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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엄마랑 정이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한다 이걸
입는다 저걸 입는다.. 왔다갔다하며 부산을 떱니다.
"연아? 너 뭐하고 있니? 준비 안해?"
엄마가 방에서 mp3를 들으며 누워있던 내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정이 상견례 하는데.. 너두 같이 가야지?"
"잉? 내가 거길 왜가? 부담스럽게.. "
"어머.. 얘좀봐.. 진우(정이랑 결혼할)네 집에선 형제들 다 나온다고 했단 말야.
지금 준(오빠)이랑 윤(막내동생)이는 미국에 있구.. 여기에 너하나밖에 없는데..
너라두 같이 가야지. 어서 준비해라."
정이가 새삼스레 부러워지네요.. 양쪽 집에서 환영해주는 연애를 하고.. 또 오늘
결혼식 날짜를 잡기 위해 이렇게 상견례까지 하고..
"언니.. 미안해."
"치.. 그런말이 어딨어?"
"언니두.. 금방 결혼할꺼지? 우리 둘다 결혼하면 가까이서 살면서 서로 남편 흉도
보고 그러자..^^"
"하하.. 벌써 남편 흉볼생각부터 하니? 나중에 내가 흉본다고 펄펄 뛰지나 말아."
"히힛... 언니.. 그런데 말야. 언니가 전에 말하던 남자.. 언니가 빠졌다는 남자..
대체 어떤 남자야? 왜 얘기 안해? 나 기다렸는데.. 어떤 남자길래.. 그렇게
집에 말도 못꺼내는거야? 언니.. 저번에.. 정말 그 남자랑 같이 있었던거야?"
"나중에.. 얘기하자. 복잡해.."
"언니.. 혹시.. 언니가 전에 말하던 친구 있잖아.. 연하남이랑 결혼했다는..
그게 혹시.. 언니 얘기야?"
정이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봅니다. 아니라고도.. 그렇다고도 할수가
없더군요.
"언니!! 설마.... 그런거야?"
정이는 내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표정이 변하더군요.
그때 엄마가 우리의 옆에 서시자 정이는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아버지가 보낸 차를 타고 상견례를 하기로 한 xx 호텔에 다다랐습니다.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어머.. 닥터 최.. 많이 기다렸어요? 호호.. 늦어서 미안해요~"
...................
난 갑자기 등장한 성민을 보고 놀라고 있는데.. 우리 엄마와 성민은 미리 약속이나
한듯이 자연스럽습니다.
"상견례 하는데.. 너 혼자 앉아있으면 보기도 좀 그럴꺼 같아서.. 닥터최 불렀다.
어차피 니네 결혼할 사이니까.."
나에게 작게 속삭이는 엄마에게 발끈했지만.. 난 입을 다문채 호텔로 들어섰습니다.
진우네 식구들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으례껏 하는 인삿말과 정이와 진우에 대한 칭찬의 말이 오간후
엄마가 나와 성민을 가리키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얘는.. 교수될려구 지금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큰딸 연이구요.. 이쪽은
결혼할 사람.. 큰 사윗감이에요.. 호호.. 치과 의사죠.."
"어머나.. 정말 대단한 따님과 사윗감을 두셨네요.. 물론 정이도 예쁘고 똑똑하지만
언니도 그러시네요.. 사위 되실분도 어쩜 그렇게 준수하신지.. 어쩜 그렇게
자식복도 많으세요? 정말 잘 키우셨습니다.."
진우 어머니의 어쩌면.. 단지 예의일뿐일지도 모르는 칭찬에 엄마는 꽤나
으쓱해하고 있었습니다.
상견례후.. 성민과 한 커피숍에 마주 앉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난 어색하게 주스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미안해요. 우리 엄마가 이런..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한거..."
"미안해 할 필요없어요.. 내가 원해서 나온거니까..."
"성민씨.. 내가 말했잖아요. 남자 있다구요. 사랑하는 남자 말이에요."
"하하.. 정말.. 사랑한다고 확신할수 있어요?"
