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사온 곰인형에서는 심장 박동 소리가 났다.
곰인형을 안고 잠들면 마치 엄마 품에 안겨 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쿵쾅쿵쾅~ 아이와 곰인형은 꿈속에서 함께 놀았다.
<윌리엄텔 서곡>을 시작으로 연주는 시작되었고 사회를 맡아주신 하트하트재단 친선대사 최수종 씨는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에 대한 소개를 하자마자 먹먹한 감동으로 목이 메어 힘들어 하시더군요. 연주를 해야하는 저도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꾹 참아내려니 콧물이 흘러내려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중략)… <You raise me up>을 부른 이상우 씨와의 협연도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당신의 아들 이야기를 하시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노래를 해주셨지요. …(중략)… 마지막으로 <Summon the heroes>는 한결이의 트럼펫과 성민이의 멋진 북소리로 시작되었지요. 영웅을 부르는 소리는 우렁차고도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힘든 연습을 이겨낸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 영웅이었습니다.
-서선미 / 황진호 단원 어머니
엄마 내 손 잡아
▲ 신인숙 이사장 |
하트하트재단은 1988년에 설립됐다. 처음에는 지역사회 복지를 위주로 했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NGO(정부와 관련 없는 민간 국제단체)가 되었다.
결식아동의 급식비를 지원하는 ‘따뜻한 밥상 캠페인’, 지적장애 청소년들을 위한
‘하트하트오케스트라’, 각막이식 저시력 선천성녹내장 등의 안과질환을 치료해 주는
‘시력회복지원’,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병원에 안과클리닉 개설, 캄보디아 심장병 아동 수술, 몽골 아동을 위한 영양급식 등의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신인숙 씨가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30대 말, 셋째 아이를 막 낳고 나서부터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고 싶었다. 남편은 그때 봉제완구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든 가슴에 하트 모양 배터리가 들어 있어 안아주면 심장 박동 소리를 내는 ‘하트베어’ 인형이 미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 수익으로 심장재단에 기부를 하여 심장수술을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봉사의 길에 접어들었다. ‘하트하트재단’의 명칭도 ‘하트베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경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이 있지요.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래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도 한사코 거절했었는데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지요.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려면 혼자서는 못하거든요. 우리 재단이 보다 많이 알려진다면 후원금이나 후원단체 모으기도 수월하고 훨씬 더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 성경 말씀에 ‘악하고 게으른 종’ 이야기가 나와요.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땅속에다 묻어놓고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종에게 주인은 그 종의 달란트를 빼앗아 10달란트로 만든 종에게 준다는 내용이 있어요. 묵묵히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 하는 것 보다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진정 하나님이 진정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하트하트재단’은 하는 일이 많다. 일 잘하는 재단이라고 주변에서 다들 인정하고 있다. 또 생색나는 일보다는 남들 안 하는 일, 하트재단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려고 노력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케스트라, 지적장애 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덩치는 컸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지하철도 못 타고 혼자 햄버거 사먹을 줄도 모른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사람들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집에서는 없는 애 취급한다. 부부간에 갈등도 많고 형제간에 불화도 심하다. 그런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애들을 모은 게 아니고 할 수 있는 애들을 모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일년에 10여 차례 이상 연주회를 하고 2008년에 미국 연주 여행, 올해는 중국 공연도 갔다 올 정도가 되었지요. 10개월 연습해서 첫 연주회를 했는데 그때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던지. 1회 때는 중간에 일어나서 손 흔들고 좋아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번듯하게 차려입고 칭찬받고 신문 잡지에서 다뤄주고 하니까 애들이 달라졌어요. 자신감이 생기고 의젓해졌어요. 무엇보다 아버지가 돌아오고 가족 간에 관계회복이 이루어졌어요. 해외 연주 여행할 때 많은 부모들이 감동했지요. 평생을 돌봐주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식 덕에 해외여행하고, 만리장성에서 ‘엄마 내 손 잡어’ 하면서 이끌고 올라갈 때 눈물을 흘렸지요.”
세상에 빛을 주는 일 인터뷰 시작할 때는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였는데 하트오케스트라 얘기가 나오니까 신인숙 이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붙는다. 열정에 들뜬 목소리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오케스트라 연습하는 모습을 꼭 보고 가라고 권한다. 음악을 통한 사회활동인 ‘엘 시스테마 운동(국가 지원을 받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재단. 원래 음악을 위한 사회 행동으로 불렸다. 이 프로그램은 마약과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민 아이들을 구해준 것으로 유명하다)’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하트재단은 하는 일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아동들의 시력 회복 운동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앞을 못 보던 아이가 수술이 끝난 30분 후에 세상의 빛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방글라데시는 2억 인구 가운데 안과의사가 겨우 600명이다. 안과 질환에 걸려도 의사를 만나지 못하고 곧바로 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저희가 안과적인 질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들에게 빛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예요. 캄보디아에 태양광램프를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빛을 맞이하게 해주는 일, 그것은 영혼의 빛을 깨닫는 것과도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 가정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딸이 셋 있는데 모두 출가했어요. 막내가 두 살 지나서 재단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다행히 애들도 크게 어긋나지 않고 남편도 적극적으로 도와줬고 직원들의 도움도 컸지요. 저도 그렇고 직원들에게도 늘 말합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 사회에서 열심히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요.”
신인숙 이사장은 재단 일 이외에는 부수적인 다른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직원에게도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 애들 잘 키워라. 효율적으로 일하라’고 강조한다. 비영리적인 사업이지만 일할 때는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하트재단은 건실하고 믿을만한 봉사단체라고 이름이 나 있는지 모른다.
인터뷰가 끝나고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연습하고 있는 송파여성문화회관으로 향했다. 단원들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지적장애아들이 연주하는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훌륭한 화음이었다. 중간에 딴짓을 하는 단원도 없이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신인숙 이사장은 지금 연주하고 있는 곡은 연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투르다고 다른 곡을 주문했다. <윌리엄텔 서곡>, 하지만 그 곡은 조금 전에 연습을 끝낸 곡이라서 더 이상 들려주지 않고 그만 끝나고 말았다. 아이들이 보다 잘할 수 있는 곡을 들려주지 못해 신인숙 이사장은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글_ 김창일 기획위원
첫댓글 감사히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