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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칠이의 아름다운 동행 원문보기 글쓴이: 칠이
▣ 매월당의 흔적을 만날수 있는 금류동천을...
△. 이번 산행포스팅은 수락산 정상 아래 수락산장에서 내원암을 지나 폭포 구경과 함게 청학리로 하산 마무리 합니다...
△. 수락산 산장 지기님의 통기타 노래소리 귀가에 맴돌지만. 아쉬웠던 ㅅ간을 다시 회상 할려고 항장 더해 봅니다..
△. 수락산장에서 주문한 생강차와 모과차 특새있는 등산용 머그컵에 기득하게 담은 생강차 맞으면서 향기가 풍기내요.. 그윽한향기~~~~ Perfume ~~~
△. 수락산장 아래 음료 가능한 약수터 아마도 수락산장에서 관리하여 그나마 음료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을해 봅니다.. 청학리 코스중에 음료수 챙길수 잇는 곳이다.. 이곳에서 약 500m 쯤 응지 눈길 미끄러운길을 내려 서면 만나게 되는 내원암....
△. 이한성 동국대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대웅전과 영산전 사이에 서 계시는 마애불[磨崖佛] 약간은 고졸한데 갸름한 얼굴과 오똑한 코, 입고리가 살짝 올라간 작은 입..., 현대의 미인상을 이처럼 잘 표현한 마애불도 없을 것입니다. 이 마애불을 만날 때마다 너무 예뻐서 할 수만 있다면 러브레터 한 통씩 보내고 싶습니다. 비구니 노스님 말씀으로는 6.25에 폐허가 된 절을 중건할 때 땅 속에 묻혀 있던 부처를 찾아 세웠던 것이어서 그런지 아들을 낳고자 하는 이 나라 어머니들로 부터 그 코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는데, 땅 속에 묻히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다른 부처상처럼 그 코가 갈려 이미 어머니들 뱃속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제작 시기는 정확치 않은데 표현 형식으로 보아 조선조 초기라고도 하고, 고려 때라고도 하고, 조선 말기라고도 하니 분명치는 않습니다. 스님의 말씀으로는 고려 때 작품이라는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으니 조선시대의 작품일 것입니다. 시기에 관계없이 민초들의 소박한 조각 솜씨가 정겨울 뿐입니다. [자료 인용]
△. 마애석불입상 옆으로는 영산전[靈山殿]이 자리 하고 있습니다..
△. 심신이 안정 되었을 쯤에 어디선가 들려 오는 풍경소리를 찾아 봅니다..
△. 내원암 대웅전에 있는 괘불도 경기도 유형문화제 197호로 지정되어 관리 되고 있습니다..
△. 이쯤에서는 산행길을 정리 수준으로 들어 갑니다.. 아늑함에 잠시 머물며 내원암을 역사적인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도 둘러 보고는 하산 할렵니다..
△. 내원암 이정표 입니다.. → 수락 산장 0.55km, ← 돌계단 0.15km 이곳은 금류동천[金流同天] 폭포가 있는곳이다..
△. 내원암 이름모를 석탁은 세월의 흔적을 볼수 있기도 합니다만 누군가 작은 정성어린 기도 흔적에 우리도 나름은 기도를 해 보게 됩니다....[하루라도 빠른 건강회복을.....]