"그게..무슨 뜻이죠? 제가 거짓말 하는걸로 보이세요?"
"사랑한다면서 왜 집에 소개시키지 못하죠? 조건이나 배경이 저보다 못한가요?
그래서 그렇게 소개도 못하는 거에요? 그게 사랑이라고 할수 있나?"
비웃는듯한 성민의 말에.. 발끈했지만.. 뭐라고 할말이 없었습니다.
성민이 틀린말을 하는건 아니니까.. 그래서 더 화가 나네요..
"잘은 모르겠지만.. 연이씨 집에다 말도 못하고 남자 만나는것 보면.. 부모님이
당연히 반대하실 남자를 만나는거 같은데... 그냥.. 재미로 만나는거에요?
그냥 가볍게 만나기엔.. 나이가 있지 않나요?"
"성민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사랑과 동정.. 그리고 현실과 이상을 착각하지 말아요. 냉정하게 판단해요.
결혼은 단지 사랑만으로.. 둘이서만 하는게 아니잖아요?"
"내가 왜 성민씨한테 이런 얘길 들어야 하죠??"
"나.. 친구로써.. 연이씨한테 그정도도 얘기 못해줍니까?"
".. 그래요.. 나 겁장이에요. 용기가 없어서.. 우리 엄마 쓰러질까봐.. 내가
만나고 있는 남자에 대해.. 얘기를 꺼낼 엄두조차 못내요. 하지만..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건 확실해요. 어떻게든.. 이룰거에요...!"
"연이씨..!"
"미안해요. 먼저 일어날께요. 오늘 이렇게 말도 안되는 연기를 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다시는 이런일.. 없을꺼에요."
난 먼저 커피숍에서 나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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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무작정 차를 타기도 하고 정처없이 걷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곳.. 난 정훈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디에요?"
"몰라.. 그냥 오다 보니까.. 이상한데까지 왔어..."
"그러게 내 생각에 너무 빠져 있지 말래두.^^"
"그래.. 니 생각을 너무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흘러왔어... 보고 싶어.. 정훈아."
"뭐라구요?"
"보고..싶다구.."
"뭐라구요?.. 잘 안들리네..^^"
............
"너 짜증난다구..!!-_-"
"헤헤~ 보고 싶다고 했잖아여~ 그럼 보여줘야지 뭐..-_- 내가 지금 달려갈께요.
주위에 뭐가 있는지 설명해봐요. 큰 빌딩이라던지.. "
난 대충 주위의 전경에 대해 설명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훈이가 달려왔습니다.
"누나? 차림이.. 오늘 선 봤어요??"
"아니.. 왜??"
"정장.. 입었잖아요?"
"응.. 동생 상견례하는데.. 따라갔댔어.."
내 말에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 정훈...
"왜 그래? 표정이?"
"미안해서요.. 내가 좀더 번듯한 상황이었다면.. 누나네 집에 당당하게 가서
인사드릴수 있었을텐데.."
"그런말.. 하지마. 내 잘못이지 뭐. 내가 용기가 없는것.. 그게 문제야."
"누나.. 내가 만일.. 결혼하자고 하면.. 어떨거 같아요?'
"글쎄..?"
"난 원래.. 결혼 안하고 이여자 저여자 만나면서... 편하게 살려고 했었는데
... 얼마전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겨버렸어요~"
"후후.. 그래? 그럼 프로포즈라도 한번 해보지 그래?"
"퇴짜.. 맞을껄요? 몇년후에는.. 정말 제대로 멋지게.. 할수 있을거 같은데..
지금은 내가 그렇게 프로포즈할 상황이나 주제가 못되거든요..."
"치.. 그래서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는 얘기구나?^^"
"그런데.. 지금 프로포즈 못해도.. 그 여자가 날 기다려 줄까요?"
"그 여자가 널 사랑한다면~ 기다리겠지~^^"
정훈이는 내 손을 붙잡고 걷다 말고 갑자기 날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왜.. 그래? 쑥쓰럽게~"
난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두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안는 정훈..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요.."
