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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漁父辭): 어부 이야기
屈原 (BC339-278?)
중국 전국시대 말기 楚나라(項羽의 楚나라가 아님)사람으로
王의 신임을 받아 三閭大夫라는 높은벼슬에 올라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애썼으나 奸臣輩들의 謀陷으로 朝廷에서
쫓겨나 失意의 나날을 長江 주변을 방황하면서 지냈는데
이 때 유명한 ‘漁夫辭’를 남겼음.그후 楚나라의 앞날에
희망이 없어지고 망할 지경에 이르자 5월5일 돌을 품고
호남성 상수 지류인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는데
5월5일은 그를 추모하는 祭日이 되고 端午節의 由來가 되
었다함. 문학적으로는 辭라고하는 산문형식의 장르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屈原은 훗날 李白이나 杜甫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漁夫辭'
屈原旣放 遊於江潭 行吟澤畔할새(굴원기방 유어강담 행음택반)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가나 못가에서 노닐고 호반에서 시를 읊조릴 때
*潭;소, 못. 澤;연못, 畔;물가
顔色憔枯槁悴 形容하니(안색초췌 형용고고)
안색이 초췌하고 모습이 수척해 있었다.
*憔;수척하다.悴;파리하다,시들다.槁;마르다,
漁夫 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아(어부견이문지왈자비삼려대부여)
어부가 그를 보고는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신가?”
*與;무리,동아리,긍정. 子; 당신, 어조사.
何故 至於斯오(하고 지어사)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소?”
*斯;이,사물을 가르키는 대명사
屈原曰 擧世皆濁이어늘 我獨淸하고(굴원왈 거세개탁 아독청)
굴원이 말하기를 “온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衆人皆醉어늘 我獨醒이라 是以見放이로다.(중인개취 아독성 시이견방)
뭇사람이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있으니 그래서 추방당했
소이다.” *見;당하다,만나다
漁夫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하니(어부왈 성인불응체어물
이능여세추이)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나가니,
*凝;엉기다.滯;막히다.
世人皆濁이어든 何不其泥而揚其波하며(세인개탁 하불기니이양기파)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어찌 그 진흙을(그들과같이) 휘젖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泥;진흙.
衆人皆醉어든 何不飽其糟而飮(吸)其하고(중인개취 하불포기조이음기)
뭇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왜 그 술지게미를 먹고 그 지게미
국물(薄酒)을 마시지 않고는
*飽;배불리먹다.糟;술지게미
何故 深思高擧 自令放爲오(하고 심사고거 자령방위)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 必彈冠이오(굴원왈 오문지 신욕자 필탄관)
굴원이 말하기를“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자는 반드시 관을 퉁겨서
쓰고 *沐;머리감다
新浴者 必振衣라(신욕자 필진의)
막 목욕을 한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고 하였소이다.
*浴;몸을 씻다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아(안능이신지찰찰 수물지문문자호)
어찌 몸의 깨끗한 곳에 外物의 수치스러운것을 것을 받겠소.
*安;어찌.察;깨끗하다. 汶;수치,부끄러움.
寧赴湘流하여 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영부상류 장어강어지복중)
차라리 湘江에 뛰어들어 강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를 지낼 지언정.
*寧;차라리,어찌. 赴;달려가다.
安能以皓皓之白으로 而蒙世俗之塵埃乎아(안능이호호지백 이몽세속지진애호)
어찌 희디흰 순백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쓴단 말이오?”
*安;어찌.皓;희다,깨끗하다. 蒙;입다,어둡다.埃;먼지,티끌.
漁夫 莞爾而笑하고 鼓枻而去하며 歌曰(어부 완이이소 고설이거 가왈)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莞;웃다,왕골.爾;어조사,너.枻;노,배의 키
滄浪之水 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오(창랑지수 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
*兮;어조사. 纓;갓끈영
滄浪之水 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로다(창랑지수 탁혜 기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수 있도다.”
