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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주년을 축하하며 그간 함께 해온 회원들이 서로에 대한 격려와 또 앞으로의 10년을 전진할 것을 기약하는 자리로 마련된 이번 산행에는 종주자 23명과 지리산 밑자락에서 토요일 밤 합류한 9명이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27일 서울로 올라와 진행된 뒷풀이에는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이 함께 해주었다.
지리산 종주는 91년 노조간부들과 함께 성삼재-천왕봉-중산리 코스로 가보고, 16년만이다.
물론 1박 3일 코스는 여러번 다녔지만.
아들과 꼭 가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
아들이 아빠랑 등산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친구들과 2개의 약속이 있었는데도, 고민하다 아빠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었다.
5월 24일, 지리산 종주 첫째날 - 노고단을 거쳐 뱀사골산장으로
7시에 고대 구로병원 후문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아침까지 먹고 가야 한다.
6시에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춰놨는데, 5시반에 깼다. 추울까봐 겨울 오리털 등산복이 아무래도 더울것 같아서, 동생이 사준 잠바로 바꿨다.
짐을 마무리하고, 지승이를 깨우는데, 잘 못일어난다. 그래서 아침을 먹는 것은 포기하고, 얼른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김성국 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가는 길에 태워 달라고 했다. 동해물 약국 앞에서 같이 갔는데, 벌써 사람들이 와 있다. 아침을 못먹어서, 아직 안 온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음료수와 만약에 모를 랜턴 건전지를 샀다.
7시 20분경 고대병원후문에서 본대 19명이 모여 승용차 4대로 출발하였다. 24일에 큰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있어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지만, 가기로 했던 19명 전원이 출발하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하늘을 맑기만 하고, 차도 안막힌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구-진주 고속도로는 잘 달렸는데, 인산램드 휴게소에서 잠깐 만나서 쉬면서 점검을 하고, 다시 출발하였다. 조금 늦게 출발했으니까 서둘러야 했다. 산악회는 벌써 도착해서 우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야봉이라도 다녀오라고 해도, 우리 오면 점심을 챙겨줘야 한다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88고속도로를 들어오니, 차가 빨리 달릴 수도 없다. 인월 지리산 톨게이트를 나와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혹시 출구를 잘못 알까봐 연락을 해줬다.
조금 출발이 늦어진만큼 지리산 성삼재에 도착도 조금 늦어졌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날씨가 흐려졌다. 날씨가 더 나빠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가는 것이 비를 덜 맞을 것 같아 노고단에서 기다리고 있는 산악회원들에게 전화를 하였다. 새벽부터 화엄사에서 올라와 노고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산악회원들이 시간을 맞추어 끓여준 라면과 햇반으로 점심을 먹었다.
먼저 점심을 해결한 사람부터 노고단고개로 발길을 돌렷다. 뒤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사진도 찍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안개가 많이 끼여서 경치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기념사진을 찍고 움직이기로 했는데,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다가는 비를 많이 맞을 것 같아서 기념사진 한 장 못찍고 서둘러 뱀사골대피소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엄용수 회원이 등반대장으로 맨 선두에 서서 6명의 학생(중1 하희수, 초6 강지승, 초5 조윤주, 초4 김해담, 최민솔, 하수경)을 앞에 세우고, 그 뒤에는 걱정되는 아줌마회원들을, 그 뒤에는 가족의 짐까지 져 짐꾼으로 전락한 아빠회원을 비롯한 남자회원들, 그리고 맨 뒤에는 산악회 회원들이 후미를 맡아주었다.
노고단고개에서 돼지평전,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임걸령에서 샘을 만났는데도 물 한잔 떠 먹는 사람이 없다. 반야봉을 오르는 노루목에서 반야봉 오를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계속 걸으니 전북, 전남, 경남 삼도가 만나는 삼도봉에 올랐다.
삼도봉에 오르면서,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쉬는 시간에 우비로 갈아 입었다.
날씨가 흐려 경치를 볼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화개재 551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상당히 힘들었다. 특히 처지는 아줌마들은 너무 힘들어했다.
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부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놨는데, 산을 오르기에는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다. 만약 이 길을 꺼꾸로 걸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높이가 가장 낮은 곳이 화개재다. 주능선을 잠시 이탈하여 200m를 내려오니, 뱀사골대피소가 있었다.
뱀사골대피소를 내려가는 길은 계단인데, 영 불편하다.