"나.. 원래 누구랑 눈 잘 못맞춰.. 쑥쓰럽단 말야~"
"그럼 입을 맞출까요?"
말을 말아야지... -_-
"나를... 사랑해요?"
"풉.. 왜 이래? 알면서..?^^"
"웃지 말구... 진지하게 말해줘요."
난 차마.. 말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내가.. 만일 곁에 없다면.. 누나.. 나 잊어버릴꺼죠?"
"치.. 그런 말이 어딨어? 옆에 있으면 좋아하구, 없음 말구.. 그런 사이야? 우리?"
"내가 당분간.. 누나 곁에 없다면.. 주위 사람들이 누날 가만두지 않겠죠?
그리고 누나도 결국.. 흔들리겠죠?"
"야.. 너 오늘 왜 이래? 며칠전만 해두 우리의 현실이나 장애물을 터뜨려버리자며
그렇게 풍선을 터뜨렸잖아.. 왜 벌써 이래? 너야말로 흔들리는거야?"
"아니요. 난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 내 인생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은
누나뿐이에요. 만의 하나 다른 여잘 만나 결혼을 한다고 해도.. 누날 내 마음속에서
지울순 없을꺼에요. 죽을때까지.. 아니 죽어도 잊지 못할거에요!"
"너.. 왜 자꾸.. 그런 소릴 하는거야?"
"나.. 못 기다리겠죠?"
"정훈아.. 너.. 어디 가?"
"아니에요.."
정훈이는 애써 웃음지으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려고 했지만.. 난 그런 모습에
왠지 더 불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정훈아.. 왜.. 멍멍이들 있잖아.. 개들 말야.. 목에 띠를 두르고 있는게
무슨뜻인주 알아?"
"이쁘라고.. 하는거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본적 없는데요?"
"물론 장식용이기도 하겠지만.. 그 띠.. 다시말해 목걸이를 매고 있는 개들은
주인이 있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밖에서 돌아다니더라두 목에 띠둘린 개는
주인을 찾아줘야 하는거지."
"갑자기.. 왠 개 얘기에요?"
"나두.. 개 목걸이 있잖아.. 요기.."
난 목에 걸려 있는.. 정훈이가 선물로 준 목걸이를 들어보이며 웃었습니다.
"어떻게.. 비유를 해도.. 역시 누나답네요.. 하핫.."
정훈이는 그제서야.. 환하게 미소지었습니다. 난 속으로 정훈이에게 말했습니다.
[불안해하지마.. 정훈아.. 나 늘 니곁에 있을께...]
정훈이와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기다렸다는듯이.. 날 반기시더군요.
"연아.. 사실은 어제 교수님 만났다. 성민이 어머님 말야.."
"네? 왜 또 만났어? 성민씨랑.. 그냥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니까!!"
"닥터최는 그렇게 말 안했다는데? 너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단다.. 얘.. 닥터최..
사실..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게 좀 마음에 걸렸었는데.. 엄한 외삼촌 밑에서
자라 그렇게 번듯하잖니. 게다가 어머니가 교수이고.. 봐라.. 얼마나 유능하고
교양 있으시니? 얘.. 게다가 재산도 꽤 많다더라. 닥터최.. 외아들이니까 결혼함
그 재산도 다 니꺼 되는거 아니니?... 정말 이런 자리가 또 어딨겠어?
능력있겠다 재산도 많겠다.. 또 집안도 좋겠다.. 정말 금상첨화 아니니?"
"엄마.. 나한테 말도 없이 성민씨를 불러내질 않나.. 교수님을 만나지 않나..
대체 왜 이래요? 누가 성민씨랑 결혼한데??"
"얘.. 솔직히 니가 튕길 입장이니? 교수님이 그러시는데.. 너가 원하면 유학도
시켜주시겠데. 닥터최도 공부 더 하고 싶어하구.. 너도 교수 되고 싶어하니까
같이 보내주시겠데. 니들이 원하면 말야.. 세상에 그런 자리가 어딨니??"
