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에 미친 남편을 보면서 >
남편은 마라톤에 미쳤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모든 생활의 초점이 마라톤에
맞춰져 있으며 마라톤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나든 이야기
의 화제는 마라톤이어야 하고 쇼핑을 할 때도 마라톤화와 마라톤 복이 우선이며
식사를 할 때도 마라톤을 고려한 식사를 하며 드라이브를 할 때도 마라톤 코스를
염두에 두고 거리를 체크하며 운전을 한다.
이렇듯 남편은 철저히 마라톤에 빠져있다. 그가 처음 달리기를 한다고 할 때만
해도 지금의 상황은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4년 전 처음 그가 살을 빼기 위해 달
리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박수로 응원을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제발 꾸준히
달리기를 하여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처음 한 달간은 무척 힘들어하면서 동네 어귀를 30분 정도 달리는 것으로 운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어느새 탄력을 받았는지 시간이 늘어나고 운동 횟수도 많아지는
듯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겠다고 했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어서 조금 더 연습을 한 뒤에 나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남편은 나의 만류
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대회 참가를 결정했다.
대회 날 불안한 마음에 대회장에 따라가서 남편의 골인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뒤뚱
거리는 몸짓과 일그러진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골인을 한 뒤 한참 동안 무척
힘들어했다. 나는 그날 남편의 표정을 보고 여기서 마라톤을 접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건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다음날
이었다.
10km를 완주했으니 이제 하프에 도전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동호회에
가입해서 체계적으로 마라톤 생활을 해보겠다고 했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체중
감량을 위해서~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마라톤을 하겠다고 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
었다.
이때부터 남편의 생활패턴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라톤화와 마라톤 복을 사기 위해
쇼핑센터에 가는 횟수가 많아졌고, 달리기 시간도 점차 길어졌다. 그리고 여가시간
에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마라톤 동호회에 들어가 마라톤에 관련된 글을 읽고 종종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아지고 여타
다른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는 듯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하프를 몇 번 완주하고 1년쯤 지나 풀코스에 도전할 때쯤 남편은
1년 전과 비교하여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살도 많이 빠졌으며 얼굴도 몰라
보게 수척해졌다. 아는 사람들이 어디 아프냐고 할 정도로.
크고 작은 기념일은 물론이고 집안의 애경사보다도 마라톤 대회가 우선이었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도 마라토너들과의 만남이나 동호회의 모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속으로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나는 것은 운동복
빨래이고 쌓이는 것은 마라톤 대회의 기념품과 매달, 그리고 기록증이었다.
어느 해 가을 그가 첫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서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거만 모드”로
변해 있었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 마라톤 이야기만 하려 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
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거칠게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시댁에서도, 처갓 집에서도,
그리고 친구들, 하물며 옆집 사람에게도 그의 풀코스 마라톤 완주의 무용담은 그를
흥분케 했고 다른 사람들을 마라톤으로 전도하기 위한 최대의 무기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는 내가 보기에 분명 마라톤에 철저히 미쳤지만 그 스스로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는 그 행복의 보금자리에 안주하려 했고 더 큰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마라톤에
더욱더 빠져드는 듯 보였다. 완주 횟수가 늘어 갈수록 그는 기록 욕심을 내기 시작했고
대회가 끝나면 왜 이번에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는지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했고,
다음에 그것만 보완하면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는 확신에 찬 그의 말을 들으면
그가 조만간 목표한 기록을 이룰 것 같은 기대감이 들곤 했다.
이를테면, 이번 대회에서는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해서 그렇고, 지난번 대회에서는
중간에 급수와 급식을 하지 않아서 그랬고, 그리고 지지난 대회에서는 새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그럴듯한 그만의 교훈을 제시하곤 했다. 그의 말이 맞는
듯 첫 풀코스를 4시간 53분에 완주를 한 그가 6회를 완주했을 때 4시간 7분에
골인을 하고 나서 서브 포(sub-4: 풀코스 마라톤에서 4시간 이내에 골인한 기록)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꿈에 부풀기보다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벽에다가 “인간 오동철~~ 대망의 서브 포에 도전하다”라고 크게 써서 붙이고는
남편이 서브포를 하기 위해선 아내의 도움 없이는 안 되니까 남편 서브 포 하라고
기도도 많이 하고 음식도 어떤 것이 마라톤을 하는데 좋은 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아빠가 서브포를 하기 위해서 마음을
굳혔으니 너도 반에서 1등을 목표로 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네가 반에서 1등 하기가 어렵겠냐? 아빠가 서브 포 하기가 어렵겠냐? 는
질문을 던지고서 아이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서브포가 무척 더 어렵다는 것을
재삼 강조했다.
그러나 쉽게 될 것 같은 서브 포는 남편의 의지와 노력에 비해 쉽게 되지가 않았다.
나는 대회 때마다 소고기 등심과 장어 그리고 각종 과일을 부지런히 제공해야 했으며
대회 3일 전부터는 찰밥을 하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남편이 대회를 마치고 오면
늘 궁금한 것이 서브포를 했는가?이며 나중에는 그의 표정을 보고 그가 오늘도 서브
포를 못했구나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오늘 그가 왜 서브포를 할 수 없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과
다음에는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길 수차례, 그의 완주 횟수가
13회가 넘어갔을 때 그는 드디어 서브포를 했다. 서브포를 한 날, 그는 완전히 영웅처럼
보였다. 아니 영웅처럼 대접해 주길 바랐다.
나더러 이제 당신도 대한민국에서 서브포의 아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해야
될 거라고 하면서 마치 대통령 영부인이라도 만들어 준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서브포를 했으니 너도 이제 최고 명문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라면서 대한민국에
서브포를 한 사람은 얼마 안 되며 최고 명문대 졸업생에 비하면 서브포를 한 사람은
3분 1도 안되니 열심히 공부해서 꼭 최고 명문대에 가라고 했다.
남편은 다음날부터 자기가 서브포를 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 보였다.
거실의 중앙 벽에 있는 우리 가족사진을 떼어내고 서브포의 골인 장면을 담은 사진을 걸고,
기록증과 매달도 그 옆쪽으로 나란히 걸었다. 그리고 시댁 쪽에는 자기가 전화를 해서
서브 포 한 사실을 이야기할 테니 처가 쪽 장인과 장모, 처제 처남들에게는 나에게 알
리라고 했다. 자기가 무슨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도대체 80이 넘은 장인 장모가
서브포가 뭔지나 아냐고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