇고, 수학여행이나 아이가 있는 어른들에게는 가장 좋은 목적지이다.
- 입장료 : 60元 (2008년 4월 기준)
http://www.qhd-xinaouww.com/
산해관, 천하제일관 - 만리장성의 동쪽 끝
한무제 때는 돈황의 서북쪽에 있는 옥문관(玉门关) 주변까지 장성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주천(酒泉) 근처에 있는 가욕관성(嘉峪关城)이 장성의 서쪽 종점이 되었다. 동쪽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산해관은 북으로는 산을, 남으로는 바다를 바라본다고 하여 산해관(Shanhaiguan)이라고 명명되었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관성으로 원래는 4개의 성루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높이 13.7m에 폭 10m의 진동(鎭東)만이 남아있다.
노룡두(Old Dragon Head, Laolongtou)는 산해관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만리장성의 동쪽이 끝나는 곳으로 바로 바다에 인접해 있다. 명나라 초에서 명나라 말기에 이르는 260여년 동안 노룡두는 끊임 없는 보수작업을 거쳐으며, 차츰 지금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대에 와서 나라가 만리장성 안팎으로 모두 통일되자, 노룡두는 군사방어의 역할 대신 황후장상, 문인협객들의 관광 명승지로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청나라가 건국 후 강희, 옹정, 건륭 등의 황제가 여러 차례 노룡두를 다녀갔으며, 그 중 건륭황제는 4차례에 걸쳐 이곳 누각에 올라 바다를 조망하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 가는 길 : 34번이나 25번 버스를 타고 라오롱투잔(Laolongtou zhan)에서 하차
- 개장 : 8AM~6 PM
- 입장료 : 50元(3월~10월), 45元(11월~2월) (2008년 4월 기준)
천하제일관(天下第一关)
천하제일관은 산해관성(山海关城)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산해관성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명나라 홍무 10년(1381년)에 세워졌다.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으로, 매우 중요한 군사적, 지리적 요충지이며, 화북지방에서 동북지방으로 통하는 관문역할을 하였다.
- 요금: 산해관 40元(장성박물관 포함) / 노룡두(老龙头) 50元 (2008년 4월 기준)
북대하(北戴河)
북대하(北戴河, Beidaihe)는 모택동이 노후에 말년을 보냈던 별장이 있는 지역으로, 모택동은 80세가 넘은 이후에도 이곳에 종종 카메라에 자신을 비추기도 했다. 모택동뿐만 아니라 중국 당서기 등 고급관료들의 여름별장이 있는 곳이 바로 북대하이다. 우리 나라 같으면 청남대가 있는 지역이라고 할만하다.
북경(北京)에서 동쪽으로280km, 천진(天津)에서는 243Km 떨어져 있는 진황도는 진시황제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약을 얻기 위해 찾았던 항구도시이다. 진황도의 서남쪽에 위치한 북대하는 물 구경이 힘든 북경 주변의 대표적인 해변리조트이다. 호화 별장지로 개발되면서 휴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푸른 바다와 황금빛 모래사장에는 20여개의 해수욕장이 있으며, 매년 여름마다 찾아드는 사람들로 붐빈다.
- 교통: 북대하기차역(北戴河火车站)에서 5번 버스 / 진황도기차역(秦皇岛火车站)에서 3, 4번 버스 북대하해변역(北戴河海滨站)에서 하차
진황구선입해처(秦皇求仙入海處)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산해관 진황도시 인근에는 진시황과 관련된 유적들이 종종 발굴되곤 했다. 진황도 남쪽인 북대해에서는 1984년부터 진시황 행궁의 발굴작업이 시작되었는데, 해항구(海港区) 동산 해변에서 진시황 32년 (BC 215) 서복(徐福)으로 하여금 삼신산(三神山)의 선인(仙人)을 찾아가 불로불사약(不老不死藥)을 얻어오도록 떠나보냈다는 내용의 부서진 묵은 비석을 발견하였다
토막나 묻혀 있던 이 비석의 건립 연대는 1477년 명나라 때이고, 비명은 씻기어 잘 보이지 않으나 '진황구선입해처(秦皇求仙入海處)'인 것 같다 하여, 전설로만 처리했던 불사약 고사 사적의 조성 사업을 진행중에 있었다.
그 불로불사약이 자란다는 삼신산 가운데 봉래(蓬萊)가 금강산이요, 방장(方丈)이 지리산이며, 영주(瀛州)가 한라산이라는 설도 있다. 남해(南海)에 있는 금산(錦山)의 부소암에는 가로 1미터 세로 50센티미터의 이해할 수 없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바로 불로장생약을 구하고자 서복(徐福)이 이곳을 지나갔다(徐福過此)는 뜻으로 구전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구마노우라에서 서복(徐福)이 한반도를 거쳐 그곳에서 죽었다 하여 무덤까지 만들어 놓았으며, 더더욱 걸작은 서복(徐福)이 애써 구해 놓고서 못 가지고 돌아간 천대도란 불로불장생약이 그 서복의 무덤에서 자라 예부터 이 지역에서 약재로 쓰여 왔다는 것이었다.
- 교통: 8번 버스
- 요금: 30元(2008년 4월 기준)
최초로 불로장생약을 찾아 파견된 사람은 연나라(燕) 사람 노생(盧生)이었다. 노생은 갈석(碣石) (현 진황도)로 바다에 나갔는데, 선약을 찾지못하였다. 노생이 선약을 찾지 못하자, 진시황은 서복(徐福)을 파견하였으나, 서복은 봉래선산에 가서 선약을 보고 왔으나 산에 있는 신선이 선물이 적다하여 선약을 주지 않고, 뛰어난 남녀와 목고을 선물로 바쳐야만 한다고 하여, 즉각 동남동녀 3천명과 목공을 주어 선약을 구하라고 하였다.
