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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十種譬喩의 重頌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欲知諸佛心인댄 當觀佛智慧니
佛智無依處하야 如空無所依로다
衆生種種樂과 及諸方便智가
皆依佛智慧호대 佛智無依止로다
聲聞與獨覺과 及諸佛解脫이
皆依於法界호대 法界無增減이니
佛智亦如是하야 出生一切智호대
無增亦無減하며 無生亦無盡이로다
如水潛流地에 求之無不得하나니
無念亦無盡하야 功力徧十方인달하야
佛智亦如是하야 普在衆生心하니
若有勤修行이면 疾得智光明이로다
如龍有四珠하야 出生一切寶호대
置之深密處라 凡人莫能見인달하야
佛四智亦然하야 出生一切智호대
餘人莫能見이요 唯除大菩薩이로다
如海有四寶하야 能飮一切水일새
令海不流溢하며 亦復無增減인달하야
如來智亦爾하야 息浪除法愛하며
廣大無有邊하야 能生佛菩薩이로다
下方至有頂히 欲色無色界가
一切依虛空호대 虛空不分別이니
聲聞與獨覺과 菩薩衆智慧가
皆依於佛智호대 佛智無分別이로다
雪山有藥王하니 名爲無盡根이라
能生一切樹의 根莖葉華實하나니
佛智亦如是하야 如來種中生이라
旣得菩提已에 復生菩薩行이로다
如人把乾草하야 置之於劫燒에
金剛猶洞然이어든 此無不燒理니
三世劫與刹과 及其中衆生이여
彼草容不燒어니와 此佛無不知로다
有風名散壞라 能壞於大千하나니
若無別風止면 壞及無量界니
大智風亦爾하야 滅諸菩薩惑이어든
別有善巧風하야 令住如來地로다
如有大經卷이 量等三千界호대
在於一塵內하며 一切塵悉然이어든
有一聰慧人이 淨眼悉明見하고
破塵出經卷하야 普饒益衆生인달하야
佛智亦如是하야 徧在衆生心호대
妄想之所纏으로 不覺亦不知일새
諸佛大慈悲로 令其除妄想하사
如是乃出現하사 饒益諸菩薩이로다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그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모든 부처님 마음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부처님의 지혜 자세히 보라.
부처님의 지혜 의지할 곳 없는 것이
마치 허공이 의지할 곳 없음과 같도다.
중생들의 갖가지 즐거움과
그 밖에 모든 방편과 지혜가
모두 다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했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의지함이 없도다.
성문이나 독각이나
여러 부처님의 모든 해탈이
모두 법계를 의지했지만
법계는 늘고 주는 일 없어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일체 지혜를 내지마는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또한 다함도 없도다.
땅 속 깊이 흐르는 물을
구하여 얻지 못함이 없으나
생각도 없고 다함도 없어서
공덕의 힘이 시방에 두루 하듯이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에 두루 있어서
만약 부지런히 수행만 하면
지혜의 광명을 빨리 얻으리라.
용에게 네 개의 구슬이 있어
온갖 보배를 내지마는
깊고 비밀한 곳에 있어서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듯이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도 그와 같아서
온갖 지혜를 내지마는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고
오직 대보살들만 보느니라.
바다에 네 개의 보배가 있어
온갖 물들을 빨아먹어서
바다의 물이 넘치지 않고
또한 늘거나 주는 일 아주 없듯이
여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물결을 쉬고 법의 애착 제거해
넓고도 커서 그지없으며
부처님과 보살들을 능히 내느니라.
하방(下方)과 유정천(有頂天)과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모두 허공을 의지했지만
허공은 분별이 없듯이
성문이나 독각이나
보살 대중의 모든 지혜가
모두 부처님의 지혜를 의지했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분별이 없도다.
설산에 있는 약나무 이름을
다하지 않는 뿌리라 하여
모든 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잎과 꽃과 열매를 내나니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종자 속에서 나고
보리를 이미 얻고 나서는
다시 보살의 행(行)을 내도다.
어떤 사람이 마른 풀을 손으로 잡아
세계가 타는 불[劫燒]에 넣으면
금강산도 오히려 활활 타는데
이 마른 풀이 타지 않을 리 없도다.
세 세상 겁(劫)과 모든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여러 중생들
저 마른 풀은 설사 타지 않는다 해도
부처님은 모르는 것이 없도다.
