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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5일차
오늘 아침은 적봉에서 우하량으로 간다. 예상 시간은 4시간. 그런데 고속도로를 타고 조양시로 우회하여 우하량으로 가지 않고, 버스는 국도로 달렸다. 1시간 빠른 11시에 우하량 유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전시관으로 향했다. 예전에 왔었을 때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관광지로 변모되어 있었다. 박물관과 유적지 사이를 오가는 버스를 타게 만들어 관람 비용을 높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처음 들어간 ‘우하량 홍산문화전시 센터(중심)’은 뭔가 이상했다. 우하량 유적 박물관이 아니라, 중국 고고학의 대부인 소병기 개인의 일생과 연구, 주요 업적을 소개하는 전시관이었다. 소병기가 중국 고고학의 태두이고, 우하량 유적을 중국문화의 시원으로 변모시킨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를 위한 독립적인 전시관을 만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다시 버스를 타고 2~3분 정도 이동하여, 우하량유지박물관에 들어섰다. 박물관에서 들어가면 처음 마주하는 것이 원형 돔에 비추는 VTR로 보는 홍보영상이다. 과도하게 홍산문화를 중화문명의 위대한 시원이라고 강조하는 선전물이었다. 특히 홍산문화의 시간적 공간적 틀에 상응하는 유일한 것이 황제(黃帝-軒轅)의 활동 중심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황제 헌원의 활동 연대는 B.C 2716에 태어나 2697년 경이다. 황제 헌원에 대한 기록은 갑골문이나, 금문(金文)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춘추전국시대 말기부터 본격 등장한다. 전설상의 인물로, 홍산문화 연대인 B.C 4,500~3,000년과도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황제는 황하 유역의 여러 부족을 규합해 치우와 맞서 이겼다는 전설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황제가 홍산문화의 시공간과 상응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환단고기의 주장을 이병도가 주장했다고 사실이라고 믿어라! 하는 것과 같다.
또한 홍산문화 전언(前言-PREFACE)에는 지금부터 약 5,800년에 우하량유지를 대표로 하는 홍산문화가 고국(古國) 단계에 진입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고국이란, 소병기가 제시한 국가 형성 및 문명 발전 3단계론에서, 古國-方國-帝國에서 그 처음을 말한다. 고국은 홍산문화와 양자강 일대 양저문화를 설명하기 위한 모델이다. 이때는 신권 중심 사회라고 하고, 방국단계(B.C 2,500~221)는 하상주(夏商周)를 비롯한 여러 부족국가가 속하며, 왕권 중심의 국가로 보는 것이다.
우하량 유적군의 전체 면적은 50㎢나 된다. 부천시보다 작고, 서초구 보다 조금 큰 면적이다. 이곳에는 유적 번호가 붙은 16개 지점이 있는데, 제1지점이 여신 묘이고, 2지점에는 적석총과 제단이 있는 곳으로 49기의 무덤이 있다. 5지점, 16지점 등에도 수십 기의 무덤이 있고, 13지점에서는 피라미드식 석관묘가 있다. 13점 피라미드는 아직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한 변이 약 60m인 7층 무덤과, 그 앞에 제단까지 있는 초대형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는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이 무덤을 왕릉이라고 단정하고 선전하고 있다. 소병기의 고국 모델과도 배치되는데, 과연 B.C 3,000년대에 강력한 왕이 존재하고 왕릉이란 말을 쓸 수 있을까? 우하량 유적지에는 주거지 흔적도 거의 없는, 종교 중심지인데, 규모가 크다고 왕릉이라고? 향후 중국에서 황제(黃帝)의 무덤이라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은 홍산문화 여러 유적지를 소개한 점. 연대별로 유적지 관련 소식을 정리하고, 홍산문화 연구에 업적을 남긴 여러 학자 소개와 저서를 전시한 점. 중국 각자의 신석기 유적과 비교한 점, 전시관 2층 작은 전시실에 홍산문화와 양자강 일대의 양저문화를 간략하게 비교한 점 등은 좋았다. 홍산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가야 할 곳이다.
전시장 마지막 부분에 황제, 고신, 전욱, 요, 순 5명의 인물 석상을 만들어 놓은 것을 통해 중국사회가 어디로 가는지를 볼 수 있었다. 중화 세계관 특징의 하나로 거론되는 것으로, 하나의 문화적 연원을 한 개인에게 간단히 환원시켜 영웅을 만들어가는 영웅주의다. 봉건 질서의 잔재인 신화적 인물에 기대어, 고대사를 정리하는 것 자체가 중화민족사의 논리적 토대가 허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버스를 탔다. 공개된 지점은 1지점 여신묘와 2지점 제단과 무덤 지역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1지점 여신묘는 공사 중이라고 지금 볼 수 없단다. 아쉬웠다. 우하량 제2 지점은 유적을 관람할 수 있게 타원형 돔 구장을 만들어 놓았다. 어린이 관람객을 위해 만화로 고고학이 무엇이며, 무덤, 적석총 등 유적을 이해에 필요한 정보를 아주 잘 정리해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 이렇게 한 것은 높게 평가하고, 칭찬한다.