遂去하여 不復與言이더라.(수거 불복여언)
마침내 떠나가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어부사(漁父辭): 어부 이야기
屈原旣放(굴원기방): 굴원이 이미 쫓겨나
游於江潭(유어강담): 강가와 물가에 노닐고
行吟澤畔(행음택반):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顔色樵悴(안색초췌): 얼굴색은 초췌하고
形容枯槁(형용고고):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어부견이문지왈 자비삼려대부여):
어부가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하니,
屈原曰, 擧世皆濁(굴원왈 거세개탁): 굴원이 말하기를, 세상이 다 혼탁한데
我獨淸(아독청): 나 홀로 깨끗하고
衆人皆醉(중인개취):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我獨醒(아독성): 나 홀로 깨어 있었습니다
是以見放(시이견방): 이런 까닭에 추방을 당했다.고 하니
漁父曰 聖人(어부왈 성인):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不凝滯於物(불응체어물): 세상 사물에 얽매이지 않지만
而能與世推移(이능여세추이):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世人皆濁(세인개탁):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何不굴其泥而揚其波(하불굴기니이양기파):
어찌 진흙탕을 휘어저 그 물결을 일으키지 않으며,
衆人皆醉(중인개취): 뭇 사람이 모두 취해 있거늘
何不飽其糟而철其리(하불포기조이철기리):
어째하여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지 않으십니까?
何故로 深思高擧(하고로 심사고거):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自令放爲(자령방위):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게 하십니까? 하니
屈原曰, 吾聞之(굴원왈, 오문지): 굴원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新沐者(신목자):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必彈冠(필탄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新浴者(신욕자): 새로 목욕한 사람은
必振衣(필진의):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 어찌 맑고 깨끗한 몸으로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寧赴湘流(녕부상류):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葬於江魚之腹中(장어강어지복중):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安能以皓皓之白(안능이호호지백):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而蒙世俗之塵埃乎(이몽세속지진애호):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하니
漁父(어부): 어부는
莞爾而笑(완이이소): 빙그레 웃고서,
鼓枻而去(고설이거): 노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乃歌曰, 滄浪之水淸兮(내가왈, 창랑지수청혜): 이렇게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 창랑의 물이 흐리면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내 발을 씻으리라. 하곤
遂去不復與言(수거불부여언): 마침내 떠나가고 다시는 대화가 없었다.
*이 글 어부사(漁父辭)에는
굴원의 강직한 성품이 묻어나며,
어부의 달관(達官)한 삶의 자세와 굴원의 인품이 대조되어 그 빛을 더하는 작품이다.
"모두가 취해 있으나 홀로 깨어있다"라는
"중취독성(衆醉獨醒)"의 고사성어는 이 어부사에서 연유한 말이다.
굴원(屈原)은
기원전, BC 343년 경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楚)나라에서 태어나 BC 289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하진 않다.
성(姓)은 굴(屈) 이름은 평(平)이고 자는 원(原)이다.
양쯔 강(揚子江) 중부 유역에 자리한 큰 나라였던 초(楚)나라에서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의 친척이었던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20대에 좌도(左徒)라는
중책을 맡을 정도로 총명하였고 또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굴원(屈原)은 제(齊)나라와 동맹을 맺어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며 소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진(秦)나라의 재상 장의(張儀)와 내통하고 있던 간신(姦臣)들과
회왕(懷王)이 총애하는 애첩(愛妾)의 집요한 방해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회왕(懷王)은 오히려 제(齊)나라와 단교하고 진(秦)나라에 붙었으나
진(秦)나라에 이용만당하고
결국에는 막내아들 자란(子蘭)으로 부터 살해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
회왕(懷王)이 죽은 뒤 큰아들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막내아들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이라 불리는
재상자리에 오르게 된다.