"엄마! 나 성민씨랑 결혼 안해..!"
"뭐야? 너 지금 굴러들어온 복을 차겠다는거야?"
"나.. 그사람 사랑 안해. 결혼 못해!"
"어머.. 얘.. 웃기네? 너 그나이 되도록 사랑 타령이야?"
"엄마..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요.."
"뭐?? 어머!! 얘가.. 정말..!!"
"엄마.. 한번.. 만나볼래..?"
"너.. 진짜야? 공부만 하는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래.. 어떤집
아들이야? 나이는 몇이야?.. 직업은 뭐니? 의사야? 아님 변호사나 판사?
생긴건 어떠니? 키는 크니?"
"엄마... 그 사람이 착한지.. 나한테 잘해주는지.. 또 어떻게 만났는지
그런건 하나도 안 궁금한거야? 왜 겉으로 보이는것만 물어요?"
"니가 지금 20살이냐? 20살이면.. 니가 어떤 남자를 만나든 상관 안해.
하지만 너.. 지금은 달라. 결혼하기에 적당한 남자를 만나야 한다구!"
"엄마.. 나 그 사람 사랑해요.."
"하~ 사랑?? 사랑이 밥먹여주냐는 말 있지? 그게 괜히 생긴 막말이 아니다.
너.. 사랑이 얼마나 갈꺼 같아? 사랑은 순간이야.. 닥터최보다 못한 사람이면
아예 엄마한테 말도 꺼낼 생각 마라!"
엄마는 그렇게 못을 박고는 찬바람을 날리며.. 나가버리셨습니다.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엽기토끼를 안은채 정훈이에게 말하듯 가만히
중얼거렸습니다.
정훈아.. 어떡하니..? 앞으로 우리.. 순탄하게 사랑할수 있을까..?
-28-
엄마말대로.. 사랑이 밥을 먹여주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밥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수는 있지 않을까..
사랑이 없이도 잘 먹으면.. 살기야 하겠지만.. 행복할수 있을까?
그렇게 먹고 살기만 하면 행복한걸까..? 그것이 과연 잘 사는걸까..?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정훈이가 옆에서 툭~ 칩니다.
"내가 옆에 있는데두 내 생각 하는거에요?^^"
"응..^^"
"왜.. 그래요? 무슨 고민 있어요?"
"정훈아.. 사랑이 밥 먹여주니?"
"네?"
"사랑이 밥먹여주냐구.."
"하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우리 엄마가 그러드라구. 사랑이 밥먹여주는게 아니래."
"물론 그렇죠. 하지만 난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없다면 밥을 먹고 싶을것 같지도
않은데요? 차라리 굶어죽고 말지."
과연.. 정훈이다운 말이었습니다.
정훈이는 아이스크림을 난 파인애플주스를 시켰는데.. 정훈이는 아까부터
내 주스만 빼앗아 먹고 있었습니다.
"왜 니꺼 안먹고 내꺼 뺏어먹어??"
"누나 입이 닿은것만 먹을래요.^^"
"으.. 변태.. 더러워.."
"이상하죠? 사실..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무엇인가를 같이 먹는다는건..
그러니까 서로 침이 묻었을텐데도 별로 지저분해하지 않고 같이 먹을수 있다는건
쉬운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사람들이 사랑하게 되면 이렇게 같이 먹는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되는거잖아요. 누나랑 나도 처음엔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지금은 누나 입속에 있는것두 빼서
먹을수 있을거 같으니 말이에요.."
"에이~ 지저분하게~"
"한번 해볼까요?^^"
"난 너랑 같이 먹기 싫어!"
"왜..요? 더럽게 느껴져요?"
"그래~^^"
"치.. 내 침이 묻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흥분되요? 키스라도 하듯이?"
"허.. 말을 말아야지. 너랑은 대화가 안되.. 대체..-_-"
그렇게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즐겁게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어느순간
갑자기 정훈이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누나.. 있잖아요. 재영이 말이에요."
"왜?"
"재영이 두달후에 군대 간대요."