큰 바람 이름을 산괴(散壞)라 하여
대천세계를 능히 깨뜨리는데
만약 다른 바람이 막지 않으면
한량없는 세계를 다 파괴하리니
큰 지혜 바람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의 의혹을 소멸할제
훌륭하고 교묘한 바람 따로 있어서
여래의 지위에 머물게 하도다.
예컨대 여기에 크나큰 경책이 있어서
삼천세계와 분량이 같지마는
한 작은 티끌 속에 있으며
일체 티끌도 모두 그러해
어떤 총명한 사람이 있어
맑은 눈으로 분명히 보고
티끌 쪼개고 경책을 꺼내어
여러 중생을 모두 이익되게 하듯이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에 두루 있지만
허망한 생각에 얽힌 바 되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거든
여러 부처님이 크신 자비로
허망한 생각 없게 하려고
이와 같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모든 보살을 이익되게 하도다.
*
십종비유(十種譬喩)의 중송(重頌)
*
이시(爾時)에 :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이 : 보현보살마하살께서
욕중명차의(欲重明此義)하사 : 이 뜻을 다시 한번 더 밝히려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 게송을 말씀하셨는데
*
욕지제불심(欲知諸佛心)인댄 :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면
당관불지혜(當觀佛智慧)니 : 마땅히 관해라. 부처님의 지혜를 자세히 보아라.
불지무의처(佛智無依處)하야 : 부처님의 지혜는
여공무소의(如空無所依)로다 : 의지하는 곳이 없다.
여공무소의라 마치 허공과 같이 의지할 데가 없다.
하늘의 해도 달도 별도 전부 허공에 의지하겠지만, 새도 허공에 의지하지만, 허공이 어딘가에 의지하면 허공이 아니다.
허공은 본래 없는데 의지할 데가 어디 있겠는가.
*
중생종종락(衆生種種樂)과 : 여러 중생의 갖가지 낙과
급제방편지(及諸方便智)가 : 갖가지의 모든 방편과 방편지가
개의불지혜(皆依佛智慧)호대 : 모두 다 부처님의 지혜를 의지하지만
불지무의지(佛智無依止)로다 : 부처님의 지혜는 의지함이 없다.
*
성문여독각(聲聞與獨覺)과 : 성문이나 독각이나
급제불해탈(及諸佛解脫)이 : 여러 부처님의 해탈이
개의어법계(皆依於法界)호대 : 모두 법계를 의지하지만
법계무증감(法界無增減)이니 : 법계는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다. 허공에 허공을 보탠들 무슨 보탬이 있고 허공에 허공을 뺀들 무슨 뺀 것이 있느냐는 것이다.
반야심경에는 육불(六不)로써 부증(不增) 불감(不減)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구(不垢) 부정(不淨)으로 우리의 본심에 대해서 지극하게, 철저하게 혓바닥을 델 수 없는 자리를 이야기해 놓았다. 마지막에는 사성제도 없다. 12연기도 없다까지 이야기해놓고 반야도 없다 열반도 없다까지 해놓았다. 무지다 무득이다라고 해 놓았지 않은가.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라,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다,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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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지역여시(佛智亦如是)하야 : 무진이라고 하는 것은 무멸 다음에 오는 것을 무진이라고 한다. 십인품에서 나온다. 무생(無生)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없다. 멸하는 것도 없다. 멸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다하는 것도 없다. 무생 무멸 무진 다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변이다 무량이다 이렇게 나오지 않는가.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출생일체지(出生一切智)호대 :일체지를 출생시키되, 부처님의 지나 일체지나 똑같은 말이다. 온갖 지혜를 낸다 하지만
무증역무감(無增亦無減)하며 : 보태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고
무생역무진(無生亦無盡)이로다 :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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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잠류지(如水潛流地)에 : 땅속에 깊이 흐르는 물을
구지무부득( 求之無不得)하나니 : 구하여 얻지 못함이 없으나, 누구든지 다 하지만 물은 ‘내 거다 네 거다’ 고집하지 않는다. 저 바닷물이
무념역무진(無念亦無盡)하야 : 생각도 없고 다함이 없지만
공력변시방(功力徧十方)인달하야 : 공덕의 힘이 시방에 두루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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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지역여시(佛智亦如是)하야 :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보재중생심(普在衆生心)하니 : 중생의 마음에 두루 있어서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나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로다.