걸음거리가 불편하다. 걷는 거리와 계단의 길이가 잘 맞지 않아서, 발바닥이 고생이 많았다. 각을 진 곳을 밟아야 했으니까...
이 때 비가 많이 내렸다.
나는 힘들어서 뒤처지는 김상희 총무부장을 응원하면서, 조금 늦게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만약 노고단에서 산악회원들이 미리 라면을 끓여놓지 않았더라면, 비와 함께 하는 힘든 산행이 되었을 것이다.
성삼재부터 화개재까지 8.8km에 대피소까지 200m니 총 9.0km를 관리사무소의 예정시간 6시간보다는 30분 정도 단축한 성공적인 하루였다. 특히 아이들이 걱정했던것보다 잘 타고, 아빠들이 짐에 눌렸는지 오히려 쳐진다.
조별로 저녁식사를 지어먹는데, 우리는 김성국 대표와 한조가 되어, 내가 준비해 온 쌀로 밥을 하고, 김치에다 참치와 햄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조금 늦었지만, 앞서 먹은 팀들이 비워준 자리에서 맛잇는 저녁을 먹었다. (김성국 대표는 내 짐이 무겁다고, 쌀과 김치, 참치캔, 햄을 내것으로 쓰라고 배려했다. 고마웠다.)
지리산에서는 음식을 남길 수 없기 때문에, 특히 뱀사골대피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어서, 더욱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수 없었다.
뱀사골대피소는 오염이 심해지면서, 곧 폐쇄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예약을 할 수가 없다. 중간에 밥을 해먹을 수 있을까 해서, 문의했다가 잠자리까지 예약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보니, 엄용수 등반대장이 아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쏟아지는 빗속에서 술잔을 나누었다.
지리산에서 자야하는 두 밤 중에서, 잠자리가 안정적인 곳이 오늘이다. 산장에 예약을 했으니까.
비가 오는 바람에 산장에서 자는 사람들이 늘었다. 대구에서 대학셍들이 여러명 왔는데, 다음 대피소에서 잘 계획이었는데, 비 때문에 뱀사골대피소에서 자게 되었다. 그래서 더 정신이 없고, 산장 안이 후덕지근하다.
밥을 다 먹고, 잘 준비를 하였다.
우의를 침대에 걸어 놓아야 했고, 준비해 온 은박지 장판과 매트, 담요를 꺼내서, 지승이에게 주었다. 밖을 정리하고 들어가보니, 지승이가 아빠 잠자리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고, 올려준 것 중에서 담요는 깔고, 은박지는 아줌마들이 자는데 주고, 매트느느 민솔이가 자는데 주었다.
지승이는 온 아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자여서 어울리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잘 어울렸고, 잘 놀았다.
본대 19명은 산장 안에서 자고, 산악회원 3명은 밖에서 비박을 하였다. 비가 오는 데도 대피소 안은 답답해서 잘 수가 없다는 산악회원들의 주장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비닐로 천정을 만들어 비를 가리고 잘 준비를 하였다.
비가 점점 더 많이 와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워낙 베테랑들이니까 하는 믿음은 있었다.
산장에 들어가 따뜻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지승이와 얘기를 나누는데, 산악회 친구들이 감동을 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면서, 군만두를 구어 주었다.
지승이는 먹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다.
지승이는 산악회에서 돼지고기 5근을 준비해왔다고 하니, 돼지고기를 먹겠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막상 먹으러 나올 때는 자겠다고 했다.
산악회의 잠자리이자 지리산 첫날밤의 연회장으로 가니, 비닐천막을 아주 낮게 처놨다. 바람이 옆에서 부니, 비가 들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리라.
돼지목살을 굽고, 그 기름에 만두도 구워주고, 박건조 산악회장의 손길이 바빠졌다.(박건조 회장은 고기를 굽는데, 산악회에 가입한 초기나 회장이 되고 나서나, 항상 고기를 굽거나, 회원들을 챙긴다고 한다.)
산악회에서는 술도 페트병으로 5병을 준비해왔다 한다. 그 중에서 오늘은 3병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산악회장과 총무는 부부인데, 김익흥 사무처장이 주례를 서서, 주례선생님에게 남은 술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늦어지고, 아이들이 자니, 서서히 아저씨, 아줌마들이 나온다. 꼭 술을 먹고 싶다기 보다는 산악회의 정성에 감동해서 였으리라. 비는 몰아치고, 사람들이 늘어나니, 넉넉한 술자리가 좁아진다.
다리를 세우고, 몸을 틀어서 한사람이라도 더 앉을 수 있도록 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역시 공기 좋은 곳에서 먹는 술을 잘 취하지도 않는다.
