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종이책 / 마이클 엘리엇
몇 달 전 출국할 때 그동안 쌓아 놓은 마일리지 덕분에 인천공항에서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 벽에 붙은 책장에 고전으로 보이는 책들이 진열돼 있어 꺼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모두 가짜 모형 책들이어서 놀라웠다. 갑자기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이제 책은 소품에 불과한 존재가 돼 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중심가에 있는 한 서점도 원래 1, 2층 다 책만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반은 문구와 기념품 가게로 바뀌었다. 그다음 해는 그것마저 반으로 줄어서 이제 책 진열대는 4분의 1만 남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지하철에서 ‘타임’지를 읽는 20대, 소설을 보는 30대, 한자로 된 고전을 읽는 어르신을 다 볼 수 있었다. 이제 지하철에서 책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스마트폰으로 책을 볼 수 있긴 하지만 몇 분 이상을 보는 데는 대단한 의지력이 필요하다. 훨씬 관심이 많이 가는 SNS 앱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손가락이 저절로 쪽지와 댓글, 게시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란 힘든 일이다.
스마트폰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스마트폰을 산 친구가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고 ‘수불석권(手不釋卷)’이라는 말을 바꿔서 ‘수불석폰’이라고 놀렸다. 수불석권은 ‘책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나도 다음 해에 스마트폰을 갖고 나서 ‘수불석폰’이 되고야 말았다.
역사적으로 항상 새로운 정보 매체가 나올 때마다 그 과도기에 있는 중년층은 비교적 얼리어답터가 많은 젊은층을 보면서 ‘이제 우리는 망했다’고 걱정한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인류는 계속 생존했고 문명은 계속 발전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하필 종이책이 사라져 가는 황혼기가 됐다는 생각을 하면 슬퍼진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이제 승마 문화가 완전히 없어지겠다고 걱정했다. 오늘날에도 말 타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일상적인 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머지않아 우리도 종이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와 정말 신기하다’며 구경할지도 모르겠다. *
마이클 엘리엇