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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스트리킹을 꿈꾸며
강돈묵
한약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는, 약방의 감초도 쓰이는 약에 따라 그 기능이 다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쩜 다른 기능이 있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에 설복당하고 만다.
수필을 말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는 천편일률적으로 ‘무형식의 형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져 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 두 구절은 글을 쓸 때, 즉 집필할 때의 상황을 지적한 말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구절은 분리시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붓 가는 대로’는 언제까지나 형식의 다양성을 지적한 말이고, ‘생각나는 대로’는 내용의 다양성을 지적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수필의 형식을 지적하는 이 감초는 언제나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말을 쓰고 우리의 마음을 느긋하게 해 주지만, 이것이 함정인 것이다. 짧은 길이의 글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해야 하는 수필에서 어찌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 문학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는가. 전혀 군더더기가 없이 치밀하게 절제된 언어로 필요한 형식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수필이다. 형식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형식이 많다는 것으로 인식해야 하며, 어떠한 형식이든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형식이라는 말은 반드시 틀이 있는 것이다. 일정한 상태나 고정된 성질이 바로 형식이다. ‘무형식의 형식’이란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개성이나 작품의 내용에 따라 다분히 개별적인 것이다.
‘생각나는 대로’ 역시 수필의 내용의 다양성을 지적한다. 이 말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모든 것들이 수필의 내용인 재료가 될 수 있다는 다양성을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하나의 작품에서 그 내용은 선별적이다. 그 선별은 치밀한 통일성을 가지고 이루어진다. 언뜻 생각하면 글을 쓸 때 생각나는 대로 쓰면 수필이 된다는 뜻으로 보이나 그것이 아니라 너무도 절제되고 통일성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문학 장르라서 오히려 부드럽게 표현해 준 것이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어떤 소재는 시로 써야 하고, 또 어떤 소재는 소설로 써야 할 것이 구분되지만, 수필은 어느 것이든 다 취해서 작품으로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양성도 하나의 작품 속에서는 철두철미한 통일성을 가지면서 존재한다. 오히려 소설보다도 더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선택을 요구하는 다양성이다. 이 짜임새는 벼리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물의 위쪽 코를 뀌어 놓은 줄과 같이 다양성은 주제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작품의 구석구석에까지 무르녹아 있어서 그 작품을 지배하고 통치하고 이끄는 힘이 주제이다. 마치 투망의 벼리와 흡사하다. 끝에 달린 추를 잡아당겨도 끌어올릴 수 없는 그물도 벼리에 의해서 관장할 수 있듯 주제가 확실해야 작품의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제를 살리기 위해 동원되는 내용은 과감히 칼질을 해야 수필은 성공한다. 이 점 역시 수필이 작가에게 요구하는 고뇌 중의 고뇌이다.
나는 수필을 쓰면서 이 내용의 다양성에 현혹되어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열 손가락 마디마디에 맺힌 사연은 아리게 나의 뇌리를 비집고 들어오고, 마음이 여리기 한량없는 나는 아린 손마디가 안쓰러워 등을 토닥거리며 안아 들인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가슴은 하나이고, 모두를 끌어안기에는 부족하다. 더러는 제한된 조건이 원망스럽지만, 눈물을 흘리더라도 꼭 필요한 것만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을 터득해야 한다. 많은 내용 중에서 취사선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반드시 행해져야 할 일이다.
나는 이런 곤경에 빠질 경우에, 수필은 고백의 문학이고 진실의 문학이라고 다짐한다. 이것이 내가 끌어안을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르는 척도인 것이다. 소설이 철두철미한 거짓말쟁이를 요구한다면, 수필은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는 진실한 삶의 기록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송두리째 내보이는 수기여서는 안 된다. 내보이긴 보이되 군더더기가 없이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것이 수필이다.