내일 산행 일정이 빠듯하니, 절도있게 산악회장이 정리했다. 10시반까지만 마시고, 정리한다고... 약간의 여진이 있어, 11시에 마쳤는데, 그 많던 돼지고기와 술이 다 떨어졌다.
밤 11시의 뱀사골 산장은 쏟아지는 폭우의 빗방울 소리에 모든 것이 밀리고, 잠자리애 들어오니 코고는 소리가 나도, 금방 잠자리에 들었다.
70L 배낭에다 먹을 것과 입을 것, 비박에 대비한 준비를 하면서, 짐이 무거워졌다. 침낭과 매트와 은박지 깔판은 배낭에 넣을 수가 없어서 배낭에 매달아야 했다.
김성국 대표의 조언을 들었어야 했는데,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부실하게 준비할까봐, 조금씩 더 사다 보니, 그게 상당히 무거워졌다.
그래도 첫날은 버텼다. 노고단에서 라면 10개를 꺼내서, 이제는 침낭을 배낭 안으로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5월 25일, 지리산 종주 둘째날 - 뱀사골에서 세석고원까지
어머니의 산, 지리산에서는 새벽 5시에 눈이 떠진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말이다.
밤새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도 잦아져서, 거의 가랑비 수준이다.
일어나서 아침으로 준비한 누룽지와 버너를 준비하였다.
5시반에 일어나기로 했다 한다.
얼굴을 씻고, 시원한 지리산 샘물을 맘껏 마셨다.
같은 조인 김성국 대표랑 협의해서, 아침에는 애들용으로 참치와 김치하고 먹기로 하였다. 누룽지를 끓이면서, 나는 숙소로 들어가서 지승이를 깨웠다.
새벽의 아침은 비록 누룽지밥이었지만 맛있었다.
숙소에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벌린것이 많다보니,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산장안이 어두워서 매트와 은박지를 묶고, 지승이 배낭에 침낭을 매다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꾸물거리다가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소리에 서둘러 짐을 챙겨 나갔다. 조금 비웠다해도 배낭은 역시 무거웠다.
비는 멈췄다. 역시 하늘이 우리를 돕나보다.
함께 출발해서 다시 화개재로 오르는데, 갑자기 지승이 우의가 생각이 나서 물어보니, 안챙겼다고 한다. 다시 돌아가 보니 침대에 걸려 있었다. 챙기고 올라가지 제일 뒤에 처졌다.
듬직한 산악회 3인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m 계단을 오르는 길이 무겁다. 자꾸 뒤로 처진다.
어제 술을 많이 먹어서일까?
쉴 때마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걸었다.
씩씩한 학생들은 오늘도 잘 걸었다.
걷는게 힘이 들어서, 뒤로 처져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산죽과 철쭉을 벗삼아 여유있게 걸었다.
나무를 설명하는 이름표도 열심히 보면서...
토끼봉까지 가니, 기다리고 있었다.
토끼봉에서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어깨가 너무 아파서 수건을 댔다.
학생들은 토끼봉에서 명선봉을 들러서 연하천에서 만났다.
명선봉은 자연휴식년제인데, 너무 아름다워서 욕심을 냈나 보다.
무거운 짐을 진 나와 규원이는 뒤로 처져서, 구상나무와 주목나무를 원없이 보면서 뒤따랐다. 산악회도 먼저 보내고...
연하천에서 쉬면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너무 힘이 들어서 배낭을 내려 놓는데, 고맙게도 김경숙 아줌마가 미숫가루물울 준다. 기진맥진한데 미숫가루는 참 맛있었다.
잠깐 숨돌리는데, 벽소령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해서, 형제봉을 향해 출발하였다.
원만한 점심을 위해 엄용수 등반대장이 선발대로 먼저 가서, 점심 준비를 하기로 하고, 먼저 출발하였다.
이제 뒤쳐지면 안될 것 같아서, 학생들 뒤를 열심히 따랐다.
지승이는 아빠가 걱정이 되나 보다. 같이 가다가 학생들 선봉에 서야 했기에 앞서 보내고, 나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뒤따랐다.
이제 즐기면서 산행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엄용수 등반대장을 대신해서, 최왕곤 전 대표님이 아이들을 이끌었다. 열심히 걷다가도, 볼거리가 있는 곳에서는 아이들을 세우고, 설명해 주고, 특히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설명해 주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걸어온 길을 설명할 때는 모두 감탄한다. 아니 내가 저렇게 먼길을 걸었단 말인가!
