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9. 추수감사주일예배설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범사에 감사가 가능할까요?
■ 누군가에겐 쉬운 것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누구는 할 수 있지만, 누구는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쉬울 수 있지만, 이 말을 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맙습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자로는 5마디인데, 마치 5만마디나 되는 것처럼 무겁고 어렵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맙지 않은데 억지로 해야 해서 그럴까요? 이런 경우라면,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마운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기 때문에 못 한다면? 이런 경우는, 용기를 내시기를 권면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꼭 말하는 것이 바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마울 수 없는데, 그리고 고마울 일도 아닌데, ‘고맙습니다’를 말해야 한다고 할 때, 과연 이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이는 감히 반항할 수 없는 분의 뜻이기에 당황스럽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다.”
사실 당황스러운 근본적인 이유는, 이유 없이, 더욱이 비인격적으로 뜻을 내비치시는 분이 아니니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왜 하나님 뜻인지 알아보겠습니다.
■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이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감사할 일에 감사하는 것이야 당연합니다. 조금 아쉬운 면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는 감사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것은 좋은 태도입니다.
그런데 삶에 늘 감사할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데도 “모든 일에 감사하라”?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 참으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황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황스럽고, 황당하지만, “모든 일에 감사하라”,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 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이유 없이 뜻을 드러내시고, 비인격적 명령을 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황스럽고, 심지어 황당하기도 하지만, 이 뜻에, 이 명령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무엇일까요?
1.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의도는, 감사의 조건은 내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나 하나님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얼마나 다양한 일들을 만나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전혀 상반된 일들을 빈번하게 겪습니다. 사랑과 미움, 믿음과 배신, 절망과 희망, 전쟁과 평화 등과 같은 상반된 일을 수시로 겪습니다. 분명 사랑, 믿음, 희망, 평화는 감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이와는 달리 미움, 배신, 절망, 전쟁은 감사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사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운 것들도 “범사”-“모든 일”-“어떤 처지”에 해당합니다. 그렇기에 미움, 배신, 절망, 전쟁 등과 같은 것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연 이런 것도 감사해야 합니까?’ 하고 항의는 할 수 있지만, 이런 것도 감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답의 단초(端初)를 전도서 3장 1~8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이 범사와 천하 만사의 기한과 때를 정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범사와 천하 만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범사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있고, 천하 만사가 하나님의 계획에 있기에, 모든 일의 기한과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통치를 폭력이나 독재로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폭력이나 독재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를 잘되게 하시고 바르게 하시려는 목적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폭력이나 독재가 아닌 것은 일방적이 아닌, 인격적 결단 아래 통치력을 행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끊임없이 영적 소통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에, 이는 결코 독재도 폭력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의해, 모든 일의 기한과 때가 정해졌기에, ‘왜 이러셨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을 수는 있어도, 감사의 이유는 너무도 충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는 말씀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를 갖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의도는, 감사는 상황이나 결과를 보고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결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보고서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끝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것이라면, 이를 지금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끝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이 끔찍한 상황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내 생각이지, 끝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아직입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 하나님의 결과는 늘 동일합니다. 시편 23편 4~5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상황은 어둠이지만, 그 상황은 구원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내 구원의 잔은 넘치고, 내 감사는 당연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 못할 이유는 없고, 감사해야 할 이유는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황과 결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깊게 볼수록, 그리고 크게 볼수록 감사의 깊이와 크기는 깊고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우리에게는 ‘안 되는 것과 안 될 것’을 찾는 심리가 큽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믿음이 좌절로 바뀌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관점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믿음이 좌절로 바뀌는 경험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렇게 읽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기한과 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황과 결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상황 읽기에 실수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아니, 감사해도 될 이유가 차고 넘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완벽한 시간표를 노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시간표를 믿는 한, 불평이 아닌 감사의 이유는 충분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과 결과에 거룩한 개입을 하시기에, 그 개입을 기뻐하는 한, 불평이 아닌 감사의 이유는 충분해졌습니다.
■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기대하십니다. ‘나를 믿으라!’ ‘나의 완벽한 시간표를 믿고 따르라!’ ‘나의 선한 결과를 믿고 웃어라!’
그러니 이제부터 울지 말고 웃으십시오. 절망 말고 희망을 품으십시오. 불평이 아닌 감사로 사십시오. 하나님은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늘 여러분의 잔을 넘치게 하십니다. 자, 이제부터 범사에 감사하시겠습니까?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시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만이 구원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