약유근수행(若有勤修行)이면 : 부지런히 수행하기만 하면
질득지광명(疾得智光明)이로다 : 지혜의 광명을 빨리 얻는다. 요는 정진이고 근수행이다.
약유근수행이면 부지런히 수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집착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언제 오느냐? 질득(疾得) 질풍같이 그 자리에서 질득지광명(疾得智光明)이라.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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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룡유사주(如龍有四珠)하야 : 용에게 4개의 구슬이 있어서, 용쯤 되어야 4개의 구슬이 있다. 우리가 수행을 안 하는 것은 용이 여의주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
용이 여의주를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어버린 것과 똑같다고 선가에서는 이야기한다. 용에게 여의주가 없으면 이무기도 아니고 미꾸라지가 아닌가.
중이 참선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미꾸라지다.
중은 반드시 경전하고 더불어서 자기의 마음에 대해서 계속 화엄경이라든지 이와 같은 이치를 탐구하면서 자나깨나 ‘이뭣고’ 해야된다.
출생일체보(出生一切寶)호대 : 온갖 보배를 내는 것이나
치지심밀처(置之深密處)라 : 깊고 비밀한 곳이 있어서
범인막능견(凡人莫能見)인달하야 :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한다. 여의주가 엔간한 데 있겠는가?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 오직 부처님만 할 수 있고 견성성불 해놓은 사람만 ‘마음을 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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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지역연(佛四智亦然)하야 :부처님한테도 네 개의 지혜가 있어서
출생일체지(出生一切智)호대 : 온갖 지혜를 내는 것인데, 출생일체지 하는데
여인막능견(餘人莫能見)이요 : 일체 다른 사람들은 볼 수가 없고
유제대보살(唯除大菩薩)이로다 : 오직 부처님만 제외가 된다 대보살은 부처님이잖은가. 부처님만 볼 수가 있다. 대보살은 볼 수 있지만 쪼잔한 보살은 못 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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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유사보(如海有四寶)하야 : 마치 저 바다에 4가지 보배가 있는데 그 보배가
능음일체수(能飮一切水)일새 : 넘치는 바다에, 물이 넘칠까 싶어서 온갖 물을 빨아먹어서
영해불류일(令海不流溢)하며 : 바닷물이 넘치지 않고
역부무증감(亦復無增減)인달하야 : 늘고 주는 일이 없도록 한다. 균형을 맞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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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지역이(如來智亦爾)하야 :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식랑제법애(息浪除法愛)하며 : 물결을 쉬고 법의 애착을 제거해서, 부처님의 지혜가 있으면 끌어넘치는 번뇌를 다 중심잡아준다, 이런 말씀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우리 본심이다.
광대무유변(廣大無有邊)하야 : 넓고도 커서 그지 없으며
능생불보살(能生佛菩薩)이로다 : 부처와 보살을 능히 낸다. 불보살이 거기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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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방지유정(下方至有頂)히 : 하방이라고 하는 것은 저 밑에 수륜에서부터이고, 유정이라고 하는 것은 유정천 저 색구경천까지
욕색무색계(欲色無色界)가 :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일체의허공(一切依虛空)호대 : 모두 허공을 의지하지만
허공불분별(虛空不分別)이니 : 허공은 분별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큰 구름 작은 구름 먹구름 막 지나가도 그냥 눈보라가 몰아쳐도 허공은 안 부서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슬픔도 있고 희로애락이 있지만 허공은 희로애락이 없잖은가.
그래서 마나라존자(摩拏羅尊者)의 게송처럼 심수만경전(心隨萬境傳)이나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보고 듣고 다 하지만 전처실능유(傳處實能幽)라, 가는 곳마다 마음이 전부 제대로 보고 듣고 다 하지만 이렇게 보고 듣는데 떨어지면 안되니까 무안이비설신의로 자신을 잘 돌이켜서 수류인득생(隨流認得生)하면, 말초신경을 잘 잡아서 소발자국을 잘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인득생이라, 근본 견성 성불을 해버리고 나면, 마음의 자성을 봐버리고 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도다. 기쁨도 없고 희로애락이 다 끊어져 버리고 없다.
