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 (사)대한속기협회 신임회장 이주성 속기사 |
"다양한 분야 속기사를 하나의 공동체로"
(사)대한속기협회 제11대 회장으로 올해 1월 취임한 이주성 속기사. 국회 정년 퇴직 후 부천대 스마트속기과 교수로, 중국어학원 학생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이주성 회장을 만났다.
Q 늦게나마 대한속기협회 회장에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취임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요.
“우리 대한속기협회는 1955년 설립되어 6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대한민국 속기계의 본산이고 상징입니다.
역대 회장단을 보면 여당의 원내대표이고 정치권 실세로 오랜 기간 활동하신 김용태 의원, 속기사로 언론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다가 국회의원이 되고 제1야당 명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린 박권흠 의원, 그리고 바로 전 회장이신 3선의 정성호 의원 등 훌륭한 분들이 쭉 우리 속기계를 이끌어 오셨지요.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그 뒤를 잇게 되어 걱정이 앞섭니다마는, 이제 속기사 출신이 회장을 맡아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 속기계가 양적 물적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되고 한편으로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Q 말씀대로 대한속기협회는 한국 속기계의 구심점입니다. 그만큼 한국 속기계를 위해서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향후 중점 추진 과제는?
“기본적으로 대한속기협회는 국회에 근무하는 소수의 속기사에 의해서 출범하였기 때문에 협회 활동이 대부분 국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재 속기영역이 지방의회, 법원, 검찰, 자막방송, 프리랜서 등으로 크게 확대되었지요. 따라서 저는 이와 같이 사회 각 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는 속기인들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데 그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각 기관의 다양한 업무내용을 확인하고 애로사항을 함께 논의하는 일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지난해 3월 부천대 스마트속기과 출범, 12월 속기역사관 개관, 올해 3월 한국속기학회 창립 등 속기계의 굵직한 숙원사업이 3건이나 해결되었습니다.
“제가 속기협회 사업이사로 활동하던 90년대 중반, 속기계의 가장 큰 현안문제는 지방의회 속기사 일반직화로의 직제개정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무원사회에서 제도를 다시 고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당시 지방의회에 근무하는 후배들의 뜨거운 염원과 처음부터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게 놔두었다는 미안함이 더해져서 정말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먼저 지방의회 속기사가 일반직이어야 하는 이유를 페이퍼로 만들어서 곳곳에 배부하고 주요 기관 관계자를 만나서 직접 설명하였습니다.
내무부 자치행정과장, 전국시도의회의장단협의회장, 지방의회 의원 등 많은 분들을 만나서 우리 뜻을 전하고 도와달라고 호소하였지요.
이들은 먼저 지방의회속기사도 국회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제정된 제도를 고치려면 근거가 확실해야 하는데 너무 미약하다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그 핑계로 댄 몇가지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첫째, 속기사를 양성하는 학과가 대학에 개설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건축학과가 있어서 건축직이 있고 도서관학과가 있어서 사서직이 있고 전산학과가 있어서 전산직이 있는데 속기학과는 없어서 별도 직제 신설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지요.
둘째, 대학에 학과가 없더라도 관련된 학술논문이 축적되어 있다면 이를 근거로 추진해 볼 수 있는데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논문이 하나도 없다보니 다른 사람을 설득할 이론적 토대가 없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셋째, 지방의회속기사들은 정식으로 공개채용으로 임용되지 않아서 어렵게 들어온 기존 공무원들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반대논리를 전개하였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이러한 장면이 떠올라서 부천대학교 속기과 신설 및 속기학회 창립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달랐지요. 오래된 체증이 뚫린 기분이고 이제 큰소리 칠 수 있게 됐다는 자존감도 높아졌습니다. 한편 회장으로서 이 사업들이 성사된 것이 말할 수 없이 기쁨니다만, 남은 과제가 얼마나 무거운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Q 최근 속기계의 가장 큰 현안으로 음성인식(인공지능)과 속기와의 관계 정립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음성인식(인공지능) 발전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에 속기사가 포함된다는 잘못된 보도와 또 과장광고 등이 속기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속기계의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요?
“우리 속기계 뿐 아니라 전 산업분야에 AI 또는 음성인식 등 첨단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음성인식 기술에 의한 속기 대체는 거의 끝 부분에 해당되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봅니다. 오랫동안 국회에서 속기실무를 해봤지만 광고에서 보듯이 정말 편안하고 정리된 분위기에 외부 잡음 전혀 없이 크고 명확한 발언이 장시간 진행되는 회의를 별로 본 적이 없어요. 특히 정치적 이슈가 있고 정확한 속기록을 만들어야 하는 회의일수록 이러한 음성인식에 최적화된 조건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우수한 음성인식 기술이 개발되어도 결국 전문속기사가 최종 마무리를 해야 하고 그 정확도가 높지 않다면 아예 처음부터 속기사한테 맡기는 게 낫습니다. 따라서 음성인식은 속기 보조를 위한 별도의 기술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속기 분야에서 음성인식 기술의 실용화는 인공통번역, 인공운전, 인공진료 및 수술, 인공변호, 인공회계 등이 다 이루어진 다음 단계의 일이 될 것입니다.”