△. 금류동천[金流同天] 여기서 보면 함어동천을 보았을때는 천[川] “내천”자를 이용하였던대 이곳은 천[天] “하늘천”자를 이용한것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글을 보기만 하여도 매월당께서는 당시 세조의 왕위 찬탈과 밑에서 권력을 누린 이들을 싫어했다는 말에 의하면 한명회가 압구정[狎區亭] 기둥에 걸린 한명회가 지은 주련[柱聯]을 보고는 고쳐 버렸다는 흔적도 있는것으로 보아 하늘을 표현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압구정 주련을 보면 청춘부사직[靑春扶社稷] : 젊어서는 나라를 돕고, 백수와강호[白首臥江湖] : 늙어서는 강호에서 편히 쉬네, 라고 쓰였습니다.. 그러나 김시습은 이 시를 보고 부[扶]자를 망[亡]으로, 臥]자를 오[汚]로 고쳐 청춘망사직[靑春亡社稷] : 젊어서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수오강호[白首汚江湖] :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네, 라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 금류동천[金流同天] 안내문 자리 하고 있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이곳을 보고는 의미와 뜻을 숙지할것이지만 이한선 교수님의 이야기 속에는 오자가 발견되어 제기 하기도 하였습니다.. 안내판을 보면 “道光 丁西五月[도광 정서오월]”이라 쓰고 1873년[헌종 3년]이라고 기록하였다. 도광[道光]이란 청나라 8대 선종[宣宗] 임금의 연호로 선종은 1820~1850년 재위했으니 1873년이 될 수가 없다. 정서[丁西]는 정유[丁酉]의 오자[誤字]일 터이고 선종 재위 기간에 해당하는 정유[丁酉]년을 찾아보니 1837년이다. 나름은 개인적으로도 확인해 보니 맞는것 같더군요.. 수정이 필요 합니다.
△. 금류동천[金流同天] 주변이 모습입니다.. 사진상 좌축으로 희미하게 글씨가 보일것이며 이런 의미 있는 역사적인 흔적을 두고 자리한 매전도 지나는 산객들에게 눈에 가스름을 주기도 합니다..
△. 이잰 모든 내원암을 정리 하며 게단으로 내려 섭니다.. 이계단을 보면 안전상으로는 난간이 부족하여 위험 스럽게 보이지만 우회길이 있으니 그곳을 이용 하시면 되며 보호 차원에도 이렇게 두는것도 개인적으로는 좋게 보인다.
△. 산게단을 내려 서면서 만나게 되는 금류폭포 금루동천 아래 부분입니다.. 수락산의 이름이 옥류, 은류와 함게 대표적인 폭포에서 발원되지 않았을까도 생각하게 합니다..
△. 산수량은 없다 싶이하여 아쉬움을 주지만 여름철이면 수량이 많아 물떨어지는 소리를 느낄수 있는 곳이기 합니다..
△. 그래도 자연이 주는 작을 물줄기 나름은 담아 봅니다..
△. 작게 들리기도 합니다.. 금류의 생명력으로 주어지는 자연의 흐름을 느낄수 있기도 합니다..
△. 다시 한번 계단을 올려다 보기도 합니다..
△. 게단 하단부 금류폭포 하단부로 이곳도 자리 하고 있는 음식점 높은곳 까지 올라와 장사를 한다..
△. 이재 부터는 빨라진 걸음 등산로 따라 하산 합니다..
△. 이쯤에서는 보일것 같은대 역광에 의해 잘 않보이지만 방향으로 보면 사진 중앙 부분이 은류폭포 지점입니다...
△. 옥류폭포 지나 한참을 내려 오다 보면 등산로 옆으로는 이런집이 보일것입니다..
△. 바로 이집은 미들급 참피온이 였던 박종팔 참피온이 운영하는 먼남의 광장
△. 또다시 어러움을 격으며 이곳에서 다시 제기를 마련한 박종팔 인생 역전기 얼마전에 TV에서도 방영된것을 보기도 하였답니다. 시간이 있으면 들어가 만나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앉고 하산을 서둘러 봅니다..
△. 다음번 수락산 산행시에는 이곳을 들어가 분위기며 이야기도 듣고 한찬의주억을 느겨볼 시간 만들어 다시 찾아 볼렵니다.. 오늘산행은 특별히 만들어진 산행길로 나름은 걱정반 기대반 산행길로 흔적을 뒤돌아 보면 뿌듯함을 느낄수 있는 산행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늘 함게 할수 있는 불친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것 깊은 감사 합니다.... 다음 산행기는 북한산으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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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칠이의 아름다운 동행 원문보기 글쓴이: 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