형제봉에서 모두를 세웠다.
등산로가 아님(NO TRAIL)이라는 곳이 더 멋있었다.
형제봉에 오르니, 바람이 엄청 불고 있었고, 주변의 경치가 훤히 보였다.
멋있는 포즈를 취하고 사진도 찍었다.
벽소령에 도착하니, 이미 라면과 햇반을 여유있게 끓여 놓았다. 즉석 짜장면까지... 햇반 네개를 꺼내 놨다.
허겁지겁 점심을 먹는데, 저녁 잠잘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벽소령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석에서 잘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도 있고, 아줌마들이 있기 때문에, 엄용수 등반대장과 오창근 후원회원을 선발대를 보내기로 하였다. 누가 들었는지 5시까지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선 배정한다고 한단다.(나중에 확인한 것으로는 사실 무근이었지만)
오창근 후원회원은 김익흥 사무처장과 함께 새벽에 성삼재에서 출발하기로 했는데, 사무처장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혼자서 새벽부터 두사람분의 짐을 지고 오다가, 토끼봉 가는 길에 만났다.
점심을 먹고, 서둘러 짐 정리를 하고, 피곤한 사람들은 대피소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세석고원으로 출발하였다.
날이 더워져서 걸음걸이가 무겁다.
아이들 중에서 최민솔과 하수경이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자주 쉬면서 갔다.
선비샘에서 같이 쉬었다. 왜 선비샘이라고 할까?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서 구로시민센터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하였다.
너무 힘들어서 배낭을 내려놓고, 들어누워서 쉬었다. 지승이에게 물 달라고 해서 마시고... 선비샘에서 물통에 물 챙기고...
봉우리가 일곱개인 칠선봉을 지나니, 영신봉이 보이는 헬기장이 나온다. 점점 힘이 들어서 쉴 때마다 들어 누웠다. 쉬면서 힘이 드니까, 양말을 벗어서 발을 말린다. 통풍도 시켜주고...
영신봉을 가는 길에 공포의 계단이 나타났다. 기진맥진한데 한없는 계단을 오르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오창근 후원회원이 세석에서 1시간 반을 쉬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려고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 배낭을 들고 갔다.
나는 김상희 총무부장을 기다려, 그 배낭을 들고 왔다.
영신봉에서는 소리도 질러 본다. 더 앞으로 나가고 싶지만, 너무 늦어서 서둘러야 한다.
세석으로 내려오니, 저녁 준비하느라 바쁘다. 너무 힘이 들어서 앉아 있는데, 바람이 제법 차다. 그래서 잠바를 꺼내 입었다.
너무 힘들었는지 몸살기운이 난다.
7시가 되니 산장에서 잘 사람들은 모이라고 안내방송을 한다.
아이들과 아줌마들을 보내고, 혹시나 해서 남자들도 갔다.
어제 비 때문에 예약을 취소한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가 여유있다고 했다. 여자방과 남자방으로 나눠 있었다. 여유가 있다보니, 단체예약도 되었다.
저녁은 어느 조라 할 것없이 밥을 하는대로 밥을 먹고 있었다. 맛있게 밥을 먹고, 숙소 2호실 107번에서 114번까지가 우리자리여서 지승이랑 잠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107번과 108번을 잡았다.
매트와 은박지를 깔고, 침낭을 펼쳐 놓았다.
밖에서는 또 술을 먹자고 하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대신 남은 육포와 햄, 술을 꺼내 주었다.
잠자리에 들으니, 바로 9시라고 불을 껐다.
후덕지근하다. 그래도 너무 피곤했는지 곧 잠에 들었다.
그런데 1시간 만에 깼다. 너무 후덥지근해서 자꾸 뒤척이게 되었다.
몸살기운은 사라졌다. 내일을 위해 자야 했다.
밖에서는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4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설왕설래 하였는데, 결론을 못 듣고 들어 왔다.
다시 눈을 붙였는데, 다시 12시에 깼다. 옆에 자는 규원이는 도저히 못자겠다고 해서, 담요를 꺼내 주었다.
이번에는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밤에 배낭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준비해 온 옷이니까, 속옷까지 싹 갈아 입었다. 바지도 반바지로 갈아 입었다. 그러고 나니, 잠이 잘 왔고, 다시 깨지도 않았다.
어제는 늦더라도 사람을 챙기면서 산행을 했는데, 오늘은 짐이 되면서 산행을 하였다.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도 내가 내논 안주가 맛있었으면 다행이었지만...
