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그의 이력을 듣고 난 뒤 자연스런 물음이었다. 상대를 나와 전공을 살린 일본 유학, 수출입은행 지점장 퇴임. 그의 이력 어디를 봐도 그림의 '그'자도 없다. 심지어 화가를 꿈꾼 적도 없다.
그랬던 그가 화가로서의 이력과 상훈은 평생을 몸바쳐온 금융인의 그것들을 능가했다.
예순을 넘겨 그림을 시작한 그를 보며 헤르만 헤세의 역작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평생을 잠자고 있던 그림의 끼가 드디어 잠에서 깨어난 것일까? 최근 영화배우로도 변신했다. 인생3모작에 도전한 안창수(74) 화가는 요즘 고향 양산에서 호랑이에 빠져 있다.
오는 봄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한국의 호랑이를 복원하는 국책사업에 맞춰 '102마리 연작 호랑이' 등 50여 점의 백두산 호랑이 그림을 전시할 계획이다.
사실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는 한국의 호랑이도 알고 보면 시베리아 호랑이다. 시베리아에 서식하던 호랑이가 한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산림청은 지난해부터 백두산 호랑이 암수 3마리를 산 전체를 대형우리 삼아 생태적응훈련을 시키고 있다. 반달가슴곰 방사프로젝트의 연장선이다. 일반인들은 울타리 바깥에서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안 화백이 어떻게 호랑이그림과 인연을 맺게 됐을까?
정년퇴임 이후 소일거리로 붓글씨를 시작했다가 그림에 호기심이 생겨 계획에도 없는 중국으로 그림 유학을 갔다. 돈키호테식 기질 덕분(?)에 또 일본으로 건너갔다.
귀국 이후 주로 닭을 그렸다. 출신 대학의 상징인 독수리도 그렸다.
그러다 이왕이면 동물의 제왕 호랑이를 그리자 싶어 도전했다. 보통 사람보다 3배나 빠르다는 그의 필력은 산군(山君)의 위세와 예민하고 빠른 습생까지도 담아내는 바탕이 됐다.
'정통 화가가 아니다'는 꼬리표가 신경이 쓰였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수상한 화려한 화력(畵歷)이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화가로 변신한 안 화백의 다른 이름은 설파(雪波)이다.
雪波는 어린 시절 양산의 원효암에서 공부할 때 천성산에 내린 함박눈을 표현한 것이다.
고등학생의 눈에는 그저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 설경이었지만 붓을 들고 보니 어느새 지나온 인생처럼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 눈밭에 앉은 호랑이는 그의 인생 2모작을 대변하고 있다. 천성산에서 눈을 보며 금융인을 꿈꿨듯이 눈밭을 스쳐간 바람의 지문(指紋)은 다양한 화제(畫題)로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상철은 그의 그림에 대해
"그는 중국 항주의 중국미술대학과 일본의 경도조형예술대학에서 수학했다. 그의 작업에는 바로 전통적인 중국남종 문인화에서 필묵취미와 더불어 근대 이후 중국화가 이루어낸 새로운 성과들 역시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남종화에서 벗어나 점차 조형성을 강조하며 서구적인 방법을 절충한 새로운 양식이다"라며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을 주문했다.
백두산 호랑이 복원프로젝트
경북 봉화군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이 새해 들어 깜짝 이벤트를 공개한다. 4만8000㎡(1만4500평)에 이르는 '호랑이 숲'을 만들어 한국산 호랑이 복원에 나선다. 두만(수컷) 한청(암컷) 우리(수컷) 등 3마리를 우선 방사한다. 15살배기 두만이는 중국에서 기증받았다. 백두산 호랑이를 남한의 숲에서 만나는 것은 거의 1백년 만이다.
한국산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때 해로운 짐승을 없앤다는 이유로 97마리가 남획됐고 남한에서는 1921년 경북경주시 대덕산에서 사살된 것이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현재 50여 마리의 백두산 호랑이가 전국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다. 백두산 호랑이는 육중한 체구, 둥근 머리, 작고 동그란 귀가 특징이다. 앞발과 어깨의 근육이 매우 발달했으며 힘도 세다. 수직 줄무늬는 회색, 붉은 밤색, 검정 등이다.
북한에서는 1959년 이후 백두산, 강원도 추애산 일대의 호랑이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서식하는 야생의 시베리아호랑이는 250마리 미만으로 추정된다.
雪波 안창수(安昌洙)
1945년생, 양산
<학력>
연세대 상대
일본국립나고야대학 석사
중국미술대학 2년
일본경도조형예술대학 수학
<화력>
중국임백년배 전국서화대전 1등상(호랑이)
일본전국수묵화수작전 외무대신상(호랑이)
일본전일전 준대상(호랑이)
신사임당 미술대전 특선(포도)
국제문화교류상(투계도)
중화배전국서화예술대전 금상(독수리)
글 최석철 편집장 / 사진 이윤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