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근님의 채식이야기 두 번째입니다.
사육과정과 죽임을 당하고 찢겨지는 그 과정을 안다면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으려 할 것이라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인간의 부드러운 성정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잔인한 살육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나면
그 짐승의 사체를 더 이상 먹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식을 하는 것은 인간의 양심과 의지에 반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바른 양심과, 따스한 품성을 되찾는 것,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고, 육식을 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창근님의 채식문화이야기는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사람들의 육식 위해 사람들이 굶는다
가수 박창근의 채식문화 이야기(2)
채식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 채식의 본래 의미와 그 타당성에 대한 고민들을 노래로 부르는 가수가 있다. 바로 박창근 씨. 그의 두 번째 앨범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은 작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의 상반기 추천앨범으로 뽑히기도 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앞으로 그가 들려주는 채식의 진정한 의미와 채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를 통해 채식과 건강, 더 나아가 채식의 사회적인 의미까지 고민해보는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편집자 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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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박창근 ⓒ |
서암 큰스님은 생전에 형형색색의 음료수를 두고 썩은 물이라고 했다. 그 썩은 물의 대열에 늘 앞장서 오던 모 음료회사가, 하나가 된다는 주제로 내보내고 있는 최근 광고를 보면서 필자는 엄청난 충격 받았고,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나무를 베던 사람이, 닭의 목을 치려던 요리사가, 생체실험 대상이 된 쥐에게 약물을 투여하려던 의사가 순간 TV에서 “골인”이라고 터져 나오는 함성을 듣게 되면서 그들은 그들이 해하려 했던 대상 즉, ‘나무와 닭과 쥐’를 얼싸안고 기뻐한다. 그래서 축구로 우리는 하나가 된다는, 그만큼 축구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한마음으로 엮어주는 큰 울림의 역할을 한다는 광고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참 무섭다.
동물과학 저널 ‘Journal of Animal Science' 편집위원이자 오리건 주립대학 동물과학 교수인 피터 R. 치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축업자들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소비자들이 대부분 동물을 어떻게 키우고 처리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육식을 하는 소비자가 대량 생산방식의 계사를 방문하여 닭들을 어떻게 사육하고 어떻게 ‘추수’하며, 또 조류 처리공장에서 어떻게 다루는지 알게 된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하늘에 맹세코 닭고기뿐만 아니라 어쩌면 모든 육류를 끊겠다고 맹세하게 될 것이다. 소비자가 고기를 입에 집어넣기 전까지의 과정에 무지하면 무지할수록 그만큼 현대식 축산업계에 유리한 것이다.”
돼지고기 삼겹살집의 간판로고엔 살찐 돼지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자신의 살을 뜯어 달라 노래하고 있다. 후라이드 치킨 집에는 예쁜 벼슬을 늘어뜨린 닭이 제발 나를 먹어달라며 유혹의 웃음을 흘리고 있다. 그들은 전혀 괴롭지 않고 전혀 두렵지 않은 듯 보인다.
도살장에서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며, 앞선 동료의 찢겨지는 살덩이에서 뿜어 나오는 피를 쳐다보며 두려움과 공포로 떨며 절규의 울음을 우는 소! 제대로 죽지 않은 돼지의 머리를 수차례 둔탁한 무기로 내려치며 잡담을 나누는 도살노동자. 그리고 그의 발 아래 널브러진 채 목숨이 붙어 있어 더 괴로운 돼지! 좁은 닭장 안에서, 마치 창고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어진 불필요한 기물들처럼 쳐 넣어져 스스로의 삶을 용납할 수 없어 결국 미쳐버리고 마는, 그래서 자신의 몸을 뜯고 동료의 몸을 뜯어먹는 광기를 어쩔 수 없는 닭!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좁은 유리관에 갇혀 재수 좋으면 한 번의 약물로 세상을 뜨기도 하지만 재수 없는 것들은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운명을 부여받은 실험용 쥐! 이 모든 것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공존하고 있다. 믿기지 않는 자신의, 삶의 모순에 몸서리를 치면서 말이다.