5월 26일, 지리산 종주 사흘째 - 세석고원에서 천왕봉, 백무동
오늘은 산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일찍 자서인지, 4시에 눈이 떠졌다.후덕지근하였지만, 피로는 많이 풀렸다.
일출을 보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짐을 정리하려는데, 4시반에 출발을 하고,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고, 다시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장터목산장으로 출발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지승이를 깨우는데 못일어난다. 못갈 것 같다고 해서 더 안깨웠다.
4시반에 출발한다고 해서 다시 깨우니까, 가겠다고 한다.
시간여유가 있어서 지승이와 함께 물도 마시고, 세수도 하였다.
4시반이 다 됐는데도 아줌마들은 아무도 안보이는데, 조금 있으니가 나온다. 아이들도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일출시간이 있어서 출발을 재촉하였다.
지승이가 앞서서 걸었는데, 깜깜하다.
길을 잘못 안내해서 백무동계곡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초입에 오른쪽으로 장터목산장을 가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서둘러 촛대봉을 향했다. 일찍 일어나서 못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발길을 서둘렀다.
일출이 5시 9분인지 알았는데, 이시간은 바닷가에서 해 뜨는 시간이고, 촛대봉에서는 5시 25분에 뜬다고 한다.
촛대봉에 오르니, 바람이 엄청나다. 해 뜨기 직전이 제일 춥다고 하더니, 정말 추웠다. 지승이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일출을 카메라에 잡으려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은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바닷가 일출처럼 붉게 물들이면서, 해가 쑥 올라왔다. 약간의 구름띠가 해를 가렸지만, 일출의 장광을 볼 수 있었다. 지리산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데, 구로시민센터 10년의 덕으로 일출을 보게 되었다.
지승이는 기대에 못 미쳤는지, 불만이 많다. 추워서 서둘러 내려갔다. 산장에 와 보니, 자고 있었다. 깨도 안일어난다.
천왕봉을 오르려면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하는데, 몇번을 재촉해서 잠을 께우고, 밥을 먹었다. 누룽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라면과 햇반 또는 누룽지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고생을 많이 한 엄용수 등반대장은 촛대봉에서 바로 장터목산장으로 갔다. 먼저 천왕봉에 올랐다가 백무동에 내려가서, 뒤에 온 사람들과 함께 성삼재 주차장에 주차해 논 4대의 차를 백무동으로 몰고 오는 임무를 띄고 가나 것이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해서, 김송희 관장이 요가로 몸을 풀었다.
김미화 아줌마는 다리도 아프고, 힘들어서, 천왕봉을 향해 먼저 출발하였다.
다리가 안 좋은 민솔이와 수경이를 앞세워 장터목으로 향하는데, 중간에 둘이 너무 힘들어 해서, 최왕곤 대표님이 침을 놓고, 산악회 도움으로 압박붕대를 감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내가 앞에서 갔다.
네 명의 아이와 함께 재미있게 갔다. 서로 앞세무면서 갔는데, 다들 씩씩하게 갔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꼭 인사를 하니, 다들 대견해 했다.
장터목을 다 오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주변의 야생화를 배우면서 갔다. 별꽃, 얼레지 등의 꽃들을 보면서 갔다.
드디어 장터목산장에 도착해서, 물통에 물을 채우고, 배낭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중1 하희수, 초6 강지승, 초5 조윤주, 초4 김해담이 올라갔고, 아줌마는 김경숙, 김송희, 장경화, 홍정희. 아저씨는 강철웅, 김성국, 김치관, 오창근, 하태한이 올라갔다. 먼저 올라간 김미화 아줌마까지 하면 총 14명이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배낭을 안 매고 오르는 천왕봉이 처름에는 가벼웠지만,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점점 힘들어지고, 아이들에게도 쳐진다.
겨우 천왕봉에 올라 구로시민센터 깃발을 앞세우고, 사진을 찍었는데, 디카를 가져온 사람이 없어, 카메라폰으로 찍고 말았다.
내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가서 아쉽게도 찍지 못했다.
사진을 찍고, 정상주를 마셨다. 바람도 불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서 서둘러 마무리짓고, 다시 장터목을 향했다.
내려오는 길에 돌무덤이 있어서, 소원을 빌었다. 다른 사람들 소원까지 받아서, 내가 대신 돌을 올려 주었다. 돌무덤 근처에는 쌓아논 돌무덤이 아마도 바람에 날려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쉬웠다.