본래 마음에는 선악이 없다. 업이 없으니까 선악이 없다. 선악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전부 생멸심이다. 불생불멸인데 무슨 선악이 있겠는가? 그러니까 본심에서는 깨달음도, 깨닫지 못함도 없다. 각도 불각도 없다.
그래서 기신론 같은 데서는 ‘진여문에서는 각과 불각이 없고 생멸문에서는 각과 불각이 있다’라고 한다.
생멸문에 왔을 때 본각도 있고 시각도 있고 불각도 있고 근본불각도 있고 지말불각도 있다.
그럼 돌이켜서 우리는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생멸문이 그대로 불생불멸의 진여문이다.그래서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다. 진여문과 생멸문을 나누는 순간에 그것은 일심에서 미끄러지기 때문에 진여문이 바로 생멸문이고, 생멸문이 진여문이다.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이다.
그것을 또 뚱딴지 같이 잘못 배워놓은 사람들은 자꾸 가르치기 위해서 분리한다. 지식을 위해서 분리하는 사람이 있잖은가, 그건 잘못 아는 것이다.
*
성문여독각(聲聞與獨覺)과 : 성문이나 독각이나
보살중지혜(菩薩衆智慧)가 : 보살대중들의 모든 지혜가
개의어불지(皆依於佛智)호대 : 부처의 지혜를 의지하지만
불지무분별(佛智無分別)이로다 : 부처님의 지혜는 분별이 없다.
부처님의 지혜는 크고 작은 것, 대소 장단이 있을 수가 없다. 둥글고 모난 것이 없다.
허공의 모양이 무슨 모가 났는가? 허공이 무슨 원만한가?
허공은 둥근 것도 없고 모난 것도 없다.
*
설산유약왕(雪山有藥王)하니 : 설산에 있는 약왕수가 있는데 그 나무는
명위무진근(名爲無盡根)이라 : 나무 이름이 무진근이라, 뿌리가 죽지 않는다.
능생일체수(能生一切樹)의 : 모든 나무의
근경엽화실(根莖葉華實)하나니 : 뿌리와 줄기가 된다. 모든 나무의 뿌리와 줄기는 중생이다.
화엄경 보현행원품 항순중생편에 보면 모든 나무의 잎과 꽃과 열매는 누구인가? 불보살을 잎과 꽃과 열매라 한다.
꽃과 열매는 불보살이고, 뿌리와 줄기는 중생이 근본이다 라고 해놓았다.
화엄경 실천덕목 보현행원품에 보면 제 아홉번째 항순중생에 그렇게 나오지 않는가.
*
불지역여시(佛智亦如是)하야 :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여래종중생(如來種中生)이라 : 여래의 성품 속에서 나고
기득보리이(旣得菩提已)에 : 또 보리를 이미 얻고 나서는 뭘 해야 되는가? 깨닫고 나서는 뭘 해야 되는가?
부생보살행(復生菩薩行)이로다 : 다시 보살행을 낸다.
그래서 전위보현 당위보현 후위보현이라고 한다. 전위보현은 십지보살이 되기 전의 보현보살이고, 십지보살이 되어서 보현행원을 하는 것은 당위보현, 그리고 깨닫고 나서 부처님이 되어서 깨달은 뒤에 하는 보현행을 후위보현이라고 한다. 지금 여기서는 후위보현을 이야기한다.
깨닫고 나서 뭐 할래?
보현행원.
새 잡아서 뭐하노?
새 팔지.
새 팔아서 뭐하노?
고무줄 사지.
고무줄 사서 뭐하노?
새총 만들지.
새총 만들어서 뭐하노?
새 잡지.
*
여인파건초(如人把乾草)하야 : 누가 마른 풀을 손으로 잡아서
치지어겁소(置之於劫燒)에 : 치지어겁소에 세계가 타는 큰 불 속에 넣으면
금강유통연(金剛猶洞然)이어든 : 철위 금강산도 유통연이라. 전부 다 타버리고 없다.
차무불소리(此無不燒理)니 : 이 풀이 타지 아니할 이치가 없네.
*
삼세겁여찰(三世劫與刹)과 : 삼세겁과 모든 세계가
급기중중생(及其中衆生)이여 : 그 속에 살아가는 중생이여
세계기시(世界起始) 업과기시(業果起始) 중생기시(衆生起始) 능엄경 4권에 자세하게 이 대목이 나온다.
