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요 15:7-16절
제 목 : 예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으라2
일 시 : 2024. 5. 8.
요한복음 15:7-16/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과 관계가 잘못되면 신앙생활역시 원활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긴밀하고 깊어지면 우리의 삶인 신앙생활역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로서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면 사람과의 관계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한.일관계를 예로 들겠습니다. 문제인 정부시절에 한.일관계는 정치적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갔습니다. 바로 그 때 한.일간의 무역수지와 물건을 사고파는 교역은 최악의 상태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회복되면서 한.일간의 무역수지와 경제교역은 크게 늘어났습니다. 문 정부시절에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서 일본제품을 사는 일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우리 나라에 상주해 있던 일본회사가 문을 닫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서 한.일간의 교역은 매우 활발해졌고 여행자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한.일간의 정치적인 관계는 곧 경제와 무역수지로 이어진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예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면 곧바로 우리의 삶에서 모든 관계들이 호전되고 좋아지게 됩니다.
요15:4-7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서로가 서로 안에 거하는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거하다란 단어는 메노라고 하는데 (주어진 장소, 상황, 관계, 또는 기대 속에서)머물다, 거하다, 계속하다, 거주하다, 출석하다, 남아있다 라는 뜻입니다.
거하다란 단어의 뜻을 요약하면 어떤 장소와 환경(상황)속에서도 주님과 바른 관계를 지속시킨다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관계가 더욱더 깊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주시는 뜻 안에는 주님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깊어지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거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 모든 말씀들을 다 살펴보면 주님 안에 거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같이 살다 보면 저절로 깊은 부부관계가 이루어가는 것처럼 주님 안에 거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만나서 같이 살다 보면 저절로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결혼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론적으로 바른 부부관계의 비결을 아무리 설명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지 않고는 결코 그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15장은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지 불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아닙니다.
불신자들에게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연합된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면 나타나는 현상들과 결과들만 소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 거하는 삶, 즉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삶은 개인적으로 부딪혀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예배 드리고 날마다 기도하며,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알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또한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몸부림칠 때 경험적으로 채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쉽고도 어렵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쉽고 재미가 있는데 때로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고 왜 예수님을 믿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도 요한은 요15:1-7절까지의 말씀을 요15:8-16절에서 다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15:1-7절까지 말씀하시고 나서 마지막 결론부분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의 결과는 기도응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15:8-16절까지 말씀하시고 나서 마지막 결론부분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서 열매를 많이 맺게 되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심으로 기도가 응답받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의 결과는 기도응답이라는 문제로 종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어지는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의 결과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되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더 깊은 기도의 단계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누구에게 더 잘 주어질까요? 기도하기에 힘쓰는 사람에게 입니까?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입니까? 기도하지 않는데 응답이 주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도의 응답이 주어지게 되고 또한 더 많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도의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 금요기도회 시간에 행10장에 나오는 고넬료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환상을 열어 주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너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눅1장에 나오는 사가랴에게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식을 낳지 못해서 평생을 기도했습니다. 오랜 후에 천사를 통해서 기도응답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이 옵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하고, 더 깊은 단계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더 많은 시간 기도 하고, 또한 더 깊은 단계의 기도를 드리고, 더 높은 차원의 기도를 드릴 때에 기도하는 것마다 이루어지는 은혜와 복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내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주님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고, 주님께 더 많은 문제에 대해서 물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해답이 없지만 주님은 알고 계시니까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물어 보고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겠지만 살다 보면 산너머 산이라는 말처럼 기도해야 할 문제들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이전에 드렸던 기도응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주님과 더 깊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이며 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의논하는 더 깊은 교제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기도의 시간을 더 많이 늘린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주님께 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의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더 많이 인식하고, 주님을 더 많이 의존하고, 주님을 더 높이고 경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 주님을 끌어 드려서 주님께서 나의 일을 간섭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주님과 더 깊이 의논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쉽게 결정을 내렸다면 이제부터는 사소한 문제까지도 주님께 여쭈어 보고 주님께 물어 본다는 뜻입니다.
나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해 드리고 나의 모든 문제에 더 깊이 관여하도록 해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몇 년 동안 기숙사생활을 해 보았습니다. 혼자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같은 방을 쓰는 동료 또는 선후배들과 함께 의논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혼자라는 개념이 없어졌고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많은 부분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생활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신 말씀도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늘이고 주님과 의논하는 문제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기도응답이 더 많아지는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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