굴원(屈原)은 회왕을 객사케 한 자란(子蘭)을 백성들과 함께 강력 비난하다가
또 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 강(揚子江)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되고 만다.
지금 소개하는 "어부사(漁父辭)"는 그때 쓴 작품이다.
10 년 간을 방랑 생활로 보낼 무렵
자신이 그토록 우려하고 걱정한 대로,
진(秦)나라에 의해 조국인 초(楚)나라가 결국 멸망 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굴원(屈原)은 온 몸에 돌을 매달고 미뤄 강 즉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만다.
그 때가 그의 나이가 54세 였다고 전하나 이 또한 정확하진 않다.
굴원(屈原)이 투신 자살한 현재의 지명(地名)인 멱수(汨水) 강가에는 그의 무덤이 있으며,
그 곁에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져 애국(愛國) 충절(忠節)을 기리고 있다.
중국에서 굴원이 자결한 날인 음력 5월 5일을 단오절(端午節)이라고 해,
그를 추모하는 제일(祭日)로 정해져 내려오고 있다.
뱃머리에 용머리를 장식한 용선(龍船)을 타고 북을 치면서 경주를 벌이는 용선경도(龍船競渡)가
지금도 중국과 홍콩 마카오등에서는 음력 5월 5일에 열리는 연중 축제행사로 성대하게 치러진다.
당시 굴원(屈原)의 시신을 찾고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배를 타고 와서,
물고기가 시신을 훼손치 못하도록 북을 치고 쫓으며
물속을 휘젖던 것에서 유래한 놀이가 바로 용선뱃놀이의 기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단오날에 간혹 쌀을 넣은 대통밥을 소태나뭇잎으로 싸는 것이나,
갈대잎이나 대나무잎으로 싸서 찐 수리취라는 떡을 물고기에게 던져주는 풍습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물속에 잠긴 굴원(屈原)이
물고기에게 뜯어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의 뜻에서 이어져 내려온 풍습이라고 한다.
대나뭇잎으로 싸서 찐 찰떡을 단오날에 강에 던져 물고기에게 주기도 하고,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풍습등은 모두 굴원(屈原)의 충정(忠政)을 기리는데서
유래한 풍습으로,
우리나라의 단오날 역시 중국에서 오래전에 전해진 풍습이 그 기원이라 하겠다.
[간체자]
屈原既放,游于江潭,形容枯槁,面容憔瘁,渔父见而问之曰:子非三闾大父欤,何故至于斯?屈原曰:‘举世皆浊我独清,众人皆醉我独醒,是以见放。
’渔父曰:‘圣人不凝滞于物,而能与世推移。世人皆浊,何不濯其泥而扬其波?
众人皆醉何不铺其槽而歠其醨?何故深思高舉,自令見放為?’屈原曰:
‘吾聞之;新沐者必彈冠,新浴者必振衣;安能以身之察察,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葬于江鱼之腹中;安能以皓皓之白,而蒙世之尘埃者乎?
渔父莞尔而笑,鼓枻而去。乃歌曰:’沧浪之水清兮,可以濯吾缨;沧浪之水浊兮,可以濯吾足。’遂去,不复于言。
此篇名句:‘举世皆浊我独清,众人皆醉我独醒。
’正是因为屈原有如此崇高的气节,死后才能流传千古,至今被人们所祭奠。
굴원이 추방을 당하고 나서 강호에서 노닐고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선생은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깨어 있으니,
이런 까닭에 쫓겨나게 되었다오."
어부가 말했다.
"성인은 사물에 얽맹지 않고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줄 안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왜 그 진흙탕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다면 어째서 그 술지게미를 먹고 찌꺼기 술을 마시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스스로 쫓겨나게 하셨습니까?"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건대, 방금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서 쓰고, 방금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합니다.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에 가서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어부는 빙그레 웃더니, 뱃전을 두드리고 떠나면서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되는 것을!"
그리고는 떠나가서 다시는 함께 이야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