"그래? 참.. 넌.. 그러고 보니까 어떻게 된거야? 너 군대 안가두 되?"
"내가 그럴 빽이 어딨어요. 더구나 넘치는게 힘인데..-_-"
"그럼.. 언제라도.. 가야 한다는 말이구나?"
"재영이.. 가는거 보니까.. 나도 얼마 안남았구나.. 싶네요. 학교핑계로 좀 미루긴
했었는데.. 헤헤.. 사실 누나 때문에 미룬거였어요~"
"정말이야?.. 근데 정훈아.. 군대 안가면 안되?.. 가지마라.. 응?"
"하하.. 누나답지않게 왜 그래요? 나 그럼 감옥가여~"
"면제 받거나 방위로 갈순 없는거야? 나 우습지.. 누구나 가야 하는건데..
너만은 안갔음.. 너 하나쯤이야 안가도 되지 않을까.. 싶은거 있지?"
"누나.. 그럼 좋은 방법이 있어요."
"뭐??"
"음.. 어쩔수없이 군대 가게 되면 내가 어디 한군데라도 다쳐서 빨리 나올께요..^^"
"헉.. 뭐야.. 재수없는 소리하네.. 그런말 하지마.."
"우리 그럼 다른 나라로 튈까요?"
"치.. 다른데 가서 말도 안통하구.. 어떻게 살려구 그래?"
"맨날 누나만 사랑하고 또 누나한테 사랑받고.. 그러면서 살죠~"
"너같은애가.. 어떻게 화공과에 들어왔나 몰라.. 국문과나 철학과를 갔어야지..
전공을 잘못 택한거 아냐?"
"누나.. 내가 만일 군대가기 전에 프로포즈 하면.. 어떨거 같아요?"
"요즘엔 왜 자꾸 힘든 질문만 하니..?"
"실망인데요~ 그런 대답은 바로바로 나와야 하는거 아니에요?"
"난.. 알거든. 니가 프로포즈 안할거라는거.."
"근데.. 누나를 그냥 이대로 두고는 군대 못갈거 같아요. 누나를 주위에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테니까.. 누나가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될까봐.. 걱정되요.
벌써부터 나.. 이렇게 누나가 내 여자라는.. 나만 바라본다는 확신이 없어서
걱정되 미칠것 같아요."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굴어?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보여?"
"같이 자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어떻게 알아요?-_-"
"야!! 걸핏하면 야한쪽으로 얘기 돌리구.. 너 진짜..!"
"사랑하는 여자랑 같이.. 자보고 싶은게 당연한건데 뭘 그래요? 내가 단지
솔직한것 뿐이지.. 다른 남자들도 다 그래요. 뭐..-_-"
날 우리집 앞까지 데려다준 정훈..
현관옆 화단턱에 앉아 잠시 얘기를 하고 있는중에.. 우리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엄마 아버지는 우릴 아직 못보셨기때문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난 어차피 부딪힐꺼.. 잘 되었다
싶어.. 그냥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가슴이.. 무척 떨리더군요.
"정훈아.. 저기.. 우리 부모님 오셔.."
"네???"
정훈이.. 놀라며 벌떡 일어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인사해.. 부담갖지 말구.. 당황하지 말구.."
난 정훈이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29-
"너.. 연이 아니니?"
엄마가 어둠속에서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먼저 물으셨습니다.
"아버지랑.. 어디 다녀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전.. 유.정.훈 이라고 합니다."
정훈이는 거의 90도 각도로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놀란 표정의 아버지..
놀라다못해 화난 표정의 엄마..
"연아.. 여기가 어디라구 이러구 있니? 누가 지나가다 보기라도 하면.."
엄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꽤나 의식을 하십니다.
"어때요? 그냥 쟤네 연애하나보다 하겠지.."
어떻게 그런말을 할 용기가 나왔는지.. 내가 말하고도 뜨끔했지만 이미 뱉어 버린말..
"뭐라구??"
어이없어 하는 엄마.. 날 무섭게 노려보십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자 아버지가 그제서야 입을 여셨습니다.