피초용불소(彼草容不燒)어니와 : 저 풀은 설사 안 탄다고 해도, 불이 안 탄다해도
차불무부지(此佛無不知)로다 : 차불무부지로다. 부처님의 지혜는 대단하다.
*
유풍명산괴(有風名散壞)라 : 큰 바람이 있어서 산괴라고 하는데
능괴어대천(能壞於大千)하나니 : 대천세계를 다 깨뜨리는데
약무별풍지(若無別風止)면 : 다른 바람이 막지 않으면
괴급무량계(壞及無量界)니 : 모든 세계를 파괴하려니
*
대지풍역이(大智風亦爾)하야 : 대지풍이 그 바람을 막는다. 산괴바람 대지바람
멸제보살혹(滅諸菩薩惑)이어든 : 능멸하는데 모든 보살의 어업을 멸할 때
별유선교풍(別有善巧風)하야 : 교묘한 교지풍이라고 한다. 별유선교풍하야 선교풍이 있어서
영주여래지(令住如來地)로다 : 여래의 지위에 머물게 하도다.
그래서 부처님의 지혜는 혼자서 해탈 열반하는 것이 아니다.
십지품에 어떻게 나오는가?
여수이멸번뇌화(汝雖已滅煩惱火)나 그대 이미 번뇌의 불꽃이 다 꺼졌다 할지라도
세간혹염유치연(世間惑焰猶熾然)이라. 저 세간의 중생들은 치연한 번뇌속에 살고 있지 않느냐
당념본원도중생(當念本願度衆生)하야, 마땅히 부처님의 근본 원력을 생각해서 부처님의 본래 원력은 도중생이라. 중생을 제도해야 된다. 그래서
실사수인취해탈(悉使修因趣解脫)이라 모두로 하여금 바라밀행을 닦게 해서 해탈로 나아가게 하라.
계향 정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이라.
화엄경 십지품에 나오는 게송이다.
*
여유대경권(如有大經卷)이 : 마치 크나큰 책과 같은 마음이 있다. 글자가 아니라
양등삼천계(量等三千界)호대 : 양이 3천 세계와 분량이 같은데
재어일진내(在於一塵內)하며 : 한 작은 티끌 속에 있으면서도
일체진실연(一切塵悉然)이어든 :일체 티끌에도 또한 다 모두 그러하다.
*
유일총혜인(有一聰慧人)이 : 어떤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정안실명견(淨眼悉明見)하고 : 맑은 눈으로 청정한 눈으로 다 분명하게 통달해서 보고는
파진출경권(破塵出經卷)하야 : 파진 아주 작은 미세먼지 같은 깨끗한 그 속에서 큰 경전을 끄집어내어서
보요익중생(普饒益衆生)인달하야 : 널리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
*
불지역여시(佛智亦如是)하야 :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변재중생심(徧在衆生心)호대 : 중생심 속에 두루 있지만 재전법신(在纏法身)이지만
망상지소전(妄想之所纏)으로 : 중생이 얽혀 있는 것은, 그 전(纏)자가 이 전(纏)자다. 소전(所纏) 있잖은가? 얽힐 전(纏)자, 누에나 번데기가 고치 속에 꽁꽁 묶여 있는 것처럼 망상지소전이나 망상에 얽힌 바가 되어서 재전법신이 되어서, 그 법신이 꼼짝달싹 못하는 자승자박해서
불각역부지(不覺亦不知)일새 :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도다. 그런데
*
제불대자비(諸佛大慈悲)로 : 큰 부처님 자비로써, 지혜에 있는 분 미진에서 큰 경을 끄집어낸 분이 부처님이다. 제불이 대자비로써
영기제망상(令其除妄想)하사 : 모든 허망한 생각을 제거하려고
여시내출현(如是乃出現)하사 : 이와 같이 세상에 여래가 출현하셨다. 부처님이 뭐하려고 출현하셨는가? 미진같이 작은 중생들에게 거울을 다시 크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요익제보살(饒益諸菩薩)이로다 : 모든 보살들을 넉넉하게 이익되게 하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다음 장을 조금 열어놓고 다음 시간에 계속 하겠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 三十二
如來出現品 第三十七之三
5. 如來出現의 境界
(1) 如來出現境界의 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境界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無障無礙智慧로 知一切世間境界가 是如來境界하며 知一切三世境界와 一切刹境界와 一切法境界와 一切衆生境界와 眞如無差別境界와 法界無障礙境界와 實際無邊際境界와 虛空無分量境界와 無境界境界가 是如來境界하나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 응공 정등각의 경계를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는 지혜로 일체 세간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아야하느니라.