유적 전시관에는 6기의 적석총(塚)에 47기 무덤이 있다. 나주 신촌리 고분들처럼, 대형 봉분 하나(塚)에 여러 무덤 시설(墓)가 포함되어 있다. 전시관에 들어가면 중앙에 보이는 것은 3호 적석총인 제단이다. 3층 원형의 제단은 돌로 경계를 쌓았다. 2호, 3호, 4호 적석총은 경계 담장에는 채색을 한 통형기(筒形器-대롱 형태의 토기)가 줄지어 있었는데, 제사용 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에 있는 2호 적석총은 장방형 형태로, 담장을 쌓고, 그 안에 4각 중심 무덤이 있고, 토광묘, 토광 석관묘가 몇 개 있었다. 2호 적석총 주변에는 배수구도 있어, 당시 기술력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더 왼쪽으로는 1호 적석총이 있다. 1호 적석총에는 옥기가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다. 원형 제단 북쪽에 있는 것이 6호 적석총이고, 원형 제단 옆에 크게 조성된 것이 4호 적석총이다. 4호 적석총 동북에 있는 것이 5호 적석총이다.
4호 적석총은 다른 적석총과 달리 상층과 하층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하층은 남북 방향으로 시신을 묻은 것에 비해, 상층은 머리를 서쪽, 발은 동쪽에 둔 것이다. 하층은 토기와 옥기가 섞여 나오지만, 상층은 옥기 위주로 부장품이 나온다. 하층은 원형이 위주이며 1총(塚-봉분)에 1묘(墓-시신을 넣은 무덤), 결구(結構)가 단일하며, 봉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며, 무덤의 등급이 명확하지 않고, 부장품인 옥기도 적고 도기(陶器)가 다수인 특징을 갖고 있다. 반대로 상층은 원형과 방형의 결합 형태를 가진 무덤이 많으며, 1총에 다수의 묘가 있으며, 결구도 복잡하다. 무덤의 경계가 명확하지만, 무덤이 제단과 결합하거나, 여러 무덤이 조합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무덤군 내부 중심에 큰 묘가 있어, 무덤 등급이 명확하다. 이러한 특징은 우하량 사회가 점점 계급화가 진행되고, 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커지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우하량 지역 묘장(墓葬) 제도의 특징의 하나는 기존의 무덤이나 매장지의 유골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다시 매장하는 천장(遷葬)이다. 50기(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전시관의 무덤 숫자가 차이가 난다) 묘장 중 22개 무덤이 천장 무덤으로, 13개는 시신을 옮겨 넣은 무덤, 9개는 시신을 뺀 무덤이다. 우하량 무덤에는 다수의 인골이 출토되어, 무덤 주인공의 성별도 알 수 있다. 자세히 검토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 확인된 인골을 가운데 여성 인골의 비중도 높았다.
5호 적석총은 제사 기능을 한 돌로 쌓은 제단으로, 내부에 무덤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 인골이 나오기도 해, 전체적 성격이 다소 애매하다. 단지 적석총의 바깥 경계 부분만큼은 확실히 보였다.
4호 무덤에 불을 피운 자국이 있다고 했기에, 어디 부분을 말하는지를 찾아다가 결국 못 찾았다. 다른 곳보다 깊이 파진 곳도 왜 그랬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무덤이 제단과 붙어 있는가? 왜 제단 옆에 시신을 매장했는가? 여기에 묻힌 사람들은 종교 지도자인가, 정치 지도자인가? 50만㎢의 넓은 지역이 모두 종교 성지일까? 이곳에 왜 거주지 유적이 없을까? 옥기 제작 기술 수준은 엄청나게 높은데, 왜 궁궐이나 관청 같은 유적은 없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랐다. 작은 전시관에서 거의 1시간을 보냈다. 가이드의 재촉으로 1시 35분에 전시관을 나왔다.
2시 40분경에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 식당이 문을 닫아, 중국 컵라면으로 식사했다. 향도 특별하지 않아 맛있게 먹었다.
버스가 하북성으로 들어올 때 검문이 다소 길어졌다. 승덕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경. 호텔 방에 들어와서 짐을 풀고 6시 30분 호텔 1층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첫댓글 국내 역사학계가 친일, 친중사학자들로 이루어졌으니 역사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것 같습니다. 그동안 보수정권이 다 친일 친미정권이니 더하겠죠. 얼마전에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에 대해 언급하자 보수 친일 친미세력들은 환단고기 책 한번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위서라고 주장하니 역사광복이 되겠습니까? 중국 탁록에는 한족들이 자기들 시조라 주장하는 황제헌원과 신농씨의 거대한 석상이 마치 피라미드 못지않은 규모로 세워져 있고 역사가 고작 250년밖에 안된 미국 조차도 자기들 국조라고 일컫는 조지 워싱턴을 비롯 3명의 역대 대통령의 거대한 석상이 러쉬모어에 세워져 있는데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 단군상이 하나도 없다는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국민 모두가 역사광복을 위해 나서야할 때입니다. 정치인, 역사학계가 못하면 우리라도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