"여기 서서 이렇게 얘기하기도 그러니.. 일단 집으로 들어가서 잠깐 차라도
한잔 해요. 들어갑시다~"
"어머?? 무슨 소리에요?? 아무나 집에 들여요? 절대 안되요!"
.....................
엄마의 말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나는 발끈 하려는것을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지요.
"엄마.. 내가 전에 말하던 사람이야.. 내가 좋아한다는.."
"얘가.. 미쳤어!.. 어서 들어가자. 늦었으니 이만 가봐요~"
엄마는 정훈이를 보는둥 마는둥 하시더니.. 결국 먼저 들어가버리시고 말았습니다.
난 오기가 생겨 기어코 정훈이를 집으로 데려가고 말았고.. 엄마는 안방에 들어가신후
나와 보는척조차 하지 않으시더군요.
다행히도.. 정이가 나와서 공손하게 인사를 하더니 차를 가지러 간다며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앉아요."
아버지는 내내 굳은 표정이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려는 눈치였습니다.
"나이가.. 꽤 어려보이는데.."
"예.. 23살입니다.."
"허허허.. 우리 윤이랑 갑이구만.. "
아버지는 기가막힌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난 뭐라고 할말이 없어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고.. 정훈이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 봐요. 우리 연이한테 직접 제대로 들은적이 없어서.."
"예.. 전 춘천이 고향이구요. 지금 연이씨랑 같은 대학 화공과 학부 3학년생이구요..
연이씨랑은 학교에서 만났습니다.. 교제한지는 거의....."
"허허.. 지금 장난하나?"
아버지의 말에.. 정훈이의 표정이 굳어졌고... 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두통이
밀려옴을 느꼈습니다.
"둘이.. 지금 뭐하는건가? 애들 불장난 해?"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우린.. 성인이구.. 진지하게 교제하고 있는거에요."
그제서야 힘겹게 입을 연 나였습니다.
"진지..라.. 요즘 연상 연하 커플이 많다고는 하지만.. 5살 차이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애들 장난도 아니구.. 연이 너.. 곧 졸업하는데.. 그것도 대학원
졸업하는데.. 이 친구는 앞으로 졸업할려면 거의 2년이나 남았지 않니.. 니 막내동생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은거냐? 참.. 군대는 다녀왔는가?"
"아직.. 곧 갈 예정입니다.."
그 말을 하는 정훈이의 목소리는.. 너무도 작았습니다. 난 눈물이 나려는걸
꾹 참고 있었습니다.
"우리집에 처음 온 손님인데 제대로 대접 못해 미안합니다. 그럼 차나
마시고 가요."
아버지는 정이가 차를 가지고 나오자.. 드시지도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버리셨습니다.
어떻게.. 이럴수가... 내가 그동안 정말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던.. 우리 부모님이
맞는걸까.. 난 갑자기 밀려오는 배신감으로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맘에 안드셔도.. 인정 못할 관계여도.. 내가 처음으로 집에 데려와
부모님께 소개를 시킨 남자인데.. 어떻게 이러실수가..
"죄송..해요. 부모님도.. 너무 뜻밖의 일이라.. 좀 당황하셨을꺼에요."
정이가 민망한 표정을 감추며 조심스럽게 정훈에게 말했습니다.
"하하.. 아니에요. 생각했던것보다.. 잘 대해주셔서..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해요..
누나.. 울지마요.. 그럼 나보고 부모님이 첫눈에 반하실줄 알았어요? 누나처럼
그렇게 눈이 높으실줄 알았냐구요~^^"
정훈이가 내 어깨를 토닥이자 난 더 서러움에 복받쳐 거의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정이씨.. 라고 했죠? 연이누나 못지 않게 이쁘시네요~^^"
이런 분위기에서도.. 애써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정훈을.. 정이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뿐이었고..
정훈이는 그렇게 쓸쓸한 미소를 띤채.. 돌아갔습니다.
며칠후..
