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생일도 어김없이 나의 결핍을 지적해 준다. 나이를 먹다 보니 생일을 만날 때 마다 점검해보라는 메시지가 늘어나고 있어 고맙게 받는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나의 생일 하늘 아래서는 더 웃자, 더 걷자, 더 칭찬하자, 더 조심하자, 그리고 최선을 다하자 등의 깃발이 펄럭인다.
‘생신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해' 말에 잘 길들여져있다. 복울 빌어주고 빌어왔다. 생일 축하 노내나 축하 케이크 까지 합세해서 복을 빌어준다. 내가 태어난 내 날은 하루 뿐이고 나는 더 많은 날들을 많이 누릴셈이다. 매일 매일이 이미 받은 복으로 출렁대고 있다. 그 복을 잃지 말고, 잊지 말고 누리자는 환기의 인사로 들린다. 생일날 그 하루만이라도 한 발자국 나만의 복으로 다가간다.
복이란 무엇이가. 자가창출이 아니라고 자고로 복은 언제나 받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늘에서 땅으로, 위에서 아래로
또 조상이 후손에게 등등, 그렇다면 복을 관리하는 누군가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온 의식구조는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어서 탓할 생각은 없다. 만약에 줄 사람은 생각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는데 김칫국부터의 궁리라면 좀 무안하고 멋 적어 지지 않을까 기우도 생긴다. 복을 빌고 복 받기를 바라며 살아온 그야말로 복에 허기진 우리의 과거가 아니었던가.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고전적 복의 개념을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는 수(壽, 오래 사는 것) 둘째는 부(富,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 셋째는 강령(康 寧, 육체적으로 또 마음으로 건강히 편안하게 사는 것) 넷째는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는 일상적 태도로써 선행으로 덕을 쌓는 것)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 고통 없이 생을 마치는 편안한 죽음 등 오복이다. 기독교적 접근의 복은 푸른 잎사귀와 과일을 내놓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시편은 천명한다. 복은 스스로 내놓은 만큼 돌아온다. 베푼 만큼 ‘돌아오는’ 것이다. 흘러넘치는 복은 누군가가 복의 씨앗을 이미 뿌렸기 때문에 내가 지금 받아서 누리는 것이다. 누리는 만큼 감사하고 베푸는 만큼 기쁜 것이다. 이것이 심는 대로의 법칙(갈라디아서 6:7)이 적용되는 삶이다. 우리는 이미 복 주기를 기뻐하는 하나님의 축복 테두리 안에 있다. 그가 피 흘려 지불한 대가를 우리는 지금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그가 준 복을 세어보면서 감격하는 작은 가슴만 있으면 족하다. 그 다음 감사는 자연발생적으로 오는 건강 순서이다.
금년에 맞는 생일은 코비나, 거리두기를 건너 격리의 시간속에 묻어두었다. 지나가고 있다. 생각의 전환이 왔다. 생일축하 미역국이 없어도 매일이 생일이다. 매일이 덤이다. 셍일 하루만이라도 우리 모두 베풀고 내놓는 '복의 출발'에 참여하자. 소망과 기쁨을 세며 누리기를 바라는 절절한 마음이다. '복 많이 누리세요' 라고 외쳐보면 어떨까. 바로 복 있는 자의 삶 한 복판에 서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해피 버스데이도 좋고 생일날 복 많이 누리세요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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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 Farmers 마캣에 건강 빵 시네마 Roll, 사라에게는 컨추리 롤 하나 안겨줬다. 내가 15불 지불, 앞에 사람 한국 하이커. pv 하이킹 코스 안내받기 위해 전화번호 알아뒀다. 지난번 유체꽃 사진답사 때 일행이 길 잃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PS;
Hyzen 좌욕기 생일선물/ 무개때문에 차고에 방치된 물건. 사라엄다도, 저도 약한 여잔데 끙끙대며 방으로 운반, 설치해놓고 떠난 한 주 후 그 토요일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젊다는 것 밖에 저도 치료받는 환자인데....(4월16이었다)
첫댓글 네 선생님, 매일매일 생일처럼 즐겁고 건강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또 산에 갔어요? 며칠 연락이 안되는군요.
오리지날 오너 흑인 이웃 여자 판사가 사망,
Open House 다녀왔어요.
연락이 안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