“사육과정을 알면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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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병은 우리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다. 사진은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소. ⓒ연합뉴스 |
종일을 굶은 배고픈 아이는 세상의 반대쪽에 살고 있는 소가 그 자신들보다 더 많은 곡식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또한 그 소는 그 아이의 양식을 뺏어먹고 싶었을까? 그들 몸이 절대로 원하지 않는(받아들일 수 없는) 사료를 먹고 미쳐버려서 생긴 ‘광우병’은 다시금 그들을 잡아먹는 우리 ‘사람’의 안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과테말라에서는 다섯 살 미만 어린이 중 75%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영양실조가 너무 심각해서 네 살까지 살아남은 어린이가 50%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과테말라는 대부분의 농경지를 육류생산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매년 4천만 파운드의 육류를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의 인구 중에 식량부족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은 12억 명이다. 한편, 미국에서 생산하는 옥수수 중에 가축이 먹는 양은 77%에 달한다. 만약 미국의 가축이 먹어 치우는 콩이나 기타 곡물을 사람에게 준다면 14억명이 양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가축들을 먹기 위해, 즉 사람들이 육식하면서 살기 위해 사람들이 굶는 형편이다.
“사람들의 육식 위해 사람들이 굶는다”
필자는 사실 채식이란 것을 삶의 가운데로 가져가고자 마음먹으면서 그 첫 이유가 건강의 안녕을 위한 선택이지 못했다. 사실 인간의 식문화에 육식이 더 해롭고 불필요하며 몸을 망치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는 사실은 그 이후에 차츰 깨닫고 배우게 되었다. 필자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떤 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고 할까?
스스로 담배를 끊을 때도(사실 이 담배라는 것은 새벽녘 고독한 싸움과도 같은 창작이라는 것에 늘 함께하며 용기와 위로를 주던 유일한 것 이었다) 필자는 식도암이나 간암이나 여타 그것으로 인한 몸의 부적절한 신호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필자가 즐거워하는 담배를 태우는 행위가 혹 필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해로움을 주고 있진 않은가? 필 수 있는 권리와 냄새를 맡지 않을 권리의 동등함 같은 것에 관해 조금씩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면서, 그러한 고민들의 시작과 함께 읽게 되었던 <3.3인치의 유혹>(저자 코너굿맨, 아일리쉬 타임즈 기자)은 필자에게 담배회사를 향한 분노와 함께 금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 책은 필자에게 담배회사의 이윤추구를 위한 엄청난 사기극과 파렴치함을 알게 해주었으며, 또한 같은 인간을 상대로 상당히 자유로운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상상할 수 없는 ‘죄’를 증명해 주었다. 이 담배를 주제로 한 외국수필 하나는 필자 안의 잠자는 자존심을 일깨워 내기에 더없이 적당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 사이의 공존이라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조심하게 하고 겸손하게 한다.
여전히 우리는 늘 우리와는 다른 생을 살아가고 있는 다른 생명들, 즉 그들의 삶의 환경을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유를 할 수 있고 바르고 그른 것에 관한 주관을 가질 만큼 지적으로 성장한 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간의 좀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의학과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가면서도 자칫 그로 인해 소홀해지는 환경이라는 개념과 상대적으로 소외받게 되는 다른 생명체에 관한 걱정과 염려를 감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육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형성시켜주며 지구의 환경과 자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내 몸과 내 가족의 건강을 늘 신선하게 유지시켜주는 데 진정으로 필요한 행위라면 지금이라도 필자는 채식주의자란 꼬리표를 당장에라도 떼어내고 말 것이다!
또한 동물들이 필자의 귀에 대고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들은 오후 한나절 한가로운 풀밭을 거닐고 사랑하는 나의 엄마 젖을 마음껏 먹으며 형제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누리며 살고 있지요. 결국 언젠가 당신들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해 우리 몸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저마다 잘 이해하고 깨닫게 된 답니다. 그 어떤 강요와 두려움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한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어요. 우리를 걱정하고 마음 아파 하는 당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지금 행복하게 당신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답니다.”라고 속삭여만 준다면 더 이상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 각종 자료는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