정이와 함께 웨딩샵에 가게 되었습니다. 미안해하며 망설이는 정이를 내가 먼저
따라나선 것이었습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울앞에 선 정이는 정말 천사 같더군요.
"정아... 너 진짜 이쁘다.. 내 동생.. 맞니?"
"언니.. 언니두 입어 봐라. 언니는 저게 어울릴꺼 같애~!"
갑작스런 정이의 제안에.. 당황스럽습니다. 난 절대 못입는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결국엔 못이기는척.. 입어보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봐도 정말 이쁩니다~^^ 정이랑 웨딩샵 언니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합니다. 곧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정이..
"언니.. 나 괜히 이런 소리 하는게 아니라.."
"응.. 말해."
"난 언니가.. 평생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할줄 알았어. 언니는 똑똑하고 이성적이라
결혼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할줄만 알았어.. 그런데 언니도 사랑을 할수 있구나.."
"야.. 내가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보였단 말야?"
"언니도 사랑에 빠질수 있는 뜨거운 가슴을 가졌구나.. 싶어서 난 언니를
이해하고 지지하기로 했어~ 사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지만.. 난 언니편이야.."
"정이야.."
"내가 그때 말했었지.. 아주 현실적으로 말야. 그런데 언니가 사랑한다면
이해할수 있을거 같아. 남들이 그러는건 이상한 일이어도.. 언니는 우리 언니
내 언니니까.. 이해되. 사실.. 그 정훈이라는 사람말야.. 만나보기 전에는 그냥
어린애일줄만 알았어. 피부는 언니보다도 더 고왔지만..^^ 그런데.. 꽤 속이
깊고 진실한 남자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날두 봐라. 사람이 얼마나
순수하고 착해? 나 그런 남자 처음봐. 생긴것도 이뿌고..^^"
"정아.. 정말.. 고맙다.."
"아니야.. 언니. 엄마 아빠가 앞으로 어떻게 반대를 하고 나오셔두.. 언니가
그 사람이랑 잘해보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굽히지 말어. 내가 밀어줄께.. 힘은..
없지만.. 말야..^^"
정이의 그말이..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
30-
정훈이가 우리집에 왔다간 이후로 엄마는 내가 밖에 나가는걸 꽤나 경계하셨고..
내가 정훈이 얘기를 꺼낼라치면 아예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훈이를 절대로 인정할수 없다는 엄마...
물론 날 걱정해서.. 내가 고생할까봐.. 그러시는 거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엄마의 욕심일지도 모르는.. 그래서 내가 정훈이를 사랑한다는걸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 엄마가 너무 야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정훈과 내 사이를 방해하는건.. 부모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교수님..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말을 아끼시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시는
교수님을 대하기가 너무나 부담스러웠죠.
"연아.. 너 우리 성민이.. 속을 왜 그렇게 썩이니?"
"네??"
"우리 성민이.. 어디가 그렇게 맘에 안드는지.. 얘기해 볼래?"
"교수님.. 전.."
"니가 요즘.. 좀 심심했나보구나.. 너같은애가 장난을 다 치구.. 후후.. 하지만
이해해.. 넌 여리고 착한 애라.. 그냥 잠깐 상대해줬을 뿐일테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니다.. 내가 괜한 얘기를 꺼냈구나.. 사실.. 너한테 이번에 좀 실망하긴
했지만.. 그정도야.. 이해해줄수 있다. 그동안 널 봐온 나로서.. 그정도일로
널 판단할수 있겠니? 난 너를 잘 알아.."
소문을 들어서.. 정훈이와 나의 관계를 알고 계시는것이 분명했습니다.
다정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던 교수님에게 이런 차가움이 있다는게.. 상처가
되긴 했지만.. 나의 교수님이기 전에.. 성민의 어머니이므로.. 그럴수 있겠다
싶어..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나에게 집착하시는지.. 알수 없어 혼란스럽기도 했죠.
또한 자기 아들이랑 결혼하기 싫다는데도.. 날 며느리로 고집하시는 이유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이 우릴 힘들게 하긴 했지만 정훈이와 난 더욱 애틋해질 뿐이었죠....