Q 이제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속기에 관심갖게 된 시기와 계기는? 속기를 배우면서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집안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학 진학이 어려웠습니다.
당장 취업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국회 내에 있는 속기사양성소에서 속기사지망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지요.
국비로 가르치고 국회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에 이끌려서 지원, 8.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 시작하게 되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중도 포기하려고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외에 다른 직업으로 목표를 바꿔서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이왕 배운 것 포기하기에는 지나간 세월이 너무 억울해서 계속 했었던 것 같네요.
하루빨리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감이 국회속기사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봅니다.”
Q 국회가 평생직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근무환경에서 한 번도 실직의 위협을 느끼지 아니하고 편안한 직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근무할 때는 승진 안 되고 봉급 적다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고시 합격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올라간 고위공무원, 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회사에 바쳐 인정받은 소수 대기업 임원들을 감히 비교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회에서 접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회 지도층이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내 수준이 올라간 듯 착각이 드는 게 장점이 되고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속기사로서 25년 근무한 뒤 정무위원회 입법조사관, 기획재정위원회 행정실장, 의정연수과장 등을 지냈습니다마는,
녹음시설이 미비했던 시절 하늘같은 선배 따라 회의장 드나들고 속기능력 부족으로 퇴직을 고민하던 젊은 시절이 가장 그립고 애잔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Q 속기사로서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특이한 경험이 있으면...
“91년도인가 여당은 단독으로 특정법안을 처리하려고 하고 야당은 회의가 안되도록 아예 의장의 본회의장 입장을 물리적으로 봉쇄하는 아주 소란하고 긴박했던 여름날이 생각납니다.
저를 포함한 4명의 속기사들은 긴장된 자세로 속기석에 앉아있었지요. 순간 본회의장 중간쯤에서 다수의 여야 의원들이 뒤섞여 거칠게 부딪히고 고성이 오가는 몸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회의장 전체가 워낙 시끄러워서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일단의 야당의원들이 아주 흥분한 표정으로 속기석을 둘러싸면서 ‘지금 속기한 그 원문 내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멍해져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방금 부의장이 날치기로 법안 처리했는데 속기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뜻이냐’고 묻고는 ‘속기사가 속기하지 않은 회의는 원천무효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어서 ‘오늘 회의를 속기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소위 확인서를 쓰고 4명의 속기사가 각각 서명·날인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날 석간신문에는 우리가 작성한 확인서가 그대로 실리고 덕분에 유명해진 우리들은 지인들의 전화도 많이 받고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요.”
Q 속기인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보람은?
“비교적 안온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대과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무한한 긍지를 느끼고 있고 이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다만 97년도 중순인가 후배들과 3∼4년 지방의회 속기사 일반직화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 결과, 내무부장관 및 관계자로부터 그 이행 약속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좋아했는데 그해 말 터진 IMF로 공든 탑이 무너졌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90년대말 국회회의록의 인터넷공개를 위한 전산시스템이 처음 도입될 때 실무준비를 위하여 국회내에 TF팀을 구성한 적이 있는데
그 위원으로 참여하여 현재의 국회회의록시스템이 정착되도록 일부 기여하였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Q 국회 정년퇴직 후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취미는?
“지금 부천대학교 스마트속기과에서 ‘회의의 이해’ 과목을 맡아서 일주일에 하루 강의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이 아내와 여행을 가끔 즐기거나 어학학원 다니고 헬스클럽에 들리기도 합니다. 이러다보니까 친한 친구들로부터 식사 자리 갖기 어렵다는 불평을 듣곤 한답니다.”
Q 후배 속기사들이나 속기 지망생들에게 당부의 말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화 사회에 저 자신 제대로 적응이 안되는 처지라 후배들에게 적당한 조언을 드리기 부담스럽네요.
굳이 한마디 하자면 속기인 한 사람의 행동이 곧바로 전체 속기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늘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특히 우리끼리 얘기하고 즐기는 자리는 상관없지만 외부인들과 함께 할 때는 나쁜 인상을 주지 않도록 좀더 신경 써주셨으면 합니다.”
Q 기타 하실 말씀은?
“현재 약 3,500 여명의 속기사들이 의회·법원·자막방송 등 전 분야에 걸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마는, 근무지가 다르고 업무영역도 상이하다보니까 부문 간 소통이 많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각자 자기가 속한 쪽 이외의 사정을 잘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은 가운데 우리들 역량이 모아지지 못하고 분산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따라서 급변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똘똘 뭉쳐야 하고 믿을 게 우리밖에 없다는 인식을 명확하게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협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협회를 중심으로 한 동료의식과 공동체 정신을 뜨겁게 느낄 수 있도록 회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Q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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