장터목에 내려오면서 무전기로 도착시간을 얘기해 주니, 라면과 햇반을 넉넉하게 준비해 놨다. 그런데 바람이 엄청 부는 바람에 라면을 먹으려면, 국물이 날라가 앞에 있는 사람의 옷과 얼굴에 묻어서 곤혹스러웠다.
남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까지 챙겨서, 백무동으로 내려왔다.
산악회의 주장은 정상주만 마셨다고 산행을 다한 것은 아니다. 마무리로 계곡주를 마셔야 다 끝난거라고 해서, 운정을 하지 않는 나와 오창근이 계곡주의 대상이 되었다.
산악회 사람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첫날에는 돼지고기와 군만두로 우리를 감동시키더니만, 이번에는골뱅이를 내놓는다. 무거울텐데...
천왕봉을 오르기 전에는 과일통조림을 꺼내 놓는 바람에 아이들에게는 아주 인기가 좋았다.
계곡에 내려가서 발로 씻고, 오징어에 소주 페트병 한병을 마무리하였다. 공기 좋은 곳에서 먹으니, 취하지도 않는다.
오창근 후원회원이 무릎이 영 안좋다.
그래서 산악회에서 응급조치를 했다. 먼저 맨소리담 맛사지를 하고, 특수제작한 압박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스틱을 주었다.
그 덕에 무사히 백무동 계곡을 내려왔다.
내려오니 먼저 온 사람들이 파전에 막걸리를 먹고 있었다.
산악회와 더 먹으려고 했는데, 먼저 숙소로 가라고 해서, 먹은 술도 있고 해서, 먼저 출발했다.
구로동 사람들의 지리산 별장으로 갔다.
처음 오는 사람은 찾기도 어렵겠다.
이 집에 오자마자, 지승이가 하는 말이, 내가 원하는 집이 바로 이런 집이라고 했다.
뭐가 원하는 집일까?
연못이 있어서? 집이 넓어서? 풀이 많아서?
지리산 집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아래 축사에는 불글씨를 준비해 놨다.
아름다운 10년, 자랑스런 센터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10시가 다되도록 자버렸다. 공식뒷풀이가 시작한다고 깨운 것이다. 지승이를 깨우는 데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 힘들었나 보다.
비몽사몽 간에 내려가니, 어두운 곳에서 공식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사말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건배도 하고, 덕담도 하면서, 밤이 깊어가도록, 얘기꽃을 피웠다.
산은 못 올라왔지만 함께 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어른은 김익흥, 김선민, 정병창, 조성현, 이정은이고, 아이들은 정자담, 정예담, 김해랑이었다.
지리산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깊어 갔다.
다들 피곤하니, 먼저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뒤늦게 온 사람들은 많은 아쉬움 속에서 서로를 북돋우면서 얘기를 나눴다.
잠을 잤는데도 피곤하다.
방에서 다 잘 수도 있겠지만, 코고는 소리로 민폐를 끼칠 일이 없으니까, 잠잘 준비를 하고, 텐트에서 오창근과 잤다.
다들 아주 힘든 산행이었다.
그렇지만 서로를 격려하면서, 서로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해주면서, 크게 무리없는 산행을 만들어 갔다.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산행이었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서, 잘 이겨냈다.
지승이는 항상 보호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아빠를 챙기는 아들이 되어 있었다. 배낭이 무거워 지승이 보러 물통을 들으라 하니, 배낭에 잘 넣고 다녔다. 목 마를 때마다 아빠가 요구하면 갖다 줬다.
선비샘에서도, 세석고원에서도, 장터목에서도 지승이가 샘물에 가서 물을 떠 왔다.
늦게 오면, 쫓아와서 아빠를 챙겨 주었다.
앞으로 지승이와 1년에 한번이라도 긴 산행을 해봐야 겠다.
첫댓글 와!!!! 정말 멋지다. 나도 한번 안 해 봤는데..... 멋진 아빠 강철웅, 멋진 아들 지승이..
형이랑 가면 먹을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전 항상 허걱대다가 거의 빠뜨리고 가서 다음엔 잘 챙겨야지 하는데요. 지리산의 정기를 받고 돌아온 씩씩한 형. 예쁜 지승이와 익흥이, 치관이 모습을 보니 나도 몸이 근질근질하네요.
함께 한 경험만으로도 아버지를 기억할텐 데, 아름다운 기록까지 남겼으니, 지승이가 부럽네. 좋은 산행을 하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