"에휴! 진짜 못봐주겠어! 기다릴 애인하나 없이 곧 군대에 가야하는 날 봐서라두
좀 떨어져!!!"
재영이 실험실에서 다정하게 붙어 실험 도구들을 닦고 있던 나와 정훈의 사이에
끼어들며 하는 소리였습니다.
"너.. 질투하는거지? 내가 너랑 동거(?)하다가 바람펴서? 하핫.."
"헛소리는.. 지금 이럴때가 아냐. 좀전에 교수님 만났는데.. 누나랑 너랑 교수실로
오라고 하시네? 어서 가봐."
난 갑작스런 재영의 말에 조금 놀랐습니다.. 같이 오라고 하신다니..
"교수님 분위기 많이 안좋더라구. 되게 썰렁해. 음.. 교수님이 말야..
혹시.. 누나랑 정훈이 사이를 질투하시는게 아닐까? 하하하.."
재영의 농담에도 정훈이와 난 웃을수만은 없었습니다.
대충 실험실을 정리하고 정훈이와 함께 교수실로 향했습니다..
교수실에 들어가니..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이 와계시더군요. 바로 성민이었습니다.
"손님이 계신가보네요. 나중에 올까요? 교수님?"
정훈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교수님은 오히려 우릴 반기시는 눈치였습니다.
"아니다. 괜찮아.. 어서들 앉아라."
대체.. 이게 뭘까... 난 왠지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성민을 바라보았습니다.
조금은 굳은듯한.. 무표정한 얼굴..
"정훈이.. 너 내 아들 처음 보지? 인사해."
어색한 둘의 인사가 끝나고.. 교수님은 차가운 미소를 띤채 본론에 들어가시더군요.
"정훈아.. 알고 있었니? 연이랑 내 아들이랑 결혼할 사이인거?"
"네??"
"교수님!"
정훈이와 내가 거의 동시에 외치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짧은 웃음으로 무시해버리고는 말을 이어나가셨습니다.
"연아.. 너 유학가라. 내가 유학했던 곳으로 가보는게 어떠니? 커리큘럼도 좋구
주위 환경도 아주 좋아. 거기서 박사학위 따와라. 학비는 학교에서.. 그리고
내가 도와줄꺼야. 가능성이 있는 널 위한 학교측과 나의 제안... 어떠니?"
"교수님.. 전.."
"너.. 교수될 생각엔 변함 없는거지?"
"제가.. 할수만 있다면.. 하고 싶어요. 하지만.. 너무 뜻밖이라."
"성민이랑 같이 가렴. 성민이도 하고 싶어하는 공부가 있으니까.. 결혼해서
같이 가거라."
"저기.. 말씀중에 죄송한데요.."
줄곧 침묵을 지키던 정훈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교수님이 뭘.. 잘못 알고 계신것 같은데.. 연이누나는 사귀는 사람이 있어요.."
"연아.. 니가 말해봐라. 니가 사귀는 사람이.. 또 결혼할 사람이 누군지.."
교수님.. 왜 절 이렇게 힘들게 만드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곳에 있는
한 사람이라도 상처를 받을텐데.. 어쩌란 말씀이신지...
내가 망설이고 있자.. 정훈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교수님이 나를 대신이라도 하듯.. 입을 여시더군요...
"나도.... 눈이 있어서 보고.. 귀가 있어서 듣는다.. 정훈이랑 너.. 그런 사이..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 한때의 장난에 불과해."
난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런 유치하고도 황당한 자리를 만드시다니..
그리고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난 그동안 내가 믿고 존경했던 교수님에게
배신감마저 느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거죠? 누가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연이누나와 전 누가 뭐래도 사랑하는 사이이구요. 결혼도 할껍니다!"
정훈이 당당하게 소리높여 말하며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았습니다.
교수님은 여전히 냉소를 띤채.. 정훈의 앞에 무엇인가를 내미셨습니다.
"영장이.. 학교로 날아온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