바다에서 한동안 보낸 서복은 다시 진시황에게 가서 바다에 교룡대어(蛟龍大魚)가 있어 배가 선산에 가는것을 막았기에 선산에 가려면 활쏘기에 능한 사람과 선진적인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마침 그때 진시황이 꿈을 꾸었으니 그 꿈이 해신과 크게 싸우는 꿈이였다. 점술가의 해석에 따르면 그 해신이 바로 교룡대어였다. 하여 서복의 말을 그대로 믿게 된 진시황은 또 서복에게 활솜씨가 뛰여난 사람들과 무기를 하사하고 친히 그들을 이끌고 바다에 갔다. 배가 지부도(芝罘島)근처까지 갔을 때 과연 큰 고기 한마리를 보았다. 친히 활을 쏘아 큰 고기를 잡은 진시황은 이번에는 문제 없이 선산에 갈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선산도 선약도 못 찾은 서복이 감히 진시황에게 아뢰지 못하고 3천 동남동녀와 목공을 데리고 일본에 도주할줄이야. 그때로부터 서복과 그가 데리고 간 사람들은 일본에서 살게 되였고 세상뜬 후 서복은 일본 후지산 기슭에 묻혔다.
일본에도 서복에 관한 전설과 기재가 많이 남아 있다. 지어 일부 학자들은 서복이 바로 일본 건국사상 유명한 신무천황이라고 인정한다. 일본 인민들도 서복을 선사로 생각하고 숭배하며 그를 “사농신(司農神”, “사약신(司藥神)”이라 존대한다. 일본에 있는 서복의 유적은 오늘까지도 보존되여 있는데 서복묘, 서복궁, 서복암, 서복상륙기념비 등 유적이 있다. 1991년 일본인민들은 또 사가현諸富町에 “서복의 길”이라 명명한 공원을 지었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사가현 인민들은 긴슈진쟈에 모셔져 있는 서복에게 첫 곡식을 드린다. 또한 50년에 한번씩 규모 성대한 제사를 지낸다.
맹강녀 묘(孟姜女廟)
중국 하북성 산해관 쪽에 맹강녀의 묘(孟姜女, Mengjiangnu Temple)가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있다. 만리장성 축조를 위해 징용되어 죽은 남편을 찾아가는 전설로,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멀리 만리장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제나라 여인(현 강소성) 맹강녀(姜씨 성을 가진 집안의 맏딸이라는 뜻)는 남편이 만리장성의 인부로 징용되어 가자 근심과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3년이 지나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기에, 엄동설한이 닥쳐오자 두툼한 솜옷을 지어 보따리를 안고 몇 달에 걸쳐 만리장성에 도착한다.
하지만 남편은 어디에도 없고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너무나 원통한 맹강녀는 그 자리에 앉아 통곡을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져 성벽이 무너지면서 수 많은 시신이 나오게된다. 남편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신을 뒤졌으나 이미 백골만 남았는지라 남편의 시신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백골더미에서 넋을 잃고 통곡하던 맹강녀는 그리운 이의 백골은 사람의 피를 빨아들인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기억해내고, 손가락을 깨물어 일일이 백골 위에 핏방울을 떨어뜨려 남편의 시신을 찾게 된다. 남편의 시신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맹강녀는 남편의 시신을 묻어준 후 그 무덤 앞에서 굶어죽는다.
맹강녀 고사는 중국의 민간 4대 전설 중의 하나로 사람들이 맹강녀의 충절을 기리고자 봉황산 위에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정녀사(貞女祠)라는 간판을 가지고 있고, 사당은 명나라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 사당으로 올라가는 108개의 계단은 맹강녀의 고통의 여정을 상징한다. 사당으로 들어가면,
海水朝朝朝朝朝朝朝落
浮云长长长长长长长消
라는 댓구가 눈에 띄이는데, 끊어읽는 방법에 따라 여러가지의 뜻을 가진 싯구가 완성된다. 사당은 붉은 담벽 안에 2개의 큰 건물과 종각, 망부석라고 음각된 큰 바위군, 진의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불당 뒤에는 아름다운 원림이 있다.
사당 중앙에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멀리 만리장성을 바라보는 맹강녀의 동상이 보이는 이 전설을 기반으로 해서 각종 경극이나 연극, 공연 등이 만들어져 있다.
1993년 9월 산해관구 정부는 맹강녀묘 북쪽에 맹강녀 전설을 근거로 대형 문화원인 맹강녀원(孟姜女苑)을 건설하였다. 맹강녀원 내에는 ‘지아비를 위해 천리길을 울며 장성에 도착하였다’는 전설을 위주로 하여 ‘밤새 겨울옷을 만들고’,‘만 여 장정의 장성축조’와, ‘망부석’, 등 스무 개의 장면을 관람할 수 있다.
- 개장: 08:00~16:00
- 위치: 남문(南门)밖에서 23, 34번 버스를 타고 산해관역(山海关站)에서 하차
- 요금: 5월~9월: 30元 / 10월~4월: 25元 (2008년 4월 기준)
첫댓글 진짜 가고 싶은데 4일 휴가쓰기가 참 눈치 보이네요 ㅜㅜ
이것이 직장인의 운명
나두 일 때문에 못가요. 산해관이나 북대하는 가볼만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