일체 세 세상 경계와, 일체 세계의 경계와, 일체 법의 경계와, 일체 중생의 경계와, 진여의 차별이 없는 경계와, 법계의 걸림이 없는 경계와, 실제의 그지없는 경계와, 허공의 분량이 없는 경계와, 경계 없는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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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제(卷第) 삼십이(三十二)
*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제삼십칠지삼(第三十七之三)
*
여래출현(如來出現)의 경계(境界)
*
여래출현경계(如來出現境界)의 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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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열어놓겠다. 여래출현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신구의 삼업해놓고 다음 시간에 할 것을 조금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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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응운하지여래응정등각경계(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境界)오 : 어떻게 알아야 되겠느냐? 여래응정등각의 부처님의 경계를 어떻게 알야 되겠느냐?
싹 다 부처님의 경계다. 싹다불, 싹다불경계, 마카다불경계,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갈타성불, 성도마카다, 조금 웃어주시기 바란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이무장무애지혜(以無障無礙智慧)로 : 장애에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는 지혜로
지일체세간경계(知一切世間境界)가 : 알아야 한다. 일체세간경계가
시여래경계(是如來境界)하며 : 바로 여래의 경계다. 아까도 말씀드렸다. 온전한 생멸법, 생멸문이 그대로 진여문일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손바닥을 떠나서 손오공이 놀 자리가 없다. 이것이 여래의 경계이며 모든 공간이 전부 여래의 경계이고 모든 시간이 전부 여래의 경계이다. 또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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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일체삼세경계(知一切三世境界)와 :지일체삼세경계와
일체찰경계(一切刹境界)와 :일체세계의 경계와
일체법경계(一切法境界)와 : 일체법의 경계와
일체중생경계(一切衆生境界)와 : 일체중생의 경계와
진여무차별경계(眞如無差別境界)와 : 진여의 무차별 경계,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계속 반복한다. 그것이 화엄경의 주제다.
법계무장애경계(法界無障礙境界)와 : 법계무장애경계와
실제무변제경계(實際無邊際境界)와 : 실제라고 하는 것은
‘실제이지(實際理地)에는 불수일진(不受一塵)이나 불사문중(佛事門中) 에는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실제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극락을 실제라고 한다.
그러니까 법성게(法性偈)에서는 어떻게 하는가?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마지막에는 실제에 앉는다. 실제는 앞뒤도 없고 아래 위도 없고, 없는 자리가 실제다. 그러면 어떤 자리가 없는 자리인가? 수처작주라. 서 있는 그 자리다. 실제에 그지 없는 경계와
허공무분량경계(虛空無分量境界)와 : 한량없는 허공의 무량무변한 경계와
무경계경계(無境界境界)가 : 무경계경계, 경계가 없는 경계가 뭐다?
시여래경계(是如來境界)하나니라 :시여래 경계다.
이러니까 십회향품에 ‘무상으로 상을 삼고 무성으로 성품을 삼는 무거무래 오고 감이 없는 그 자리가 바로 여래의 경계다’라고 하였다.
무경계가 경계다. 이해는 가셨을 것이다.
경계없는 경계가 여래의 경계라 하느니라.
이 세상의 이 모든 일이 비로자나의 꿈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비로자나의 꿈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나 비로자나의 꿈이다.
이것을 알면 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에 들어가는 뜻도 알아지고 나중에 선재동자가 비로장누각에 가서 자기 모습을 보는 것도 알아진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전부 무엇인가? 우리 아뢰야식이다.
그래서 뭐라고 하는가? 만법유식(萬法唯識)이다.
만법유식이다. 그래서 삼계유심(三界唯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오늘 강의를 마치겠다.
장시간 동안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무외시(無畏施)
음력 9월 7일 큰스님의 생신날이 올해는 10월 21일 토요일이었다. 전날 서울에는 가을비가 많이 내렸고, 생신날 아침에는 두둥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높았다.