나는 수필을 쓸 때마다 군중이 모인 거리에서 알몸을 한 채 부끄러움에 떤다. 어찌 보면 누가 쓰라고 해서 쓰는 것이 아니니, 알몸으로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계획된 나의 스트리킹인 셈이다. 번번이 나는, 옷은 어느 곳에서 벗어던질까. 어떤 방법으로 군중들을 감동시키는 알몸의 노래를 부를까 하고 고심하게 된다. 물론 횟수를 거듭할수록 방법도 다양해지고, 기술도 늘지만 부끄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면서도 스트리킹의 매력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사람마다 石化 되어가는 방법이 생기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몸뚱이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과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놓고 우리는 개성이라고 한다. 이 개성은 인생관, 세계관, 문학관에 따라 다른 형태로 창조된다.
나는 요즈음 다른 사람들이 전혀 흉내 낼 수 없는 스트리킹을 하고 싶은 욕구에 싸여 있다. 그것을 본 관중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간직할 정도로 특이하고 인상적이며 고상한 스트리킹, 여느 사람과 전혀 다른 나만의 스트리킹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찾아 무수히 많은 여행을 떠나야 한다. 나의 눈에 안식의 나태가 둥지를 틀어서는 아니 되고, 언제나 깨어 있어 예리하게 빛나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제 새끼도 기르지 못하는 식물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생명마저 없는 무생물들에게 목숨을 얹어주고 싶은 충동에 긴긴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방긋이 웃으며 내 품으로 안겨 온다. 어떤 것은 시원스레 달려들기도 하고, 어떤 것은 몸을 비틀며 나를 유혹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것은 일 년이 넘도록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품으로 파고들 것이라고 믿고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나는 확실히 내 품에 안기려는 뜻이 감지되기 전에는 끌어안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의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하여 완성하기까지 일 년도 넘게 기다린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 이것은 여러 개의 물상을 동시에 사랑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주위의 모든 것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욕심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 게다. 나는 매일매일 주위의 물상들이 변하여 가는 모습을 관찰이나 하듯 메모를 한다. 항시 내 주머니 속에는 대여섯 장의 메모들이 들어앉아 완전한 사람의 확인을 기다리기 일쑤이다. 끊임없이 사랑의 눈빛을 전하면, 오든 물상들은 감정의 변화가 느린 짐승처럼 부스스 일어나 언제나 부대끼며 살아가는 내 이웃의 얼굴을 하고 내게로 다가선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그들을 끌어안는다.
수필은 자신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고 다가갈 때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즉 수필은 따스한 정이 있어야 한다. 비록 사회를 비판하는 글이라 하더라도 그 사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말을 하고 산다. 그 말은 내 안에서 생각으로 머물 때는 ‘나’이지만 밖으로 뱉고 나면 우리의 삶에 대한 객관성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여야 한다. 여기서 표현의 문제가 제기된다. 표현은 정확해야 하고, 간결하면서도 핵심이 있어야 하며 고상해야 한다. 이제는 알몸의 스트리킹보다는 중점적인 효과를 유념해야 한다. 그래야 관중에게 주는 이미지가 강렬할 것이기 때문이다.
집필의 태도는 경건해야 한다. 나는 집필 전에 서재를 치우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연습지 같은 부담이 없는 종이에다 쓰는 법이 없다. 조그마한 흠집도 없는 깨끗한 종이에다 쓴다. 한 자의 낙서라도 되어 있으면 나의 마음이 시답지 않고 경망스러워 좋지 않다. 깨끗한 종이를 대할 때 나의 마음은 경건해지고 흐트러짐이 없다. 어느 때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백지만 바라보며 사흘도 좋고 나흘도 좋게 앉아 있기도 한다. 첫 문장이 이루어지면 실타래를 풀 듯 메모된 개요에 따라 써 내려간다. 한 편의 수필이 완성되면 한 주일이나 두 주일을 재운 후에 소리 sodj 읽어본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그 문장은 틀린 것이다. 틀린 문장을 다시 퇴고하고 나면 제목이 붙게 되고, 나는 알몸을 추슬러 옷가지를 걸치게 된다. 그다음 나는 사용된 감초의 맛을 음미해 볼 일이다.
첫댓글 강동문 수필가님 올려주신 수필 잘 읽었습니다
김영훈 카페방을 활성화 시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자주 래방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