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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갤러리 스크랩 일리야 레핀 (Ilya Repin)을 만나다 /서양화가 박성열선생
고허 추천 0 조회 1,922 12.01.16 20:3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일리야 레핀 (Ilya Repin)을 만나다 /서양화가 박성열선생

글 김주명, 사진 일멋

 

 

겨울이 털썩 주저 않은 듯, 서양화가 박성열선생(계명대학교 초빙교수)의 작업실이 있는 대명동 캠퍼스는 봄기운으로 완연했다. 눈치라도 챘을까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는 학생들은 마치 봄의 새싹을 뿌리고 다닌다.

 

‘가장 열심히 일한다’ 라고 알려진 선생의 작업실을 들어 선 순간, 온 벽면 가득한 사람들이 먼저 맞아 주었다. 우리네 전통적인 친숙한 모습에서부터 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삶의 현장, 다소 이국적 느낌이 나는 아름다운 여인…….

 

“저의 그림에는 항상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그리기를 더 좋아 한다고 할까요? 최근작에 꽃이 자주 등장해서인지, 어떤 사람들은 저를 보고 ‘꽃을 그리는 화가’라 하기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꽃은 단지 배경일 뿐인데, 아하! 그때 저는 대중이 인식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죠.”

정말 그랬다. 그간 전시해온 작품을 보아도, 지금 준비 중인 작품에서도 사람이 없는 그의 작품은 없었다. 유순한 곡선을 가진 부드러운 사람은 그가 바라보는, 나아가 사람을 매력 있게 하는 부드러움이 아닐까?

 

선생은 화가로써 조금은 남다른 유학경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레핀 아카데미에서 3년간 수학하였다. 모스크바가 정치적 수도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바로 러시아 예술문화의 수도일 것이다.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를 지니고 있으며 ‘유럽에로의 창’이라 불리는 이 도시는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네바 강 삼각주의 습지에 건설된 신도시이다. 몇 번의 정치적적 격랑 속에 도시의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으나 지금은 다시 옛 이름과 명성을 되찾았다.

 

“96년인가 서울의 한 전시회에서 ‘일리야 레핀 (Ilya Repin)’의 세계를 접하고 저의 변화와 선택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주위에서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선택의 순간에서는 저 혼자만의 ‘고집’으로 극복했다고 할까요?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결정한 순간에도, 다시 러시아로 가겠다는 것도 그랬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맞는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과 흥미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의 생각이니 물론 맞겠지만 저의 귀와 눈은 항상 소수의 생각과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나 할까요?”

 

그는 러시아에서 유럽의 고전을 배우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기를 익히기에는 그곳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자부한다. 어째서일까?

“교육과정이 굉장히 합리적입니다. 그렇게 거창한 ‘합리성’이 아니라 무엇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해주는 환경과, 상대적인 감각을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죠. 그렇지만 그것 이상으로 감동시키는 건 바로 교육과정의 ‘기록과 보존’에 있었습니다. 달리 교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배운 모든 사람들의 작품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고 언제든지 보면서 참고 할 수 있죠. 그것이 역사인 것이죠. 더 나아가 이제는 유명 관광 상품이 되어 어느 거장 화가의 습작기 작품을 보러 오는 삶들이 줄을 잇고 있죠. 우리의 현실과 비교 해 보면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규칙적인 자연의 변화에 마음을 뺏긴 박성열화가, 사람이 그의 그림의 대상이라면 배경에는 항상 나무, 돌, 바위가 있다. 그런 그에게 스케치여행은 빼놓을 수 없는 창작의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산이 좋아서 하루의 짧은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그가 바라본 자연은 그의 화폭에 담겨 긴 여운으로 남겨져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작가는 다양성을 보여 줄 수밖에 없죠. 절대 대중을 교화시킬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겠죠. 대중의 몫은 남겨 둬야겠죠. 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 한다면 저는 그것이 곧 대중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 외에도 그는 운동을 즐긴다고 한다. 특히, 단체종목인 축구, 족구를 좋아 한다고 하는데, 요즘도 학생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을 좋아 한다.

“운동, 특히 여럿이 함께 하는 운동은 리더십과 사회성을 키우는데 최고로 좋죠. 쉽게 친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데 함께 운동하는 것이 최고죠. 그런데 요즘의 청소년기 학생들은 운동의 기회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이는 우리 기성세대가 반성해야죠.”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 은사인 이원희선생님의 이야기를 떠 올렸다. 늘 학교를 떠나지 않고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는 선생님,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거리에 계신 선생님을 잊을 수 없어 그 자신도 작업실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러시아 유학에서 아내를 만났으며, 함께 대명동에 화실을 꾸려놓고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4월 ‘규랑 예술제’ 전시 준비와 내년 3월 ‘제이원’에서의 초대전 준비에 여념이 없는 선생에게서 “길”이란 단어가 보이는 것은 그의 창작열과 닿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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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17 09:40

    첫댓글 고허님 반갑습니다. 박성열화백의 인간 냄새나는 그림 잘 감상했습니다.
    아래 그림들은 나무 조각인가요? 돌조각인가요? 독특한 것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작성자 12.02.25 21:47

    안녕하세요?
    바위 그림은 화백이 사람의 모습을 바위로 형상화 해서 그린 것 같습니다
    박성열 화백의 그림을 처음 접하였을 대 놀랍도록 뛰어난 표현력에 즐거운 상상력이 아울러
    첫눈에 마음을 끌어당기더라구요~
    비안나님도 즐거운 새해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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