이날도 큰스님은 아침 8시에 유튜브 염화실TV에서 세주묘엄품을 법문하셨다.
법문 말미에
“화엄경을 읽고 또 읽고 또 거기에 깊이 깊이 생각하고, 또 한번 더 읽고 그래서 혼자 무릎을 치기도 하면서 ‘그러면 그렇지, 부처님이 이러한 분이시지’ 모두 감동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하셨다.
동참하시는 분들이 날마다 늘어간다. 큰스님은 일일이 이름을 다 불러주시려고 노력하시다가 결국에는 항상 ‘각각등보체’하며 모든이에게 축원을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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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다음 까페 염화실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화엄전 마당에 생기가 절정이었다.
음영 깊은 그늘이 햇빛을 더욱 예리하게 해서 강렬한 콘트라스트의 사진들이 만들어졌다.
마당에 다회가 펼쳐졌다. 팽주는 원각행 보살님이셨다. 눈길 닿는 곳마다 형형색색의 꽃바구니들, 국화분과 난화분이 풍요롭게 빛났다. 꽃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마당 가득 다탁 앞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소하셨다.
뜨겁고도 청량한 화엄전 공기마저 다 느껴졌다.
동참하신 제자스님들이 큰스님과 함께 파안대소 하셨다.
이날 백여 명도 넘는 손님들이 오셨었다고 며칠 뒤 화엄법회에서 큰스님께서 무심히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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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사이 큰스님의 컴퓨터가 자주 고장이 나서 새로 컴퓨터까지 사셨는데 새 컴퓨터로도 방송을 하다가 중간에 끊기는 일이 잦았다. 마지막으로 큰스님의 컴퓨터를 밤새 점검해 주신 분은 구자복 거사님이셨다.
큰스님의 컴퓨터는 수리를 맡겼다가 무사히 찾아오셨고,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도 화엄경을 방송하는 법을 배우셨다. 큰스님은 자주자주 새로운 기계들로 방송켜는 법을 연습하시고, ‘트라우마까지 생겼다’고 하시면서도 법문 중에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컴퓨터 때문에 위기를 많이 겪고 속도 타고 생야단을 쳤는데 그래도 어딥니까? 신기하잖아요? 정말 너무나도 신기한 이치를 부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고 현대 과학이 증명해 보이고 또 우리는 그런 쪽에 관심을 기울이고 눈을 뜨니까 또 그것을 이렇게 마음껏 활용합니다. 그러면서도 기계이다 보니 고장도 날 수 있는데 그런 것 저런 것 다 감안하더라도 그래도 어딥니까?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간다, 그런데 버스가 가다가 고장이 났다, 그래서 고치고 시간이 걸려 시내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래도 그게 어디입니까? 걸어가는 것과는 천지차이죠.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그래도 이게 어디냐’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죠.”
“인생사 불만스러운 점을 가지고 말하기로 하면 끝도 없습니다. 물론 실수해서 넘어지고 또 고관절이 깨져가지고 새로 갈아넣고 옛날 같지 않죠.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렇게 오뚜기처럼 살아서 돌아와 가지고 또 이렇게 화엄경을 공부하고 또 화엄경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요. 용학스님이 QR코드까지 해와 가지고 그걸 선전하는 일까지 하게 됐으니 긍정적이고 즐겁고 반가운 일뿐이죠.”
“불행한 일 마음에 안 드는 일 불편한 일들을 드러내기로 하면 끝도 없이 많습니다만 그건 다 지나가는 것이고 그 가운데도 다행한 게 너무너무 많다는 것을 우리가 볼 줄 아는 그 마음, 부처님 공부하는 게 그런 마음 배우자는 것입니다.”
봉행불교상섭심(奉行佛敎常攝心)! 하고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수행자가 해야 할 일,
빛을 선택하는 일, 인연을 창조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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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용두사미.
처음엔 간도 쓸개도 내 줄듯 하더니 씁쓸함을, 5000퇴석을 저는 자주 느낍니다.
그러나, 그래도, 절대로 주저앉지 맙시다. 힘 내시기를...
혜명화보살님,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봉사해주시는 것을 잘 압니다.
덕분에 염화실이 더 빛나고 알차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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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奉行佛敎常攝心...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